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시사인 원고입니다. 시차 감안해서 읽어주시길) 집권 초반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의 아젠다를 인용했다. ‘꾼’들의 논쟁은 이제 더 이상 듣고 있기 지겨우니 실용적으로 우리 모두 잘 살아보자는 게 그의 요지였다. 집권 후반, 이번에는 전두환의 해묵은 아젠다를 끄집어냈다.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서 공정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것은 전두환의 경우 만큼이나 공교로운 일이었다. 지난 지면에서도 언급했 듯, 이명박 대통령의 인생은 “개인적인 욕망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윤리적인 층위를 초월했던 투쟁의 기록”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 순간 대한민국이라는 조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검증 시스템은 유명을 달리했다. 그런 그가 정의를 논하기 시작했다. 이건 대단히 위험한 신호다. 객관적으로 정의롭지 않은 개인이 공정이라는 단어의 간지에 눈을 뜨는 순간, 그의 모든 주관적인 신념과 행동은 당위에의 자신감을 얻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의로운 4대강 사업’ ‘공정한 로봇 물고기’ 같은 것을 상상해볼 수 있겠다.
그렇게 해서, ‘공정’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율배반은 이 시대의 유행이 되었다. 구호와 패션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영향력 안에 놓여있다. 정치권에선 한바탕 피 바람이 지나갔다. 그러는 동안 국회 밖의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찾았다. 누가 준비라도 해 놓은 것 마냥 사정권 안에 몇 사람이 들어왔다. 연예인들 말이다.
생 이빨을 빼 입대를 회피한 MC몽과 도박왕 신정환이 걸려 들었다. 태진아와 이루에 관련된 스캔들도 있었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케이블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해 용돈 만으로 호화스럽게 산다고 자랑한 명품녀 또한 논쟁의 중심에 섰다. 모 스포츠 신문은 신정환의 응급실 진료카드와 진단서를 “입수”했다며 특종이라 터뜨렸다. 개인 진료기록을 무슨 자격으로 열람하고 심지어 기사화하는 건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 한 주 동안 다른 중요한 뉴스들, 예를 들어 용광로 속에서 생을 마친 젊은 노동자의 사연과 열악한 근무 환경에 관한 문제 제기 같은 것보다 연예계의 정의 실현이 우선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확실히 추락했다고 느껴질 때마다 사람들은 단죄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래서 정의가 실현되었나.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실제는 오로지 이 나라를 가십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미디어는 사람들이 쉽게 흥분할만한 아이템을 미친 듯이 추적했다. 혹은 갈등을 조장했다(요즘 넘쳐 나는 부자 리얼리티 쇼를 보라). 그렇게 생산된 가십이 사회를 지배하는 동안 사람들은 공정 사회를 향한 부푼 꿈을 꾸었다. 미디어는 그 꿈으로 배를 불리었다.
공정은 대통령의 유행어로 실현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과열된 여론과 인민 재판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공정은 강력한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실현되어야 하며, 누군가 휴가 때의 독서 경험에서 착안해 정치적 구호로 꺼내 들지 못할 만큼 당연한 삶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사회다. 공정이 유행으로 존속하는 이상, 우리는 더 많은 가십을 마약처럼 음용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유행이 지나면 “공정한 것만이 전부는 아니더라” 같은, 잘못된 경험치를 습득하게 될 것이다.
누가 공정을 논하는가. 정의 실현을 개인의 몫으로 가져가려는 유아적 발상은 영웅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영웅은 제도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종사한다. 지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도박으로 인생을 망친 연예인이 아니라, 정의를 공공연히 논하며 영웅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허지웅 (시사인)





덧글
제피 2010/09/24 17:23 # 답글
adultchild 2010/09/24 18:45 # 삭제 답글
김서방 2010/09/24 19:04 # 삭제 답글
박지원 2010/09/24 20:20 # 삭제 답글
다이몬 2010/09/24 20:24 # 답글
john6 2010/09/24 21:04 # 삭제 답글
월광토끼 2010/09/24 22:02 # 답글
하지만 아무리 이런 당연한 말들이 나와도 사람들은 금방 흘리고는 다시 개인의 이슈 하나 하나에 열을 내며 달려들며 실제로 중요하고 거국적인 의제들에 대해서는 망각해버리겠지요. 딴따라 한 두 사람 병역이니 비리니 일일히 덤벼들면서 자신들이 뭘 놓치고 있는지도 모를듯.
