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락 인터뷰ㅣ나, 한 번 더 뜬다]
최양락이 ‘고독한 사냥꾼’의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내가 이 카페에 오는 이유는, 이곳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지.” 눈물이 찔끔 났다.
<최양락의 재밌는 라디오> 정말 재미있게 듣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나 하신 거지요?
그게, 2002년 4월 15일 날 시작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6, 7년 된 거죠. 제가 뭐 라디오 DJ라고 하지만, 사실 이건 개그 프로그램이거든요. 그렇지요? 6년 동안 하고 싶은 개그 실컷 하고 있습니다.
평가도 좋고, 올해는 경사도 많았지요? 작가님 상도 받으시고.
박찬혁 작가가 요번에 방송대상이랑 작가협회 상을 받았지요. 배칠수와 박찬혁, 당대 최고의 라디오 쟁이들 힘으로 이 방송이 잘 되는 거예요. 저야 뭐 사실 그 전까지 TV에서만 놀았잖아요. 저로선 정말 행운이지요.
최양락씨가 충청도 출신이시라 말투는 충청도 말투인데요. 사실 말 자체는 굉장히 빠르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빠른 말이 하나하나 귀에 잘 들어와요. 쏙쏙.
아이고. 고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저는 라디오 개그 체질이에요. 사실 방송 시간 때문에 더 그렇게 된 것도 있어요. 제한된 시간 동안에 충청도 말투를 살려서 말을 해야 하니까, 빨리도 하면서 특색도 살리고. 그렇게 조금씩 나도 모르게 각색이 된 거지.
전에 ‘네로 25시’같은 것도 지금과 비슷한 시사 개그였는데요. 풍자 개그를 좋아하시나요.
좋아합니다. 하지만 고 김형곤 선배처럼 시사 풍자만 특허로 하겠다, 이런 건 아니었고요. 제 스타일이야 늘 변했잖아요. 그리고 요즘 인터넷에서 보는 것 같은 아주 독한 수위의 시사 개그는 제 취향이 아니에요. 때에 따라서 독설을 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냥 편안한 웃음을 주는 수위에서 멈추는 게 좋습니다. 아주 신랄한 시사 풍자 개그야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때 했어야지. 그때는 방송에 나와서 대머리, 턱주가리 이런 말도 못했어요. 엄혹했지.

사실 데뷔는 MBC 라디오에서 하셨지요? 그런데 정작 활동은 KBS TV에서 하셨습니다.
그게 사연이 깁니다. 1981년도 개그맨 콘테스트였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지 아마? 그 때는 콘테스트를 라디오에서 했어요. 이경규, 엄용수, 김정렬, 김보화가 모두 제 동기입니다. 위로는 서세원, 고 김형곤, 장두석 선배, 밑으로 최병서, 황기순 이렇게 있고. 그 다음부터는 TV 주최로 바뀌었지요. 아무튼 거기서 제가 대상을 탔어요. 그래서 한 2개월 동안 라디오에서 개그를 했는데, 갑자기 TV쪽에서 이번에 뽑힌 개그맨들 다 나오라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카메라 앞에 서본 적이 없거든요. 완전 쫄았지요.
생방송이었나요?
그 때는 TV에서 녹화방송을 안했어요. 죄다 생방송이었지. 얼마나 긴장이 돼. 그러니까 그게, <영 일레븐>이라는 프로였구나. 맞아 <영 일레븐>. 거기 나와서 NG내고 그랬어요. 생방송에서 NG내면, 그게 얼마나 치명적입니까. 방송 끝나고 나니까 PD들이 모여서 막 내 욕을 하는 거야. 아니 뭐 저런 놈한테 대상을 줬냐고. 너 집에 가! 그러더라고. 그때 독산동에 살았었는데 버스타고 가면서 막 엉엉 울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KBS TV로 가셨을까요.
그게 참 재미있는 거야. 사람 운명이라는 게. 그때 막 울면서 집에 갔는데 KBS <젊음의 행진>에서 작가 일을 하고 있던 선배 형이 전화를 건 거에요. 형이 그럽디다. 너 MBC에서 대상 뽑혔지만 거기 있어봤자 별 볼 일 없을 거라고, 구봉서 배삼룡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너 차례까지 오는 데 백 년은 걸릴 거라고요. 그러면서 이번에 <젊음의 행진>에서 개그 코너가 두 개 들어가는데, 그냥 여기로 오라고 그러는 겁니다. 나 잘린 줄도 모르고! 아니 이게 얼마나 잘 된 거야! 나 완전 만신창이 돼서 잘린 날인데(웃음). 아무튼, 그래서 KBS에서 개그를 시작한 겁니다. 다들 내가 KBS 출신인 줄 알아요.
