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의 경우에도 언급했듯 인터뷰 기사는 블로그에 잘 옮기지 않는다. 하지만 또한 함께 언급했듯 때때로 예외가 있는 법. 취재원, 으로서가 아닌 사람, 으로서 마음이 갈 때가 있다고. 그나저나 오늘까지 CinDi2008 영화제 심사 나가야 하는데 몸살이 나는 바람에 늦잠을 자버렸다. 어딘가 단단히 틀어져 고장 났다는 기분. 인생에도 조각 모음이 되나요?
[이하늘 인터뷰] 나는 나쁜 놈이 아니야. 그렇다고 착한 놈은 더욱 아니야.
차세대 예능 늦둥이라고 불러야 하나. 부쩍 TV출연이 잦아졌다.
원래는 TV 나갈 생각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말이야. <무릎팍 도사>했던 여운혁 CP라고 있다. 일전에 <무릎팍 도사> 나갔을 때 편집도 워낙 잘 됐고 방송 결과도 좋았거든. 정선희씨 결혼식 때 그 형님을 만났는데 “다음에 내가 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거 같이 하자” 하시더라고. 싫다는 말하기 어려웠어. 신세진 분이잖아. 그래서 엉겁결에 <명랑 히어로>를 시작하게 됐다. 참 생각지도 못하게. 그 이후로 다른 프로그램에도 많이 나오게 된 거고.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과는 자주 왕래가 있는 편인가?
아니다. 적응하기 힘들었다. 지금도 친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고, 그렇다고 안 친하다고도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인 것 같아. 평상시 다들 바쁘니까 말이야. 그래도 그 가운데서 제일 친한 사람이라면 국진이 형이랑 종신이 형인 것 같아. 나머지는 아직 어렵다.
친하지도 않은데 방송 중에 공격을 받거나 그러면 기분이 나쁘겠다. 김구라식 공격.
그거야 그 사람 성격인데 뭘. 구라 형이랑은 옛날부터 알아왔다. 그 형이 방송 바쁘니까 잘 못보고 소원해지기는 하는데. 아무튼 구라 형 말은 방송을 위해 던지는 이야기들이니까 그냥 받아주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그 사람은 어디까지나 솔직한 방송스타일이거든. 물론 잘 알지도 못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구라 형처럼 말한다면, 그건 정말 화나는 일이지.
<명랑 히어로>는 시사적인 내용도 많이 다루게 된다.
힘들다. 공부를 해야 하잖아. 내 상식만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고. 또 내가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앞뒤가 맞는 말을 해야 할 것 아니야.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평소 내 관심사와 관계가 없다. 난 정말 정치에 조금도 관심이 없거든. 그냥 신경쓰기 싫어. 괜히 보고 있으면 열 받으니까. 매주 숙제해가는 기분이다.
전에는 일부러 정치 사회 현안들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부러 그래. 사실 난 되게 부정적인 사람이다. 특히 정치 쪽에 대해서 말이야. 물론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워낙에 삐딱이 기질이 있어서 잘하는 것 보다는 못하는 게 먼저 눈에 들어온단 말이야. 그런데 정치 쪽을 보면 내가 믿고 지지했던 사람인데 꼭 나중에 발등 찍히는 일이 생긴다. 그게 싫은 거다. 발등 찍히기 싫다.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일 것 같다.
워낙 많이 발등을 찍혀봐서 발등이 다 닳아 없어졌다(웃음). 이렇게 말하면 무슨 세상 다 산 사람 같이 느껴질 텐데. 음. 그런데 다 보여. 조금만 봐도 알겠다. 전에 속아왔던 데이터들이 안에 쌓이다보니까 내가 어울릴 수 있는 사람,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몇 번 대화하다보면 구별이 간다. 의외로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 아주 조심해야 한다. 이상하게 붙임성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보자마자 형, 형,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 굉장히 조심해야 하고! 지방 다니다보면 건달 같은 그런 사람 있지 않나. 보자마자 친구야, 그런다. 그런데 38년 만에 처음으로 본 사람과 친구되는 게 그리 쉽지 않잖아. 그런데 막 살갑게 다가와서 친구 친구 그러면, 사실 이미 내 마음은 닫혀있지.