00 2010/09/25 00:11 # 삭제
그걸 회피하고자 했던 놈들이 발각되니까 화풀이가 집중된 거겠지
딱히 그것 자체로는 뭐라고 할것이 아닌데
matercide 2010/09/29 20:29 #
낯선이름 2010/09/24 22:43 # 답글
Vicious 2010/09/25 00:24 # 답글
ozzyz 2010/09/25 00:38 #
연봉 오천의 정규직 직원이면 빠져 죽어도 할 말이 없다, 이건 아니니까요.
물론 그런 말씀이 아니라는 건 알겠습니다.
극적 아이콘을 향한 욕망에 대해 제기하신 문제는 매우 공감합니다.
물론 이 욕망 자체는 쟁점에 우위를 갖고 싶어하는 모든 정치, 시장 세력의 꿈이고,
개별 사안이 정치화되어 소비될 때 거의 필연적으로 겪는 '과정'이지만,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이 '과정'을 처리하는 방식이 매우 세련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루 2010/09/25 01:23 # 답글
setarcos 2010/09/25 03:49 # 답글
올때마다 기분나쁘지 않은 열등감을 느끼고 가네요.ㅋ
? 2010/09/25 09:46 # 삭제 답글
설마 전과 15범이니 뭐니 이런 헛소리를 근거로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고.
ee 2010/09/25 14:09 # 삭제
-_- 2010/09/25 11:23 # 삭제 답글
그리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특정인물의 인생을 "개인적인 욕망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윤리적인 층위를 초월했던 투쟁의 기록" 이라고 매도하는 당신이야말로 공정하지 않은 사람인듯? 물론 사람 인생이라는게 티끌하나 없이 깨끗할수는 없겠지만, 정치적 주의주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 인간을 쓰레기로 매도하는 당신이야말로 불공정의 극치를 보여주는군요. 글쓴이 본인 인생의 공정성부터 한번 성찰해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ee 2010/09/25 14:09 # 삭제
孤 2010/09/25 14:14 #
더 쪽팔리기전에 자삭하는게 좋을듯 ㅋ
ㅋㅋ 2010/09/25 20:38 # 삭제
난독증의 폐해.txt
삐뚤어짐의 폐해.txt
열등감의 폐해.txt
AlexMahone 2010/09/25 11:36 # 답글
zioneda 2010/09/25 13:10 # 삭제 답글
백범 2010/09/25 17:07 # 답글
그러니 현실 대신 저런 가십으로 치장하고 포장을 하는 수밖에...
백범 2010/09/25 17:27 # 답글
그러니 겉만 화려한 저런게 이슈가 될수밖에...
요괴수대백과 2010/09/25 20:29 # 답글
백범 2010/09/25 21:54 # 답글
응? 2010/09/26 09:19 # 삭제 답글
이해력이 나쁘고 난독중인 분들은 밑에 그 답글 단 분들이신듯.
진짜 발치몽이 왜나오죠 여기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때 발치몽이 나왔으면
그때는 이명박의 공정한 사회 켐페이인 없었으니 이런 영웅인척 하는 사람들이 안나왔을까요?
글 후반부의 내용은 정말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전반부의 이명박 정부 얘기에서 발치몽 얘기로 넘어가는 건
이 글의 핵심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들이라 하더라도 매끄럽지 않은건 사실이죠
백범 2010/09/26 11:14 #
아마 그당시에는 공정한 사회 캠페인이 없었던듯...
china tour 2010/09/26 14:43 # 삭제 답글
글 후반부의 내용은 정말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china trav 2010/09/26 14:43 # 삭제 답글
명랑이 2010/09/26 16:06 # 답글
한아 2010/09/27 00:13 # 답글
rp2k 2010/09/27 08:36 # 답글
狂虎 2010/09/27 10:23 # 답글
kalms 2010/09/27 11:03 # 삭제 답글
저 사진이 한마디로 골 때리는 사진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시는 분이 실제로 많으신가요?
제가 한번 비틀어 보겠습니다.
제가 영부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욕먹는 대통령 영부인 하느라 힘드시죠 하면서 손을 잡아 주고
어깨를 토닥여 주는 그림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 궁금해 궁금해 궁금해
커티군 2010/09/27 13:34 # 답글
붉은비 2010/09/27 14:54 # 삭제 답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있기 마련이겠습니다만, 현재의 대한민국처럼 일반 대중이 이런 서커스에
적극적으로 발담구었던 예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아서 암울한 심정입니다.
Yubi 2010/09/27 19:46 # 삭제 답글
지뢰진 2010/09/30 18:18 # 삭제 답글
방구붕 2010/10/19 10:51 # 삭제 답글
frauen 2012/01/20 02:30 # 삭제 답글
파랑나리 2012/12/02 01:52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