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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를 사랑한 남자

주간경향 2013.10.11월터 리버라치를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리버라치, 비하인드 더 뮤직>이라는 영화였다. 내 기억에 90년대 어느 시점에 토요명화에서 방영해준바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쇼를 사랑한 남자>는 그보다 훨씬 리버라치의 진실에 근접한 영화다. 리버라치는 화려한 삶을 살았으나 외로웠고 게이였으며 심부전이 아닌 에이즈...

관상: 몰개성의 가상 역사

주간경향 2013.9 한재림의 <관상>은 계유정난의 한복판에 천재 관상가가 있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건 사실 관객의 관심을 붙들어 끝까지 끌고 나가기 어려운 이야기다. 이야기의 기본적인 얼개는 수양대군과 김종서 사이의 분쟁이다. 대개의 관객이라면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며 훗날 세조로 기록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눈치가...

일대종사, 청춘과의 결별

왕가위의 영화에 청춘을 저당잡혔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의 영화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 과거의 어느 순간을 끊임없이 복기하게 만든다. 나아가 감금시켜 버린다. 그것은 아련하고 낭만적이지만 동시에 퇴행이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피로감도 쌓여갔다. <아비정전>의, 혹은 <화양연화>의 어느 장면들마다 박제처럼 스며들어있는 나의 청춘과 ...

숨바꼭질, 부동산 스릴러

영리한 각본을 가지고도 이야기에 대한 과한 자신감 탓에 영화를 망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특히 장르 영화의 경우 이와 같은 풍경이 자주 되풀이된다. 시나리오상의 극적 반전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영화의 최종 꼴에 관한 비전의 부재로 이어지고, 심지어 그 영화에 참여하고 있는 배우들마저 같은 믿음을 공유하고 있는 경우, 영화적 만듦새는 쉽게 산으로 간다. ...

더 테러 라이브: 달콤하고 위험한

한국에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장르가 하나 존재한다. ‘분노’ 장르가 그것이다. 민주화 과정 동안 한국은 갖가지 사회적 통증을 통과해왔다. 군사 정권이 존재했다. 무려 ‘혁명’씩이나 해놓고 정권을 도로 군인 출신 대통령에게 맡겼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쉽고 간편한 절대악이 존재했다. 그 절대악의 이름은 박정희에서 전...

더 마스터, 거울 반대편

폴 토마스 앤더슨의 신작 <더 마스터>는 관객 입장에서 애매한 영화일 수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주인공의 성장도, 퇴보도 끝내 목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올려보면 우리 삶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지 않던가. 광각 렌즈로 들여다보았을 때 우리의 삶이란 희극으로 시작해서 부조리극으로 옮아가는 반복된 촌극에 불과할 것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와 비평 혐오

장철수 감독의 신작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동명의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원작에 대한 언급이나 비교는 하지 않겠다.

몽타주의 패착

잘 만들어진 영화들에서는 여러가지 미덕이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미덕은 말을 아낀다는 사실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대사로 상황을 설명하거나 관객에게 이해시키려 애쓰지 않는다. 그럴거면 애초 영화로 만들 이유가 없다. 나레이션을 깔거나 그냥 글로 쓰는 게 편할 것이다. 그것이 한 편의 영화가 소설이나 음악이 아닌 반드시 영화여야만 하...

환상 속의 그대: 환상 밖의 죄인

우리는 대개 관계의 끝자락에 이르러 이별의 순간 자기애로 도망친다. 자기애는 피폐한 자들의 가장 편리한 도피처다. 그곳을 끝내 벗어나는 사람들은 드물고 현명하며 잔인하다. 영화 <환상 속의 그대>는 수렁과도 같은 바로 그 도피처 언저리를 맴돌며 부침을 겪던 두 사람이 마침내 자유로워지기까지 이야기다.

'이경규'의 전국노래자랑

이종필의 장편 데뷔작이라기보다 이경규가 제작한 영화로 남을 공산이 큰 영화 <전국노래자랑>이 공개되었다. 일단 연출의 호흡만을 두고 보면 이경규가 연출하거나 제작했던 전사들과 비교해 훨씬 안정적인 모양새다. 그러나 여전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전국노래자랑>은 절반의 성취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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