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책] 당신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살풍경

여러분 나는 지금 울고 있어요. 이건 그러니까, 꽤나 오래된 내 바램이었다. <피의 책>의 복간 말이다. 언젠가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쓰기도 했었지 아마. “제발 부탁입니다. 어디라도 좋으니, 제발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 좀 다시 찍어내 주세요. 일단 저부터 맹세코 10권은 팔아드리겠습니다. 씨엔씨미디어 망하고 스즈키 코지 소설이 죄다 황금가지에서 나오고 있던데. 기왕지사 좋은 일 하는 거, 우리 못난 자식새끼 하나만 더 부탁합시다. 번역은 씨엔씨미디어판도 꽤 좋았어요.” 기다렸어요. 기다렸다고. 왜 이렇게 늦은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이렇게 목 놓아 재회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됐으니 고맙습니다. 그간 헌책방을 돌고 돌아 헤집고 뒤집어 들쑤시면서 그토록 찾기를 공들였던 피똥의 역사가 아아 그것 참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친다. 왠지 울고 싶어졌어. 거 설레발 되게 길다.




클라이브 바커 하면 아무래도 <헬레이져> <헬바운드> <캔디맨>이 먼저 떠오른다. 그의 호러영화는 다른 자들의 그것과 궤 자체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토브 후퍼를 떠올리면 전기톱으로 뭔가를 썰어내는 이미지가 겹쳐진다. 존 카펜터 하면 뭔가를 쓱싹 베는 장면이 떠오른다. 클라이브 바커는 맨 손으로 살을 뚝 떼어 희롱하고 짓이기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를 표현하는 영화적 수사가 미려하기 짝이 없어 눈을 부비고 다시 읽고 또 읽게 된다. 그 위로 “고통, 오 달콤한 고통이여” 따위 대사마저도 더 없이 철학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특유의 공기가 겹쳐지고 나면 이젠 정말 당해낼 재간이 없다. 가만 보고 있노라면 나는 과연 정상인일까, 이런 데서 아름다움을 느껴도 되는 걸까, 수시로 좌절하게 된다. 가만 보면 묘하게 굴욕적이다. 내가 왜 이런 피비린내에 동하고 있지. 요컨대, 클라이브 바커의 잔혹함이란 보면 볼수록 처연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도무지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다. 뭐랄까. 희롱당하고 있다는 기분이랄까. 어머 그렇습니까. 어머 그렇습니다. 아주 정확히 ‘희롱’이지요.

클라이브 바커의 텍스트는 대개 대사보다 묘사와 수사로 가득하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등장인물의 머릿속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수사는 아무리 거듭 읽어도 질리지 않는, 담배와도 같은 맛이다. 도무지 매번 다른 농도와 찰기를 띠는 핏덩이 같은 것이다. 이런 식의 미덕은 영화보다 소설에서 더욱 강력하게 발휘된다. 작가 클라이브 바커의 이력과 신화, 그 출발점에 위치한 단편집 <피의 책>은 그야말로 공포와 파괴와 성욕과 식욕의 난장이라 할 만하다. 나는 그 내용에 대해 여기 주절주절 늘어놓을 생각이 추호도 없다. 사실 <피의 책>에 실려 있는 작품들에 대해 문자 몇 가지를 동원해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무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질퍽한 무게감은 직접 읽고 체험하고 눈앞에 그려봐야 온전히 알고 빠질 수 있다.

오는 8월 중순에는 <피의 책>에 실린 단편 가운데 가장 인기 좋은 <한 밤의 식육열차>의 영화판이 개봉한다. <버수스>의 기타무라 류헤이가 연출했는데 제작자로 참여한 클라이브 바커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일일이 지적하고 조언한 모양이다. 솔직히 클라이브 바커 본인이 연출했으면 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당신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살풍경이 곧, 공개된다. 두근두근. 아 행복하다.





피의 책 - 10점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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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인님의 방 : 잠깐 memory loading... 2008-07-24 23:56:08 #

    ... &lt;한 밤의 식육열차&gt;란 얘기가 어떤 분의 이글루에서 나왔다.http://ozzyz.egloos.com/3836850내 기억에 의하면 대충 100년 전 즈음에 이와 똑같은 내용을 가진 소설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또 하나 더 있다. 그건 맨 마지막 ... more

덧글

  • 우왕ㅋ굿 2008/07/23 22:15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제가 1빠입니다.
  • RedRum 2008/07/23 22:19 # 답글

    구판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득 본 기분(...) 영화도 기대중입니다.
  • nippang 2008/07/23 22:21 # 답글

    이왕 하는김에 스티븐 킹의 Different Seasons도..ㅠ.ㅠ
  • ArborDay 2008/07/23 22:37 # 답글

    서문만 읽었는데도 황홀하네.
    기왕 내주는거 완전판으로 내주지. 짭~
  • 2008/07/23 22:4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디오니 2008/07/23 23:07 # 답글

    하하. 이제 10권 사셔야 되는 건가요? ^^
    13일에 시사회에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벌써부터 기대로 가슴이 벌렁벌렁합니다. 후훗
  •  승 2008/07/23 23:13 # 답글

    오오, 저도 읽어봐야겠는걸요. 영화도 기대됩니다.
  • sang 2008/07/23 23:23 # 삭제 답글

    이미지들은 멋있지만...(책표지 빼구요 ㅠㅠ) ㅎㄷㄷ

    (읽을까 말까 읽을까 말까 서점가서 보고 결정할래요 ㄱ-)
  • 고양이대학살 2008/07/24 01:26 # 답글

    헉, 이게 다시 나오는군요...이 시리즈 중에 나온다고 한 3권이 안나왔는데....굳어서 바랜 피색이려니 하던 커버의 옛 책보다 앗살한 커버네요.
  • qwer999 2008/07/24 02:18 # 삭제 답글

    영화 개봉에 맞췄나보군요.
    이번엔 시리즈가 다 나왔음 좋겠네요.

    구판 피의책을 분실해서 대좌절중이었는데 이게 왠 선물!
  • 카디악 2008/07/24 03:57 # 삭제 답글

    오오오~!!!!!!
    혹 그안에 낸시 A 콜린스의 단편인 [에이프라]도 들어가나요?
  • 금린어 2008/07/24 09:16 # 답글

    아, 역시 우리나라에선 영화가 개봉해줘야 복간도 되고 재판도 되고 하는듯... 부디 영화가 히트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관련 서적들이 다 나와주지;;;

    저도 고등학교때 근처 서점서 새거나 다름없는 헌 책을 사서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 --G-- 2008/07/24 11:03 # 답글

    저도 샀어요~♪ 도서관에 주문도 했구요~♬ 이로서 저는 총 세 권(?) 산 꼴이 되었습니다:)
  • 우노히카 2008/07/24 13:10 # 답글

    10권 사셔야할듯... ㅋㅋㅋ
    구권 얼마전에 중고로 구입했는데 신간 나오는것도 모르고...번역이 조금 거시기해서 남겨두고 있었는데 신권으로 구입해야겠어요 ^^
  • 2008/07/27 12:29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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