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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악마가,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허지웅의 키노키] 아마도 악마가,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로베르 브레송의 1977년도 작품 는 68혁명 이후 정신적 공황상태에 이른 젊은이의 비관을 쫓는다. 수십 년이 지나 한국의 극장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놀라운 건 똑같은 고민이 극장 밖 이 땅의 현실에서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투표하고 오신 분만 덧글 달기

이명박이라는 이름의 미친 기관차에 최소한의 제어 장치를 지난 총선 때와 꼭 같은 글. 그래도 어제보다는 투표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교육감 선거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고요. 이번 선거가 지난 대선이나 총선보다 중요한 건 촛불 광장이라는 거대한 현상 이후(혹은 동시에) 이뤄지는 첫 번째 선거라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공정택 후보와 ...

당신이 투표하면, 바뀐다

2003년이었지 아마. 이명박 당시 서울 시장이 강북 뉴타운에 자립형사립고를 유치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일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되게 어리석다. 자사고 특목고가 지역 불균형 해소와 사교육비 절감을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얕고 얇은 환상에 불과하다. 더 많은 경쟁과 서열화는 그보다 더 많은 불평등과 저열한 학생을 낳을 뿐이다. 물론 일부 선...

촛불광장의 매트릭스

안전한 물대포의 안전하지 않은 물줄기가 등을 가격하는 순간, 나는 응암동 할인마트 3층에 여전할 그 검정색 안마의자의 300만 원짜리 성능을 추억했다. 툭툭툭. 푹푹푹. 손님 시연용 상품에 30분 이상 앉아계시면 곤란합니다. 지금 없이 산다고 무시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네 그렇군요. 반면 물대포는 차별하지 않았다. 만인에게 축축하게 쏴아. 얼마...

광장에 대중문화가 사라졌다

중요한 때 중요한 장소에는 늘 중요한 대중문화가 존재했다. 그러나 2008년 광우병 정국의 광장에는 대중문화가 없다. 68혁명 즈음의 유럽과도, 87년의 한국과도 다른 양상이다. 대중문화의 실종은 무엇 때문인가. 광장에 대중문화가 사라졌다. 온전하게 적확한 수사는 아니다. 있다가 사라진 게 아니다. 처음부터 없었다. 우리가 평소 듣고 보고 읽던 것...

국가전복을 위한 괴수들의 모임

촛불장난을 그만하라는 말장난

한국인의 냄비근성이란 허황된 말이다. 쉽게 끓고 식는 성향이 민족성 따위에 잠재할 이유도 근거도 없다. 이 말은 애초 정권과 언론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금은 제 혼자 알아서 작동한다. 마치 숙명처럼 사용되면서 마침내 하나의 프레임을 구성한 것이다. 냄비근성 프레임은 이 땅에 사는 자들이란 원래 그렇고 그런 것, 이라는 자조와 비관을 시민 개개인에...

우리는 과연 이길 준비가 되어 있나

25일 새벽 청계 광장 광장에 대하여 비폭력을 쉽게 말하지 마라 우리의 무기는 우리의 다름이다 5월 25일 새벽 경찰의 첫 번째 폭력진압 이후 빠짐없이 광장에 나가 새벽을 지켰다. 얻어맞기도 했고 남이 맞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그 2주일 동안 광장의 패러다임은 여러 차례 변모해왔다. 처음 출발은 문화제였다. 그 다음은 과잉 진압에 대한 분노...

마스크와 목장갑과 영화기자

K감독 인터뷰가 있다. 슬슬 나가볼까. 가방을 열었다. 수첩과 녹음기와 담배와 라이터와 필기도구가 보였다. 그리고 마스크와 목장갑이 있었다. 마스크와 목장갑이 있었다. 마스크와 목장갑이 있었다. 이 문장을 세 번 되풀이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그냥 피식 웃었다. 새삼스럽다. 마스크는 코앞에 뿌려대는 소화기와 스프레이에 요긴하다. 목장갑은 전경버...

우리의 무기는 우리의 다름이다

25일 새벽 청계 광장 광장에 대하여 비폭력을 쉽게 말하지 마라 서울대가 5일 동맹휴업에 들어간다. 애초 저조한 참여율로 성사가 불투명했다. 엘리트 집단의 마음을 움직인 건 미디어에 노출된 음대생의 폭행 장면이었다. 군홧발에 치이고 밟히는 이미지의 얕은 권력이 판도를 바꿨다. 서울대의 전체 유권자 수가 16,990명이다. 그 가운데 8,76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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