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의 키노키ㅣ<더 킹> 너의 죄를 사하노라.
<더 킹>은 용서에 대한 이야기다. 용서를 하는 자의 권위와 받는 자의 착각을 논한다는 점에서 이창동의 <밀양>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미묘하게 다른 지점 탓에 <더 킹>은 좀 더 급진적이고 공격적으로 세계의 허위를 논하고 나서는 영화가 된다.
죄를 짓지 않고 살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 평생 비폭력을 실천한 간디도 물레를 돌리며 여자를 그리도 탐했다. 물론 영적인 이유였다지만. 인도의 방직산업이 지속적으로 번창할 수 있었던 건 모두가 간디의 삶을 탐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죄가 있으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형을 살 수도 있고 마음의 병을 얻는 경우도 있다. 전자를 인내한 자라도 후자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원래 때린 놈이 더 아픈 법이다. 진심으로 용서하기도, 솔직하게 용서받기도 어려운 일이다.
구하는 자가 있는 곳에 제공하는 자가 있다. 이를 일컬어 시장이라 부른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용서 대행 서비스가 성업을 이뤄왔다. 철수를 때렸으면 철수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용서 대행 서비스는 자신들의 교리와 성전에 그 과정을 위탁하라 주문한다. 대신 용서해주는 자의 권위가 강하면 강할수록 사업은 꾸준히 번창했다. 편할뿐더러 뭔가 있어 보이는 덕에 이사업은 수천 년간 지속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종교가 그렇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 어머 제 몸이 깨끗해졌어요. 죄가 사라졌으니 참 아름다운 세상이다.

얼마 전 국내 개봉한 제임스 마쉬의 <더 킹>은 바로 그 용서의 위선 섞인 실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영화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미국 텍사스의 지역 중산층 마을을 비추며 시작된다. 이제 막 해군에서 전역한 엘비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가 마을에 당도한다. 그는 누군가를 찾는 눈치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꽤 훌륭해 보이는 교회다. 교회에선 목사 데이빗(윌리엄 허트)의 강론이 한창이다. 예배 이후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데이빗은 차 뒤를 쫓는 엘비스의 존재를 깨닫고 멈춰 선다. 사연인 즉은, 데이빗이 목사가 되기 전 방탕한 삶을 살던 시절 뿌린 씨앗이 무럭무럭 장성해 이렇게 찾아온 것. 그러나 데이빗은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들출 용기도, 가족과 교회사회의 냉담을 견딜 자신도 없다. 데이빗은 엘비스를 매몰차게 내친다.
외면당한 엘비스는 마을의 피자집에 취직한다. 동시에 무슨 생각인지 데이빗의 딸 멜러리와 위험한 사랑을 시작한다. 이를 눈치 챈 데이빗의 장남 폴(폴 다노)이 엘비스를 찾아가는데, 엘비스는 그만 우발적으로 폴을 죽이고야만다. 사라진 장남 걱정에 데이빗의 가정은 파탄이 나고 그 와중에 엘비스는 멜러리에게 범행사실을 자백한다. 데이빗은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신의 응답을 기다리지만 괴로움을 달랠 길 없다. 데이빗은 끝내 엘비스를 아들로 맞아들여 장남의 자리를 채우고야 만다. 이후 영화는 완연한 비극으로 치달아간다.
