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 홍당무] 거울도 안 보는 여자

[허지웅의 키노키ㅣ미쓰 홍당무, 거울도 안 보는 여자]

일찍이 사랑은 아무나 하냐고, 어느 누가 쉽다 했냐며 부르짖었던 사랑의 전문가 태진아 선생은 거울도 안 보는 여자란 외로운 여자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수수한 너의 옷차림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 밤 나하고 우우 우우 우우우우 사랑할 거야, 라는 걸 보니 그녀는 필시 거울을 안 봐도 될 만큼 예뻤던 모양이다. 사랑 찾아 헤매 도는 쓸쓸한 여자가 예쁘기까지 하다니. 이건 흡사 외로운 게 아니라 쉬워보였던 게 아닌가. 우우 우우 우우우우.

양미숙은 어떤가. 외롭기로 따져 대한민국 둘째가라면 서러울 양미숙은, 거울을 본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본다. 피부에 좋다하니 닭발도 고구마도 석류즙도 챙겨먹는다. 시간 날 땐 틈틈이 좌욕마저 한다. 이건 양미숙이 못 생겼기 때문일까. 취향의 차이일 수 있겠지만 나는 양미숙이 못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울도 안 보는 여자와 양미숙 사이에는 단지 예쁘고 안 예쁘고의 문제보다 좀 더 예민한 온도차가 존재한다. 양미숙도 거울 안 보고 싶지. 그렇게 여유롭게 옷깃 치켜세워 나 외롭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가 있나. 양미숙은 화장할 수 없는 사람이거든. 화장해봤자 별 볼일 없이 못 생겼다는 게 아니라, 화장으로 감출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거울이라도 열심히 들여다보며 화장술 아닌 자기 개발에 열심일 수밖에. 요컨대, 양미숙은 자신이 아닌 그 무엇인가를, 속내와 다른 외양을 가장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고요? 간단합니다. 그녀는 안면 홍조증이거든요.


<미쓰 홍당무>는 왕따 양미숙(공효진)의 이야기다. 영화는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는 버려, 우리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해 -양미숙‘이라는 문구와 함께 시작된다. 양미숙은 평소 얼굴이 늘 붉은데다 감정의 기복에 따라 더욱 시뻘게져 버리는 안면 홍조증을 앓고 있다. 학창 시절 늘상 따돌림에 시달렸다. 거의 유일하게 챙겨주는 건 담임교사 서종철(이종혁) 뿐이다. 그를 향한 마음 탓이었을까. 10년 후, 양미숙은 서종철과 같은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재직 중이다. 서종철을 향한 마음은 주체할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지, 지, 지난해 학교 회식 때 서종철이 옆에 앉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좁디좁은 티코 안에서 옆 좌석에 앉았던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내 옆에 앉다니. 서 선생님은 날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 좋아하면서 말 못해 속 태우고 있는 거야. 아무렴.

그런데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모두가 좋아하는 미모의 이유리(황우슬혜) 선생이다. 서종철 선생과 연락을 주고받는 걸 보니 아무래도 둘 사이 정분이 난 것 같더란 말이지. 미숙과 같은 러시아어를 가르치는데 심지어 학교 사정으로 이유리만 남고 양미숙은 중학교 영어 교사로 발령 나고야 만다. 우리 영어 선생은 새벽에 영어 학원 다닌데, 라는 손가락질을 고스란히 감수하며, 양미숙은 오늘도 이빨을 간다. 내가 잘 못나가는 건 전부 이유리 때문이다!

그런 양미숙의 마음 마냥 이유리를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전교 왕따면서 서종철의 딸인 서종희(서우)다. 이유리와 서종혁이 맺어지면 아빠가 엄마(방은진)와 이혼할까봐 두렵고 짜증난다. 양미숙은 자신이 서종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감추고 서종희와 의기투합하기에 이른다. 짜고 치는 고스톱 한 판. 쉽게는 감시부터 명의도용에 이르기까지 갖은 수단이 동원된다. 그러나 서종철의 마음까지 얻어내려는 양미숙의 욕망과 서종희 사이 동맹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체 왕따 둘이서 뭘 해보이겠다는 거야.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는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함께 올 한해 가장 놀라운 데뷔작으로 기억될만한 영화다. 내내 재치 있되 캐릭터 개개인에 고루 사려 깊은, 보기 드문 순발력으로 충만하다. 영화가 끝나고 홍당무 양미숙에 연민이든 사랑이든 따뜻한 감정을 품지 않고 극장을 나서기란 좀체 불가능하다. 미래의 양미숙이 좀 더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이길 손 모아 고대하게 될 만큼. 그렇게 끝내 마음이 가고야 마는 것이다. 영화 다 보고 이런 대화 나눈 사람들 적지 않을 테다. 그래서, 양미숙은 잘 살았을까? 잘 살았겠지. 잘 살았으면 좋겠어.

