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라는 이름의 막장 캐릭터

누군가, 무엇인가, 혹은 집단의 선택에 성격이 감지될 때, 그것이 일관적이든 전복적이든 관습적이든 간에 관계없이 우리는 캐릭터에 대해 논할 수 있게 된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보면서 ‘캐릭터 열전’의 소재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생각하게 되었다. 헌재는 지난 29일 처리과정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그런 위법적인 절차를 거쳐 통과된 미디어법 자체에 대해서는 유효 판정을 내렸다.

대리투표에 대한 부정과 일사부재리 수호는 사법부가 입법부의 합리와 그에 따른 권위를 보장, 보호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당위였다. 그런데 “(원칙을)위반한 점은 인정되나, 법안 자체를 취소 또는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는 아니다”는 말이 나왔다. 원칙을 위반한 게 그리 큰 하자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 생각을 가진 자가, 단체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헌법재판소라니.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영화 에선 “반역은 성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공하면 이미 반역이 아니니까”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그 말을 뱉는 영화 속의 검사는 반어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헌재의 판결을 보며 떠올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패배주의를 강화하는 발언도, 생각도 없을 것이다.

아주 가끔 원칙이 적용될 때도 있다. 공정택씨는 선거 과정에서의 부정이 인정돼 서울시 교육감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다. 과정상의 원칙이 무시됐을 때 그 결과 또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정의도 아니고 쾌거도 아닌 그야말로 근본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판단이다. 그런 상식이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소녀를 납치해 강간하고 감금했다. 그렇게 십 수 년을 함께 살았다. 그 와중에 결국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다루며 남자의 입장을 긍정하는 영화가 있다면, 우리는 그 작품을 막장이라 말하고 남자 캐릭터를 막장 캐릭터라 말할 수 있다. 헌재라는 이름의 캐릭터는 그 무게감을 감안해볼 때 우리가 경험한 그 어떤 사례 가운데서도 개막장이다. 드라마의 경우처럼 짜증내고 말 일이 아니다. 원칙을 논하는 권력이 원칙을 소홀히 할 때, 우리는 권력을 부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허지웅 (시사인 '캐릭터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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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가 말했다. 2009/11/03 14:12 #

    헌재라는 이름의 막장 캐릭터허지웅씨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 권력에 우리는 반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말에 우왕 멋있는 말이다 싶어서 아버지에게 말하며 기자라 역시 말을 잘하네요라고 말했다.....하지만 아버지 왈....'말은 헌재가 더 잘하는 구만.....그렇게 헛소리 잘 꾸며 말하는 것도 능력이지.....아아 아버지!~!!!... more

덧글

  • HB 2009/11/03 12:21 # 삭제 답글

    1빠
  • ... 2009/11/03 12:30 # 삭제 답글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승.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땄습니다.

    헌데 금메달을 수상한 선수가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의혹이 일어났습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조사에 착수 했습니다.

    위원회의 발표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해당 선수가 금지약물을 복용하고 경기에 임했음이 사실로 밝혀졌다. 하지만 금메달을 취소할 만큼의 하자는 아니다. 따라서 기록도 인정되고 금메달 수상도 유효하다"


    많이 배웠다고 해서 지혜로운 건 아닌가 봅니다.
  • L 2009/11/03 19:04 # 삭제

    비단 육상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비슷한 사건 있지 않았나요?
    오노나 폴햄이 대표적인 예였던것 같은데.....
  • 공자 2009/11/03 13:07 # 삭제 답글

    그들은 배운게 아니고 외웠을뿐이다
  • 적절한 2009/11/03 14:04 # 삭제 답글

    지적이네요. 단지 단편적인 케이스를 지적하신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품고있는 정신의 삐뚜러짐을 경고하신 점이 무엇보다 와닿습니다.
  • 검찰도 2009/11/03 14:19 # 삭제 답글

    검찰내부에서 승진하려면 일을 잘해야하지만, 더 올라가려면 정치를 잘해야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헌재는 법조계인사가 아니라 이미 정치인들인듯?
  • 2009/11/03 17:27 # 삭제 답글

    권한쟁의심판의 한계를 고려한다면 헌재를 개막장이라고 평할 수 있을런지,,.

    그리고 일사부재리가 아니라 일사부재의라고 써야 함을 모르는 것인지 오타인지,,,.

