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의 키노키] 아마도 악마가,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로베르 브레송의 1977년도 작품 <아마도 악마가>는 68혁명 이후 정신적 공황상태에 이른 젊은이의 비관을 쫓는다. 수십 년이 지나 한국의 극장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놀라운 건 똑같은 고민이 극장 밖 이 땅의 현실에서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충무로영화제에서 로베르 브레송의 <아마도 악마가>(1977)를 다시 보았다. 스크린으로 본 건 처음이다. 집구석에 틀어박혀 브라운관이나 모니터를 경유해 영화를 본다는 건 아무래도 불완전한 일이다. 파편화된 정보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그걸로 그만이다.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하필 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현실감각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도무지 땅에 붙어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아마도 악마가>는 반드시 지금 이 시간대 같은 공간을 버티어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경험해야 할 영화라 할만하다. 자꾸만 고개를 돌려 극장 밖 우리 현실을 환기하게 만드는 알 수 없는 힘이, 이 영화에 있다.
<아마도 악마가>는 브레송의 필모그래피 위에서도 드물게 염세적인 작품이다. 정작 프랑스에선 개봉 당시 청년 관객들의 자살을 유도할 수 있다며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영화는 68혁명의 물결 이후 ‘여기 진짜 혁명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며 비관에 빠진 젊은이들의 상념을 쫓고 있다. 1968년을 전후한 역사적 사실과 무엇이 바뀌고 바뀌지 못했는가에 대한 논거의 나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극도로 회의적인 군중과 그보다 조금 더 비관적인 인물들, 그리고 자조를 넘어서 나만이 온전한 진실에 가닿아 있다는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있을 뿐이다.
주인공 샤를은 똑똑한 젊은이다. 샤를과 그의 친구들은 세상이 잘못돼 있다고 확신한다. 한 때는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지금은 이 부정한 세상의 어떤 모습도 바꾸거나 손볼 수 없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혀 있다. 성직자들은 타락하거나 무력하고 환경은 개발을 가장한 욕심으로 끊임없이 파괴되고 있으며 지식인은 허망한 정치구호로 군중을 선동하며 책을 팔아먹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인가? 바뀔 수 없는 것인가? 도무지 알 수 없어 괴롭고 또 괴롭다. 그 중에서도 비관의 끝에 닿아 자포자기 심정이 된 샤를은 죽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자신에게 “남들이 알지 못하는 걸 알고 있다는 죄”가 있다고 확신하기에, 샤를은 그럴 수밖에 없다. 다만 자살은 할 수 없다. 종교적인 이유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럴 용기가 없다. 샤를은 자신을 살해해줄 사람을 찾아 나선다.
영화의 마지막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쏟아지는 내장이나 핏기는 없지만, 숨이 막히다 못해 구토가 쏟아질 것 같은 공기의 탁한 무게감이 거기 있다. 샤를은 자신을 죽여줄 사람을 뒤에 두고 마지막 유언을 말하려 한다. “이런 순간이 오면 뭔가 멋진 말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샤를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총알이 발사된다. 카메라는 샤를의 죽음에 일고의 동정을 품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추락을 비추지도 않는다. 우리가 샤를의 주검을 볼 수 있는 건 오로지 살인자가 시체에 다가설 때뿐이다. 살인자는 샤를의 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내 서둘러 사라진다. 하다못해 영화가 끝났다는 표식조차 보여주지 않은 채, 화면은 급작스레 암전된다. 아무 것도 없다.
단 한 번, 영화 속에서 ‘악마’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샤를과 그의 친구가 버스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세상이 왜 바뀌지 않는지, 도대체 무엇이 잘못돼있는지 이야기가 오고 간다. 주위에 승객들도 한 마디씩 거든다. 무력해 보이는 시민들의 입에서 저마다 비관에 찌든 말들이 튀어 나온다. 그러다 누군가 묻는다. “세상에,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고 있는 거지?” 누군가 대답한다. “아마도, 악마가.” 샤를과 친구는 마주보며 웃는다. 악마라, 웃기는 말이군. 그 때 버스가 급정거한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 어딘가에 충돌한 건 아니다. 운전사는 당황한 눈초리다. 문을 열어 버스 앞을 확인한다. 카메라는 일부러 이동해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무엇이 버스를 멈추게 했을까. 커튼 뒤에 숨어 세상을 조종하고 있던 악마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된 것에 놀라 멈추게 했을까. 어쩌면.