<미쓰 홍당무>는 기본적으로 캐릭터 영화다. 미리 규정된 서사의 룰이 별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 종류의 영화다. 상대적으로 장르 영화는 관객의 접근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장르 영화의 관객은 이야기의 양상과 구조를 미리 짐작한다. 그리고 예측선 안에서 전복과 배반의 쾌락을 즐긴다. 신인 감독이 장르 영화가 아닌 다른 선택으로서 재능을 증명하고 관심을 호소하기란 쉽지 않다. 내세울만한 자산이 불비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경미 감독은 놀라운 감수성과 재치, 그리고 반복해서 관람하면 할수록 눈에 더 들어오는 복선과 장치들로 함량 높은 대중영화를 완성해냈다. 박장대소 키득대며 보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을 발견해 쓸쓸해지고, 그래서 양미숙의 내일에 사적인 기대감을 얹어 발을 구르게 되는 것이다. 단지 작은 영화의 힘, 여성 감독의 상상력이라는 식의 수사적 평가로 얼핏 상찬하고 지나갈 결과물이 아니라는 심정이다. <미쓰 홍당무>는 새로운 재능의 발견이다. 동시에 세심하게 설정되고 다듬어진 캐릭터가 영화의 완성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보여주는, 오래 기억될 사례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양미숙의 뜨거움이 그렇게 좋았다. <미쓰 홍당무>의 연출은 차갑고 냉정하다. 이경미 감독은 누군가의 감정을 온전히 화면 안에 꽉 채워 보여줄 생각이 없다. 울컥 할 만하면 호흡을 자르고 숏을 확장한다. 연극적인 요소를 가져와 극과 관객을 분리시킨다. 방조하게 만든다. 내려다보게 만든다. 반면 그 안의 인물들은 대단히 뜨거운 체온을 가지고 있다. 뜨겁다는 것은 예측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노력한다는 것이다. 특히 양미숙은 대단히 뜨겁다. 멋지고 그럴싸한 뜨거움이 아니다. 찌질하고 못 생긴 뜨거움이다. 그럼에도 양미숙은 그걸 감출 생각이, 아니 그럴 능력이 없다. 안면 홍조증이란 양미숙의 질병은 상징에 가깝다. 속내를 감추거나 가장할 수 없으니, 감정이고 욕망이고 모두 솔직하게 드러내버린다. 단지 드러내는 것에서 멈추어 서는 것도 아니다. 양미숙의 희소성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데서 기인한다.

이 노력한다는 행위 자체가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모두가 쿨하고 싶어 한다. 이 나라가 쿨 에너지로 움직인다고 역설하는 학자도 있었다. 속내를 그럴싸하게 감춰 태연하고 냉정하게 행동할수록 사회물 잘 먹은 어른이라 평가받는 세상이다. 꽁꽁 싸매 잘 감추고 짙은 화장술로 덮어낼수록 그(녀)의 시장가치는 상한가를 친다.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평가 절하된다. 누군가의 절박함은 한줌의 실소로 무마되기 일쑤다. 이 안에서 “아이고 난 내가 창피해”라고 솔직하게 칭얼거렸을 때, 사랑받고 싶어서 노골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 광경은 하나의 파격이 된다. 양미숙이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그런 환기와 파격을 끊임없이 안겨준다. 우리가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이 환기는 웃음으로 호감으로 이어진다.

물론 민폐일 수 있다. 솔직함을 가장한 객관적 폭력 따위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널려있다. 하지만 양미숙의 뜨거움은 다르다. 그녀의 체온은 타인의 도덕적 당위를 자극하거나 노력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제 스스로 뜨거울 뿐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영화 속, 언제나 수족처럼 핸드폰을 품고 있던 양미숙은 끝에 이르러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소통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지를 접는 건 아니다. 대신 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또 그래 또 그래. 양미숙처럼 살자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귀하게 여길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진짜 외로운 사람은, 거울을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글_ 허지웅 일러스트_장재훈 (프리미어 '허지웅의 키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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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쓰 홍당무' 본격 캐릭터 열전 무비 2008/10/28 19:40 #

    여태 보아왔던 코미디 영화의 전형이 아니다. 그래서 문제이다. 얼마나 관객을 납득시키고, 이해시킬 수 있느냐가 흥행의 관건이 되겠다. 여타 코미디 영화에서도 독특하고, 범상한 캐릭터는 등장했었다. 하지만,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은 단순히 익살스러운 웃음의 코드가 아니다. 얼필, 처연해 보이기까지 하고, 그녀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이렇게 못된 년도 또 없다. 아무튼 본격 왕따 민폐 캐릭터라 보면 무방하다. 이런 캐릭터의 범상함은 비단, 양미숙만...... more

  • 미쓰 홍당무 2008/10/29 09:15 #

    이 감독은 신경이 참 질긴 사람이다. 엔간해서는 뒤도 돌아보기 싫은 캐릭터를 가지고 영화 한편을 떡 꾸려냈는데, 자기가 건진 캐릭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덜 떨어졌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도록 이끌어준다. 그 점이 대단하다. 상황보다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이 천천히 도태되어가는 게 이른바 사회생활에 적응한다는 말의 실체쯤 되겠지만, 생각해보면 어릴 때건 컸을 때건 저랬던 적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겠기에 미친듯이 웃고 나...... more