제임스 마쉬는 국내 관객들에게 아직 생소한 이름이다. 1999년 <위스콘신 데스 트립>으로 데뷔한 그는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신작 <맨 온 와이어>로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한꺼번에 거머쥔 행복한 자다. 세 편의 필모그래프 중간에 위치한 <더 킹>은 제임스 마쉬의 2005년도 작품이다. 국내에는 조금 늦게 소개된 셈이다. 같은 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돼 감탄과 지탄을 동시에 받았던 <더 킹>은 여러모로 민감한 이슈들을 건드린다. 살인, 방화는 물론이거니와 근친상간까지 등장한다. 그렇다고 이미지상의 충격이 유효한 영화는 아니다. 눈을 돌릴만한 장면은 없다. 오히려 화면은 정적이고 전개마저 느릿하며 이미지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다만 머리가 복잡하고 심장이 덜컥해 영화가 끝나고 나면 바닥에 떨어진 심장 찾느라 한동안 일어서기 힘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다. 윌리엄 허트의 존재감은 유별나고 <데어 윌 비 블러드>에 이어(사실은 ‘앞서’) 또 다시 개신교 교리에 심취한 인물을 연기하는 폴 다노는 될 성 부른 잎의 체온을 끝내 담아낸다. 그 가운데서도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몰입도는 허를 찌를 만큼 박력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엘비스의 개성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서툰 듯 보이는, 그러나 완벽하게 계산된 손짓과 눈빛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광기와 순전한 동심이 공존하는 엘비스의 표정에 다른 배우의 얼굴을 겹치는 작업은 쉽지 않다. 그런 건 도무지 떠올릴 수조차 없다.
영화 속에서 엘비스는 언뜻 자신을 냉대한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려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더 킹>은 또 한 편의 복수극이다. 그러나 단순한 감정의 과잉과 의도된 복수로 보기에 <더 킹>의 이야기는 좀 더 깊고 예민한 구석이 있다. <더 킹>은 엘비스의 복수극이라기보다 누가 누구의 죄를 사한다는 행위의 얇은 셈을 의심하게 만드는 영화다.
요컨대 <더 킹>은 용서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선 대사와 상황을 통해 크게 네 개의 용서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데이빗의 몫이다. “(과거 엘비스를 잉태한)그 죄는 이미 신에게 용서 받았어.” 두 번째는 엘비스가 오빠를 죽였다는 걸 알아챈 멜러리 차례다. 그녀는 오빠가 죽은 곳으로 찾아가 엘비스로 하여금 참회의 기도를 올리게 한다. 그리고 용서한다. 세 번째는 엘비스를 사라진 장남의 자리에 채워 넣으려는 데이빗의 간증이다. 그는 예배 도중 급작스레 과거 자신의 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 내 아들이 찾아왔다고 외친다. 실망한 몇 사람은 교회를 뜬다. 그러나 대다수 신도들은 감탄하고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낸다. 우리는 용서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엘비스가 구하는 용서다. 새 가족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엘비스는 곧장 교회의 데이빗을 찾아가 두 팔을 벌리고 말한다. “이제 나를 용서해줄 차례에요.”
엘비스는 애초 복수 따위 염두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그 때는 죄의식을 느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의도적이었다. 잠자리 날개를 뜯다가 어른에게 들킨 아이처럼, 엘비스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별다른 죄의식 없이 또 다른 살인과 방화를 저지를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이 세상이 얼마나 쉽게 용서하고 또한 용서받는지 깨달은 것이다. 와 편하다. 흡사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라는 노래처럼 “용서 시작했다, 용서 끝났다”다. 혹은 <북두신권>에서 “너는 3초후 죽는다”고 말하는 켄시로를 떠올리게 할 만큼 간단하다. “너는 3초 후 용서받는다.” 이토록 쉬운 세상에서, 엘비스는 이미 더 킹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누굴 죽이든 범하든 그러거나 말거나.

용서를 다룬다는 점에서 <더 킹>은 이창동의 <밀양>을 연상시킨다. <밀양>은 용서가 하늘의 몫이 아닌 인간의 몫이라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그 원작 <벌레 이야기>는 광주에 대한 이야기였다. 광주 사람들 누구도 살인한 자들에 대해 용서할 생각이 없는데, 정작 살인한 자들과 그 뒤를 이은 자들은 청문회다 뭐다 하면서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고 위령비를 세우고 공원을 만드는 꼴이란. 그런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반면 <더 킹>은 용서의 몫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보다, 과연 진정한 용서라는 게 가능한 것인지 반문하는 모양새다. 우리는 우리를 용서할 능력이 있는가. 혹시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말하고 논하는 용서가 그냥 말 뿐인 환상은 아닌가. 우리 주변을 둘러싼 세상이 너무 아름답고 살기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매우 간편한 자기만족이 아니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것 참 듣고 보니 과연 그럴지도.
