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의 키노키)
[정지된 법인카드에 대처하는 본드의 자세 ㅣ 007 퀀텀 오브 솔라스]
007 제임스 본드의 최고 무기는 애스턴 마틴도, 미소도, 발차기도 아닌 막대한 자본력이었다. 그런 그의 법인카드가 막혔다나 어쨌다나.
놀랄 일이 없다. 요즘 같아선. 이를테면 서울 메트로는 며칠 전 “지하철 환풍구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해 연간 77억원어치의 발전을 하겠다”는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이건 뭐여. 발전기 설치로 인해 새로 추가되는 저항만큼 지하철 운행에 더 많은 전기 에너지가 소요될텐데. 아니 이것은 흡사 달리는 버스 바퀴에 발전기를 달아 그 동력으로 버스를 달리게 하겠다는 이야기란 말인가. 30세기형 과학논리로 국민 세금 300억원을 똥과 바꾸려 했던 서울 메트로는 결국 학계와 네티즌들로부터 30세기까지 충분히 살아남고도 남을 만큼 많은 욕을 들어먹어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놀라지 않았다. 국민요정 대통령이 “오바마와 나는 유사하다”고 말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순한 양 한 마리로서, 이 판국에 새삼 반색할 일 따윈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정도라면. 나는 조금 놀랐다. 오바마가 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던 바로 그 날, 본드의 법인카드가 정지된 것이다. 매달 25일 회사 법인카드 정산에 소홀함을 몰랐던 상계 2동의 어느 선량한 주민 박본드 이야기가 아니고. 그래, 그 제임스 본드. 007. 살인면허. 바로 이날 개봉한 제임스 본드의 새 영화 속에서. 정지됐다. 그의 법인카드가. 아니 정말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지금 이 시간 지구의 세계 경제란.

007 제임스 본드의 통산 스물 두 번 째 난잡 사생활 프랜차이즈 <퀀텀 오브 솔라스>는 007 시리즈의 속편이라기보다 <카지노 로얄>의 속편으로 보는 게 더 온당하다. 시리즈 최초로 바로 전 편의 수 시간 뒤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그렇고(이 시리즈는 매번 독립된 내용으로 열리고, 닫혔다), 제임스 본드보다 제이슨 본에 더 가까워 보이는 다니엘 크레이그판 007의 연장이라는 맥락이 또한 그렇다. 여차하면 007 제임스 본드의 탄생을 다룬 2부작 프리퀄로 보는 게 더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다니엘 크레이그판 제임스 본드를 무척 좋아한다. 전 편 <카지노 로얄>의 첫 번째 액션 시퀀스에서 본드가 맨 몸으로 벽을 뚫고 지나가는 순간부터 그랬다. 카드판에서 타짜마냥 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덤탱이 잔뜩 쓰고 아이고 그거 되게 아깝고 이해 안 된다는 아귀적 표정을 드러냈을 때부터 그랬다. 와우. 맨이야 맨. 거의 짐승 같아 보이는 주먹코 본드의 저돌성은 이 시리즈의 느끼한 뒷맛을 훌륭히 상쇄해줄만한 것이었다.
영화는 전편의 엔딩으로부터 한 시간 이후 시점을 그리며 시작된다. 본드는 잘 빠진 애스턴 마틴 트렁크에 미스터 화이트를 싣고 M과의 접선을 위해 향하는 중이다. 물론, 뒤쫓는 자들이 있다. 20만 발의 공포탄이 소요된 이 자동차 격추 시퀀스부터 <퀀텀 오브 솔라스>는 관객의 기를 잔뜩 졸여놓는다. 터지고 깨지고 부서지고 날아가는 난장 끝에 M과의 접선에 성공하지만, 정작 미스터 화이트는 조직의 힘을 빌어 탈출에 성공한다. 본드는 MI6 내부에조차 스파이를 심어둘 정도로 막강하다는 그 아무개 조직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떠난다. 그러나 M은 본드가 아무래도 미덥지 않다. 임무 수행이 목적이 아니라, 연인 베스퍼의 복수를 위해 그러는 것 같으니까. 아니 용의자들은 왜 그렇게 자꾸 죽여 대는 거야.
