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선덕여왕, 재보선, 걱정

앞서 두루 많이들 보는 스포츠 신문에 기고한 ‘빨갱이 선덕여왕’은 재보선을 염두에 둔 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왜 부자를 위해 투표하나’의 연장선에 있는 글이기도 하다. 이해관계를 정확히 투영하지 못하는 민중의 선택은 인류 역사에 걸쳐 오래된 딜레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앞섰지만 그래봤자 근소한 차이고 그래봤자 민주당이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득표율을 보니 암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하나 더. 내 생각에 ‘빨갱이 선덕여왕’은 대단히 노골적으로 반어적인 뉘앙스를 채택한 글이다. 마지막 문단을 빼더라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 마지막 문단이 유치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오해를 우려하는 사람도, 실제 오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다. 그러다 소위 무언가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일을 주로 하는 자들의 눈높이라는 게 현실이 아닌 환상이나 제 멋에 근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고민이 많아졌다. 말로는 좀 더 노골적으로, 좀 더 실질적으로 말하고 쓰고 행동하자 하고 정말 그렇게 노력하지만 현실과의 격차가 이렇게 크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려 눈높이를 염려하고 있다니 나도 참 병 맛이다. 눈높이라는 단어의 무게와 적용을 걱정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헤아리거나 이겨낼 수 없는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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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겉절이 2009/10/29 02:44 # 답글

    소녀(..)님의 고민 덕에 제 눈높이는 앉아서 높아집니다. 감사합니다:-)
  • Satyr 2009/10/29 03:36 # 답글

    글을 쓰면서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는 건가요?
    내용의 노골성과 현실성 또한 읽히는 순간 필자의 손이 아닌 독자의 손에 넘어가기에,
    눈높이를 파악하고 통제하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눈높이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읽히고,
    그래서 더 구체적인 뜻이 궁금해지네요.
    글을 쓸 때마다 고민하는 부분이라 질문 드리고 가요.
  • ozzyz 2009/10/29 03:44 #

    저 같은 경우 글이 소개될 매체의 독자층(의 성격)을 전복적으로 고려하긴 합니다. 그러나 독자의 수준을 염려하는 순간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수준을 걱정하지 않고도 정확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방법론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지요.
  • Satyr 2009/10/29 04:45 #

    눈높이에 맞춰 글을 수술하는 것이 아니라 예리한 통찰력과 흠없는 논증으로써 설득력을 얻는 방식을 추구하신다는 말씀인가요? 말씀대로 방법론을 넘어 필력과 카리스마의 영역까지 닿게 되는군요.

    수많은 정치적인 글들이 단지 문장이나 내용상의 부족함 탓에 그토록 오독과 오용의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독해할 수 있게 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인 데다 독해 다음에는 가치관의 벽이 있으니까요.

    글쓰기는 99%가 타겟팅에 달렸다고까지 생각하는 터라, 고민에 고민이 더해지네요. 문장보다, 행간보다, 더 깊고도 보이지 않는 것을 단련해야 하는 거군요-.
  • kalms 2009/10/29 10:26 # 삭제

    음. 소녀(''')님의 이전 글들을 읽어 보았다면
    글쓴이의 의도를 넘겨짚지 못할 일도 아닌데
    '두루 많이들 보는 스포츠 신문'에 쓰인 글을
    두루 많이들께서 읽으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지니
    결과적으로 소녀(''')님이 좀 무리를 하신 듯 하네요.
  • 이네스 2009/10/29 06:19 # 답글

    개인적으론 상당히 재미있는 글이였습니다. 본문도 그렇고 댓글도 그렇고요.

