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라이즈: 어둠의 기사 '부러지다'

영화 개봉 전 날 네이버영화 커버스토리에 기고했던 글 여기에도 옮겨둡니다.
(미관람자들에게 코믹스를 통해 영화의 꼴을 짐작하게 하며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소개하는 글. 
이미 영화를 보셨거나 코믹스에 관해 관심이 없는 분들은 http://ozzyz.egloos.com/4726542 를 보세요)

이 글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 개봉 전날, 그러니까 사람들이 스포일러 노출에 가장 민감하고 짜증스럽게 반응할 때 노출될 예정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배트맨이 나온다는 말조차 비밀스럽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그때 말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야만 한다. 그게 가능할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 '돌아오다', '추락하다', '솟아오르다'와 함께, 크리스토퍼 놀란과 데이비드 S. 고이어가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이야기를 구축하면서 스크린 밖에서 가져온 것들을 살펴보자.

글 l  허지웅   사진 및 자료 제공 |  민음사(세미콜론)    구성 |  네이버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어둠의 기사 '부러지다'
배트맨: "우리야 당연히 범죄자지. 우리는 늘 범죄자였어. 우리는 범죄자일 수밖에 없어" 
*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1](세미콜론)에서.

1. RETURNS: 돌아오다

- 배트맨이 필요 없는 고담 시 

"그가 왜 도망가죠, 아빠?" 
"그건 우리가 그를 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잘못한 게 없잖아." 
"그는 여전히 고담에 필요한 영웅이야.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란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쫓을 거야. 
 그 또한 감수할 테니까. 왜냐면 그는 영웅 따위가 아니니까. 그는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지켜보고 구원하는 
 수호신, 어둠의 기사니까!"


이후 8년이 흘렀다. 하비 덴트는 그날 죽었다. 배트맨은 사라졌다. 모든 건 하비 덴트의 말대로 되었다. "영웅으로 죽든지, 악당으로 살아남든지." 하비 덴트의 비열한 죽음은 꾸며질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는 영웅이 되어 희망의 상징이 되고, 살아남은 자는 악행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유폐되어야 했다. 

거짓말로 미화된 하비 덴트의 무용담은 고담 시 시민들의 가슴 속에 하나의 신념으로 자리 잡았다. 오래 전, 빈민 구제를 위해 애썼던 웨인 부부의 죽음이 한동안 그들에게 신념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도시에서 조직범죄는 자취를 감췄다. 하비 덴트 법은 '영웅' 하비 덴트를 기리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조직범죄에 대해 매우 강력한, 다소 무리가 따를 정도의 높은 법집행 기준을 가능케 했다. 고담 시를 주름잡았던 군소 조직범죄자들은 모두 악명 높은 블랙게이트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배트맨이 사라지니 사이코패스 범죄자들 또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어차피 배트맨의 거울 속 반영과도 같은 존재였다. 조커는 조너선 크레인(스캐어크로)과 함께 아캄 정신병원에 갇혀 있을 것이다. 고담 시는 더 이상 배트맨이 필요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1.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포스터. 2.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1,2](세미콜론).
[다크 나이트]는 정의의 양면성을 깨달은 자들의 이야기였다. 진짜 정의라는 것은 존재한 적도 없으며 가능하지도 않았다. 영웅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영웅은 대중에 소비되는 것이었다. 브루스 웨인/배트맨은 그 양면성의 잔혹함 앞에서, 어찌됐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영웅이길 포기하고 자경단을 자처하며 세상 밖으로 숨어버렸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그렇게 사라진 배트맨이 베인의 등장과 함께 8년만의 복귀를 결심하면서 시작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배트맨이 돌아오기까지 초반부의 묘사는 상당 부분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로부터 수혜를 받은 기색이 역력하다. 1986년 소개된 이 코믹스/그래픽 노블은 은퇴한 지 10년이 된 배트맨이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물론 1986년 이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배트맨 텍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배트맨 텍스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유산이다. 여기서는 직접적인 묘사에 있어서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등장 이전까지 상황을 잠시 개략해보자. TV 드라마 [배트맨]이 인기를 끌던 1960년대 후반 배트맨 코믹스는 본래의 어둡고 진중한 정체성을 상실한 채, 헛물켜는 농담과 팝아트식 작화로 침몰하고 있었다. 기존의 배트맨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면, 당대의 배트맨은 농담거리였다. 배트맨은 쫄쫄이를 입은 배 나온 바보 같았고 로빈은 슈퍼히어로 사상 최악의 사이드킥으로 전락했다. 이쯤에서 적절하게, 잠시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배트맨이 슈퍼맨에게 쏘아붙이는 대사를 인용해보자.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도 있었어. 그런데 지금 우리를 봐. 나는 정치적인 골칫거리가 되었지. 그리고 자넨… 자넨 이제 농담거리야."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2](세미콜론)에서.
이를 바로잡고자 작가 데니스 오닐이 나서서, 닐 애덤스가 그림을 그리는 소위 '닐 애덤스 시리즈'를 선보였다. 닐 애덤스 시리즈는 1970년대 수많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실제 이때 청년기를 보낸 위대한 창작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닐 애덤스 시리즈조차 꺼져가는 배트맨의 인기를 살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크리스토퍼 놀란과 데이비드 S. 고이어는 2006년 11월의 대담에서 자신들이 재창조한 배트맨 시리즈에 있어 가장 중요한 코믹스 텍스트는 '닐 애덤스 시리즈'와 프랭크 밀러의 [이어 원], 그리고 제프 로브의 [롱 할로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가운데 제프 로브의 [롱 할로윈]은 [다크 나이트]가 다루는 이야기의 매우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소스가 되었다). 

