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 와일드 토크 ㅣ 강풀은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많이 아파 보인다. 어디가 아픈지 알 것 같지만. 나도 아파본 곳이라.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어디가 아픈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기사에 쓰면 안 돼.
마음이 아프다.
나도 아프다.
며칠 전 <이웃사람> 연재가 끝났다. 연재가 끝나면 언제나 그렇게 아픈가.
연재 끝날 때 즈음이면 늘 녹초가 된다. 스트레스가 많다. 몸이 만신창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 많이 안 좋다. 원래 연재 끝나면 늘 여행을 갔는데 이번에는 병원에나 가야겠다.
몸이 그래서 어디 영화는 봤을까 싶다.
영화사에서 DVD를 보내줘서 어저께 간신히 봤다.
어떻든가.
내가 이미 두 번의 실패를 맛보지 않았나.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원작을 잘 영화화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파트>는 너무 달랐고, <바보>는 너무 똑같았지. 감이 안 온다. 아유 어려워. 워낙에 시선 자체가 객관적이지도 못하고 말이다.
엄밀히 말해 그게 ‘강풀의 실패’는 아니다.
그래도 정서적인 채무감이랄까. 그런 게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튼 <순정만화>는 무척 즐겁게 봤다. 굉장히 예쁜 영화다. 내용이 좀 많이 바뀌었다. 몰랐었는데 류장하 감독이 시나리오를 굉장히 잘 쓰는 사람이더라.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에도 참여했고 말이다. 일단 많이 믿고 간 부분이 크다. 음. 요즘 멜로영화라는 게 우울한 컨셉이 많지 않나. 그런데 이 영화는 경쾌한 면도 많고 여러모로 무게점을 잘 잡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예상을 해본다면.
요번에는 좀 장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랄까(웃음).

원작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란 무엇일까.
나는 좀 방관하는 게 제일 맞는다고 본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결국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내가 괜히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웃기고. 뭐, 각본에 참여하지 않는 이상 원작자의 역할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맞다.
그래도 <바보>때는 영화흥행을 위해 굉장히 많은 일을 했던데. 관련해서 따로 만화도 그리고 홍보도 열심히 하고.
그 팀과는 너무 친했다. 인간적으로 너무 친해서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이다. 촬영 현장에도 자주 놀러갔었다. 앞으로도 그럴지는 모르겠다. 사실 거기 가서 원작자가 할 일이 없어. 그냥 이방인 같고.
<순정만화>가 첫 번째 장편 만화였다.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무래도 객관화가 됐을 텐데.
2002년 10월에 연재했으니까 햇수로는 7년 됐다. 확실히 객관화되는 게 있는 것 같아. 이를테면 <순정만화>를 책으로 엮어 냈는데 지금도 읽다보면 낯부끄러울 때가 많더라고.
어떨 때 부끄럽던가.
아니 내가 이런 대사를 썼다니, 뭐 이런 거지. 너무 유치해서. 그래서 영화화 작업에 걱정을 많이 했다. 자칫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만들어질까봐. 결과적으로는 류장하 감독이 무게 중심을 잘 잡아준 것 같다. 영화 보고 한시름 놓았다.
그린 만화의 판권이 전부 팔렸다.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 만화가 옮겨지고 있다. 다른 분야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는 않던가.
예전에는 만화를 위한 글 외에는 쓰지도 않겠다는 식이었다. 만화나 잘 그리자, 그랬지. 그런데 요즘은 다른 분야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괴물 2> 시나리오도 써봤으니 다른 창작 시나리오도 써보고 싶고. 얼마 전에는 연극 <순정만화> 1000회 공연을 갔었는데 무대라는 그 한정된 공간이 너무 매력적인 거라. 연극연출이 너무 해보고 싶어졌지 뭐야. 귀신 나오는 공포연극을 해보고 싶다.
호러물을 좋아하나.
나 귀신 이야기 되게 좋아한다.
강풀 작가의 만화가 여러 장르를 오가기는 하지만, 정작 제일 재미있게 보게 되는 건 호러, 스릴러 장르일 때인 것 같다. 물론 이건 내 취향 탓이기도 하지만.
귀신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 있나? MT를 가도 밤이면 귀신 이야기 늘 하잖아. 다들 좋아하고. 재미있는 건 무엇이든 좋다. 내가 순정 한 번 하고 멜로하고 호러하고 그렇게 번갈아가면서 했잖아. <26년>은 좀 드문 케이스였고. 그게 다 내가 지루해져서 자꾸 다른 걸 하게 되는 거다. 머리 복잡한 거 말고, 재미있는 거면 무엇이든 좋다.
<순정만화>에 강숙이라는 캐릭터가 있지 않나. 그 아이가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데, 그거 본인 이야기 아닌가.
내 별명이 강도였으니까.
강도?
