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 와일드 토크: 강의석] 강의석은 왜
대광고 재학시절 학내 종교자유 투쟁으로 이목을 끌었던 강의석이 이번에는 병역 거부 문제로 수면에 떠올랐다.
덩치가 좋다. 피골이 상접해있는 사진을 주로 많이 본 터라. 많이 못 알아 볼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이 주변에서 사진 찍을 걸 그랬다. 사람들이 알아보면 달려와서 때릴까봐 한강 다리에서 찍기로 했다(웃음).
(웃음) 알아보는 사람 거의 없다.
군대 문제에는 원래 관심이 있었나.
없을 수가 없지. 당장 내가 가야하는 곳이고. 길거리에 침도 안 뱉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원칙주의자였다. 선생님들은 육사가면 잘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고3때 종교 자유화 활동하면서 병역 거부자를 처음 만났다. 인터뷰 자리였는데 마지막 질문이 병역 거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어떤 근거에서.
군대에 대해선 정말 당연하게 가야하는 거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문제라는 것. 일종의 충격을 받았다. 병역 거부자들 보니까 대단히 신념있는 사람들이고,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병역거부를 하는 게 오히려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내일에 쓴 ‘태환아, 너도 군대가’가 문제가 됐다. 원래 고정적으로 칼럼을 쓰는 게 있었던 건가, 아니면 데스크의 기획의도가 있었던 건가.
원래 한 달에 한 번씩 고정적으로 쓴다.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나는 병역거부 담론에 찬성한다. 강의석씨가 기존에 주장해왔던 것들, 이를테면 학내 종교자유화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건 당신이 지금까지 제기해온 이슈들이 진보담론 안에서 전혀 새로운 화두가 아니라는 점이다. 누가 생각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정당한 주제들이다.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문제들인데, 혹시 그런 ‘제기하기 편한’ 화두들 뒤에 숨어 자기 자신을 이슈화하고 상품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3때부터 받아온 의혹이다. 굉장히 옳은 화두들이지. 그런데 옳은 걸 주장하기 어려운 것 역시 현실이다. 사실, 그런 식으로 어필을 하고 영향력을 얻는 게 왜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라고 본다. 뜨고 싶어서 그런 거면 또 어떤가. 기회를 잘만 활용한다면 사회에 담론의 장을 마련하게 되는 거고, 그로 인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고등학교 때와는 또 다르게, 더욱 노골적인 반감에 둘러싸인 건 무엇 때문일까.
군대라는 이슈 때문이기도 하고. 또 내가 종교자유화 투쟁에 나섰을 땐 고등학생이라 순수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병역거부를 인정하자는 것도 아니고 군대를 없애자고 하니 당황스러울 테다. 태환씨를 걸고넘어진 것에 대해서도 올림픽 분위기 탓에 더욱 그렇고.
종교자유화 투쟁 이후 강의석의 행보들 탓에 순수성을 의심받는 것 아니겠나. 제기하기 편한 주제들 뒤에 숨어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생각도 정황만 따져보면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고 보는데.
뒷말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게. 정말 이런 식으로 어필하고 안 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병역거부와 기피를 다르다고 말하는데 사실 군대 가기 싫어서 기피하는 자와 신념 탓에 거부하는 자를 나누는 것도 웃기다고 본다. 모두 존중받고 논의되어야 한다. 그런 논의가 중요하지 내가 뜨고 싶은 욕구가 있고 없고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어불성설이다. 지금의 논란은 단순히 주제의 화제성 때문이 아니라 예전의 그 강의석이라는 기억이 소환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개인 강의석을 따로 떨어뜨려 놓고 논의하기가 이미 어려워져 버렸다. 어떤 면에선 자초한 것이고,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인정한다. 그런데 개인 강의석에 대해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시간이 아깝다. 단식을 해서 서울대 특차 붙었다고 하는데 거기 대고 뭐라 하겠는가.
변명의 과정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변명 자체는 대단히 터부시하면서 누군가에 대해 말하고 평가하기 좋아하는 사회가 아닌가. 그런데 누군가의 해명을 들어보지도 않고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하는 건 그저 폭력에 불과하다. 변명이 비겁한 게 아니라 그게 진짜 비겁한 거다. 나는 오늘 인터뷰가 강의석씨가 주장하는 순수성을 의심하거나 오독하는 사람들을 향한 일종의 해명이 되었으면 한다.
특차 합격에 관한 부분을 말해볼까. 원래 동대문구 수석이었고 학생회장이었고 공부 잘해서 당연히 서울대 갈 성적이었는데 종교 자유화 투쟁 때 퇴학을 당했기 때문에 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다. 전교 1등부터 3등은 수시에 지원할 수 있는데 그것도 퇴학을 당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리더쉽과 봉사활동 전형이라는 게 있어서 확인해보니 일단 자격이 충분했고, 서울대 측에서 투쟁 이전의 점수까지 인정해주어서 응시가 가능해 합격할 수 있었다. 최저등급만 확보하면 되는 것이라 수능점수는 필요 없었는데 응시해서 461점을 맞았고, 공부를 했으면 당연히 480점 이상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뭐 이 정도다.