그런데 그렇게 쓸데없이 말 많고 앞에서 과하게 친절하고 뒤에서 정치 잘 하는 사람들이 끝에 보면 늘 잘 된다.
그런 사람이 잘 되지. 뭐, 나하고 노는 물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나쁜 건 아니야. 그냥 나랑 다른 거지. 나랑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인 거고. 나랑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잘살든 못살든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잖아.

사진_ 우정훈 (키메라)
일전에 <명랑 히어로>에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나와 화제가 됐다.
원래 가지고 있던 건 아니고. 그때 급하게 만든 거다. 티셔츠 만들어주는 곳에 가서 그 이미지 주고.
나중에 그거 공동구매 사이트 생겨서 엄청 팔리고 그러던데.
뭐 그 그림도 내가 옛날 포스터 이미지를 그냥 도용해서 쓴 건데. 그러든가 말든가.
어쨌든 대통령에 대한 직설적인 반응이니 주위에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다.
이야기 많이 들었다. 걱정한다. 그 뒤로는 같이 방송하는 스태프들도 의식을 하게 된다. 내가 마음대로 행동하고 나면 방송 전체가 욕을 듣거나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생기는 거잖아. 나는 이왕 그런 프로그램에 나가는 거, 내 생각은 이렇다! 그렇게 아주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데 아직 우리나라 정서상 그런 건 힘든 것 같아. 자꾸 벽에 부딪힌다. 정치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의견을 갖고 말할 뿐인데.
혹시 외압이라도 들어오나.
음. 그건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 말하기 좀 그래. 이런 일은 있었다. 정몽준 의원 말이야. 이 나라 정치인이고 국민인데 얼마 전에 버스요금이 얼마인지 몰라 그랬잖아. “한 70원 하나?” 나는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어쨌든 버스를 타본 일이 없을 테니 말이야. 그런데 그때 우리 프로그램에서 ‘이 주의 명랑 히어로’라고, 그 한 주를 아주 명랑하고 즐겁게 만들어준 사람을 시상하는 데서 내가 정몽준 의원을 꼽았어. 그 버스요금 관련해서 난 되게 웃겼거든. 유쾌했고. 그래서 추천한건 데 통으로 편집 당했더라고.
어떤 식으로든 스태프들에게 부담주기 싫은 거구나.
나 때문에 누가 힘든 거 보기 싫어.
요즘 방송에서 부쩍 어렸을 때 이야기, 고생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왠지 본인은 그런 이야기 자꾸 하는 거 싫을 것 같다.
그동안 가족 이야기나 어렸을 때 이야기 할 자리도 없었고, 있어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구태여 할 필요가 없잖아. 얼마 전 성적표 공개되고 그런 건 말이야, 그 무슨 아침 프로에서 나한테 말도 안하고 중학교를 찾아가서 찍어갔더라고. 선생님께 전화가 왔어. “SBS에서 촬영 왔는데 성적표 보여줘도 되냐”고(웃음). 그렇게 다 벌려놓고 나중에 와서 인터뷰만 해가더라고.
미리 질러놓고 가는 거구나.
그렇지. 미리 허락을 맞고 하는 게 아니라 말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과거사들이 하나둘씩 방송을 타기 시작하고. 별로야.
거부감 느껴지지 않나? 아무래도 고생 올림픽 같고 말이야.
고생 올림픽?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많이 고생했어, 식으로 술자리에서 자주 하는 올림픽 있잖아(웃음).
난 싫다. 굉장히 싫어. 그런데 요즘 이미지나 캐릭터가 그런 쪽으로 자꾸 흘러가는 것 같아 굉장히 조심하고 있다. 난 뻥쟁이 싫다. 그래서 최대한 솔직하게 말하려고 하는 건데 자꾸 방송에서 내 캐릭터를 그렇게 잡아간다.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이제는 힘들었던 이야기 안 할 거야.
당신을 ‘가요계의 악동’식으로 다뤘던 것도, 이제와 ‘알고 보면 착한 놈’식으로 다루는 것도, 모두 돈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용하는 거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렇게 잦은 송사에 휘말렸던 과거에 대해 잘못했다고 생각하나?
