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이게 히스 레저의 조커입니다

[다크 나이트] 여러분, 이게 히스 레저의 조커입니다

당신은 <다크 나이트>같은 영화를 이미 봤을 수 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다크 나이트>는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를 가장한 느와르 영화다. 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공유한다. 영화는 애초 영웅의 무쇠 팔 무쇠 다리 초월적 이미지를 진열할 의도가 없다. 지면 위의, 혹은 오래된 스크린 속 화려한 아이콘들을 재현해내는 데 좀체 무관심하다. 팬덤 그룹의 요구를 얼마나 폭 넓게 수용해 원작의 아우라를 고루 압축해낼 것인지 또한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다만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는 우상과, 그 우상이 파괴돼가는 과정을 통해 도덕률이나 정의의 문제, 이를테면 평등이란 궁극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가치인가 따위 거대한 문제들을 벌집 쑤시듯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코스튬 히어로의 난장에서 웬 가치 타령이람. 아니 그런데 정말 그렇다고.

영화의 내용을 구구절절 소개하는 건 무용해 보인다. <다크 나이트>는 결국 당위에 대한 영화다. 여기에는 정의를 위해 지키는 놈, 정의를 위해 파괴하는 놈, 정의를 위해 비뚤어지는 놈이 있다. 배트맨과 조커와 투 페이스는 그렇게 서로 다른 당위를 가지고 다툰다. 그들은 그저 옳다고 믿는 바를 실천할 뿐이다. 그래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공존할 수 없는 욕망들이다. 그렇게 갈등이 생기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람이 죽고 건물이 내려앉고 누군가가 울고 또 누군가는 웃는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건 역시나 조커다. <다크 나이트>에 대한 소개는 온전히, 조커에 대한 설명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조커의 등장을 알린다. 조커는 마피아의 은행을 터는 중이다. 시종일관 흐느적거리고 쩝쩝대며 눈을 끔벅거리지만, 그렇다고 조커의 이미지를 하나로 정의내리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그 자체로 대단히 불온한 존재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불온함이란 자꾸 관심이 가 눈길을 거둘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교통사고 현장 위 사방으로 분해되고 흩어졌음에도 구경꾼을 모아내는 육신과도 같은 것이다. 조커의 사납게 찢어진 입술은 보는 자들의 죄책감을 자극하기도 호기심을 충족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자꾸만 불경한 말들을 쏟아낸다.

도입부의 인상적인 소개는 히스 레저의 조커가 잭 니콜슨의 조커와 전혀 다르다는 걸 입증해낸다. 잭 니콜슨의 조커는 엉뚱한 위악과 과장된 유머감각의 소유자다. 히스 레저의 조커는 그냥 미친놈이다. 완전히 미친놈이다. 논리도 합리도 없다. 속이 텅 비어있는 듯 가늠하거나 짐작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무섭다. 바들바들 떨려 손과 발이 오그라든다. 특히 병원 폭파 시퀀스는 압권이다. 차라리 병원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폭파할 때는 안도의 한숨이 나올 정도다. 그 전까지 조커가 보이는 행동과 주변의 풍광은, 완벽한 혼돈의 공포로 점철돼 있다.

그 정체란 요컨대 이런 것이다. ‘여기 뱀이 들어있다’와 ‘여기 뱀이 들어있지 않다’라는 문구가 동시에 적힌 상자가 하나 있다고 치자. 열어야 한다. 뱀이 들어있을까. 뱀이 들어있지 않을까. 상자를 연다. 튀어나오는 건 전갈이다. 들어있든 안 들어있든 아무튼 전제돼있던 건 뱀이었다. 전갈에 물려 죽어가는 당신은 공황 상태다. 준비되지 않았다는 데서 비롯되는 공포. 전율. 어찌할래야 어찌할 수 없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 여러분, 이게 히스 레저의 조커입니다.


영화는 조커의 사연을 소개하려 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털어놓는 과거사는 도무지 앞뒤가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죽이고 불태우고 폭파하고 찌르고 베길 좋아하는 조커의 관심사란 오로지 하나 뿐이다. 궁극적으로, 모두가 공평하게 파괴되는 것. 바로 이것이 조커를 작동시키는 당위다. 최소한 공포만큼은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정의(평등)를 위해, 파괴와 혼란을 택한 존재다.