<아마도 악마가>는 68혁명 이후 비관과 무력, 자조에 침식된 청년사회의 패배주의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결기로 주장했던 화두들은 절충됐고 신뢰했던 사람들은 변심했으며 텅 빈 광장은 단어 몇 가지로 무참히 매도됐다. 그렇다고 감독이 당대의 비관주의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은 좀체 들지 않는다. 말하자면 <아마도 악마다>는 하나의 거대한 역설이다. 비관의 끝을 보여주면서 우리들의 비관이 과연 옳은 것인가, 묻고 있는 것이다. 브레송은 샤를의 생각이나 행동을 온전히 긍정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조롱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극 초반 집회의 강성한 구호에 코웃음을 치는 샤를의 모습은 ‘지금 당장 행동할 것이냐, 계속 고민할 것이냐“는 딜레마를 상기시킨다. 저 홀로 답을 알고 있는 듯 행동하는 샤를의 나르시시즘에 마저 브레송은 어떤 체온도 담아내지 않는다. 물론 감독 스스로 답을 드러내 보일 생각도 없다. 답을 내놓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다.

이 땅에도 한 동안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물결을 이뤘다. 그들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촛불이 근 백 일 동안 지속됐다. 지도자들은 당황했다. 색깔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주류 언론은 광장이 소수 붉은 세력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후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거기 배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광우병이 무서워서, 정권의 방향성이 싫어서, 의료정책이 불만이라서, 선배가 시켜서, 바람 쐬고 싶어서, 전투 경찰 버스 한 번 끌어보고 싶어서, 대통령이 못 생겨서 나온 가지각색 수십만의 서로 다른 방아쇠가 존재했을 뿐이다. 하나의 배후를 꼭 집어 잡아낼 수 없으니 정권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마도 악마가>처럼, 적확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의미 없는 고민만 무성했다. 하물며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체험의 차원에서 광장에 마실 나왔다 들어갔다. 버스를 끌어낸 뒤 함성을 지르고 나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뿔뿔이 흩어졌다. 합의된 것도 없었지만 의지 또한 없었다. 한 번 끌어봤으니 됐다, 그렇게 그것 참 아름다운 도덕적인 정치적인 정당성만 당위성만 가슴에 얻은 채 집으로 의기양양 돌아갔다. 그런 얄팍한 심산이라도 한데 모아 방향성을 띠게 해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욕하고 분열하기 좋아하는 진보 진영의 꼰대들, 더불어 인터넷의 제 잘난 회의주의 좌파들은 느긋하게 팔짱끼고 훈수를 두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이제 와 광장은 거의 비워졌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현 정권의 교육 정책을 그 자체로 상징하는 자가 재선에 성공했다. 언론은 공중파, 지면 가릴 것 없이 친 정부성향의 인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누군가의 울부짖음은 올림픽의 함성으로 지워졌다. 기륭전자 앞, 어느 단식 농성자의 생명이 꺼져가는 지금 이 시간마저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비관과 회의로 희석됐다. 사실상의 사상검열이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이뤄지고 있다. 때 아닌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자가 발생했다. 곧바로 웬 여 간첩 사건이 터져 나왔다. 누구도 이 평화의 댐스러운 사건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의를 제기할 적극적인 의지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그야말로 악마적인 비관주의만 돋아날 뿐이다.
평생에 걸쳐 신과 구원에 관한, 어쩌면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감독은 <아마도 악마가> 이후 단 한 편의 영화만을 더 발표하고 지난 1999년 12월 사망했다. 거장의 마지막 영화 <돈>(1983)은 세상을 점령한 악의 중심에 자본주의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세상을 조종하는 건 악마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기는 너무 쉽고 무책임하다. 정작 걱정해야할 건 차라리 우리 안의 악마다. 무관심이라는 이름의 악마다. 지금도 무언가를 외치고 행동하는,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눈에 보이는 부조리에 비관과 자조로 일관하기를 거듭하다 우리는 결국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진짜 지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진짜 악마를 보게 될 것이다. 글_ 허지웅 기자 일러스트_ 장재훈 (<프리미어> '허지웅의 키노키')
*충무로영화제의 <아마도 악마가> 상영이 9월 7일 일요일 오후 8시에 한 번 더 있습니다.





덧글
에제 2008/09/07 12:15 # 답글
금요일 아침에 보셨군요. 저는 그 날 아슬아슬하게 갔었는데...-.-촛불 2008/09/07 12:23 # 삭제 답글
허지웅은 요즘 촛불시위 나가나?활동객 2008/09/07 12:34 # 삭제
촛불씨 자꾸 똑같은 질문 올리시길래 제가 대신 답변.허지웅씨 바쁜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곳 여기저기에 무원고료로 좋은 글 써주시면서 광장에 열기가 식어버린 지금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함께 고민하자는 좋은 활동하고 계십니다. 딱 자기 인격만큼의 바보같은 덧글좀 그만 남기시지요.