서울대 간 것은 선택이었나.
이 정도 점수면 서울대가라고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니, 나도 당연히 그 패러다임 안에 갇혀있었지.
지금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그래도 다시 서울대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서울대 권력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되면서도 공부라는 부분만 따져보면 정말 많은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는 공간이거든.
진보운동이라는 게 결국 소수자 운동인데, 그런 사람이 서울대를 간다고 했을 때 조금 이상했다. 이 사회에서 서울대에 간다는 것은 단순한 일류대 진학이라기보다 일종의 권력 자본을 획득하겠다는 의미인데. 당시 인터뷰에선 본인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법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법을 나쁘게 봤었는데 내게 임시학생 신분을 주고 도움을 준 게 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었다. 당시에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일단 내 개인의 힘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뭔가 바꿀 수 있는 힘을 기르고 나서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건데, 그럼 왜 지금 군대이슈에 대해선 단계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군대를 없애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먼저 내놓고 있는 것인가.
고3때는 내가 뭔가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대학교 가서도 공부보다 종교 자유화 집회에 더 열심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무리 이래봤자 바뀌는 게 없다는 회의에 빠지게 됐다. 사회가 좋아져봤자 정말 사람들이 행복해질까, 이런 생각도 들고. 공부를 열심히 해봤자, 그래서 결국 무엇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뭘 바꿀 수 있을까, 그런 고민에만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결론에 이른 게 나 자신만을 위해 살자, 는 거였다. 군대문제도 결국 내 문제이기 때문에 뛰어든 거다. 지금 주장이 급진적이라고만은 보지 않는다.

애초 고 3때 종교 자유화 투쟁을 시작한데는 류상태 교목 선생님의 역할이 컸나?
그건 아니다. 오히려 온건한 분이셨고 가끔은 너무 학교 측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나중에 투쟁이 시작되고 나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신 분이 바로 그 분이었다. 나중에는 학교에서도 쫓겨나시고.
교목 선생님의 방아쇠 역할이 없었다면 조금 의문이 드는 게, 들은 바로 1, 2학년 때 대광고와 연계된 대형교회(영락교회)에서 인도를 하기도 했었고 교회 장학금도 받기도 했었다는 데 어떻게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가.
말씀하신 건 왜곡된 소문이다. 나도 그냥 한 명의 학생으로 참석했던 것이다. 학생회장이니까 대표 선서를 하는 등의 일은 있었지만 전체기도 같은 건 해본 기억이 없다. 장학금은 전교 1등 장학금이었다. 그것도 후원의 주체가 교회라서 나중에 모두 돌려주었다. 계기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후배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계속 느껴왔다는 것, 또 그 당시 책을 많이 읽었었는데 그런 와중에 ‘잘못된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차올랐던 것 같다.
서울대 휴학하기 전에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던 걸로 알고 있다.
씨네꼼이라는 영화 감상 동아리다. 내가 천재가 아닌가봐, 막상 영감이 떠올라 영화를 찍는 스타일도 아닌 것 같고. 일단 영화를 많이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간 곳이었다.
동아리에선 왜 제명되었나.
그때가 한참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휩싸여있을 때다. 동아리에 전체 회의가 있는데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그럼 동아리에 나올 수 없다고 하더라. 나는 부당하다고 주장했고 그 쪽에선 굉장히 흥분했다. 우선 나오지 말라는 의견이 전달됐고 나는 그래도 찾아가서 이야기라도 해보려했는데 소통이 어려웠다. 계속 나오지 말라는데. 쫓겨난 거지.
동기 여자 친구와의 섹스 체험과 느낌을 싸이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비판을 받았다고 하던데. 정작 그 글은 찾을 수 없더라.
그런 글 자체가 없었다. 왜 그런 말이 만들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강의석씨만큼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활동가도 드물었을 것이다. 자꾸 매체에 나오니 관심이 없어도 강의석씨가 요즘 뭘 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된다. 법조인, 권투선수, 택시운전, 호스트까지.
질문 하니까 답을 하는 것이다. 고3때 이후로 언론에서 자주 연락이 왔다. 한동안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았었는데 다시 개통하고 나니까 지금 뭐하냐, 궁금하다, 한 번 보자, 그래서 만나서 이야기한 것이다. 그때 마침 택시하고 있었으니 택시 이야기한 거고, 호스트 일하고 있을 때 근황을 물어와 솔직히 이야기한 거고, 그렇게 된 것이다.
택시일과, 호스트일, 모두 “경험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건 좀 오만한 태도가 아닐까.
오만한 태도지. 그런데 솔직하고 싶었다. 내가 오만하면, 오만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는 늘 머릿속에만 뭐가 있었지 실제 뭐가 어떤지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같다.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와서 절감했다. 내가 아는 사람과 실제 사람은 전혀 다르다는 것. 사람을 제일 모르겠다. 그래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택시도 호스트바도 해본 거다.
택시와 호스트 일은 얼마 정도 했나.
택시는 한 달, 호스트바는 일주일 했다.