1. 닐 애덤스의 DETECTIVE COMICS Batman #244 커버 [The Demon Lives Again](1972). 2.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이어 원](세미콜론). 3,4. 제프 로브의 [배트맨: 롱 할로윈 1,2](세미콜론).
그리고 흡사 종소리처럼 1986년 2월,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가 공개되었다. 프랭크 밀러가 선보인 이 어둡고 전복적인 비전은 코믹스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혁명에 가까웠다. 배트맨은 탐정으로서 본연의 예민함 뿐만 아니라 어둠의 기사로서의 위상 또한 되찾았다.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1989년 워너의 경영진으로 하여금 (당시로서는 흥행을 위협하는 요소가 너무 많아 보였던)팀 버튼의 배트맨 기획을 최종 수락하게 만드는 버팀목이 된 것은 물론, 이후 거의 모든 배트맨 텍스트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1](세미콜론) 중에서.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도입부에서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으로서의 생활을 청산한 지 10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는 이미 50대다. 젊은이들에게 배트맨의 존재는 벌써 도시전설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이런 와중에 새롭게 부상한 범죄조직 '돌연변이파'가 고담 시에 심각한 위협을 안긴다. 범죄율이 치솟고, 때마침 오랜 시간 동안 아캄 정신병원에 격리되어 치료를 받고 성형수술까지 받은 하비 덴트/투페이스가 석방된 다음 날 모습을 감춘다. 브루스 웨인은 오랫동안 감추어 두었던 배트맨 코스튬을 펼친다. 배트맨의 복귀 소식이 TV뉴스를 장식하고, 수감된 채 배트맨이 없었던 지난 10년 동안 웃음을 잃었던 조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온다.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1](세미콜론) 중에서.
배트맨이 복귀하는 이 대목에서, 영화와 코믹스의 유사한 장면을 찾아보는 일은 매우 즐거운 작업이다. 배트맨이 고담 시에 가해지는 위협 때문에 복귀를 결심하고 수년 만에 모습을 나타낸다는 설정도 그렇지만, 그 과정 위의 작은 디테일들이 더 흥미롭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경찰차를 운전하다 말고 배트맨의 귀환을 눈치 챈 노장 경찰이, 한 번도 배트맨을 본 적이 없는 옆 자리의 신참 경찰에게 건네는 말 같은 것은 코믹스로부터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2. FALLS: 추락하다

- 최강의 악당 베인 

1.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속 베인. 2. 영화 [배트맨 비긴즈]. 3. 영화 [배트맨 비긴즈] 속 라즈 알굴.
베인에 맞서기 위해 돌아온 배트맨. 하비 덴트가 죽던 날 다친 다리는 여전히 성치 않고 온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알프레드는 "베인은 지금까지의 악당과는 차원이 다른 자"라며 브루스를 만류한다. 그러나 배트맨은 베인과 싸워야만 한다. 베인의 목적은 무엇일까. 베인은 언뜻 민중을 봉기하게 만들려는 혁명가처럼 보이기도 하고 명분 없이 파괴 그 자체만을 위해 존재하는 테러리스트 같기도 하다. 고담을 위협해오는 베인의 모습으로부터 브루스 웨인은, 문득 라즈 알굴과 그의 군대 '어둠의 사도들'을 떠올린다([배트맨 비긴즈] 참조). 

