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애기

대충 씻고 청소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창밖을 보니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아침 햇살이 유난히 예쁘다. 얇은 던힐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슬리퍼를 신었다. 현관문을 열었더니 반 지하로 내려오는 작은 계단 한 가운데 새우깡 한 봉지를 든 애기 하나가 무심히 앉아있다 깜짝 놀란다. 채 수정란티를 못 벗은 것 같은데 아이고 깜짝이야, 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내가 더 깜짝 놀랐다, 말해주고 귀찮다는 듯 걸어 나갔다. 가만 생각해보니 여긴 우리 집인데 지가 왜 놀래. 애기들을 좋아하지만 애기들은 부담스럽다. 골목은 볕으로 가득하다. 지척에서 매미도 울어대기 시작했다. 연기를 마시고 내뱉으며 매미가 언제부터 울었더라 느리게 발을 떼다 문득 인기척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그 애기가 과자를 씹으며 따라 붙어있다. 모른 척하고 그냥 걷다가 반대 방향으로 바꾸어 다시 걸었다. 그림자를 염탐하니 서투른 직립보행으로 아장아장 여전히. 신경 끊기로 하고 볕을 보고 담배를 빨고 우편함도 뒤져보고, 그러는데 이것 참 아무래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집중이 될 리가 없잖아, 벌써 다섯 바퀴째 저러고 있는데. 혹시 유괴범으로 오해 당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주위를 의식하다 용기를 내 입을 떼었다. 어디서 왔냐. 쩌~기요. 집에 안 가냐. 그러나 애기는 대답대신 조그만 손으로 새우깡을 집어 먹는다. 그리고 갑자기 제 집 방향으로 걸어간다. 아주 잠깐 서운했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걸음을 옮기며 담배를 빠는데 꽁초가 다 닳아 손을 데였다. 그대로 집에 들어왔다. 커피를 마시자. 주전자에 물을 담다가 부엌 창밖을 보니 다시 애기가 아장아장 어른거린다. 과자를 우물거리며 내 소유의 계단에 걸터앉는다. 태연하게 커피잔을 들고 소파에 앉아 오늘 아침은 베토벤이고 나발이고 아 신경 쓰여 신경 쓰여 신경 쓰여. 그런데 좀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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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7/26 09: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습작 2009/07/26 09:57 # 답글

    아이고 깜짝이야라니 .. 귀 귀엽다;
  • 행인9 2009/07/26 10:18 # 답글

    글만 읽어도 귀여운 느낌이 팍!팍! 아고 아고
  • valadares 2009/07/26 10:24 # 답글

    애기스토커네요!
  • 2009/07/26 11:1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7/26 11: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cdc 2009/07/26 12:44 # 답글

    잘생긴 아저씨가 신경 쓰이나 봅니다 하하
  • ozzyz 2009/07/26 13:23 #

    남자앱니다.
  • Laputian 2009/07/27 00:53 # 삭제

    절망
  • dcdc 2009/07/27 01:22 #

    그 나이 또래에는 남녀 구분없죠 뭐 :)
  • 베리배드씽 2009/07/26 12:47 # 답글

    그냥 볼 때야 아가들 거의 다 예쁘죠. 그러나 막상 안고 달래고 하다보면 잘 때가 제일 이뻐요 --
  • 미스티 2009/07/26 13:26 # 삭제 답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랑 놀아줄것 같은 사람한테 붙던데 지웅님이 맘에 들었나 보죠.
    근데 좌절하고 돌아가는 뒷모습 ㅋㅋ (남의 애도 귀여운데 자기애는 미쳐요.)
  • 오카리 아스카 2009/07/26 17:41 # 답글

    읽다 좀 웃었습니다.
  • 출생의 비밀 2009/07/26 19:09 # 삭제 답글

    지웅씨 아들일지도 모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 ozzyz 2009/07/26 20:40 #

    하느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야구팀을 만들 수 있게 됐군요.
  • :) 2009/07/26 21:59 # 삭제 답글

    겨우 야구팀입니까?

  • 박지원 2009/07/26 23:35 # 삭제 답글

    진짜 있었던이야기예요? 환상성이 돋보이는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 이현희 2009/07/27 01:40 # 삭제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 Sick Boy 2009/07/27 04:39 # 답글

    이런 글 재밌단 말이야. ㅋㅋ
  • 2009/07/27 07:5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나막울었어 2009/07/27 08:20 # 답글

    수정란티를 못 벗은 것 같은데 / ㅋㅋㅋㅋㅋㅋㅋㅋ
  • dawnsea 2009/07/27 11:34 # 삭제 답글

    장가가실때가 되셨슴미다
    인증 확실
  • 2009/07/27 11:3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수요 2009/07/28 21:47 # 삭제 답글

    세상에... 진짜 귀여워... 우쮸쮸쭈쭈쭈ㅜㅠㅜㅠㅠㅠ
  • ㄱㅅㅇ 2009/07/29 01:42 # 삭제 답글


    글씨체 바꿉시다 .
    눈 아픕니다 . 목 아픈 거 만으로 벅차는 하루입니다 .
  • crazykims 2009/08/13 01:10 # 삭제 답글

    이 글이야 말로 '아 신경 쓰여 신경 쓰여 신경 쓰여. 그런데 좀 귀엽다.' 군요.

    자꾸 불현듯 생각나네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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