사람을 알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같다.
짧지. 아쉬운 부분이 크지만 아쉽게만 보면 정말 아무 것도 못한다. 택시 몰면 다른 일은 정말 아무 것도 못한다. 호스트바도 더 하고 싶었는데 다른 일이 있었던 게, 촛불시위 나갔다가 대뜸 연행이 된 거다. 너무 화가 났다. 그 때 현장에 동원됐던 전경 친구 한 명이 육군 재배치 신청을 했고, 도움을 요청해서 그 일에 매진하느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지금 <군대?>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지 않나. ‘태환아, 너도 군대가’ 글 초반에 언급한 그 영화 말이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이야기는 농담이지?
농담이지(웃음). 말 그대로 달 보고 소원 빈 거다. 그래도 뭐, 잘 만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런데 그 농담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다. 어쨌든 본인에게도 경솔한 면이 있었다는 생각은 없었나.
내가 고2 마지막 모의고사 때 시험 보려고 앉아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시험의 노예가 되어야 할까. 한 번 빵점 맞아봐야겠다.’ 그래서 시험제도에 엿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오답을 찍었다. 13점이 나왔다. 선생님이 놀라서 부르시더라. “네가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라는 걸 아는데, 네가 한 행동이 주변 친구들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해봐라. 다들 며칠 밤씩 못자고 공부해서 시험 보는데 네가 이러면 다들 얼마나 허탈하겠냐.” 그런데 나는 그 상황이 다시와도 또 그럴 것 같다. 물론 그런 악영향도 있겠지만 최우선은 나 자신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최대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할 거다. 물론 남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절충을 해야 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태환아 너도 군대가’ 글 같은 경우는 파장을 고려해 원고 송고 전 주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었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인 박권일씨가 강의석씨에 대해 ‘영악한 처세가’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영악한 처세가이면 좋겠다. 예산이나 이런 걸 잘 집행해야 할 때도 너무 계획성 없이 행동하는 경향이 있어서. 주변에 영악한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진정성에 대해 의심 받을 때 기분 나쁘지 않나.
정말 나쁘다. 병역 거부 운동 같이 하는 친구와 술을 마시는데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 “솔직히 네가 이렇게 판 다 벌여놓고 그냥 군대 간다고 할 줄 알았다.” 상처 받았다.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말할 때 이거 한다고 했다가 저거 한다고 했다가 갈팡질팡한다고, 진정성도 없는 것 같다고 비판하지만, 사실 누구나 다 그러거든? 이제 겨우 20대 초반인데. 개인의 삶이 그리 계획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것이던가? 문제는 당신의 삶이 너무나 많이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의도적이라는 시선도 있고. 의도적이 아니라도 어쨌든 자초한 면이 분명 존재한다. 내 생각에 당신은 개인 힘으로 온전히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는 모양새인 것 같다.
나도 어느 정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이번 일로 인해 병역 거부 문제를 충분히 제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개인에 대한 문제만 더 많이 거론되고. 그래서 10월 1일 국군의 날이 중요하다.
누드 퍼포먼스 같은 자극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개인에 대한 문제가 더욱 강하게 거론되지 않겠나.
그럴 것 같다. 그럴 거라면 포기하는 게 맞는데, 일단 공언을 했지 않나. 지금은 계속 토의를 하고 있는데 정말 이 운동 자체에 해가 될 정도라면 하지 않는 게 맞는 거겠지. 일단은 10월 1일에 나를 포함해 두 명이 하기로 계획 중이다. 아무튼 진정성 문제가 대두되면 정말 피곤하다. 어떻게 하면 믿는 걸까.
진보 진영의 활동가들 가운데 이목을 끄는 일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겪는 오해가 바로 “너 뜨고 싶구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차라리 안 뜨고 말지 그들이 제기하는 주장 때문에 겪게 되는 개인의 희생이 너무나 크고 공고하다. 그런데 강의석씨 경우는 그런 투쟁을 하고 서울대를 갔다. 그리고 그게 의도든 의도가 아니든 매 순간마다 어떤 일을 할 건지 매체를 통해 소개가 됐다. 운동 팔아 서울대가고 스타된다는 식의 곱지 않은 시선이 뒤따랐다. 그렇다고 해명도 하지 않았다. 필요이상으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솔직히 변명은 멋있지 않다. 멋있게 살고 싶다.
강의석 개인의 변명하지 않는 멋있는 삶과 고수하고픈 신념 가운데 뭐가 더 중요한지 판단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개인의 스타성 탓에 화두가 더 뚜렷이 제기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오히려 화두 자체가 스타성으로 인해 왜곡되고 상처받게 되는 지금 상황이 거기서 빚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쪽의 욕망을 좇을지 조만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어쨌든 같이 하는 친구들은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라고 말한다. 일단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 개인이 욕먹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실제 함께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고 있다. 그게 더 중요하다. 어쨌든 지금의 내 상황판단은 아주 조금이라도 운동에 더 도움이 되는 상태라는 것이다. 허지웅 기자 (<프리미어> '와일드 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