짐 고든은 베인에게 뭔가 더 큰 음모와 목적이 있음을 간파하지만 부상을 당하고, 부청장은 배트맨을 체포하는 일에만 열을 올린다. 브루스 웨인은 전문털이범 셀리나 카일이 베인에게 닿을 수 있는 끈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배트맨은 베인과 마주하게 된다. 

● [배트맨: 나이트폴]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 영화 제작에 참고한 그래픽 노블 [배트맨: 나이트 폴 1,2,3](세미콜론).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총 네 편으로 나뉘어 진행된 이야기였다. 그 가운데 슈퍼맨과 배트맨의 혈전을 다룬 마지막 네 번째 편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어둠의 기사 추락하다(The Dark Knight Falls)'. 1993년, 배트맨 최강의 적 베인이 코믹스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배트맨의 큰 부상과 은퇴를 다루어 이슈가 되었던 이 코믹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배트맨: 나이트폴(BATMAN: KNIGHTFALL)' 

[배트맨: 나이트폴]에서 베인은 보기와 달리 매우 뛰어난 지능을 가진 캐릭터다. 그는 이미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 거침없는 모습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계획을 세워온 기색이 역력하다. 베인은 배트맨을 파멸하는 일에 매우 집착한다. 베인의 생각에 고담은 배트맨의 도시이며, 고담을 지탱하게 만드는 거대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배트맨을 꺾어야만 이 도시를 지배할 수 있다. 

제 2대 로빈 제이슨 토드의 죽음을 그린 [배트맨: 패밀리의 죽음](세미콜론).
[배트맨: 나이트폴]에서 베인은 배트맨을 잡기 위해 우선 아캄 정신병원을 습격하고 그 안에 갇혀 있던, 조커와 투페이스, 리들러, 매드 해터를 비롯한 수많은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을 고담 시내에 풀어놓는다. 이들을 상대하느라 배트맨은 기력을 모두 소진해버린다. 게다가 배트맨은 2대 로빈이었던 제이슨 토드의 처참한 죽음 이후 로빈의 활용에 대해 매우 방어적이기 때문에, 3대 로빈 팀 드레이크의 접근을 여간해서 허용하지 않는다. 배트맨은 팀에게 매번 "너는 늘 충동적이야! 준비가 안 되어 있어!"라고 윽박지르지만 그것이 팀이 아닌 제이슨을 향한 외침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최악의 순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배트케이브에 당도했을 때 배트맨은 베인과 마주하게 된다. 배트맨은 베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베인은 배트맨을 들어 그의 허리를 부숴버린다. 그리고 고담 시내의 고층 빌딩 옥상에 올라가, 공포에 질린 시민들의 머리 위로 넝마가 된 그들의 수호신을 던진다. 추락한 배트맨의 모습은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거나 튀어나온 채 처참하다. 그는 불구가 된다. 

곧 배트맨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고담 시내는 아수라장이 된다. 폭동이 일어나고 범죄율이 치솟는다. 브루스 웨인은 죽지 않았다. 불구가 된 자신을 대신해 브루스는 기존에 '아즈라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장 폴을 2대 배트맨으로 임명한다. 로빈도 찬성한다. 장 폴은 배트맨의 코스튬을 챙겨 입고 거리로 나선다. 그는 정말 잘 해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나빴다. 

1. 그래픽 노블 [배트맨: 나이트 폴] 속 베인. 2.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속 베인.
[배트맨: 나이트폴]에서의 베인은 얼굴에 마스크를 뒤집어쓴 모습이다. 손목의 기계 장치와 목 뒤를 연결한 튜브를 통해 '베놈'이라는 약물을 주입받아 극강의 힘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래 힘이 강하고 민첩하기 때문에 배트맨과 같은 강적을 상대할 때가 아니면 베놈을 주입하지 않는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은 입 부분만을 기계화된 마스크로 가리고 있다. 이 마스크의 존재 이유 또한 코믹스와는 다른데, 직접 보고 확인하길 바란다. 