저는 ‘고독한 사냥꾼’ ‘네로 25시’ ‘남 그리고 여’ ‘괜찮아유’ 같은 최양락 개그를 보며 열광했던 세대입니다. ‘고독한 사냥꾼’에 이제 막 미스 코리아에 뽑힌 고현정씨가 나왔던 때가 생각나네요.
기자 선생님 나이가 어떻게 되는 데요?
79년생입니다.
그렇구나. 그럼 그렇겠네요. 얼마 전에 내 아들이 공부하는 반에 강호동 유재석은 알아도 최양락을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해서 되게 상처받았었는데(웃음). ‘고독한 사냥꾼’이라. 거기 여배우들이 많이 나왔지요, 맞아요. 그러니까 그게 이거죠. “내가 이 카페에 오는 이유는, 이곳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지.” 그렇게 해놓고 상대 여자랑 대화하면서 속마음으로 “튕기긴, 좋다고 해라” 그러고 말이죠. 마지막에는 만날 실패해서 “에구 에구 에구 그날 난 쪽만 팔렸다”라면서 끝나는 거였죠.
맞습니다. 맞아요(웃음). 그런데 그때 함께 활동하셨던 분들을 이제는 잘 볼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아예 장두석씨 처럼 개그를 그만두거나 고 김형곤씨처럼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요.
이봉원이나 김정렬, 황기순은 종종 만납니다. 그런데 그런 게 있어요. 나는 TV 개그 할 때도 내 코너가 없다, 그럼 절대 대기실 안 갔어요. 배역도 없는데 방송국 얼쩡거리면서 배역 따려고 한다, 그런 오해 받기도 싫고요. 1년이든 2년이든 안 가요.
자존심이 무척 세시군요.
셉니다. 세요. 그래서, 전에 같이 활동했던 개그맨들과도 아주 가까이 지내지는 못해요. 그냥 가끔 만나 소주나 한두 잔씩 하고요. 어울리고 좀 그래야 하는데 낯가림이 심해서. 잘못된 성격이지요. 친한 사람들하고만 친하고요.
그런 분들을 무대에서 볼 수 없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개그 형식이 바뀌면서 옛날 개그맨들은 전부 <6시 내 고향>나 <아침마당> 같은 데서 리포터 같은 걸하고 있어요. 그런데 진짜 개그라는 게, 진짜 웃음이라는 게 젊었을 때 나오는 게 아니야. 구봉서, 이주일 선생님 이런 양반들이 젊었을 때 안 웃겼어요. 나이가 좀 차야 진국이 나오는 겁니다. 외국 코미디언들 보세요. 인생을 알아야 진짜 개그도 알아요. 물론 지금 젊은 개그맨들이 못한다는 건 아닙니다. 몸 개그는 우리보다 훨씬 잘 해요. 하지만 토크 개그만큼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게 순간적으로 웃기는 게 아닌, 희로애락을 보여줄 수 있는 개그 포맷은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는데요.
멸종됐지요. 그러니까 다른 쪽을 찾아봐야 하는데. 내가 올 봄에 <웃찾사>에 나갔다가 2주만에 까였어요. 안 웃겨서. 3분짜리를 못해가지고. 거기 형식은 영 못 따라가겠어. 그런데 내 생각에는 요즘 예능 프로에 좀 맞는 거 같아요. 전에는 예능 프로라는 게 쿵쿵따 게임하고 번지점프에 매달고 떨어뜨리는, 그런 거였잖아요. 요즘에는 토크쇼 형식으로 많이 바뀌었는데, 이게 특히 나한테 맞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야심만만>에 출연했어요. 신년 특집으로 1월 5일 날 방송될 텐데요.
잘 됐나 봐요.
잘 됐습니다. 아주 대박 났어요. 이봉원, 이경실, 조혜련, 이 친구들하고 같이 했는데요. 다섯 시간을 녹화했는데 하다 보니 이건 그냥 개그 무대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주 날아다녔어요. 내가 물을 만난 것 같아. 거기 스태프들도 다들 만족하고. 내가 투수라고 해봐요. 그런데 특기가 빠른 직구다. 그런데 이런 식의 프로그램이 바로 내게 있어선 빠른 직구인 거고, 그걸 이제야 만난 거지요. 제가 좀 그런 게 있어요. 프로그램이 있으면, 그날 분위기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려. 천성이에요.
힘주어 거듭 말씀하시니까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아니 한 번 보라니까. 내가 그런 감이 좋아요. 이거 될 거 같아.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재미있는 사주 사이트를 봤는데요. 유명인들 사주를 가지고 점괘를 봐둔 게 있더라고요. 거기서 최양락씨 사주를 봤는데요. 이렇습니다. “독불장군. 독재자상. 말로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 작은 섬의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주신의 관상과 리더십을 소유. 어딜 가든 왕대접을 받는다.”