한 편 조직의 정체를 탐색하던 본드는 조직의 이름이 ‘퀀텀’이라는 것과 그 수뇌부에 도미닉 그린이라는 자가 있음을 알아낸다. 도미닉 그린은 볼리비아의 쿠데타를 돕고 있는 중이다. 물론 목적은 돈이다. 볼리비아 사막 한가운데 매장된 어떤 자원의 독점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자원이 당연히 석유일 것이라 생각하는 열강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앞 다투어 도미닉 그린의 사업에 동참한다. 각 열강의 강력한 정치 실세들이 모두 퀀텀의 조직원임을 확인한 제임스 본드는, 이 일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문제임을 깨닫는다. 물론 이 열강들의 리스트에는 영국도 끼어있다. 문제가 안 될 수 있겠어. 제임스 본드는 살인면허마저 몰수당하고 거꾸로 MI6와 CIA, 그리고 퀀텀을 모두 적으로 돌리게 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퀀텀 오브 솔라스>의 폭력성은 시리즈 전편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007 시리즈의 DNA이기도 했던(특히 로저 무어판 제임스 본드의) 웃음기를 좀체 찾아볼 수 없는 터라 실제 느껴지는 폭력의 강도는 꽤 강한 편이다.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라스>의 액션 구성은 너무나 확연하게도 제이슨 본 시리즈의 영향 아래 위치해 있다. 지붕을 넘나들다 말고 협소한 공간에서 생활 가전을 이용해 벌이는 육탄전은 <본 슈프리머시>나 <본 얼티메이텀>의 장면들을 거듭 환기시킨다. 본 시리즈 이후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팔 걷어붙이고 스카우트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진 댄 브래들리(스턴트 코디네이터)의 참여 탓일 수 있다. 구태의연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반기를 든 것이 제이슨 본 시리즈였다면, 이제는 거꾸로 제이슨 본 시리즈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뭐,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퀀텀 오브 솔라스>은 언뜻 새로워보여도 완전히 새로운 제임스 본드 텍스트는 아니다. 제임스 본드가 사적 복수를 위해 MI6를 이탈한 건 처음이 아니다. 티모시 달튼의 <살인면허>에서도 그랬다. 더불어 도미닉 그린 또한 007 세계 속 악당의 전형성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빨갱이 빼면 이야기가 안 되는 이안 플레밍의 원작들과 달리, 007영화의 악당들은 대개 이념과 국적을 초월한 조직의 수장이었다(이 영화 속의 ‘퀀텀’은 여러모로 ‘스펙터’를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도미닉 그린은 블로펠드가 되기에 카리스마가 너무 약하지만).
정작 <퀀텀 오브 솔라스>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달라진 세계관 안에서 발견된다. 도미닉 그린을 위협적인 상대로 만들고 악당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하는 권력이란 배후의 열강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본드는 바로 그 열강들에 맞서야 한다. 심지어 모국으로부터 버림받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강대국이 권력의 연장과 유지를 위해 다른 나라를 착취하는 풍경이란 스크린 밖이든 안이든 조금도 새롭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007 영화 속의 풍경이라면 새로운 것이 된다. <퀀텀 오브 솔라스>의 진짜 악당은 열강들의 국가이익으로 대변되는 자본, 바로 그 자체다.
제임스 본드의 온 몸을 감고 있는 롤렉스(지금은 오메가지만)와 번쩍거리는 슈트, 말끔하게 빗어 올린 앞머리와 에스턴 마틴은 그가 서방 자본주의 세계의 우월함을 상징하는 첨병임을 알리는 기호들이었다. 당연히, 007의 가장 강력한 무기도 언제나 자본력이었다. 나는 늘 제임스 본드의 법인카드를 갖고 싶었다. 회사카드로 하루에도 몇 번씩 대륙을 넘나들고 여자랑 모텔, 아니 호텔도 가고 마티니도 실컷 마시고 간지도 내니 그보다 더 부러울 순 없다. 그거 정산은 누가 하나. 영수증 지참은 안 하나. 내역에는 ‘정보 교환차 본드걸과 강변 호텔에서 미팅’이라 적는단 말이냐. 그런데 왜 이 자식아 긴 밤 끊었어.

응?
그런 제임스 본드의 법인카드가 끊기는 꼴을 보고 있자니 여러모로 복잡해졌다. 자본주의 세계의 구성원이 자본권력에 대항하면, 그는 자본을 잃게 된다. 돈 없는 본드라면 돼지 본드보다 나을 게 뭐란 말인가. 법인카드 정지되고도 “드레스가 없어서 오늘 밤 파티는 못 가는데”라는 침대 위 여자에게 걱정 마, 그것 참 의연하게 대답하는 본드를 바라보며, 나는 거의 동물적으로 지마켓 당일배송을 떠올렸다. 어쩌면 본드도 그랬을지 모른다. 지갑은 얇아도 그냥 포커 페이스. 포커 페이스. 나는 본드, 제임스 본드니까.
물론 그렇다고 <퀀텀 오브 솔라스>가 제임스 본드의 각성과 전향을 다룬다는 건 아니다. 여보세요, 이건 어디까지나 007영화랍니다. 도미닉 그린의 배후에 열강이 있든 없든, 그들이 얼마나 저열하든 훌륭하든, 그 끝은 원상태로의 복원일 수밖에 없다. 영화의 결말은 ‘기존 질서의 회복’으로 봉합된다. 오히려 도미닉 그린에게 사기를 당할 뻔한 열강들의 국가 이익을 수호한 셈이다. 마크 포스터의 프랜차이징은 흥미롭되 괜히 심란한 것이었다. 차라리 마틴 캠벨의 막무가내식 본드가 그립다. 시위하듯 악을 품었다가 끝내 질서 안에 안착해버리고 마는 열혈남아를 좋아하기에, 지금 우리는 너무 지쳐있다. 글_ 허지웅 일러스트_ 장재훈 (프리미어 '허지웅의 키노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