배트맨은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을 흉내 내 박쥐 옷을 입고 활동하는 자경단들을 싫어하지만, 그 스스로가 이미 밤의 자경단원이다. <다크 나이트> 안에서, 배트맨은 종종 삼성의 이건희 회장처럼 보일 때가 많다. 절대적인 목적(정의추구-수익증대)을 위해 그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사용한다. 도덕률에 위배되더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우상의 위치에서 내려와 영웅이길 포기하기에, 배트맨은 이건희보다 나은 존재다. 그러거나 말거나 배트맨의 영혼은 파괴되고 있다. 그 자신은 필요악이라 생각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필요악인지는 관객 스스로가 좀 더 고민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부시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논평을 늘어놓기도 했다(너무나 적절하지만 이 매체는 부시를 향한 상찬의 목적으로 이런 문구를 사용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조커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인다. 조커는 <다크 나이트> 안에서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배트맨과 투 페이스로 하여금 스스로의 저열한 면을 바라보게 만든다. 더불어 저 둘의 운명을 영영 바꿔놓는다. 이 기괴한 관찰자이자 전무후무한 파괴자는 <다크 나이트>를 단순한 블록버스터 오락영화 이상의 무엇으로 격상시키는 방아쇠이기도 하다. 관객이 이 영화에서 숭고한 울림을 느낀다면, 그것은 온전히 조커가 제기하고 비웃고 불태운 화두들 덕분이다.

당신은 <다크 나이트>같은 영화를 이미 봤을 수 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본 적은 없을 것이다. 히스 레저의 조커 같은, 상상조차 불온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를 감당할 할리우드 상업영화란 영영 존재할 수 없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 참 끔찍하다. 그래서 처연하다. 그래서 자꾸 다시 보고 싶다. 허지웅 프리미어 기자 (한화 웹진용 원고)

ps: 이 영화에 관련해선 앞으로 몇 개의 글이 더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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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8/08/02 16:0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케야르캐쳐 2008/08/02 16:4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케야르캐쳐 2008/08/02 16:46 #

    는 장난이고, 나날이 기대감만 감당 못할만치로 커지고 있네요. 아음 보고싶다.
  • 시드 2008/08/02 16:57 # 답글

    님 완전 헛집었음. '정의' 라는 말이 이 영화 리뷰에 어울리는 말일까요? 라는 걸 한번 물어보고 다시 써주세요. 반어법이었다고 자위하지 마시길.
  • 시드? 2008/08/02 17:42 # 삭제

    자 이제 니글을 보여주세요
  • JOSH 2008/08/02 17:46 #

    음 이 리뷰의 컨셉이나 주제로 보면 맞는 단어 같은데요.
    어떤 의미에서 안맞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래서 '당위'에 대한 영화라는 거죠.
  • 풀꽃 2008/08/03 11:59 # 삭제

    우와 이제는 별 듣보잡들이 다 태클을 거는군요.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 이건뭐 2008/08/03 23:59 # 삭제

    'ㅅ' 이건뭐하는 사람이지.
  • 왕비호 2008/08/05 19:09 # 삭제

    (양 손을 귀에 붙이고) 누고?
  • 2008/08/02 19:0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Reverend-L 2008/08/02 19:06 # 답글

    줄거리가 어떻게 되건 조커라는 카리스마틱한 캐릭터를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 나르사스 2008/08/02 19:25 # 답글

    오늘 배트맨 비긴즈에 들어있는 예고편에서 먼저 조커를 봤습니다만...
    정말 얼마나 더 미친놈처럼 굴지 기대하게 하는 멋진 영상이었습니다.
  • 지나가던무명 2008/08/02 19:47 # 삭제 답글

    ▶◀히스에게 애도를
  •  승 2008/08/02 19:52 # 답글

    기대만 점점 커져가고...
  • 피코 2008/08/02 21:49 # 답글

    아우ㅠㅠㅠㅠ빨리 보고싶어 죽겠네요ㅠㅠㅠㅠㅠ
  • 쭈영 2008/08/02 21:52 # 답글

    얼른 개봉하길 기다리고 있어요^^
  • 작가 2008/08/02 22:29 # 삭제 답글

    할리퀸 출연좀 시켜주세요. 미친 캣우먼도 나오고 살찐 배트걸도 나오는데 왜 쏘핫 할리퀸 못나오나요 쉬발 이게 다 죠엘 슈마허 때문이다.
  • Amati 2008/08/02 22:35 # 답글

    작가 여기서도 찡찡대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23 2008/08/02 22:45 # 삭제 답글

    웩.
  • 2008/08/02 23:09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헤비스 2008/08/02 23:51 # 삭제 답글

    예고편만 봐도 숨이 멎을꺼 같던데..
  • 김마녀 2008/08/03 01:47 # 삭제 답글

    방금 보고 왔는데..
    시간가는줄 모르고 보긴 했으나 왜 이리 착잡한지 기분이.
  • 검정머플러 2008/08/03 09:49 # 삭제 답글

    꼭 이토준지 만화 완독하고 난 느낌이었음
  • 철이 2008/08/03 12:49 # 삭제 답글

    악. 더 보고싶어지게 만드는 리뷰 ㅡㅜ
  • 밀까루 2008/08/03 13:10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배트맨 시리즈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악역때문에 영화가 끌리기는 처음이군요.
    잭니콜슨=조커 라는 생각 이었는데 이번에 바뀔듯 싶습니다.

