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이 아버지가 사는 법

윤종빈의 신작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는 처세에 관한 영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아버지들의 처세에 관한 영화다. 보다 더 명확하게 설명하면, 주인공 최익현이 선택해온 저열한 처세들이 그를 끝내 존경받는 아버지로 기능하게끔 만드는 한국사회의 기괴한 특수성에 대해 조명하는 영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앞서, 꽤 근사하게 합이 잘 맞는 캐릭터 코미디이기도 하다.

<범죄와의 전쟁> 속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한동안 회자될만한 요소가 많은데, 최민식과 하정우는 일단 논외로 두더라도 곽도원이나 김성균 처럼 자주 보지 못한 얼굴의 배우가 귀신같이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이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하정우는 이제 어느 영화의 어느 장면에 가져다 두더라도 위험이 없는 ‘좋은 배우’가 되었다. 최민식은, 우리가 이 배우를 방치해두었던 시간들이 아까워서라도 더 늦기 전에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1990년의 ‘범죄와의 전쟁’ 시절 최익현(최민식)이 체포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이야기의 전말은 그보다 앞서 최익현이 세관직원이었던 82년의 부산으로부터 출발한다. 너도 나도 비리를 저지르던 시절, 최익현은 세관에서 우연히 손에 얻은 마약을 처분하기 위해 판매책을 수소문하다 조직폭력배 두목 최형배(하정우)를 만나게 된다. 최익현은 최형배가 같은 충렬공파 최씨 집안의 조카뻘임을 간파하고 이를 이용해 친분을 쌓는다. 셈과 로비에 능한 최익현과의 만남으로 최형배의 조직은 승승장구하지만, 시간이 흘러 최익현이 조직 내 권력 지분에 불만을 품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좋은 시절도 끝을 향해 가기 시작한다.

앞서 설명했듯 이 영화는 아버지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나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캐릭터들의 역사성이 <넘버 3>와 <피와 뼈>의 접점 위에서 탄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넘버 3>가 건달과 검사 사이의 권력 관계를 통해 새 천년이라는 시대성을 포착했다면(최근에 <넘버 3>를 다시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서 다수의 유사한 장면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건달도 검사도 아닌 인간 최익현의 끈질긴 생존 그 자체를 통해 한국사회의 병증을 진단하고 나선다. 특히 <피와 뼈>와의 비교가 유의미한데, 김준평(기타노 다케시)의 동물과도 같은 생존본능이 그를 더욱 고립되게 만들고 끝내 쓸쓸하게 홀로 죽어가는 아버지로 전락시켰을 때, 최익현의 생존본능이 한국사회의 양상과 결합하여 어떤 결과를 맺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를 어떤 아버지로 기억하게 만드는지 지켜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범죄와의 전쟁>이 바라보는 세계는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분투하는 자들의 난장이다. 그 생존의 방식을 따져볼 때 최형배가 건달의 방식이라면, 최익현은 허세의 방식이다. 최익현이 최형배와 술집에서 작당을 하게 되는 장면을 보자. 최익현이 처음으로 술집에서 사람을 구타하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카메라는 그의 표정과 주변의 풍경을 번갈아가며 느린 속도로 천천히 조명한다. 최익현은 사람들의 두려움이 깃든 눈빛 안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재확인하면서 전에 느껴보지 못한 놀라운 쾌감을 느끼고, 동시에 최형배의 삶의 방식에 완전히 매료된다. 그리고 한동안 스스로 최형배와 같다고 착각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최익현은 결코 최형배가 될 수 없다. 그가 영화 내내 들고 다니는 총알 없는 빈 총이 상징하듯, 최익현은 뚜렷한 신념이나 내실 없이 그저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동물적 생존감각과 그에 기반한 가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최익현의 성격은 한국사회의 비정상성과 결합하면서 역설적으로, 그가 가장 오래 살아남아 존경받는 아버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즉 이 영화가 바라보는 한국사회는 건달도, 검사도 아닌 최익현이 최후에 웃을 수 있는 세계다. 영화의 소제목인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얼핏 범죄와의 전쟁이 한창이었던 1990년을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한국 현대사 그 자체의 주석인 것이다. 허지웅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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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zzyz review 허지웅의 블로그 : 공지영과 범죄와의 전쟁 2012-02-09 17:04:30 #

    ... 체를 어떤 방식으로 도구화하여 사유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뚜렷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영화로 평가해야죠. 주간경향에 쓴 리뷰 첨부 http://ozzyz.egloos.com/4673235 2. 그리고 공지영님은 요번에 나꼼수 비키니 문제로 엮여 들어가 팬덤의 멘탈이라는게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철저하게 학습 ... more

덧글

  • 이리유 2012/02/07 15:07 # 삭제 답글

    사족같이 느껴졌던 후반부가 이런 식으로 해석이 되는군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 2012/02/07 15:20 # 삭제 답글

    좋은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aigle 2012/02/07 17:15 # 삭제 답글

    이 영화 보려고 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 이리유 2012/02/07 17:18 # 삭제 답글

    보는 내내 아빠를 생각했고, 영화가 끝나고 곧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이 사람아 왜그랬어?! 왜 그랬냐고!"
    소리를 쳤다. 그리고 집에와서 겁나 맞음..
  • 1250 2012/02/07 18:06 # 삭제 답글

    범죄자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투영한다면 우아한 세계가 빠질 수 없겠네요.ㅎ
  • ^_^ 2012/02/08 17:12 # 삭제 답글

    웅이 오빠...... 순정 마쵸마쵸마쵸마쵸~~~~~~오!
  • ... 2012/02/09 17:01 # 삭제 답글

    이 글과는 관계없이, 허지웅은 별로다. 스스로 밝혔다시피, 그저 잘생겼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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