이름이 강도영이라. 평생동안 별명이 거의 바뀐 적이 없어, 대개 강도였다(웃음).
그러고보니 강풀이라는 필명의 유래가 궁금하다.
아, 그건 학교 다닐 때 별명이었다. 지방대학교를 다니면서 자취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친구들이 강풀, 강풀 그러더라. 옷이 다 풀색이라는 거야.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더라. 혼자 살다보니 그냥 덜 더러워지는 색의 옷을 입고 다닌 건데 그게 전부 풀색이었던 거지. 그래서 당시에 아이디도 강풀이라고 지었고.
확실히 강도, 보다는 어감이 좋다. ‘강도 작가’는 좀.
나중에 꿰맞춰보니깐 ‘강철풀잎’ 준말 같기도 해서 더 좋아졌다.
오늘은 왜 검은색 옷인가.
결혼했으니까. 언제까지 그렇게 칙칙하게 살아.
이건 여담이지만, 아까 보니까 부인께서 너무너무 미인이십니다.
동의합니다.
나이가.
7살 차이난다. 내가 졸업하던 해 우리 학과 신입생이었다. 내가 원래 누구한테 연락을 잘 못하고 다니는 성격인데 이 친구하고는 유일하게 연락을 트고 살았었다.
결국 미인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나는 공부를 못해서 그 학교 갔지만 아내는 공부를 잘해서 수석으로 들어왔었다. 그런데 등록금 낼 형편이 안 돼서 학교 다니면서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더라고. 그런 부분에서 동질감을 많이 느꼈었다. 그렇게 계속 친한 오빠동생으로 지내다가 4년 전에 눈이 맞아서 이렇게.
작품들을 보면 저 거구에서 어찌 이런 이야기가 나올까, 싶을 정도의 애틋한 부분이 자주 발견된다. 그런 소재들은 본인 주변에서 많이 찾는 건가.
내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들어간 건 없다. 나는 가정환경이 굉장히 좋았다. 지금도 좋고. 아버지가 목사이신데, 경제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행복했다는 기억이다. 늘 사랑받고 자랐고 지금도 아내에게 사랑받고 살고. 그러다보니 정이라는 것에 굶주려본 일이 거의 없다. 그런 마음이 만화 속에 나타나는 것 같다.
기독교인인가.
당연하지, 아버지가 목사이신데.
사실 한국의 주류 대형교회에 대한 악감정이 많다.
그런데 욕먹어도 싸다. 모든 교회가 나쁜 건 아니지만 대형 교회쪽 사람들 보면 저게 기독교인인지 사탄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많다. 정작 하느님께선 사랑을 말씀하시는데 이 사람들은 배타를 주장한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게 부끄러울 때가 많다. 가족 자랑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성직자란 그런 것이구나, 느낄 때가 많았지.
이틀 전인가, 뉴스 보니까 이근안씨가 목사가 되셨더라.
나도 뉴스 봤다. 그거 진짜. 휴. 그분이 진짜 회개하고 이게 모두 주님 뜻이라면 이걸 정말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이런 고문 기술자를 받아들인다는 게. 뉴스보자마자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떠오르더라. 누가 저 사람을 용서했나. 하느님이 통이 크긴 정말 더럽게 크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심정이 아주 복잡했다.

아까 잠시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괴물 2>쪽 이야기는 들은 게 있나.
시나리오 넘기고 그 뒤는 모른다. 청계천을 다룬 거라 내용이 좀... 사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있긴 한데. 기사에는 쓰지 말아 달라.
<29년>도 있는데 뭘 그러나.
<29년>도 내가 보기에는, 음, 잘 모르겠어. 어쨌든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외부로부터의 압력이나 영향은 없습니다. 아시겠지요? 이따 인터뷰 끝나면 이야기하자.
벌써 두 편이 다 노코멘트다. 진보성향의 작가로 분류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나. 그것도 요즘 같은 세상에.
일단 기본적으로, 나는 진보가 아니다. 진보가 아닌데 지금 이 나라 보수가 너무 개보수이다 보니까 나를 진보로 보는 것이다. 심지어 나를 좌빨이라고까지 한다. 이게 말이 되냐고. 요즘 들어 “국민들이 자기 수준에 딱 맞는 대통령을 뽑았다”는 말에 자꾸 공감이 간다.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어.
그럼 영화와 무관하게. 광우병 관련해서 만화를 그리거나 하는 일도 있지 않았나. 그런 때는 주위에서 압력이 있었나.
<26년> 그릴 때는 조금 있었다. 이상한 전화가 오는 거야. 전화해서 대뜸 “야 너 지금 석촌호수로 나와” 이러고. 아니 내가 거길 왜 나가 한 밤 중에(웃음). 메일도 이상한 게 많이 온다. 열 손가락을 작두로 잘라버리겠다는 메일도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작업실 전화기 선을 빼버렸다. 홈페이지 올라가 있던 메일 주소도 다 없애고. 그랬더니 이후로는 압력이 있을 수 없지. 뭐 어디로 압력을 주겠어.
