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다. 영화 개봉을 두 주 정도 남겨두고 언론 시사회가 열린다. 영화라는 매체 주변부에서 어떻게든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스멀스멀 나타나 손님 행세를 한다. 한국영화의 경우에는 상영 전 반드시 무대인사가 앞선다. 제작자와 감독과 배우를 한자리에 불러 모아 한마디씩 듣는 것도, 그걸 두고 사진을 찍는 것도 여러모로 시간이 드는 일이라 정작 상영은 뒤처지기 마련이다. 심하면 3, 40분도 걸린다. 그럴 땐 조용히 보도 자료에 불을 붙여 무대에 던지고 싶지만 누군가의 엄연한 밥줄이 걸려있는 일이다보니 쉽고 편하게 짜증내기도 영 미안하다.
무대 인사를 보면 영화가 보인다. 사실 과장이고 오만이다. 그 날 그 무대 위에 올라갔던 자들의 곱절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매달려 만든 영화다. 감독이나 배우의 손짓하나, 말투 정도로 가늠될만한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유사한 사례들이 수차례 쌓이다보니 다음과 같은 심증 정도는 확실히 생긴다.
지명도 있는 감독의 입에서 “후회 없이 만들었다”는 말이 나오면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영화가 뒤따른다. 장르영화의 경우, 그 내용이야 어쨌든 제작자 말이 길어지면 영화가 후지다. 심지어 제작자가 유머를 시도했다면 극장을 나서도 좋다. 감독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앞뒤가 꼬이거나 부들부들 떨어 무대에서 웃음이 나오면 최소한 2, 3년 이상 거론될만한 영화가 나온다. 가장 최근에는 <추격자>가 그랬다.
특히, 누구 입에서든 한국영화 운운이 시작되면 당장 일어서 있는 힘껏 도망쳐야 한다. 요즘 한국영화가 어려운데 활력소가 될 수 있다면, 정도는 괜찮다. 그러나 갑자기 한국영화 위기론부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물량공세를 짚어내더니 기자들의 사명감과 애국심을 지적하는 수준에 다다르면 답이 없다.
얼마 전 <여고괴담5 : 동반자살> 무대인사가 꼭 그랬다. 이춘연 대표가 장악한 무대 위에서 감독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감독과 배우들에게 차려, 경례를 시키는 건 이제 그러려니 싶지만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참기 고된 무대 매너와 한국영화 운운은 이제 정말 참기 힘들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시리즈의 종말을 고하는 종소리와 같았다.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장치가 효과적으로 쓰였는지 낭비됐는지를 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함량을 따지기 전에 기본적인 꼴이 허물어져있다는 점에서 감독이 온전히 지휘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더불어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선 무대인사의 풍경이 더욱 불쾌해졌다.
잘 만든 한국영화가 반드시 흥행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잘 만든 한국영화의 무대인사에선 굳이 사명감과 나팔수를 독려하지 않는다. 다른 무언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수줍게 소개할 뿐이다. 허지웅 (<한겨레> '허지웅의 극장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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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극장 예고편 2009/06/30 12:08 #
무대 인사를 보면 영화가 보인다사이보그 그녀도 곽재용감독의 말이 길어지더니 영화가 씹창이었고,해운대는 저능한 마케팅 담당자의 한계인지 연출에 자신없는 윤제균감독의 연막인지는 모르겠지만 극장에서 예고편만보고 적극적으로 보려고 맘먹었던 기분이 농락당한 듯한 느낌을 받게끔 마케팅을 하는것도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볼 마음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니 영화사업은 한낱 꿈이던가.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 more
jorumkim의 생각 2009/06/30 22:18 #
무대 인사를 보면 영화가 보인다__영화가 영화답게 되려면 영화 만드는 사람이 만들어야 하는 거다. 모든 영화가 흥행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 같지 않은 영화가 흥행한 예가 어디 있던가?... more
무대 인사를 보면 영화가 보인다 2009/07/02 20:56 #
"잘 만든 한국영화가 반드시 흥행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잘 만든 한국영화의 무대인사에선 굳이 사명감과 나팔수를 독려하지 않는다. 다른 무언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수줍게 소개할 뿐이다." 묘하게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작품에 자신 있으면 굳이 애국심까지 들먹일 이유가 없지요;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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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방앗간 편지 : 무릎앉아와 손발이 오그라들다 2009-07-02 15:09:02 #