아니. 그렇지 않다. 물론 내가 잘못한 부분도 있겠지. 따지고 보면 없겠어? 그런데 거꾸로 물어보고 싶은 건, 다른 사람들이 우리 상황처럼 정말 그렇게 됐을 때 우리 만큼 참을 수 있겠냐는 거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억울한 건 있어도 후회하지는 않아.
2004년도 베이비복스 사건. 그 때는 벌금형까지 갔었다. 그거 냈어?
냈다. 안내다가 수배당하고 공항에서 잡혀서. 오백만원.
새삼 그 사건 떠올려보면 기분이 어떨까.
내 단어선택이 문제였지. 내가 당시에 베이비복스를 그렇게 생각했던 건 부정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야. 같은 가수이긴 해도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랬던 적이 많다고. 개인적인 친분도 있었어. 그 친구들 1집 나올 때 우리한테 랩 가르쳐주세요, 재용이한테 안무 가르쳐 주세요, 그랬던 팀이란 말이다.
나중에는 말이 오가면서 감정싸움이 됐다. 미아리 복스 이야기까지 나오고.
그때 2PAC 이야기 나온 것도 그래. 내가 무슨 2PAC 대변인이야? 2PAC이야기 하면서 베이비복스 욕할 생각 없었어. 내가 2PAC이야기 꺼내 베이비복스 음악 지적한 게 무슨 힙합 프로그램이었는데, 맥락을 보면 알겠지만 완전 장난이었거든. 농담이었단 말이야. 그런데 악의적으로 기사화되면서 문제가 커진 거라고. 그때 처음 기사화시킨 신문사 국장이랑 베이비복스 소속사 사장이랑 되게 친하다. 아삼육이야. 그때 베이비복스가 꺼져가는 촛불 같았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막판 뒤집기 해보려 한 건데 내가 괜히 발끈해서 반응을 보인 거지. 그러면서 미아리 복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내가 아까 단어선택의 문제를 이야기 했지 않나. 바로 이 문제가 그래. 내가 그 말만 안 했으면 전반적으로 이해가 다 되는 수위고 맥락이었는데 미아리 복스라는 말을 하면서 그 말 하나만 남았다. 다른 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 내가 만든 말도 아니고 원래 인터넷에서 돌던 말이다. 그걸 가지고 언론플레이하고 나중에는 내가 하지도 않은 사과 했다고 하고 말이야.
소속사 사장과 아삼육이라는 기자 이야기는 나도 들은바 있다. 당하는 입장에서 감정이 곱지 않겠다.
별 생각 없다. 그냥 존나 때리고 싶지.
2005년이었나. 클럽 메리 제인 사건 때도 그 기자가 문제를 키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 사건 떠올려도 참 억울해. 내가 클럽 운영하고 그 동업자가 재정에 관련된 부분을 책임지는 구조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직원들 월급을 안 주는 거다. 수익배분이고 뭐고를 떠나서 내가 직원들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아니 일을 시켰으면 돈을 줘야지. 두 달이나 참았다. 그러다가 말을 했지, 근데 내 얼굴에 리모컨을 던지더라고. 그때 내가 방송활동 안 할 때였거든. 질 나쁜 사람들이 사람 판단을 그런 식으로 하는데, 아주 이빨 빠진 호랑이로 보는 거다. 그래서 싸우게 된 거다. 기사가 나왔는데 그게 일부러 한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하기에 기가 찼다. 기자 이름을 보니 또 그 기자인 거야.
전생에 악연이 있는지, 정말 징그러웠겠다.
야비하지. 그래서 전화했다. 죽여버린다고. 내가 그때 준비했던 게, 똥물 있지 않나. 가져가서 끼얹으려고 했다.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인데 막 육두문자 써가면서 통화하고 차 몰고 갔다. 그때 만약 내 눈에 보였으면 정말 죽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싹싹 빌더라. 아주 싹싹. 그래서 그냥 넘어가버렸다. 나중에는 원하지도 않는데 좋은 기사 써주더라.
어쨌든 그런 식으로 ‘가요계의 악동’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버렸다. 이제와 부담스럽지는 않나.
아니다. 그 모습들이 더 과장되고 때로는 왜곡되게 부풀려져서 보여진 건 있었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한 행동들이다. 아니라고 부정할 순 없는 것이다. 싸우는 자리면, 싸울만하면 싸워야한다.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말이야. 공인 운운 하면서 그러면 안된다고 하는데, 자기 입장 돼보면 그런 말 못한다.