예술가가 정치색을 띠는 게 나쁜 걸까.
아니. 안 나쁜 것 같다. 전혀 나쁘지 않은데, 단 내 의도가 과장되거나 왜곡돼서 보인다면 그건 좀 문제인 것 같아. 예를 들어 대선 때 내가 “젊은층이여, 투표를 하자”는 만화를 그리잖아? 그럼 사람들이 그걸 한나라당 욕하는 걸로 듣는다니까.
강풀 만화를 영화로 만들면 왜 흥행이 안 될까. 대중에게 검증된 작품이라는 셈으로 판권을 사가는 것일텐데.
일단 생각하기에 내 작품이 원 소스 멀티 유즈가 가능한 이유는 스토리텔링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판권을 사가는 쪽에서는 내 작품이 확실히 검증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만화가 100만 찍었으니까 영화로 만들면 뭐 어느 정도는 당연히 들겠지, 이렇게 말이야. 그런데 매체가 바뀌는 데 대한 고민이 좀 없는 것 같더라. 처음 사갈 때는 좋다고 한다. 그런데 작업 중반 때즈음 되면 자꾸 전화해. “뭐 이래, 어려워” 이런다고(웃음).
강풀만화의 서사는 일반적이지 않다. 단순히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시각화한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뭐랄까. 스크롤의 서사라고 할까. 마우스 스크롤과 접목된 서사가 가능하다는 게 파격이었다. 온라인 만화의 정체성이 거기서 나왔다고 본다. 요는 그 매력이 다른 매체로 옮겨가면서 어떤 식으로 구현되느냐다. 그 부분에 대한 고민들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그렇지. 나도 스크롤에 맞게 연출한 것이고 그게 영화나 드라마, 연극으로 옮겨갈 때 어떤 식으로 연출될지 늘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 그런데 사실 내가 고민해야할 몫은 아닌 것 같고. 나는 업데이트 제 때 못하는 작가로 소문나서 그거 챙기는 것 만으로도 정신이 없다. 만화에 덧글이 5000개 달리면 2000개가 욕이야. 언제 올라오냐고(웃음).
미디어 다음과 계속 같이 가는 이유가 따로 있나?
‘여기가 내 고향이다’식의 생각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제일 상식적인 곳이라는 것 때문이다. 물론 다른 곳에서 유혹이 많았다. 고료를 몇 배 더 주겠다고도 했다. 그래도 안 갔다.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작가라는 게 감독도 마찬가지겠지만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백수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늘 약자라는 마음을 품게 되는데 미디어 다음과 일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다못해 계약서를 봐도 갑이 나고 을이 미디어 다음이더라고. 물론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동등하게 대해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심지어 미디어 다음과는 계약서 안 쓰고 일한지 오래됐다.
하지만 강풀 작가나 강도하 작가 등, 지금의 ‘미디어 다음 만화 속 세상‘을 있게 만든 소수의 작가를 제외하면 굉장히 적은 고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건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사실 지금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후배작가들이 고료를 제대로 못 받고 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내 몸값을 올린 적도 있다. 그렇게 올리면 온라인 만화 고료가 전반적으로 올라갈 줄 알았지. 그런데 나만 올라갔다. 이걸 개인의 문제로만 봐야 하는 건지 시스템의 문제로 봐야 하는 건지 정말 고민이다. 후배들과 함께 총파업이라도 해야하는 건지. 그런 생각도 안 해본 게 아니다.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영웅이 필요한 걸까.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 영웅이 나오면 시스템이 바뀐다. 그런데 결국에는 영웅을 위한 시스템이 될 뿐 모든 사람을 위한 시스템이 되는 건 아니더라. 역사가 증명하지 않나. 하지만 그렇다고 영웅의 필요성을 아예 부정하기도 어려운 것 같고.
내가 나서서 후배들 고료 올려주세요, 이러는 것도 참 웃긴 거지. 나도 서른다섯 밖에 안 됐는데 후배 운운하며 챙기는 것도 옆에서 보기에 웃길 수 있고. 후배작가들 스스로 뭔가 움직이면서 우리들에게 도와 달라, 주문하면 좋겠는데. 이게 좀 서운하다. 우리가 먼저 일어나서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후배작가들도 많은 것 같아. 일단은 작가들에게 온당한 발언권이 주어지는 게 중요하다. 그 부분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모든 게 너무 느려. 온라인 만화라는 게 기존에 없던 것이고, 지금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 중에 부작용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단순히 과정상의 문제로 보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제는 뭔가 제도적으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때다. 허지웅 (프리미어 '와일드 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