    쓴웃음에 가깝다는게 서글프긴 하지만 말입니다. ㅠㅠ
  • virilio 2009/10/29 09:14 # 삭제 답글

    선덕여왕 같은 fiction을 통한 현실 반영은 시청자들과 작품의 관계 속에서 확장될 수 있고,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님의 비평은 그런 폭발적 가능성 앞에 '언어'적 각주를 달아버림으로써 오히려 그 에너지를 체제 내화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선덕여왕을 그런 텍스트로 읽어내는 것은 실상 아주 대단한 발견은 아닙니다. 오히려 몇가지 지점에서는 더 급진적인 해석이 가능했을텐데하는 아쉬움도 있고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 텍스트들이 님의 비평과 같은 직선적 언어들을 경유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보다 자주 대중과 만날 때에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님의 글은, 말하자면 다양한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 풍자적 텍스트를 아주 직설적이고 규정적이며 재미없는 언어 텍스트 속에 가둬놓은 꼴이지요. 덕분에 멍청한 한나라당 놈들도 그 텍스트의 반골적 에너지의 정체에 대해 좀 더 쉽게 알 수 있게 되었고 말입니다.
  • :) 2009/11/03 08:05 # 삭제

    영화나 드라마나 미술작품을 대할 때 작품을 봐야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님의 말씀은 아래의 문제의 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리뷰나 평론에 적용되는 말이 아닐런지요.
    리뷰나 평론이 독자들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될 수도 있지만, 때론 재미없는 주석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그게 리뷰나 평론의 역할 아닐까요?

    모호하고 난해한 영화에 대해 리뷰어나 평론가가 '네가 보고 결정해라'라는 한 마디나 작품과 마찬가지로 모호하고 난해하게 작성한다면
    평론가나 리뷰어들이 굳이 존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떤 '의도'로 하는 말인지 알겠지만, 님같은 사려깊은 말을 하는 사람이 저렇게 비아냥대는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이의 심정과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것 같아보여 안쓰럽네요.
    아무리 좋은 말로 하면 뭘합니까.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마저 미디어법을 반대했던 마당에 혼자 꿋꿋하게 자기 말이 진리라 생각하며 자신의 피해망상을 '현실화'시키는 "미남" 대통령이 존재하는 한,
    그에 대해 조롱이라도 하면서 노는 것도 나쁠 건 없겠죠.
  • ozzyz 답글 중 2009/10/29 10:26 # 삭제 답글

    독자층을 전복적으로 고려한다는 말은 뭔가요?
    독자층을 뒤엎겠다는 말인가..ㅠ
    전복이 아니라 전폭이 아닐까요?
    전폭 역시 의미상으론 말이 되지만 좀 어색한 표현이긴 하네요..

  • ozzyz 2009/10/29 10:31 #

    의미 그대로 해석하세요. 해당 매체를 주로 읽는 독자들의 일반적인 취향이나 가치관을 의도적으로 거스른다는 말입니다.
  • ㄷㄷ 2009/10/29 10:29 # 삭제 답글

    눈높이고 뭐고 그 정도도 이해 못하는 무려 "독자"님들은 뭔지 -_-ㅋ

    걍 페이스대로 쓰세요.


  • 샤린로즈 2009/10/29 11:32 # 답글

    역시 아직은 난독증 환자가 너무 많군요 ;; 그래도 저는 허지웅 기자님 글을 아주 좋아합니다
  • 2009/10/29 14:28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ozzyz 2009/10/29 22:08 #

    같이 잡지 만들어요.
  • 모자 2009/10/29 15:19 # 삭제 답글

    각 매체만의 포즈가 있고 글쓴이마다 주된 패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의 시각과 오해를 고려하는 것까진 좋은데, 그걸 블로그란 매체에까지 통일적으로 적용시키려 하는 건 지나치지 않나 싶어요.
    잡지에 나오는 영화 한줄평이 영화가 이래저래서 재미있다/없다를 말하는 대신 직관적인 수사를 이용하는 것처럼 블로깅도 나름의 가벼움, 신랄함 따위가 특징이고 장점입니다. 허지웅님이 투표하러 가는 소시민들 모아놓고 '선덕여왕 반어'를 설파할 건 아니잖아요.
    허지웅님 블로그엔 어느 정도의 분노와 어떤 가치에 대한 추구 같은, 젊음의 뉘앙스가 있습니다. 자기 통일도 젊음의 열망이죠. 그러나 그것이 과하고 철저해져서 오히려 스스로를 가두고 부러뜨릴 수도 있어요.
    오해를 반대급부로 한 신란한 레토릭이 숨통을 틀 수 있는 곳이 온라인 공간을 빼면 얼마나 있을까요. 누가 그러던데 우리는 오해로 소통한다고 합니다. 아마 그 오해는 대부분 맥락이 없기에 발생한 오해겠죠. 허지웅이라는 맥락, 블로그라는 맥락...... 저번 글이 이런 맥락 속에서마저 잘못된 것 같진 않아요.
    요컨대 절대적인 언어를 갈구하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언어를 절대적으로 개조, 통제할 필요는 없어요. 공지에도 있듯이 폼나는 건 꽤 중요하니까요.
  • 베리배드씽 2009/10/29 17:56 # 답글

