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도시2, 사울이 바울이 될 때

<경계도시 2>는 지난 2003년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37년만에 귀국하면서 벌어졌던 일을 추적한다. 감격도 잠시,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간첩"이라는 논란 속에 당대 한국사회는 광풍에 휩싸였다. 카메라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흔들리고, 고민한다.
<경계도시 2>를 보면서 의외의 순간을 자주 경험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다. 이 형식에는 공정해보이든 말든 엄연한 편집의 영역이 존재하고 그래서 언제나 실체를 어그러뜨리는 마법과도 같은 힘이 발견된다. 마이클 무어가 종종 그것을 악용한다. 어찌됐든 최소한 거기 기록된 개별 순간들만큼은 앞의 컷과 다음 컷의 연결과 그로인해 만들어지는 ‘해석’과는 무관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분명한 실제의 기록임에도 실제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이미지들이 포함돼있다. 그것은 흡사 초현실적이다. 화자, 즉 감독은 자신의 의도나 방향성과는 무관하게 오히려 이런 순간들을 목격하면서 당황하고 있다. 완벽하게 계획되고 의도대로 운용된 다큐멘터리에 익숙했던 관객들에게, 이건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 그렇다. 여태 송두율 교수의 귀국과 그의 입장을 옹호해주던 사람들이 간첩 논란 이후 사실상의 사상전향을 강권함으로써 더 숭고한 이상의 실현과 역사적 대의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는 장면. 끝내 교수가 기자회견장에서 지난날의 과거를 반성하고 전향 의사를 밝히는 장면. 박홍 신부가 교수를 붙잡고 사울이 바울이 되는 기적과 은혜에 관해 논하는 장면.

이런 장면들 속에서 송두율 교수의 얼굴은 매우 괴상해 보인다. 그의 한 쪽 눈은 더 감겨있으며 풍선 위에 아무렇게나 그려 넣은 표정마냥 어색하게 일그러진 미소는 다른 사람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텍사스전기톱살인마>의 레더 페이스마냥 부조리해 보인다. 카메라 렌즈 너머 서 있는 저 사람은 송두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되 송두율이라는 존재감을 동반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람은 거기 없다. 어떤 분장이나 효과의 도움 없이 만들어진 이 끔찍한 표정들을 지켜보며 관객은 탄식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우리가 이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누군가는 이 영화를 특정 진영의 자기분열적인 역사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이나 조직의 생명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특정 진영의 이기주의로 해석하기에도 용의하다. 누구나 자기반성은 필요한 것이니 잘 된 일이다.

그러나 실체는 조금 더 지독하다. 좌든 우든 개혁이든 반동이든 우리는 결국 똑같은 인종이다. 우리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울이 바울이 되는 전향의 드라마가 발견되길 욕망한다. 그것은 역사적 대의와도, 운동의 생명력과도, 숭고한 당위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중국 강서성 출신의 33세 꽃미남 노숙자가 화제가 된 일이 있다. 그러나 새로 노출된 사진에서 노숙자의 얼굴은 더 이상 꽃미남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전투적인 실망이 이어졌다. 아무개의 실체와 진실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에 의거해 개인을 소환하고 해석하는 사회. 우리가 만든 세상이다.

매우 영화적인 의미에서, 이러한 의외성 아래 포착된 이미지들이 <경계도시 2>를 매우 특별한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있다(또한 이 의외성으로 빚어진 방향의 전환이 <경계도시 2>를 <경계도시>보다 훨씬 나은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그렇게 나는 <경계도시 2>라는 ‘메시지’를 넘어, <경계도시 2>라는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난 몇 년 간 보아온 다큐멘터리 가운데 가장 탁월한 작품이며, 화자의 정직하고 공정한 역할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내리는 놀라운 영화다. 18일 개봉. 허지웅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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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비의 알림 2010/03/16 20:36 #

    “아무개의 실체와 진실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에 의거해 개인을 소환하고 해석하는 사회.” — 허지웅의 평론 中...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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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개살구 2010/03/16 15:43 # 삭제 답글

    영화를 거의 안보는게 간만에 보고싶은 영화다 싶더라구요. 근데 개봉관이 너무 없어서 보기 어려울거 같네요.. ㅠㅠ
  • 루시엔 2010/03/16 16:56 # 답글

    아니 빠콩... 오랫만에도 듣는 이름이네요ㅠㅠ
  • 비스킨드 2010/03/16 20:46 # 삭제 답글

    아..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박이반 2010/03/16 22:03 # 삭제 답글

    송두율 교수ㅎ 이 당시에 하신 "나는 경계인"이라는 말 많이 쓰곤했는데 요즘 친북명단에서도 보이시고ㅎ
  • 2010/03/16 23: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ozzyz 2010/03/16 23:57 #

    한국와서 영화보고 저랑 인증샷 찍으시라능.
  • 책벌레 2010/03/16 23:54 # 답글

    지엽적인 이야기는 아닌지 걱정됩니다만, 박홍 신부가 든 예화는 박홍 신부가 정말 로마 가톨릭 신부가 맞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무식한 예화입니다. 로마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잘못 아는 분들이 많은데, 바울은 사울이 개명한 이름이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 만든 다른 이름입니다. 그 실례로 사도행전을 세심하게 읽어보면 사울이 그리스도 교인이 된 후에도 사울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심지어는 오해를 하지 않도록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라는 설명까지 해 줍니다.
    사울이 고린토, 갈라디아등의 비 유대 그리스도 교회들과 소통하기 위해 바울이라는 헬라이름을 서신에서 썼기 때문에 잘못 이해하는 모양입니다.
  • 독자 2010/03/17 20:43 # 삭제 답글

    인 디 에어와 예언자 경계도시2 중에 고민했는데 이 글 보고 경계도시2로 결정합니다 ^^
  • ozzyz 2010/03/17 21:04 #

    세 편 모두 좋습니다.
  • 지나가다 2010/03/18 22:47 # 삭제 답글

    이 글 보고 경계도시2 내일 예매했습니다. 땡큐!
  • 카페人 2010/03/19 09:07 # 답글

    오늘은 작은연못, 내일은 경계도시2, 모레는 예언자를 볼 생각에 일이 안되네요..
  • 박지원 2010/03/21 14:22 # 삭제 답글

    간지남, 부산에는 상영관이 안생길까요?ㅠㅠ
    지방민들에게는 볼 권리조차 주지 않는 더러운 세상. 쳇
  • 우앙 2010/03/22 01:26 # 삭제

    25일 부턴가는 전국으로 확대된다고 했던것 같아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영화 보면서 독일국적 포기하겠다는 장면에서 정말 숨이 턱 막히더군요.
  • Vimax Pill 2011/11/01 18:28 # 삭제 답글

    하겠다는 장면에서 정말 숨이 턱 막히더군요.
  • moscow hot 2011/12/03 15:20 # 삭제 답글

    그래서 '경' 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ㅋ
    7월중 위 국가들 모두 출시라고 했으니 그 전에 나올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요!
    미사리 한 번 다녀와야겠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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