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라이즈: 영웅으로 죽든가 악당으로 살아남든가

다크 나이트 라이즈 관련해선 마지막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첫번째 글_코믹스와의 연관성: (네이버영화) 어둠의 기사 '부러지다'
두번째 글_아쉬운 점 중심: 다크 나이트 라이즈 스포일러 자유 토론

(스포일러 있습니다) <다크 나이트>는 사회정의와 공익의 방법론에 관한 이야기였다. 모든 사실에는 동전의 양면보다 더 많은 수의 결이 있다.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공평한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 한 남자는 스스로 정의로웠다. 그의 정의는 공공의 선을 지향했다. 그는 밤마다 검은 옷을 입고 밖에 나가 자신에게 허락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범죄자를 처단하며 공익을 실현해왔다. 막무가내로 법을 초월해 행동한 건 아니었다. 그는 기존의 사회안전망 안에 일종의 편법처럼 끼어들어 시스템의 일부로 기능했다. 그가 범죄자를 잡으면, 짐 고든이 체포했고, 하비 덴트가 기소했다. 한동안 이 시스템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일시적인 공조는 지속될 수 없었다. 그의 정의가 궁극적으로 실현되려면, 애초에 그 자신이 ‘영웅’으로 존재해선 안되는 것이었다.

하비 덴트의 말은 그리스 비극의 신탁과도 같았다. “영웅으로 죽든가 악당으로 살아남든가.” 예언은 이루어졌다. 남자는 영웅이길 포기하고 자경단으로 전락했다. 공공의 선을 실현하기 위하여, 죽은 하비 덴트는 영웅이 되어 희망의 상징이 되고 살아남은 남자는 악행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유폐되어야만 했다. 그는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개에게 쫓기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신화다.

이를테면 <다크 나이트>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과 같은 이야기였다. 이 어두운 이야기는 선한 세력의 추락을 다루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시리즈 문법 안에서 보나마나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문제는 시리즈를 닫는 가장 근사한 형태의 모범 답안이되, 독립된 개별 작품으로서의 개성과 만듦새, 이슈의 두께는 상대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베인을 보라. 이 영화 속에서 베인은 조커에 뒤지지 않는 멋진 캐릭터였다. 코믹스의 베인보다 열배는 매력적이다. 배트맨을 없애고 갱단을 굴복시키고 결국 자신이 고담을 지배하려고 했던 코믹스의 베인에 비해, 영화 속 베인에게는 거대한 계획과 신념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정확히 절반으로 나누었을 때 중반부까지의 베인과 후반부의 베인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보인다. 베인을 둘러싼 갈등의 밀도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혁명의 과정을 모사해가며(앙시앵 레짐-하비 덴트 특별법, 바스티유 감옥 습격-블랙게이트 수용소 습격, 파리시청-고담시청) 거창하게 실행된 도시 점령은 별다른 논리도 당위도, 신념의 뼈대도 없이 오직 앙상한 거짓말로서만 기능한다. 월가 점령의 잔상 위에서 신념에의 대결로 읽혀지리라 예상되었던 이야기는 낡고 투박한 육탄전으로 대체되었고 혁명가로서의 베인 또한 연애감정에 휘둘린 ‘남성’으로 종말을 맞는다.

이는 사실상 라스 알굴 때문이다. <배트맨 비긴스>의 라스 알굴과 ‘어둠의 사도들’은, 삼류 음모론에 빠진 중학교 2학년 일기장 수준의 대의를 가진 악당들이었다. 시리즈의 마무리를 위해 그들이 돌아와야만 했고, 이야기의 고민도 그와 함께 하향 평준화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시리즈를 닫는 완결편으로서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이 시리즈는 늘 공동체를 향한 염려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공동체 구성원 전반이 공유하는 신념을 매우 강조한다. 시리즈 매회의 갈등은 그 신념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발생했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해소되었다. 우리는 웨인 부부의 죽음, 하비 덴트의 우상화된 죽음과 같은 것들이 신념의 재료가 되어 지탱되어 온 이 공동체를 지난 몇 년 동안 지켜봐왔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하비 덴트라는 이름의 신탁의 예언은 망령처럼 꿈틀대며 배트맨 신화의 마지막까지 끌어안는다. “영웅으로 죽던가 악당으로 살아남던가.” 브루스 웨인은 삶을 잃고 다크 나이트는 삶을 얻었다. 공동체는 건재할 것이다. 이 얼마나 완전한 결말인가. 허지웅 (주간경향 '허지웅의 터치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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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냠냠 2012/07/30 21:41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베인의 후반부는 저도 아쉽지만 연애감정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탈리아에 대한 감정은 연애가 아닌 동일한 운명을 지닌 아이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싶더군요. 베인은 또한 감옥에서 태어났고 유일한 탈출자인 탈리아에 의해 구원되었으니까요. 뭐, 그래도 후반의 베인이 쩌리가 되버린건 안타깝네요.
  • afaf 2012/07/30 21:53 # 삭제

    동일한 운명이라는 말을 들으니 훨씬 설득력 있네요. 동일한 운명이라고 생각하니까 영화에서도 이부분을 좀 더 피력.. 그러니까 베인과 탈리아간의 긴밀함이 더 짜임새있게 표현됐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 wasp 2012/07/31 01:06 # 답글

    이래저래 마지막이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그냥 베인이 라스 알 굴의 자식이였다로 밀고갔거나, 에필로그에 진실을 알려주는 형식이였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Soundwave 2012/07/31 01:26 #

    크리스토퍼 놀란 본인이 굉장한 배트맨 매니아로 보여서 애초에 그런 식으로 원작을 파괴할 가능성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 칼슈레이 2012/07/31 14:35 #

    To Soundwave / 음... 크리스토퍼 놀란은 코믹스 배트맨의 매니아는 아닙니다. 인터뷰중 하단의 말을 한 적도 있는걸요 ㅎㅎ;;

    기자 : 당신은 다른 슈퍼히어로영화 감독들과 달리 코믹북이나 컬처에 대한 팬보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슈퍼히어로영화 중 가장 거대하고 역사적인 3부작을 만들어냈다. 당신이 접근하는 남들과 다른 시각과 감각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크리스토퍼 놀란 : 내가 처음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 스튜디오는 원작이 그대로 영화화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줬다.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원작을 대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배트맨> 3부작을 만드는 동안 내가 가졌던 철학이다. 코믹스 원작과 영화감독의 친밀한 관계는 최근 많이 나타나기 시작한 조류인 듯하다. 읽는 형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움직이는 프레임을 가진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출처 : http://www.cine21.com/do/article/article/typeDispatcher?mag_id=70619&page=1&menu=&keyword=&sdate=&edate=&reporter=
  • 7N 2012/07/31 07:34 # 답글

    그러니까, 탈리아만 없었어도 정말 완벽한 마지막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ㅠㅠㅠㅠㅠ
  • 소시민A군 2012/07/31 08:50 # 답글

    비긴즈에서 라스 알굴의 집이 날아가는 걸 다시 봤더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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