    IMAX관에서 보는것이 좋다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용산CGV가 제일 가깝더군요.
    상영일이 가까워질수록 두근거림은 더욱 잦아집니다.
  • 글랜워스 2008/08/04 08:38 # 삭제 답글

    만화책에서는 조커의 가장 큰 목적은 배트맨을 괴롭히는거라고 하더군요
  • 2008/08/04 10:50 # 삭제 답글

    2주전쯤 본 영화인데 글을 참 잘써놓으셔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근데 제가 봤던 조커는 -물론 불쾌한 느낌이 압도적이였지만서도- 좀더 유머감각이 뛰어난 'joker'였는데..^ ^; 간간이 극장 안이 웃음바다가 됬었죠.. 하하
  • xx 2008/08/05 11:12 # 삭제 답글

    허지웅은 요즘 촛불시위 나가나
  • 허허 2008/08/05 12:34 # 삭제 답글

    허기자님 공포 영화 마니아인 것 같은데 이번 한국 공포 영화 '고사'에 대한 리뷰를 볼 수 없을까요. 영화는 별로라고 들었는데 그래도 나름 할 말이 많으실 것 같아서. 영화기자다보니 영화는 보실 것 같아서요. 생각 있음 글로 좀 보고 싶습니다. 고사!
  • 윤군 2008/08/06 07:47 # 답글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제목을 바꾼 후 트랙백을 다시 넣었는데 중복되어 올라갔군요. 죄송합니다. 둘 중 위의 트랙백을 지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버쿠스 2008/08/06 14:06 # 삭제 답글

    어제 보고 왔습니다. 조커 완전 아름다웠습니다.
    순수함속에 보이는 아름다움이란......
    훌륭한 연기였고 다시한번 고인이 그리워집니다.
  • 하루 2008/08/06 14:15 # 삭제 답글

    전 미친놈을 제대로 연기하는 배우를 좋아하기때문에 한달전부터
    배트맨보단 히스 레져의 조커를 보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애타네요
  • 키르히아이스 2008/08/06 17:42 # 삭제 답글

    어제 극장에서 보고왔는데..단순한 이미지인지는 모르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브랜든 리의 크로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영화는 비긴즈 때도 그랬지만 뭔가 보고나면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 거 같아요..비긴즈 때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 동민아빠 2008/08/06 23:10 # 삭제 답글

    여름에 흔하디 흔한 블럭버스터 무비를 생각하고 본다면 실망할거고..

    정말이지 이건 너무나 멋지지 않습니까.

    조커 땜에 더더욱..
  • 뉴★。 2008/08/07 00:09 # 답글

    와, 방금 보고 왔습니다.
    이거 참. 손발이 오그라들고 보는 내내 소름이 돋고,
    너무 복잡한 심경이라 보고난 뒤
    가슴이 계속 두근거리고, 말이 한동안 나오질 않았어요.
  • ◆THE쿠마◆ 2008/08/07 13:45 # 답글

    준비되지 않았다는 데서 비롯되는 공포. 전율. 어찌할래야 어찌할 수 없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 여러분, 이게 히스 레저의 조커입니다.

    오늘 보고 왓는데 이 문구 너무 와닿네요.
  • 리얼 2008/08/07 16:54 # 답글

    "존재" 에대한 영화, 어디서 연유해서 흘러왔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 서로의 존재 자체가(조커-배트맨) 존재 이유임을 절실히 이야기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 안타깝다 2008/08/07 20:29 # 삭제 답글

    조커의 연기를 보고 히스레저 너무 좋았는데

    그의 짧은생에가 너무 안타깝네요

    영화 또 다시 봐야겠네요 ㅡ.ㅡ
  • zzz 2008/08/10 23:16 # 삭제 답글

    이건희는 돈만 밝히는 마피아가 적절할 듯하네요..
    순수한 악, 순수한 정의, 그리고 2가지를 모두 갖춘 캐릭들은 경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ㅋㅋ
  • tactin99 2008/08/13 15:00 # 답글

    "월 스트리트 저널은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부시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논평을 늘어놓기도 했다(너무나 적절하지만 이 매체는 부시를 향한 상찬의 목적으로 이런 문구를 사용했다)."

    부시를 향한 상찬의 목적이라는 것은 공감하나 적절하지는 않군요. 고뇌하는 미국이라... 상상이 가질 않아서
  • 키에 2008/08/13 21:23 # 답글

    아아 정말 히스.. 히스 때문에라도 다크나이트 DVD는 꼭 소장해야 할 것 같아요.
  • 2008/08/18 13:34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눈여우 2008/08/31 15:09 # 답글

    전갈이 든 상자... 가 압권이군요. 뭔가 파밧 하고 꽂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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