    저 글은 매끈한 역설, 풍자, 해학이 글을 살렸죠. 원래 의도대로 읽히든 정 반대로 읽히든 소기의 목적은 달성됐다고 봐요. 저 글을 리얼로 읽은 사람들조차 글쓴이를 욕할지언정 적어도 작금의 말도 안되는 현실을 돌아보게 되잖아요. 국민드라마 <선덕여왕>을 빨갱이에 빗댄 논리 자체에 동조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테니.
  • kiki 2009/10/29 18:31 # 삭제 답글

    이 글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부터 느끼는건데 사람들이 갈수록 음악도 글도 말도
    꼼꼼하게 듣고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대충 듣고 대충 봐도 알아먹을 정도가 되야 사람들이 이해하고 좋아한다는...
    그래서 글도 풀어서 쉽게 써야 하고,
    노래 멜로디나 가사도 1차원적이고 관습적이어야 인기가 많더라구요.
    그리고 제일 안타까운건 대충 보고 들으면서 바로 평가해버린다는 것!
  • 박지원 2009/10/29 23:52 # 삭제 답글

    복잡하고 미묘한 일이네요 글쓰기란... 아자!
  • 삐다구 2009/10/30 05:28 # 삭제 답글

    정치는 저울질 하는거죠
    뭐가 있냐 없냐 따라서 채워 주면 되니까요 그게 돈하고 상관 있을까요?
    궁금한게 있는데 선덕여왕 드라마가 여왕이 되어 정치하는 드라마인가요?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는 대통령이 되고나서 새마을 운동하신 거 맞죠
    이왕이면 선덕여왕이 왕이 되고나서의 정책을 박정희 전 대통령님에게 비유 하심 좋았었을텐데 하는 생각 드네요
    그리고 이런 글에 박정희 전 대통령 들먹이지 마세요
    그분이 어떤 분이신데 평을 하고 누구에게 비유를 하시는건지...그럼 수고 하세요
  • Manglobe 2009/10/30 06:08 # 삭제

    -_- 님하 자제점여...
  • ozzyz 2009/10/30 10:19 #

    요정에서 연예인 불러다놓고 술 마시다 총 맞아 돌아가신 분이요?
  • 칼로리 2009/10/30 10:29 # 삭제

    우와 박통빠다 박통빠가 나타났다
  • 필로티 2009/10/30 08:48 # 삭제 답글

    네트워크 상에 게으른 독자나 긴 글을 두려워하는 끊기 없는 독자가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허지웅님의 글을 오해한 소수의 독자들은

    글의 뉘앙스를 파악한 다수의 독자에 의해 오해가 풀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자신이 남긴 댓글에 대한 피드백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말이죠.

  • 맹목 2009/10/30 09:31 # 삭제 답글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ozzyz님^^
    빨간펜이 생각납니다.
  • 배트맨 2009/10/31 18:03 # 답글

    블로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글을 제대로 읽지 않고 댓글을 다는 이웃 분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였어요.
    그냥 모른척 하고 답글을 적어드리기는 하는데..
    이웃 분들도 이러한데 일반적인 방문객들의 경우 얼마나 그 정도가 심할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정치적인 글은 더군다나 개인의 가치마다 아주 극명하게 대립하고 흥분하는 영역이라서, 사실을(글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도 있었을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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