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현주씨

어저께 참 좋은 동생들을 만났다. 인정받는 일러스트레이터다. 나 보려고 지방에서 올라왔다. 고마운 노릇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엄마를 한 명의 여자로 생각하고 대하는 친구였다. 많은 것을 느꼈다. 반성을 했다. 나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엄마는 내게 한 명의 여자로서 대우받을 만큼 충분한, 매력적이고 헌신적이고 사랑스러운, 그런 사람이다.

한 때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숨을 쉬고 버텼다. 나는 아버지를 증오했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파괴했다. 반원 국민학교를 경원 중학교를 서울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가족이 깽판 나는 덕분에 전라도 광주로 이사 갔다. 험한 친구들뿐이었다. 삭발하고 눈에 힘주고 다녔다. 많이 맞고 많이 때렸다. 그러나 좋은 친구들이었다. 나는 당시의 내 형편에 대해 그다지 심각한 피해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오면서,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증오에 함몰됐다. 아버지가 교수다. 딱히 그 학교에 진학하지 않아도 새끼들 학비 지원금이 나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에게 단 한 푼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나는 하루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새벽부터 오전까지 일하고 수업을 듣고 저녁 일을 하고 새벽에는 고시원 총무를 보아야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끔찍했다. 아침에 피 흘리듯 졸린 눈을 어거지로 치켜 세워야 할 때마다 아버지가 미웠다. 끝까지 나를 책임지고 챙긴 건 엄마였다.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지원해주기 위해 엄마는 친가 식구라는 사람들에게 뺨을 맞아야 했고 리어카를 끌어야 했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나를 만들어냈다. 우리 엄마는 내게 충분히 존중받아야만 한다.

아버지가 미웠다. 어디 가서든 아버지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그랬다. 나의 20대란 온전히 아버지에 대한 증오감으로 버티어 낸 것이었다. 지금은 그냥 무덤덤하다. 내 밥벌이 내가 잘 하고 있고 아버지에게도 나름의 주관적 합리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도 피곤하고 짜증스럽고 힘들었을 것이다. 이 땅의 아버지로서, 그 어떤 아비가 자식에게 인정받고 싶고 좋은 가정을 꾸리고 싶고 친구 같은 새끼를 만들고 싶지 않았겠느냐는 말이다. 연민을 느낀다. 그래서 요즘은, 아버지를 인터뷰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인터뷰를 하면 자연스레 객관화가 된다. 취재원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가 장손을 그다지도 방기했던 속사정에 대해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우선은 우리 엄마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다. 우리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노력했다. 힘든 일이다. 나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새끼들 안 챙겼다. 절대 그럴 수 없다. 나는 세상에서 내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우리 형제를 길러냈다. 이것은 흡사 슈퍼 히어로가 아닌가. 나는 그녀의 크립톤 운석이었다. 나는 그런 지위를 누리기만 했다. 그만한 책임과 의무는 외면했다. 그녀는 우리가 하늘이 내려준 새끼들이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그녀가 하늘이 내려준 엄마라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를 한 명의 여자로서 존중하고 아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엄마가 아니라 현주씨라고 불러야 겠다 결심했다. 내일 당장 만나야 겠다. 그렇게 내 마음을 조금씩 드러내야 겠다. 우리 엄마, 아니 현주씨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좋은 사람이다. 그녀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행복할 것 같다. 나는 가족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는다. 글로 아버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처음이다. 새삼 왜 이럴까. 오늘 밤 아주 좋은 형과 가족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웃다보니, 어떻게 그리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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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리온 2008/12/01 01:59 # 답글

    눈물 찔끔 찔끔 났어요.
    엄마를 한사람의 여자로 보기란 쉬우면서도
    막상 하고자하면 어려운 일이에요.
    우리들은 몇십년동안
    나만이 존중 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엄마도 한사람의 여자고,
    존중받아야 마땅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힝 엄마랑 데이트도 많이해야겠어요.
    ㅜㅜ 사랑하는 우리 엄만
    자식말고는
    놀러다닐 친구가 별로 없을 테니까요.
    우앙
    눈물나요 이런거
  • 미타민 2008/12/01 02:01 # 답글

    제목만 보고는 혹시 여자친구에게 쓰는 글이 아닌가 했는데 반전이었군요.
    눈물 왈칵 쏟을 뻔 했습니다.역시 감동이 있는 글이네요. 야심한 시간에 읽기에는 더욱 그렇고요.
  • GATO 2008/12/01 02:12 # 답글

    오지옹의 Mama I'm Coming Home이 갑자기 듣고싶은 밤이네열....
    어머니! 항상 건강하세요~ ^^/
  • 2008/12/01 04:1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8/12/01 07:51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재밍 2008/12/01 11:01 # 삭제 답글

    공감하는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지라 눈물이 찡하네요...
    전 그만한 책임과 의무는 커녕 노력과 고생도 부족했던 것 같아 더 후회가 남습니다.

