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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가난을 다룰 때

얼마 전의 일이다.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될 한국영화 가운데 박철웅 감독의 을 추천할 기회가 있었다. 만들어진지 2년이 되도록 몇 가지 이유로 개봉되지 못했던 이 영화는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을 배경으로 어느 가족의 여름 한 철을 다루고 있다. 그러자 추천사와 그에 포함된 사진을 본 누군가가 불편하다며 지적해왔다. 사진 속 주인공들이 가난한 사람들답지 않...

지구에서 사는 법, 다시 시작하는 법

여기 부부가 있다. 부부에게는 대화가 사라진지 오래다. 시를 쓰는 남편은 외계인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아내와의 시작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마냥 과거의 모든 풍경이 흐릿할 뿐이다. 그는 사람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심각한 단절감을 느낀다. 마지못해 찾아간 술자리에서도 역시 같은 좌절을 느낀 남자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선다...

국제적 촌극, 충무로영화제

3회 충무로국제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는 보도에 웃지 않을 수 있다면 당신은 진정한 용자다. 어떤 의미에서 이번 영화제는 오래도록 회자될 사건이다. 영화제라는 게 다 똑같다고, 누가 운영하고 집행하든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사건 말이다. 해외 영화를 상영한다고 모두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차라리 학예회에 가까운 국제적 ...

가난한 사람들은 왜 민족주의자가 되었나

진보적이고 상식적인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특히 근사하고 빼어난 자들은 대개 풍족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다. 그들이 때로 광증을 운운하며 지적하는 불특정 다수 인민은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거나 내 가족 건사하는데 영혼마저 염가로 팔아치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바더 마인호프, 한국을 예언하다

이란 전제군주 방문에 반대하는 시위가 진행 중이다. 흥분한 독일 군중의 아유소리가 들려온다.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남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군중 속으로 뛰어든다. 무차별한 폭행이 이어진다. 경찰은 방관한다. 마침내 폭력 소요로 비화되자 경찰들이 달려들어 군중을 진압하기 시작한다. 사복 경찰 한 명이 권총을 꺼내 들어 누군가의 머리를 정조준해 발사한...

마터스, 피범벅 영화의 불온한 정점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문명과 상식, 인권, 교양, 종교, 자유민주주의, 하다못해 보편타당한 취향의 이름으로 금기시된 모든 것들에 도전하는 영화다. 대개의 경우, 관객은 눈앞에 던져진 무례함에 분노한다. 더불어 매도한다. 그러나 영화라는 그릇이 담을 수 있는 세상의 깊이와 폭을 꾸준히 확장시켜온 것 또한 이런 종류의 불편함이라는 사실을 ...

블러디 발렌타인, 입체 곡괭이의 습격

또래의 친구들이 플레이모빌파와 레고파로 나뉘어 생사를 논하는 가운데 조이드가 제일 우월하다 우기다가 왕따를 당했던 그 시절. 그 중에서도 온몸의 관절이 움직이는 지아이유격대의 등장으로 평화의 댐이 허물어지는 충격에 빠졌을 즈음 만화 주간지에 3D 입체만화라는 게 실리기 시작했다. 대개 나 같은 신작 장르영화의 만화버전이었고 빨갛고 파란 셀로판지가 조악하...

무대 인사를 보면 영화가 보인다

언제나 그렇다. 영화 개봉을 두 주 정도 남겨두고 언론 시사회가 열린다. 영화라는 매체 주변부에서 어떻게든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스멀스멀 나타나 손님 행세를 한다. 한국영화의 경우에는 상영 전 반드시 무대인사가 앞선다. 제작자와 감독과 배우를 한자리에 불러 모아 한마디씩 듣는 것도, 그걸 두고 사진을 찍는 것도 여러모로 시간이 드는 일이라 정작 ...

샘 레이미가 돌아오는 방법

샘 레이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시리즈와 그의 거무튀튀한 친구들, 이를테면 피터 잭슨이나 스튜어트 고든의 웃음기 섞인 B급 호러영화들을 함께 언급하는 것도, 그래서 그들이 조만간 새로운 호러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장탄식으로 끝내는 것도, 아이고 이젠 정말 지겨워 진절머리가 난다. 아니 내가 왜 이 게으른 사람들의 변호를 자처하는 거지? 수십...

다크나이트와 노무현

영웅으로 죽든지 악당으로 살든지, 혹은 많은 사람들이 인간 노무현의 퇴장을 두고 를 떠올린다. 그 중에서도 “영웅으로 죽든지, 악당으로 살아남든지”라는 대사를 유독 기억해낸다. 어떤 사람은 영웅에 노무현 대통령을 악당에 다른 누군가를 대입하고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문제의 대사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며 지금의 상황 위에 겹쳐 두고 있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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