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의 키노키ㅣ핸콕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겠니)
핸콕은 평범하지 않았다. 핸콕은 우리와 달랐다. 그래서 우리는 핸콕을 미워했다. 핸콕이 택한 길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 완벽한 타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그를 슈퍼 히어로라 부른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만났을 때 공포를 느낀다. 공포를 이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편한 건 상대를 우리가 아닌 다른 그 무엇으로 타자화하는 것이다. 더불어 매도하고 욕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함께 미워하다보면 공포는 쉽사리 잊힌다. 공포가 지나간 자리에는 증오만 남는다.
<나는 전설이다>의 로버트 네빌도 같은 감정 속에서 전설이 됐다. 이미 세상의 주류가 된 뱀파이어들이 ‘자신들과 다른’ 인간 네빌을 두려워하다 못해 끝내 증오하고 살해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최후의 인간이었기에, 네빌은 전설이다. 이것은 소설 속 이야기도 이론도 아니다. 호모 포비아부터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행형의 현상이다.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미워한다.
<핸콕>의 주인공 핸콕은 하늘 아래 둘 도 없는 문제아다. 어딜 가든 말썽을 부리고 미움을 산다. 습관적으로 음주를 하고 애꿎은 기물을 파손한다. 응당 어느 누구도 핸콕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가던 아기조차 핸콕을 손가락질 한다. 공공의 적이고 꼴통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떤 규정도 제도도 공권력의 이름으로 그를 막을 수 없다. 핸콕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초인이다. 핸콕은 슈퍼 히어로다.
피터 버그 감독의 신작 <핸콕>이 관객에게 소구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기존 히어로 영화의 익숙한 관습을 깨부수어 재구성하면서 동력을 얻는 것이다. 종래의 히어로란 평화를 사랑하고 인명을 지키는 존재다. 핸콕은 인명을 지키되 평화나 세상에 별 애정이 있는 건 아니다. 도무지 염세적이다. 끊임없이 술을 마시고 공공재를 파손하며 악명을 쌓는다. 언론과 경찰에선 연일 핸콕을 규탄하는 기사와 성명을 발표한다. 흥미로운 건 스스로에게 쏟아지는 온갖 욕지기를 들으면서 핸콕이 무척 슬퍼한다는 사실이다. TV를 바라보는 핸콕의 모습은 당장 울 것만 같다. 자업자득임에도 그렇다. 그러니까 실은, 마음에도 없는 위악이다. 흡사 끊임없이 여자에게 못되게 굴면서 정작 사랑받길 원하는 남자의 위악과 같다.
영화의 설정은 마츠모토 히토시 감독의 2007년 작 <대일본인>을 확연히 연상시킨다. 일본에 ‘대일본인’이라는 이름의 슈퍼 히어로가 살고 있다 가정하고 전개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주인공은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 국가로부터 지급되는 연금으로 연명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대일본인의 전투에 열광하지 않는다. 출몰하는 괴물과의 싸움은 화젯거리가 되지 못한다. 재미없고 밋밋하며 심심한 관성일 뿐이다. 심지어 자꾸 기물이 훼손되자 대일본인은 완벽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다. <대일본인>과 <핸콕>은 ‘미움 받는 슈퍼 히어로’라는 소재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두 작품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대일본인>의 히어로는 본래 인간이다. 영웅으로 활동하려면 전기충격을 받아 몸집이 커져야 한다. <핸콕>은 다르다. 핸콕은 인간이 아니다. 그는 대중에 의해 우리와 다른 그 무엇으로 타자화된 존재다.

<핸콕>은 중반까지 핸콕을 변화시키기 위한 PR 전문가 레이의 노력을 비춘다. 레이는 핸콕의 행동을 교정함으로서 그를 존경받는 히어로의 위치에 올려놓으려 한다. 말을 듣지 않던 핸콕도 조금씩 움직이고 협조한다. 전형적인 히어로 복장에 별 말썽 없이 착지하고 날아오르며 범죄자를 소탕하기 시작하는 핸콕의 변신은 과연 성공적인 듯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핸콕의 문제는 과연 온전히 핸콕 개인의 문제고 병인 걸까. 교정되고 개선되어야 하는 건 핸콕의 행동뿐인가. 핸콕을 둘러싼 대중의 시선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여기 두 가지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하나는 핸콕의 대사다. “사는 게 쉽지 않아요. 나는 남들과 다르잖아요.” 다른 하나는 외롭게 집으로 돌아가 뭔가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있는 핸콕의 모습이다. 그의 손에는 (핸콕의 과거와 연관된 영화적 장치인) 영화 티켓 한 장이 들려있다. 영화의 제목은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타자화된 ‘다른 존재’의 대명사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을 만들었다. 애초 괴물의 영혼은 갓 태어난 아기 같았다. 그러나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요컨대 ‘다른’ 외모를 견딜 수 없어 박사는 괴물을 버렸다. 쫓겨난 괴물은 광장에 나섰다.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이 괴물의 추악한 용모에 공포를 느꼈다. 또한 증오했다. 날아오는 돌을 묵묵히 맞으며, 배신을 당하며, 최소한의 온기를 거부당하며 괴물은 맹세한다. 인간에게 복수하고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죄를 묻기로. 사람들로부터 두려움과 증오를 받으며 점점 더 위악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핸콕의 모습이 자연스레 날아와 겹쳐진다.