어찌됐든 그 디자인이 입만 개방되어 있는 배트맨의 가면과는 정반대로, 입만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은 해석의 차원에서 곱씹어볼 만한 지점이다. 베인은 출신 성분부터 가치관까지 모든 면에서 배트맨의 정반대에 위치함으로써 오히려 배트맨에 가장 가까워지는 슈퍼빌런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닮은꼴을 공유하기에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기능하지만 역설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배트맨-조커 관계와 상반된다. 모두 인정할 것이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이자 징후였다. 그리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 또한 그에 필적한다.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존재,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는 설정을 제외하면, [배트맨: 나이트폴]과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이야기 사이에는 별 공통점이 없다. 스포일러 걱정 때문에 매직아이 눈을 하고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 [배트맨: 나이트폴]을 읽어보면 몇 가지 대목에서 새롭게 조립되고 완성되는 사실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여흥을 놓치지 말자. 


3. RISES: 솟아오르다

- 어둠의 기사 솟아오르다 

[배트맨: 나이트 폴](세미콜론) 중에서.
베인의 테러 활동에 의해 고담 시는 외부로부터 고립된다. 정부는 고담 시를 포기했다. 베인은 혁명가처럼 행동한다. 그는 시민들에게 고담 시를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시스템 안에서 착취당하기를 그치고, 이제 너희의 압제자들을 처벌할 때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중요한 비밀 하나를 폭로한다. 

결국 블랙게이트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이 모두 풀려난다. 고담 시청에서는 인민재판이 열린다. 우리에게 반가운 얼굴이 재판을 주재한다.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파국으로 치닫고 있을 때 소수의 사람들이 행동을 개시한다. 그리고 배트맨이 다시 돌아온다. 이들은 베인과 그가 추동한 대규모 군중 및 죄수들의 파괴적인 행보를 저지할 수 있을까. 

●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1. 크리스토퍼 놀란이 참고한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 2.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1927).
크리스토퍼 놀란은 일찍부터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만들면서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와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1927)를 참고했다고 밝혀왔다. 시리즈의 전작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는 (데이비드 S. 고이어가 많은 인터뷰에서 공언했듯이) [메트로폴리스]보다 역시 프리츠 랑의 영화인 [](1931)에서 더 많은 것을 가져온 영화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명확하게 [메트로폴리스]와 더불어 [두 도시 이야기]를 언급했다. 결국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계급 갈등의 상황이 주요하게 다루어질 것을 예고한 것이다. 

[메트로폴리스]의 저 유명한 마지막 대사를 떠올려보자. "머리와 두 손 사이의 중재자는 심장이어야 합니다!"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 마돈나의 노래 '익스프레스 유어셀프' 뮤직 비디오 엔딩의 "심장 없이는, 손과 정신 사이에 어떤 이해도 가능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로 기억되고 있을 이 메시지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그 중재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배트맨,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 존 블레이크다. 그들이 고담을 가르는 갈등을 중재하고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에 관해서는, 영화를 보시라. 