    어머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헤비스 2008/12/01 11:24 # 삭제 답글

    그러게요. 가정사를 글로 풀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것 또한 가족인거죠. 뭐
  • 무곡 2008/12/01 11:28 # 답글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들의 슈퍼히어로죠...
    부끄럽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
  • 2008/12/01 11:4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SJ 2008/12/01 13:09 # 삭제 답글

    이세상의 모든 현주씨를 위하여, 그녀들의 빛나는 인생을 위하여. 나의 봉순씨,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 박지원 2008/12/01 13:45 # 삭제 답글

    ... 나도 엄마 사랑해...
  • .. 2008/12/01 14:17 # 삭제 답글

    /토닥토닥.
  • 2008/12/01 14:33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쩌비 2008/12/01 15:43 # 답글

    저도 엄마를 사랑합니다.
  • 2008/12/01 16:3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제피 2008/12/01 17:32 # 답글

    엄마 많이 사랑해드리세요. 질리지 않더라구요. 질릴 수가 없더라구요.
  • 변태키티 2008/12/01 17:55 # 삭제 답글

    엄마한테 늘 미안한 마음만.....ㅜㅜ
  • 모다 2008/12/01 22:33 # 삭제 답글

    우리 영숙씌..내가 잘해야 하는데..ㅠㅠ
    나이 먹으면 딸은 엄마와 친구가 되고 아들은 엄마의 남편이 된다고 하더라고요..ㅠㅠ
    지웅님이 현주씨의 좋은 남편이 돼주시면 돼요.
    저도 엄마의 좋은 친구가 돼야겠어요.
  • 2008/12/02 00:22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애청자 2008/12/02 01:27 # 삭제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 주는 사람이 정말로 드문 요즘에,
    단비같은 글이네요. 자기를 드러내 보여주는 사람이 제일 고마운 것 같아요.

    아. 이런 아름다운 글에 이런 댓글 달려니 좀.. 망설여집니다만...
    지웅님께서 혹시 미래의 반려자를 찾을 계획이 있으시다면,
    현주님을 모자람없이 사랑하시되, 넘침도 없이 하심이 ....

    효자이며 어머니의 온갖고생과 정성으로 길러진 제 남친은
    여친생기고 아들 변했고, 그건 다 여친때문이라고 생각하실까봐
    고민많이 하더라구요.

    저도, 엄마를 도와야한다는 강박속에 살아왔는데,
    이미 집떠나 오래 살아와버린 지금에 와서는, 내가 엄마를 잘 모른다는 충격도 간간히 받고,
    빠져 죽지않고 나 하나 건사하며 살아내는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이 들더군요.

    그저.. 이런 종류의 사람도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 2008/12/03 17:5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8/12/05 01:00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버들 2008/12/06 11:33 # 답글

    아침부터 마음이 짠합니다. 타지생활하는데 마침 엄마가 지금 또 올라와 계셔서 더욱 그러네요. 언제나 올라오시면 일만 많이 하고 가셔서 더더욱 마음이 짠... 이 추운날에도 빨래를 ㅜㅠ
  • 2008/12/06 21:25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8/12/08 23:14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z_net 2008/12/09 02:52 # 답글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가 생각나네요. (오다기리 조가 주연한 영화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원작인 소설이 더 좋았다는.)미묘한 관계의 부자라던가..
  • 2008/12/30 14:3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운짱 2009/03/25 23:27 # 삭제 답글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다가,,
    다시한번 그걸 느끼고,

    엄마에게 멋진 선물을 하나 보냈습니다.
    그분이 정말 즐길만한 것으로요
  • 열대야 2009/04/03 06:35 # 답글

    으아..고맙습니다.
  • 이 현주 2009/06/09 09:50 # 삭제 답글

    이 현주씨는 남자입니다.

    하하하 이 것 미안하군요.

    그런데 저하고 같으면서도 정 반대의 인생을 살아 오신 것 같군요.
    제 아버님은 모든 것을 지원해 주신 분입니다. 자신의 꿈을 실현 해 주기를 희망하시면서요.

    그런데 저는 제 인생이 있지 않읍니까?
    결국 깨닳은 것은 부모 자식이라고 인생을 바꾸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혼자 살기로 작정했고 처음에는 무척 외로움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쉽고 간편한 삶이라고 아주 만족하고 살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결코 긴 것도 잛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 마음에 않든다고 해서 버릴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밤 하늘에 빛나는 영원한 별빛으로 내 가죽주머니를 채워봅니다.

    ^^
  • 돼지멍멍 2009/07/27 00:53 # 답글

    제얘긴줄알고 조금 놀랐습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부모는.. 글쎄요. 애증의대상이라고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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