요컨대 슈퍼 히어로란 극단화된 타자, 괴물의 또 다른 모습이다. 망토 두른 히어로나 그에 쫓기는 괴물이나 분열적 존재라는 점에선 다를 게 없다. 핸콕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닮은꼴이다. 자신이 누군지, 어디로부터 왔는지, 왜 남들과 다른지에 대해 고민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그렇게 섞이지 못하고 완벽한 타자로 낙인찍혀지는 순간, 상대는 슈퍼 히어로 혹은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엑스맨>을 떠올릴만하다. 남들에게 없는 비범한 능력 때문에 따돌림과 위협을 당하던 돌연변이들의 이야기는 슈퍼 히어로와 괴물을 가르는 경계가 흐릿하거나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핸콕>은 흥미롭되 뒤로 갈수록 맛이 달아나는 풍선껌 같은 영화다. 슈퍼 히어로의 사회적응과 자아 찾기라는, 매력적인 소재로 시작했던 영화는 엉뚱한 로맨스가 끼어들면서 산꼭대기로 치닫는다. 그 마지막은 슈퍼 히어로서의 운명을 처연하게 받아들이고 허공을 가르는 핸콕의 모습을 비춘다. 초탈한 도인 같은 표정으로 말끔한 슈트를 입고 도심을 통과하는 핸콕의 모습은 언뜻 여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행복하다기보다 그저 체온이 사라진 박제처럼 느껴질 뿐이다. 남들과 다른 타자로서 고통 받으며 섞여 어울리길 바랐던 핸콕을, 영화는 완벽한 타자-슈퍼 히어로의 전형적 위치로 돌려놓으면서 끝을 맺는다. 신선했던 전복은 구태의연한 반동이 되고 개선은 개악이 된다. 사회적 개인으로서의 욕망을 제거 당해버린 핸콕은 이제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핸콕은 평범하지 않았다. 핸콕은 우리와 달랐다. 그래서 우리는 핸콕을 미워했다. 핸콕이 택한 길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지 않을 법한, 아주 완벽한 타인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런 그를 슈퍼 히어로라 부른다. 차라리 알콜 중독에 걸려 하루하루 괴로워하며 관계를 고민하던 초반의 핸콕이 더 사랑스럽다. 계몽의 손길을 뻗치는 레이의 진심은 제아무리 선의를 전제하고 있다하더라도 도무지 짜증스럽다. 아 좀 그냥 내버려두면 안 돼? 그냥 좀 더 고민하게 두면 안 되는 거였어? 걔는 세상 끝날 때까지 사랑도 섹스도 욕망도 없이 그렇게 살아야하는 거야?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핸콕은 윌 스미스다. 잘 생기고 키도 훤칠하고 딱 달라붙는 유니폼도 잘 어울리고. 무엇보다 불사신이다. 초능력을 가졌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주변에 엄연히 어슬렁거리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핸콕과 달리 지금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타자-괴물-사회소수자들은 하늘을 날 수도 악당을 단죄할 능력도 없다. 못 생기고 돈도 없고 초능력마저 없는 타자라면 대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그래서 다시 한 번 되풀이되는 질문. 핸콕의 문제는 과연 온전히 핸콕 개인의 문제고 병인 걸까. 교정되고 개선되어야 하는 건 핸콕의 행동뿐인가. 핸콕을 둘러싼 대중의 시선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초능력 없는 대한민국의 타자-괴물-사회소수자들이 살아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우리’가 아닌 ‘그들’에게서 찾는 게 과연, 정당한가. 허지웅 (<프리미어> '허지웅의 키노키')




덧글
laystall 2008/07/09 13:37 # 답글
참 잘 읽었습니다.로퍼 2008/07/09 14:19 # 삭제 답글
재밌는 해석입니다. 만은, 오락영화에 너무 심각하신 건 아닌지? ㅎㅎ사람들이 핸콕을 미워한거야 그 친구가 사고를 치고도 반성은 안 하고 다니는 게 많아서 그렇지, 정말 '다르다'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했을까요 설마. 만약 그랬다면 다르다는 이유로 좋아했을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슈퍼히어로지 않습니까)
미스트 2008/07/09 14:55 #
오락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재조명 하는거죠.재밌었어 2008/07/09 16:06 # 삭제
단순한 오락 영화로 보기엔 소재자체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였던것 같습니다. 저도 글 쓰신분 같은 생각을 했죠. 단순하지 않은 문제를 단순한 오락 영화로 그려내는것.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한번쯤 생각하게 만든 영화가 아니었나 싶어요슬라임군 2008/07/09 14:25 # 답글
어이쿠, 주말에 보고 핸콕 감상 '이렇게 써볼까~'하고 생각했던 얘기를 몇만배 더 논리정연하게 잘 정리해주셨네요. ^^ 잘 읽었습니다...공감 한표!2008/07/09 15:3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monopiece 2008/07/09 15:38 # 삭제 답글
여러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을거에요.초반의 핸콕의 생각은 지금 이나라의 대통령이 선출된 것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 = 악당만 잡으면 된다.
