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도럼>의 공포

<펜도럼>은 매혹적인 SF영화다. 마침 함께 개봉한 <디스트릭트 9> 때문에 온당한 평가를 받을 수 없다면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논리가 완벽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좋은 질감과 결을 가진 영화다. 충분히 빠르고 파괴적이며 현학적으로 보이기 위해 쓸데없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 영화는 <어비스>보다 <레비아탄>에 가깝다. 당신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보다 <딥 라이징>이나 <바이러스>를 좋아한다면 인생을 그만 낭비하고 당장 이 영화를 봐야한다. 영화 내내 혈관이 뜯겨나가거나 내장이 쏟아지는 파열음들이 귀를 감싸고 딱 만족할 만큼의 피가 쏟아져 내린다.

좁고 한정된 공간을 잘 활용한 촬영과 편집은 보는 사람의 호흡을 말 그대로 옥죄어 온다. 나이 먹을수록 엉뚱한 영화들의 엉뚱한 역할로 소모돼가는 느낌인 데니스 퀘이드만 제외하면 배우들의 연기도 잘 정돈되어있다. 특히 벤 포스터는 <3:10 투 유마> 이후 가장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지구는 넘쳐나는 인구와 환경파괴로 멸망 직전이다. 그러다 마침 은하계 밖 먼 곳의 행성에서 물과 식물이 발견된다. 인류는 유사 노아의 방주인 우주선 엘리시움호을 쏘아 보낸다. 영화가 시작되면 두 명의 승무원이 잠에서 깨어난다. 둘 다 가벼운 기억상실 증상을 보인다. 전력은 끊어져있고 문조차 열리지 않는다. 그들은 곧 우주선에 타고 있던 탑승객 6만 명이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잤는지 문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참다못해 승무원 한 명이 간신히 문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들을 보게 된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벤트 호라이즌>을 닮아있다. 아닌 게 아니라 폴 W.S. 앤더슨이 기획하고 제작한 영화다. <이벤트 호라이즌>이 그랬듯, 그리고 앞서도 언급했듯이 <펜도럼>은 논리가 촘촘한 편은 아니다. 몇 가지 불공정한 트릭, 이를테면 두 명의 승무원이 막 깨어났을 때 보이는 행동을 상식선으로 가다듬으면 이 모든 건 시작한지 10분 만에 마무리될 수 있는 퍼즐이다.

그러나 <펜도럼>의 강점은 다른 데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상대를 무서워한다. 모르는 것은 쉽게 파악하고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알 수 없는 것들이 주인공 무리를 에워싸 그들의 육신을 파괴한다. 그런데 외계인도 돌연변이도 우주선도 아닌 바로 그 자신이야말로 가장 알 수 없는 미지의 대상이라면?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스스로에 대해 온전히 알고 제어하지 못한다. <펜도럼>의 지옥도는 바로 이 공포의 체계 위에 있다. 박력 있는 영화다. 허지웅 (일간스포츠 '허지웅의 불량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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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바람뫼 2009/11/04 13:16 # 답글

    저도 영화 시놉시스를 보고 맨처음 바이러스가 떠올랐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봐야겠군요.
  • 쩌비 2009/11/04 13:28 # 답글

    기대하고 있던 영화였는데, 이벤트호라이즌을 닮았다니 더 보고 싶어지네요.^^
  • ysrh 2009/11/04 13:31 # 삭제 답글

    섹시한 과학자가 좀 의외였지만 재미있게 본 영화입니다.
  • 비푸리 2009/11/05 01:45 # 삭제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
  • ozzyz 2009/11/05 03:10 #

    그녀가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소개할 때는 저도 속으로 좀 웃었습니다;;;
  • 눈여우 2009/11/04 13:35 # 답글

    오우, 바이러스. 이건 꼭 봐야겠네요.
  • 바시 2009/11/04 14:36 # 삭제 답글

    랄까, 처음에 영화 예고편만 보고 「데드 스페이스」를 떠올렸습니다만,
    뭐랄까, 다른 내용인듯?
  • 니코 2009/11/04 15:20 # 답글

    헉...그럼 볼래요...
  • 헤비스 2009/11/04 22:52 # 삭제 답글

    개봉날 봤는데요 흠..눈요기로 꼽자면 전 딥 라이징이 더;;
    근데 펜도럼 현상은 영화상의 가상 신드롬 맞는거죠?
  • 가로등거미 2009/11/05 02:08 # 삭제 답글

    마지막 부감숏도 굉장히 무섭죠. 저 인물들의 앞날이 깜깜해진다능... 이런 막막한 엔딩이 좋더라구요.
  • ozzyz 2009/11/05 03:10 #

    그 장면은 희망인데요. 오히려 전형적인 엔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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