    글을 읽어 본 전체적인 느낌은 선동성은 강하나 치밀함은 부족하다고나 할까,,,.
  • 그냥저냥 2009/11/03 17:34 # 삭제 답글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헌재의 판결을 막장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헌재의 무효 판결이 있었다면 그에 따른 정치의 사법화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헌재 보다는 애초에 자신이 처리해야 할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사법기관으로 가져간 정치권이 더 문제가 아닐까요?

    사실 헌재의 위상이라든가 이전 판결에서 보이는 정치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이번 판결을 그리 납득하지 못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네요.
  • ex딴따라 2009/11/03 19:16 #

    뭐 관습헌법으로 정치의 사법화를 기왕에 이룩하신 헌재께서 갑자기 u턴하시니 적응들이 안되시는 거죠. 껄껄.
  • 10095 2009/11/03 19:17 # 삭제 답글

    민주적 정당성의 정의가 뭔가요
    그동안의 정치적 성격을 감안해서 그리 납득하지 못핲 것도 아니라뇨.
    그동안 그랬으니까 뭐 그래도 된다..이렇게 들리는건 저뿐만인가요.
  • 그냥저냥 2009/11/03 23:06 # 삭제

    민주적 정당성의 정의는 찾아보시고요.

    그동안 그랫으니까 뭐 그래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동안의 판결들을 볼 때 이번과 같은 치고빠지는 판결이 충분이 예상되었다는 얘기에요.
  • 으으음. 2009/11/03 19:40 # 삭제 답글

    헌재가 정치문제에 발을 빼고싶다는건 이해못할거 없죠. 권력분립, 사법적인 영역이 입법이나 행정, 정치까지 과도하게 지배해나가는게 좋은일은 아니니까요.

    근데 그 이유로 든게 너무 가관이라서... 이렇게 비웃음을 살 이유가 아니라도 들만한 이유는 많았을텐데 하필이면 이런 난감하기 짝이없는 소리를 하니 뭐라 편들어줄수가 없게 만듭니다.
  • 히나 2009/11/03 21:41 # 삭제 답글


    노대통령은 헌법위반이나 탄핵은 아니다.

    지금 이글루스에서 발광하는 입진보들,저기에는 잠잠하더라?
  • Earthy 2009/11/03 23:24 #

    노 대통령은 일부 법률 위반적 사유가 보이긴 하나, 직접적으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보아,
    탄핵 사유에 부적합하다고 무효가 된 겁니다.

    지금 헌재가 말하는 건, 실제 "국회의 투표로서 성립이 되지 않을 사유"를 인정하고는...
    법 자체는 유효하다고 하는 거니까요. 비교 대상이 잘못되었죠.
  • 발동동 2009/11/04 00:31 # 삭제 답글

    이런식으로...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확인하게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장에 깊이 공감이 되네요.
  • 2009/11/04 11:28 # 삭제 답글

    원칙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주시니 고마운 기분이 듭니다^^
    조두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여성 전용(?) 사이트에 갔더니 기사 하나에 웬 여자 혼자 삽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논리인 즉,

    조두순의 가족이라면 조두순이 어떤 못된 짓을 했든 12년 형량이 길다고 항소하지 않겠느냐 는 말로 그 일로 전국민적으로 울분을 토하고 있을 때 '자기가 조두순 가족이라면 가족 입장에서 조두순 아들처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원칙의 개념도 이해못하는 글을 달아 사람들을 두 번 슬프게 한 일이 있었었죠.

    그때 보면서 생각한게,
    정말 원칙을 지킨다면
    내 가족이 그런 짓을 했다면 자기가 범죄자 부모 대신 나영이와 나영이 부모에게 가서 사과하고 하다못해 대국민사과라도 하는 것이 조두순을 가족으로 둔 아들의 원칙일텐데, 그녀는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었는지 계속 원칙 원칙 하면서 가족이기 때문에 어떤 잘못을 해도 감싸주는 것이 원칙의 전부인 줄 아는, 원칙주의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말을 하는 그런 '바보' 하나 있었는데.


    ...........

    원칙에 대해 이렇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니 고마운 기분이드네요. :)
  • 갑갑해요 2009/11/12 22:12 # 삭제 답글

    헌재에 있지만 헌법재판관은 아닌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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