핸콕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악당도 잡고, 공공기물 파손과 더불어 부드럽게 잡으면 안되겠니?라는 설정.
우리사회에 대한 비유를 하자면...경제를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바꾸는 것 보다 모든 것을 바꾸고, 거짓말 하면서 바꾸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정직하게 반성해야 한다는 의미로 두고 싶습니다.
글 잘 봤습니다. 트랙백 하나 걸어두겠습니다...^^ 저도 어제 핸콕을 만나고 왔습니다.
단팥빵 2008/07/09 15:42 # 답글
문득 생각난건데, 그러고 보니 슈퍼맨 아저씨는 왠만해선 착지할 때 속도조절 잘 하더라. 아니, 그냥...날밤 2008/07/09 16:04 # 삭제
슈퍼맨 리턴즈 에서는 잘 조절하지 못한듯 해요.. ㅎㅎ그 인공 섬에서 착지할때 바닥이 패였다능... (열받아서 그랬나...) (저도 그냥....)
케야르캐쳐 2008/07/09 15:57 # 답글
덧글은 처음다는 것 같은데..잘읽었습니다.
날밤 2008/07/09 16:02 # 삭제 답글
오락영화지만.. 상당히 슬픈 영화군요...나나 2008/07/09 16:19 # 답글
슈퍼히어로와 괴물의 차이점....;ㅁ; 슈퍼히어로가 다른 나라 사람이면 슈퍼히어로겠지만..제 옆집의 사람이라면 괴물이 될수도 있겠군요 ㅜㅜ
이건 정말 관계의 문제네요..
예영 2008/07/09 17:57 # 답글
그러고 보니, 수퍼 히어로들은 흔히 자기 정체를 숨기지 않습니까?핸콕은 자기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르군요.
마블사의 수퍼 히어로들은 자기 정체를 숨기느냐 드러내느냐를 놓고 전쟁까지 치루었다는데 말입니다.
동성애자의 성정체성 고백처럼, 남과 다른 자신을 드러낼 것인가, 사회와 어떻게 어울릴 것인가는 심각한 문제네요.
칼스매냐 2008/07/09 18:45 # 삭제
막장에 대놓고 밝히는 아이언맨도 있긴 하죠.그리고 생각해보니 둘 다 올해 스크린에서 만난 히어로들이군요. :)
로오나 2008/07/09 21:23 # 답글
우리의 곁에 있는 일상이라는 점이 다르고, 결국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만 만나도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와닿는 점이 좋았죠. 아쉬운 점도 많은 영화이긴 합니다만.February 2008/07/09 21:50 # 답글
제목은 정확히 기억안나는 성인을 위한 그림 동화인데, 엄청 사나웠던 늑대가 인간 세상에 잡혀와서 발톱이 뽑히고 눈빛도 순해지고, 그렇게 길들여져 가는 과정을 그린 동화를 봤어요.이상하게도, 분명히 좋은 과정이라는 건 알겠는데, 진짜 이상한 게 왜 그게 슬프게 느껴지는지, 왜 나를 보는 것 같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레이 2008/07/09 22:30 # 삭제 답글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라고들 하죠. (모방이었나요? ^^?)성격상 파괴는 못하는 저로서는 허지웅님의 순수본능이 부럽습니다.
글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건필하시길.
^^
그라드 2008/07/10 00:08 # 답글
처음의 즐거움에 비해 전개가 아쉬웠던 건 저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제게도 재밌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카프마리탕 2008/07/10 02:16 # 삭제 답글
오호~~~멋진곳이군요...부럽습니다. ㅋㅋㅋ 나와 코드가 맞는것 같아서 좋군요. 잘보구 갑니다.지니지니 2008/07/10 04:42 # 삭제 답글
음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난 견우와 직녀 얘긴가 했는데..
한편 이야기를 하다만 듯한 느낌은 없지 않았지만 볼만했답니다.
올만에극장 2008/07/10 12:19 # 삭제 답글
핸콕.. 진짜 액션은 멋진데 스토리나 설정 막장인듯..우리나라 고전소설보다 더 심한 우연의 일치는 뭔지? 우연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는 이제 그만..
PR전문가와 핸콕이 만나는 기차신.. 이거 지금 장난하나.. 설명하기도 귀차나.. 본사람은 알겠지 --;
거기다 병원에서 핸콕을 죽이려고 한 악당3마리.. 핸콕이 불사신이라는걸 뻔히 알면서
어떻해 그렇게 완벽한 타이밍에(그그.. 여자랑 같이있으면 초능력없어지는 상황) 나타나서
핸콕을 반죽음상태로 몰아넣는지하며.. (개쩌는 우연)
계속 슈퍼히어로 운운하는데 ~ 뭔가 그런 류의 고뇌는
베트맨비긴즈나 헐크(에릭바나주연)가 훨씬 낳단말씀.. 어쨋든 이영화는 후에 ONC으로 보는걸 추천한다..
2008/07/12 02:58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2008/07/12 18:05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