잭 콘웨이의 영화 [두 도시 이야기 A Tale Of Two Cities](1935).
결과적으로 지금의 편집본에서는 [메트로폴리스]보다 [두 도시 이야기]의 흔적이 더 강하게 읽힌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이다. 타락한 귀족 형제 때문에 오랜 시간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던 남자가 있다. 마네트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훗날 혁명을 일으킬 자크 당의 드파르주 부부에게 구조되어 보살핌을 받다가 부르주아 자본가 계급 친구의 도움으로 제 정신을 찾고 딸 루시와도 만난다. 그 와중에 찰스 다네라는 청년이 이들 부녀를 돕는다. 공교롭게도 찰스 다네는 앞서 언급한 그 타락한 귀족의 자손으로, 자신의 출신 성분이 괴로워 이름을 바꾸고 새 출발을 한 인물이다. 우여곡절을 거친 후 찰스 다네와 루시는 결혼한다. 한편 루시를 사랑하는 다른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시드니 카턴. 찰스 다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던 그는 루시를 사랑하기 때문에, 루시가 사랑하는 남자 또한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프랑스 혁명의 불길이 치솟고 드파르주 부부의 노력으로 찰스 다네가 단두대에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시드니 카턴은 루시를 위해 큰 결심을 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두 도시 이야기]의 전개를 직접적으로 대입하는 건 무리수다. 물론 '하비 덴트 법'을 프랑스 혁명의 '앙시앵 레짐'에 대입해볼 때, 블랙게이트 수용소 습격(바스티유 감독 습격)이나 고담 시청에서의 인민재판(파리 시청에서의 인민재판과 광장에서의 처형)처럼 비교해볼 수 있는 대목이 발견된다. 그러나 여기서 보다 중요한 건 캐릭터와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에 관한 문제다. 정확하게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속에서 각각 누가 찰스 다네와 시드니 카턴의 가치를 실현하느냐는 문제다. 이에 대해 나는 해답을 줄 생각이 전혀 없다.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라. 영화를 보고도 모르겠다면,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 그리고 존 블레이크를 찰스 다네와 시드니 카턴을 향한 각각의 선택지로 둔 뒤에 [배트맨: 나이트폴]과 [두 도시 이야기]를 결합해보시라.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두 도시 이야기] 그리고 [배트맨: 나이트폴]을 더욱 풍성하게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다음 대사를 힌트 아닌 힌트로 남겨둔다. "브루스 웨인은 삶을 잃었다. 다크 나이트는 삶을 얻었다." 


4. THE DARK KNIGHT RISES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얼마든지 전개 가능한 이야기의 대안들이 존재한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으면서 스포일러가 아니냐며 투덜댔던 대부분의 예상들은 영화를 보면서 제대로 들어맞지 않을 것이다. 들어맞았더라도 여러분은 결국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몇 가지 사실들을 미리 유추한다고 해서 전체를 짐작해낼 수 없는 영화라는 사실에 안도하거나, 애초 품었던 의문 자체를 잊어버릴 것이다. 

개인적으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보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지점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훌륭한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 3부작을 닫으며 내릴 수 있는 가장 벅차고 훌륭한 형태의 결말이라는 데는 아무런 이견이 없다.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 지켜봐왔다. 다크 나이트 3부작은 정말, 훌륭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10년 후, 혹은 그보다 빨리, 이미 잭 스나이더와 함께 하는 슈퍼맨 시리즈의 제작을 모두 마친 크리스토퍼 놀란이, 어느 날 새로운 배트맨 이야기를 시작해주기를 말이다. 그 영화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어둠의 기사가 돌아왔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ozzyz.egloos.com/tb/4728419 [도움말]

덧글

  • 잠본이 2012/08/06 20:57 # 답글

    문제는 다크나이트 리턴즈를 정말로 영화화하고 싶어하는 건 놀란 본인보다는 DC빠돌이 스나이더 쪽이라는 거죠(...)
  • 山田 2012/08/07 13:08 #

    법원에서 접근금지 명령이라도 받아서 잭 스나이더가 만화책 100m 반경 안에 못들어오게 하고 싶은 이 마음...
  • 킥킥 2012/08/07 15:47 # 삭제

    산전 / 강우석도 비슷한 이유로...
  • ghj744 2012/08/07 20:30 # 답글

    라즈알굴은 대머리아니었나용?????
  • 닭고기 2012/08/07 01:05 #

    그건 라즈알굴의 허수아비(와타나베 켄)였죠. 리암 니슨이 라즈알굴 맞습니다.
  • 잠본이 2012/08/07 18:41 #

    사실 저렇게 내놓는 것 자체가 비긴즈 스포일러(...뭐 닭나라 본 사람들에겐 아무 상관 없으려나)
  • ghj744 2012/08/07 20:38 #

    오홍 전여태 그대머리가 라즈알굴인줄알았어용ㅎㅎㅎㅎㅎ검색해보니 배트맨비긴즈에서는 대머리가 라즈알굴이고 다크나이트라이즈에서는 리암니슨이 라즈알굴이던데 알고보니 라즈알굴이 리암니슨이였던건가요??제가 아직 다크나이트라이즈를안봐서..ㅋㅋㅋ
  • 홍준호 2012/08/13 02:02 # 삭제

    대머리 (와타나베 켄 님) 아저씨는 안타깝게도 바지사장.. 배트맨 비긴즈를 보면서 참 씁쓸하기도 했던 부분이었지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와이드 위젯2


twitter

4개짜리 애드센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