대충 맞는데요? 제가 왕자병도 아니고 황제병이 있어요.
그래서 네로 황제를 하셨군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코너들 봐요. 다 내 위주지. 뭐 다른 말은 없어요?
사업을 하지 말랍니다. 사업 하면 전부 다 말아먹는대요. 다행히 소심한 사주라 사업을 하지는 못할 거라고 쓰여 있습니다.
맞아요. 나는 망할 거 같아. 그래서 애 엄마가 다해요.

2001년인가요, 알까기로 제 2의 개그인생을 맞으셨는데요. 그 전까지 상황이 굉장히 안 좋으셨지요?
그랬습니다. 끝물이었지요. SBS에서 남희석이랑 <좋은 친구들>을 꽤 오래했는데요. 5년 했나? 아무튼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서 올라오라는 거야. 그래서 뭐 잘 했다고 상주려나 냉큼 갔지. 그런데 국장이 그러더라고요. 얼마나 했어요? 5년 했는데요. 그만하면 오래도 하셨네, 이제 좀 물려주시지. 와, 그 말을 딱 듣는데, 굉장히 치욕적이었어요. 데뷔할 때 MBC에서 잘린 것 빼고는 처음이었어요. 한마디로 명퇴지요.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김미화랑 하고 있던 KBS <코미디 세상만사>도 자의로 그만 두고요, 그냥 호주로 갔어요.
호주가서는 뭐 하셨어요?
그냥 놀았지 뭐. 지금까지 한 20년 방송을 했는데. 앞으로는 뭘 먹고 살아야 할까, 뭐 이런 생각들 하면서요. 딸은 이제 초등학교 4학년 다니고 있고 아들은 7살인가, 아직 학교도 안 다닐 때고. 그냥 만날 산책이나 다니면서 집에 있었어요. 그렇게 1년 있었죠. 그러다 돌아와서 띄엄띄엄 방송일 다시 시작하다가 알까기가 터졌으니, 내게 알까기는 정말 제 2의 인생이었죠.
전에는 영화 출연도 많이 하셨지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나 <어른들은 몰라요>는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최근에도 하나 했어요. <맨발의 기봉이>. 거기서 최양락 역할로 카메오 출연했거든요(웃음). 재미있어서 했습니다. 영화 굉장히 좋아하고요. 기회가 있으면 앞으로도 하고 싶고요. 단, 희극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최양락의 코드를 잘 이해하는 연출자가 나타나서 인연이 된다면, 그때는 꼭 해보고 싶네요. 그런 건 아까 그 사주에 안 나옵디까?
안 나오던데요(웃음).
안타깝네.
<맨발의 기봉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그 때 ‘마징가 Z' 노래 사용 문제로 소송이 오고 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거 있잖아요. 제가 트로트 창법으로 만화영화 주제가 불렀던 음반. 거기 사장이 영화 속에 삽입된 ‘마징가 Z 최양락 버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소송을 건 거에요. 영화사와 그 회사와의 문제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또 “최양락이 불쌍한 기봉이 돈을 가져가려 한다”고 하더군요. 그게 대체 무슨 논리인지.
그런데 일일이 해명하는 건 제 스타일도 아니고요. 뭐, 최양락이 세집살림 한다, 그러면 쫓아가서 다리몽둥이를 어떻게 하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웃음).
사모님 팽현숙씨는 잘 지내시나요? 개그맨 커플 1호였지요.
1호였지요. 그래서 더 모범을 잘 보이려고 잘 살아왔어요. 부끄럽지 않으려고요.
알까기때는 팽현숙씨가 직접 머리도 해주시고 그러셨잖아요. 서태지 머리(웃음).
헤헤헤. 그랬어요. 원래 다 챙겨주고 그래요, 그런데 요즘은 작은 사업을 하느라고 잘 못그래요. 뭐 한 1년 됐어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는 나보다 더 늦게 퇴근하고. 그래서 내가 요즘 이 모양 이 꼴로 대충 하고 다닙니다. 오늘 요 거 사진도 찍어야 할 텐데 큰일이네.
얼마 전에 결혼 20주년 기념해서 베트남에 봉사여행 다녀오셨다고.
에이, 그거 낯간지러운 이야기에요. 그게 무슨 봉사야. 프로그램 기획차 연계해서 간 건데, 그래서 크게 할 이야기가 없지요. 그냥 조그마한 선물이나 주고 온 거지. 진짜 봉사야 문근영이나 김장훈이 하는 게 진짜 봉사지요. 안 그래요? 글_ 허지웅 (<프리미어> '와일드 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