... 흐름을 위해 볼보이가 필요한건 알겠는데 굳이 저런 불편한 자세를 취하면서까지 기계적으로 튀어나가 빈 볼을 잡아야 할 만큼 경기 흐름이라는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무대 인사를 보면 영화가 보인다>허지웅씨를 비롯한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동사 <오그라들다> 역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중에 하나인데, 그네들은 '오그라들다 ... more
세리자와 박사의 괴수퇴치연구실 : 티맥스 윈도 2009-07-08 13:57:08 #
... 뭐 딱히 아는 건 없지만 인상평하는 법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생각나서리. 무대 인사를 보면 영화가 보인다 ... more




덧글
댕구리 2009/06/30 09:15 # 답글
글에가능성이넓어서좋아요글잘읽었습니다.Sengoku 2009/06/30 10:05 # 답글
아, 애국심...thespis 2009/06/30 10:13 # 답글
에잇, 성급한 일반화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모두 인정해버리고 말았어요 ㅠㅠ 그야말로 '애국심' 운운한 영화중 제대로 된게...-_-
헤비스 2009/06/30 10:19 # 삭제 답글
이 곳을 광풍으로 몰아 넣었던 한 영화가 떠올랐어요.단팥빵 2009/06/30 10:35 # 답글
코미디 영화를 골랐을 때, 주연배우들이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나와서는 "우리 팀은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라고 말문을 열면 아차! 한답니다.네이디 2009/06/30 19:33 #
대체로 재미가 없다는 뜻인가요?비틀린나무 2009/06/30 10:36 # 답글
으헉.. 애국심을 강조한.. 모 감독님이 생각나는군요. 슬랩스틱의 달인이신....월광토끼 2009/06/30 10:53 # 답글
영화뿐 아니라,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매체치고 제대로 된 물건 없습디다..수요 2009/06/30 11:50 # 삭제 답글
예전 포스팅에서 분노가 느껴져서 언제 한번 따로 쓰시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애국심을 자극하는 '예술'은 향기가 아니라 냄새가 나요.,
Silverfang 2009/06/30 11:56 # 답글
영화계에 아직 그런 꼴통같은 무대메너가 남아있었군요...soloture 2009/06/30 11:59 # 삭제 답글
아 얼마전에 사이보그 그녀 시사회갔을때 곽재용감독이 있는대로 웃길려고 난리부르스를 추다가 윤형빈과 아야세하루카를 동시에 뻘쭘하게 만들더니만 영화가 그따위려고 그랬던거구나.. 깨달음을 얻어갑니다 ㄱㅅ.작가 2009/06/30 12:05 # 삭제 답글
여고괴담 어차피 2부터 레즈필 밖에 볼게없는 영화가 되어버렸는데 뭐 자꾸 만드냐.....무지개영감 2009/07/01 02:03 # 삭제
헛, 여고괴담2는 제가 시리즈 중에 가장 감명깊게 본 작품인데요.개인적으로 매우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시엔 2009/06/30 12:32 # 답글
여고괴담 시사회 다녀오신 다른 분들도 이춘연 대표의 몰상식함이 도를 넘었다면서 불쾌감을 비추시더니,여기서도 그 말을 보네요. 지나치게 나댔다면 나댄 듯.
예랑 2009/06/30 12:41 # 삭제 답글
지명도 있는 감독의 입에서 “후회 없이 만들었다”는 말이 나오면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영화가 뒤따른다.적극 공감합니다.
검투사 2009/06/30 12:46 # 답글
"이미 나온 네 편의 재미난 요소들을 짜깁기했어염~" 하고 출연 배우들 중 하나가 말하는 내용을 어느 케이블tv에서 본 뒤... 안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ㅅ-그런데... <해운대>는 어떨까요? 문득 하신 말씀을 보다보니... 생각나서 말이지요... -ㅅ-
"헐리우드 재난영화에는 없는 우리만의 눈물과 감동" 운운하는 것이...
기대했다가 결국 접었다는... -ㅅ-;
무비조이 2009/06/30 13:04 # 삭제 답글
글 읽고나니 정말 와 닿네요^^어떤 영화든 잘만든 영화는 굳이 립서비스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관객들이 먼저 알아봐줄테니.. 그 다음은 글 쓰는 사람들이
진실하게 영화에 대해 평가를 해주게 되겠죠^^
엘 2009/06/30 13:52 # 답글
이건 정말 공감합니다. 하하.언더보이 2009/06/30 14:55 # 답글
ㅎㅎ 그렇군요. 잘 보고 갑니다.ddd 2009/06/30 15:54 # 삭제 답글
dddd 2009/06/30 15:56 # 삭제 답글
d지나가는사람 2009/06/30 16:23 # 삭제 답글
왠지 공감갑니다, 이건ㅡㅡ;;;앨리스 2009/06/30 16:37 # 답글
고급정보네요 감사gdgd 2009/06/30 17:10 # 삭제 답글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장르에도 적용 가능...동네목사 2009/06/30 18:57 # 답글
시간이 되시면, '애국심 감독, 배우'가 누구인가 글을 올려주시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일단, 강우석, 설경구 한표요!
하르모니아 2009/06/30 21:43 # 답글
무대인사는 한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지만, 느껴지네요.학습능력이 없는걸까요. 애국심 운운했던 건 디워로도 충분합니다.
쿨잼 2009/07/02 15:39 # 삭제 답글
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이번에 베타 서비스 오픈 기념으로 영화 '차우'에 대한 VIP 시사회가 있는데
시간 되시면 한번 참석 부탁드릴께요...
http://cooljam.tistory.com/23
2009/07/02 20:45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skysurfr 2009/07/07 21:51 # 답글
자체개발(?)국산OS 티맥스 윈도우 시연회에도 적용이 가능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