덧글

  • 앨리스 2008/10/28 20:21 # 답글

    사람이 비 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거에요.설마. 그 사람도 사람인데”
    깔깔대고 보긴 했는데 마냥 웃을수만은 없더군요. 공감과 조소의 공존이라니.
    왕따와 인간소외에 관한 웰메이드 영화였어요 헌데 영화 끝나고 공효진 너무 못생겼다 영화 좆같다 길길이 날뛰는 새끼가 있던데 병신아 공효진이 너보면 토해 하고싶;
  • 허지웅마누라 2008/10/28 21:08 # 삭제 답글

    쟈-지-까-까-?
    쟈-지-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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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치하이커 2008/10/28 21:52 # 답글

    ↑ 푸하하
    거기서 웃겨 죽을 뻔.

    아, 덕분에 그 엄마가 방은진이란 걸 알았습니다. (__)
  • 2008/10/28 22:25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마다 2008/10/28 23:20 # 삭제 답글

    몇 번 되씹어 우물거리며 읽어볼만한 문장들이 많네요.


    재미있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realK 2008/10/28 23:21 # 삭제 답글

    저도 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좋은 글 고마워요.
  • 똘레랑스 2008/10/28 23:33 # 삭제 답글

    공감 90%요
  • 베리배드씽 2008/10/29 01:29 # 답글

    사실 이 영화에서는 양미숙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인물이 '삽질'을 하죠. 양미숙의 무모하고 대책없는 삽질-노력이 다른 이들의 삽질을 유도하고 증폭시키지만 그 과정에서 모두가, 어쨌든, 양미숙 때문에 제자리를 찾고 행복해져서 좋았아요. 온전히 공감하기도 그렇고, 막상 거리를 두기엔 같잖은 양심에 걸리는 캐릭터가 좀 뜨악하기도 했지만...저도 양미숙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생산성 있는 목표 달성을 위해 일로매진하는 노력이 아니라, 감정의 표출 자체가 우선하는 그 노력에 '아주 가끔은' 동참하고 싶어질 것 같아요.
  • cryingkid 2008/10/29 09:17 # 답글

    저도 그 캐릭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점이 대단했고 또 맘에 들었어요.
    트랙백하겠습니다. :)
  • Guerre 2008/10/29 11:10 # 삭제 답글

    글 잘 보았습니다. 볼까 말까 했었는데 꼭 봐야겠네요. ^^;;
    근데 중간에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는데..

    "아무래도 둘 사이 염분이 난 것 같더란 말이지"가 어떤 뜻으로 쓰신 말인가요?
    혹시 정분 혹은 연분을 잘못 쓰신 게 아닌가 해서 여쭤 봅니다.
  • ozzyz 2008/10/29 15:00 #

    감사!
  • . 2008/10/29 15:22 # 삭제 답글

    맞춤법 틀린 부분 또 있습니다. 직접 찾아 보시길.
  • ozzyz 2008/10/29 15:25 #

    야박하긴.
  • . 2008/10/29 16:06 # 삭제 답글

    영화 보는 내내 사랑받고 싶어서 노골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양미숙이 참 부럽더라구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아, 그리고,, 웅이 영화관 너무 아쉬워요. 흑흑흑. -_ㅠ
  • 홍당무 2008/10/29 20:43 # 삭제 답글

    어라 중간에 서종철(이종혁)이 서종철과 이종혁이 섞여서
    서종혁으로 -_-;;

    읽다가 아니 서종혁은 또 누구야 하고 봤어요...

    헷갈려서 그렇게 쓴거 겠죠?
    암튼 요즘 잘 읽고 있어요

    우흣
  • ozzyz 2008/10/29 20:46 #

    일전에는 방송에서 이 영화 이야기하다가 이종혁씨를 이종철이라 했다가 정정하기도;;

    서종혁, 서종철, 이종철, 이종혁 이상하게 헷갈려요. 그냥 머리가 나쁜 걸지도.
  • 홍당무 2008/10/29 20:49 # 삭제

    우와 실시간 답글이다!
    담엔 싸인받아야지 크크크크큭
  • Mayren 2008/10/31 14:01 # 답글

    제가 영화 봤을 때는 '10년전'이 아니라 '4년전'이었지 말입니다. 아니, '10년'은 절대 나올 수 없는 수치.
  • 홍준호 2008/11/03 00:15 # 삭제 답글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이후로 정말 무쟈게 웃었던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쟈지까-까" 장면은 <다찌마와 리>의 '그때 그사람' 액션 장면만큼이나 웃겼거든요.) 야~ 엄청난 대샤랑과 대사빨..

    영화가, '영화에서 패배자라 지칭시킨 이들'의 기분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지 않고, 많은 이들의 야유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들이 연습한 공연을 끝내는 장면은 웃기면서도...그렇게 만들어줘서 참 좋았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좀 더 좋아하게 되는 것도 좋았고요.
  • 까망이 2008/12/16 11:05 # 삭제 답글

    라이타를 러시아어로 찾아본 것은 저뿐인가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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