웃기지마 2008/09/08 10:10 # 삭제
글은 키보드워리어도 쓸 수 있는 거고 중요한거는 지금 촛불시위 나오냐다요즘 허지웅 촛불시위 나오냐
-_- 2008/09/08 13:58 # 삭제
말을 하려면 끝까지 해봐. 뭐 어쩌라고 근데. 출석체크 왔냐.김서방 2008/09/07 13:04 # 삭제 답글
교육감 선거가 끝나고 허지웅님의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의아했습니다.실망한 걸까, 포기한 걸까.
이 글을 보니, 그 때, 하고 싶었던 말을 삼켰던 거군요.
'아마도 악마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상영관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참 불편했습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외면해 버리고 싶었습니다.
이미 우리 세상에 만연한 패배주의를 스크린에서 다시 대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peter153 2008/09/07 13:29 # 삭제 답글
허지웅님이 여자예요?.. 2008/09/07 17:00 # 삭제
남자이순옥 2008/09/07 14:29 # 삭제 답글
허지웅님,미안하고, 감사합니다.이제 지쳐가고 힘겹다는거 다 잘알고 있습니다만, 어깨너머로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저는 시위에 참여를 못하더라도 아들만은 꼭 참석케 했습니다.
옳은일에는 동참해야한다는 사명감때문이지요. 우리세대만 잘 살아 보겠다는 현 정부의 오만과 편견앞에 우리는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걸까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귀막고, 눈감고, 어찌 한나라의 어버이라 할런지...
인기몰이에 급급해 그때 그때 일시방편인 추파만 던지지 말고, 진정한 해결. 확실한 결론을 국민은 원합니다.
ozzyz 2008/09/07 14:39 #
제게 미안하고 감사하실 건 없을 것 같습니다.피노 2008/09/07 15:51 # 삭제 답글
'세상이 다 그렇지 뭘'제발 좀 닥쳐주시구랴 그 입 좀.
Sinny 2008/09/07 18:51 # 답글
개개인 모두가 악마의 세뇌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악마의 거짓말을 모두 알아채고 진실을 판단할 수 있을 때그렇게 진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사회를 유지할 수 방법을 아는 초인이 될 때에
악마의 존재는 유명무실해질거라 봅니다.
어쨌거나 지금의 세계 균형 유지에는 악마 역시 필연적인 존재니까, 없애버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기왕에 그렇다면 존재해도 쓸모없게 만들어버리자구요.
한 사람의 영웅이 나타나길 기다리지 말고, 우리 각자가 모두 영웅이 되어야할 때라는 겁니다.
세뇌에 대한 면역을 키우고, 진실을 깨달아 주세요.
허무주의 키보드 워리어답게 허무맹랑한 소리만 해대고 있습니다만 ㅋㅋ
그렇지 않으면 안되게끔 세상이 굴러가고 있지 않나요?ㅋㅋ
인터넷의 웹2.0으로의 진화가 그를 위한 것이란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이만큼이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초월한 매체는 없었지 않았나요.
그것이 이제까지 그저 허무맹랑하기만 하였던 이 헛소리에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을 붙이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winnie 2008/09/07 22:10 # 답글
아, 너무 무력하고 절망스런 시간이군요.일단 여기서 나가야 이런 영화도 보고 뭔가 움직여볼텐데-_-
미고자라드 2008/09/07 22:39 # 답글
일단 생긴것 부터가.어이쿠 잡혀가려나.
그레이 2008/09/07 23:14 # 삭제 답글
지겨운 그놈의 가부장.이젠 댓글로도 짓누르네.잘먹고잘사네요.louis 2008/09/08 00:09 # 삭제 답글
대통령이 못 생겨서.. ㅋ 공감 한 표 던집니다.근래들어 '촛불'에 대한 분석과 비판 및 여러 의견이 봇물 터지 듯 많더군요.
이러저러 해도 생활 속의 실천 만한게 없을테죠.
계속해서 여러 글은 잘 읽고 있습니다. ^-^
sang 2008/09/08 16:27 # 삭제 답글
보러갈 수 없어서 아쉽네요. 또 볼 기회가 있겠지요. (정독은 역시 잡지로 :)참. 추석 잘 보내세요! 고향에선 인터넷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
atomv 2008/09/08 19:24 # 삭제 답글
중앙시네마 앞에서 상영맵만 잔뜩들고아쉬워하면서 집에 들어간 기억이(TへT )....
저도 글 잘보고 있어요..^^
2008/09/09 20:3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2008/09/10 11:11 # 삭제 답글
어느 시대에나 악마는 있지 않을까요. 머리로 좌절하면 입으로 떠들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