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신체강탈자들

여러 번 리메이크되는 영화들이 있다. 대개 원전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업은 꾸준히 이루어진다. 가끔 원전보다 훌륭한 작품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빈센트 프라이스가 나오는 1956년의 <플라이>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월하게 떠올리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플라이>(1986)를 훨씬 좋아한다.
역시 드문 일이지만 여러 번 리메이크되었음에도 그 모든 작품이 고른 완성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우화적인 성격이 강한 원작 소설이 있을 때 더욱 그렇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그렇듯이 잘 만들어진 우화란 언제 어디서 다시 펼쳐보아도 독자의 당대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잭 핀리의 소설 <바디 스내처>를 원전으로 한 <신체강탈자의 침입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이하 신체강탈자)은 지금까지 네 번이나 영화화됐다. 돈 시겔이 1956년에, 필립 카우프만이 1978년에 만들었으며 아벨 페라라가 1993년에, 그리고 올리버 히스비겔이 2007년에 마지막으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개인적으로는 축축하고 음험한데다 여러모로 조금 더 노골적인 필립 카우프만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돈 시겔 버전의 주연 배우인 캐빈 맥카시가 필립 카우프만 버전의 전반부에 카메오로 등장하는데, 이 때 외치는 대사가 똑같기 때문에 두 편을 연속된 이야기로 해석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감상이 될 수 있다).

기본 골격은 모두 원전과 같다. 우주로부터 씨앗이 날아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주위에 뿌려진다. 이 씨앗은 인간을 복제하는 외계생명체다. 씨앗으로부터 자라난 식물에 의해 인간이 복제되고 나면 그 대상은 가루만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사람들이 조용하고 은밀하게 외계인으로 대체돼간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내 주위의 아무개들이, 외양만 똑같을 뿐 내가 알던 그 아무개들이 아니라는 징후를 느끼게 된다. 급기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계인으로 대체되고, 소수의 인간들은 그들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신체강탈자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에 관한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계기만 제공된다면 얼마든지 쉽고 빠르게 전복될 수 있다. 어제의 비정상이 다수가 됨으로써 오늘의 정상이 된다. 오늘의 정상은 ‘정상화’의 이름으로 어제의 정상을 쫓고, 고발하고, 폭력을 가한다. 이야기 안에서 가장 소름끼치게 표현되는 것은 ‘고발’의 이미지다. 필립 카우프만 버전은 외계인(오늘의 정상)이 인간(오늘의 비정상)을 발견했을 때 주위에 알리고 고발하는 이미지를 특유의 비명소리와 함께 대단히 독창적으로 해석해냄으로써 원전의 메시지를 강화해냈다. 이 장면은 아벨 페라라 버전에서도 똑같이 재현된다.

애초 신체강탈자 이야기는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을 은유한 것이었다. 매카시즘 광풍 아래 여기저기서 아무개가 빨갱이라는 고발이 이어졌고, 하루아침에 낙인찍힌 수많은 사람들이 사상전향을 요구받거나 추방당했다. 사실, 외계로부터 날아온 씨앗이라는 은유는 매카시즘뿐만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당대의 모든 폭력을 추적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텍스트가 80년대나 90년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얻으며 여러 번 되풀이해 복기될 수 있었다. 우리에게 그것은 국가보안법이 될 수 있고 박홍이나 황장엽이 될 수 있으며, 혹은 황우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 문화계에서는 대단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문화 사업을 하는 단체들에 “지원금을 계속 받고 싶으면 촛불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라“는 통보를 해오는가 하면, 공중파 방송사의 사장이 반강제적으로 퇴출되고, 수많은 방송, 영화판 사업 단위들의 인적 구성이 이해할 수 없는 검증과정을 거쳐 친 정부 성향의 사람들로 물갈이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양새가 치밀하기보다 워낙 급작스럽고 노골적이라 ‘습격’이나 ‘침입’, ‘점령’과 같은 수사들이 얼른 떠오른다. 줄 잘선 사람들의 습격이다. 그래도 마냥 비관할 일은 아니다. 어찌됐든 모든 괴물은 속편에서 귀환한다. 상식이 뒤집히고 괴물이 돼 쫓겨나더라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다. 허지웅 (북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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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행인 2010/03/06 16:20 # 삭제 답글

    패컬티는 일부러 빼신건가요? 내용이 좀 달라서?
  • ozzyz 2010/03/07 00:54 #

    패컬티를 넣으면 우주비행사의 아내부터 해서 넣을 게 너무 많아져요.
  • 작가 2010/03/06 16:52 # 삭제 답글

    그런데 새로 물갈이된 신체강탈자들이 공장에서 성형 프레스 찍을 때 좀 잘못 찍은 모양인지 외형이나 내형이나 어딘가 좀 심하게 이상해서 금방 들킴.

    그러니까 프레스를 자주자주 청소해줘야 합니다. 아니면 밑 쿠션을 갈아버리거나!!!
  • 다스베이더 2010/03/06 21:28 #

    프레스 까지마라!
  • Cicero 2010/03/06 19:06 # 답글

    이영화 80년대판이 기억나네요. TV에서 방영했을때 마지막 장면보고 너무 소름끼쳐서 제대로 잠도 못잤던 기억이...
  • 행인 2010/03/06 21:24 # 삭제

    78년작 얘기하시는거 같네요. 그 결말 참 이런식으로 사람을 무섭게 할수도 있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어린맘에 정말 충격먹었던 기억이... 키퍼서덜랜드의 아버지인 도날드 서덜랜드가 주연했었던...
  • 행인2 2010/03/06 20:42 # 삭제 답글

    마침 오늘 코뿔소를 읽었는데
    비슷한 이야기를 보니 재미있네요.
    영화 보겠습니다.
  • aop 2010/03/06 21:33 # 삭제 답글

    저도 필립 카우프만 버전을 가장 좋아합니다.
    꽤나 어릴적에 봤었는데도 너무 강렬하게 제 기억 속에 남아있네요.
  • 아니스 2010/03/06 21:42 # 답글

    이 영화는 정말 무서워요;ㅅ;
  • 헤비스 2010/03/07 09:34 # 삭제 답글

    <플라이>가 리메이크 작이었군요.
  • 루치 2012/06/03 20:18 # 삭제 답글

    블로그 잘보고갑니다 ~ 정말 좋은 양질의 글을 보고 가서 기분이 좋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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