대체 그 공인이라는 게 뭘까.
도대체 모르겠다. 그 말을 가져다 붙이면 꼭 안 좋은 일이 생긴다. 지금 부담스러운 건 옛날 모습이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착하게 포장되고, 원래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우리가 몰랐다, 이런 식으로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그게 더 부담스럽다. 난 똑같은데 자기 편한 대로 욕하다가 칭찬하다가.
미디어의 속성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잘해주든 못해주든 언제나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가 전제돼있다. 진심이라는 걸 찾기 어렵다.
둘 다 내 모습인데 알고보니 착한 놈, 원래 나쁜 놈, 그런 식으로 자꾸 몰아간다. 부담스럽다. 사실 7, 8년 동안 방송을 접었었다. 의도적으로 말이야. 첫 번째 이유는 90년대 우리 방송가에 분위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아무개를 데려다 쓰면 그 사람이 필요한 거지 않나. 그럼 최소한의 존중이 있어야 하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대단한 권위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자기들이 ‘써주었다’라는 개념인 건가.
그래. 아주 상스럽게. 그걸 깨달으면서 방송 하기 싫어졌다. 또 하나는 내가 내 자신의 모습으로 살지 못한다는 게 아주 불만이었다. 자꾸 꾸며지고, 심지어 내 자신도 미디어가 만든 모습에 끼워 맞춰지려고 노력하게 되고 말이다. 그렇게 살기 싫어서 방송을 접었는데. 또 웃긴게 그렇게 살다보니까 주위에선 그런다. “아 쟤들은 이제 끝났구나.” 그렇게 동정한다. 동정하면서 또 꼭 이상한 꼬리표가 달린다. 한 때 잘나갔던 연예인, 이런 식으로 말이야. 평범하게 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또 화려하고 유명하게 살기도 뭐하고, 아주 어중간한 인생이 되버린 거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나.
지금도 그렇다. 늘 어중간 하지 않아. 그래도 요즘에는 남에게 폐 안 끼치면서 내가 살고 싶은 방향대로 아주 솔직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컨트롤 할 수 있는 쪽으로 흘러가려고 하고.
DJ. DOC 7집은 언제 나오는 건가.
준비는 하고 있는데 자꾸 늦어진다. 욕심을 내서 그렇다. 주위 사람들 기대치도 너무 높고.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DJ. DOC는 힙합 그룹인가?
아니다.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어느 한 장르로 인정 못 받는다는 자체가. 대신 어떤 음악이든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그걸로 위안을 삼는 거다. DOC의 음악이 무엇이냐. 그럼 그냥 넓게 말할 수밖에 없어. 그냥 음악이다. DOC 음악이고. 곡마다 다른 거다. 힙합 스타일의 곡을 부르면 그것은 힙합 음악이고, 트로트를 하면 그건 트로트 음악이다.
김창렬 씨는 결혼했고 정재용 씨도 곧 결혼할 기세던데. 지금은 여자 친구 없는 걸로 알고 있지만, 어떤가. 결혼하고 싶은가?
하고 싶다. 외롭다. 그 동안 많이 놀았다. 이제는 텅빈 집에 들어가는 게 너무 싫어. 문 앞에서 누군가 반겨주는, 그런 돌아갈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결정적으로 <환상의 짝궁>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거기 나온 9살짜리 여자아이를 보면서, 나도 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 결혼도 하고 애도 갖고 싶다. 세상과 너무 싸웠다. 그렇다고 이제 그만 싸우겠다는 건 아니고, 내 편을 좀 늘리고 싶다는 거지(웃음).
얼마 전 예전 여자 친구에게 보냈던 문자메시지가 정리된 메일을 발견했다. 그걸 보는데, 슬펐다. 그런 식의 말들, 다시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공감한다. 너무 이해한다. 어찌 보면 게을러진 건지 귀찮아진 건지.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열정이 자꾸 사라진다. 흠. 그런데 나의 로망은, 우리들의 로망은, 나를 다시 한 번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여자를 만날 수 있다면, 하는 거 아니겠어. 다시 한 번, 미친 듯이 사랑할 수 있다면. 허지웅 기자 (<프리미어> '와일드 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