파국의 결말 이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운 교회 밖 정원을 비춘다. 조용하고 또 조용한, 천국의 평화가 펼쳐져있다. 그러나 그 이면이 어떤지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더 킹>이 상영되고 있는 극장을 빠져나오자 바로 광화문 거리가 펼쳐졌다. 여전히 시위가 한창이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게 평온할 것이다. 요즘 날씨가 오죽 좋아야지. 우리가 안전하고 평화롭다고 믿는 세계는 얼마나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나. 그 위장된 평화를 바라보며, 나는 좀 무서워졌다. 허지웅 (<프리미어> '허지웅의 키노키')




덧글
백월 2008/06/26 10:48 # 답글
언젠가 쓰신 글과 연관되기도 하는군요.제이드 2008/06/26 13:05 # 답글
용서 대행 서비스로군요.정작 용서해야 할 사람 몰래 어디선가 이뤄지는..
황금숲토끼 2008/06/26 13:58 # 삭제 답글
정작 그 종교 경전에는 "예배를 드리기 전 싸웠던 일이 생각나면 즉각 그 사람에게 가서 화해하고 용서받고 와라" 라고 되어 있는데 말이죠. "신에게 용서받았으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없어" 라는 기괴한 논리가 널리 악용되고 있어서 막막합니다....카도 2008/06/26 14:06 # 답글
망설임 없이 티켓을 질러버렸습니다. 흑흑..ㅇ<-<louis 2008/06/26 16:58 # 삭제 답글
어제는, 안 다녀오셨나요? 집에 앉아서 방송 지켜보기 참 미안한 밤이던데요.혹시 오늘 나가신다면, 조심히 다녀오시길.
zZinY 2008/06/26 19:30 # 답글
아윽. 가엘가르시아베르날..ㅜㅜ 너무 좋아하는 배우.그림일기 2008/06/26 21:36 # 삭제 답글
이 글 읽으려고 오늘 보고 왔습니다.너무 좋은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sal 2008/06/26 21:37 # 삭제 답글
허지웅님의 글은 무엇을 다루든 현실을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서 잘 읽히고 재밌는 것 같습니다.잘 읽었습니다.
tehim 2008/06/26 21:45 # 삭제 답글
오랜만에 영화 리뷰가 올라와서 참 좋네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2008/06/26 21:47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oldmoon 2008/06/26 22:47 # 삭제 답글
어떻게 하면 글을 이렇게 쓸 수 있나요. 길지만 슥슥읽히고 추상적인 듯하지면 결국 현실에 와서 착륙하는.잘 읽었습니다.
sang 2008/06/27 10:57 # 삭제 답글
프리미어 사서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 (몇분 글들만 골라서 읽었지만..)역시 글은 종이로 읽어야.
프리미어가 월간지일때 생각이 나서 참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어요.
그때도 이렇게 시사적인 글들이 많았나 싶던데 제가 기억을 못하는건지.
phice 2008/06/29 04:09 # 답글
그래도 가끔은 용서구할데가 있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막연히 생각합니다.liz 2008/06/29 23:57 # 삭제 답글
라디오에서 이야기 들을 때도 완전완전 반가웠는데!크크.영화를 볼 때마다 비루하기 짝이 없는 감상문들을 끄적여놓거든요. 아는 것도 없고 심각하게 보지도 않지만, 그래도 보고 그 순간 봤던 나의 느낌들을 적어놔야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동안 곰곰이 생각해보고, 컴퓨터에 앉아 일단 그 영화를 검색해봐요- 혹시 내가 알지 못했던 감독의 다른 작품들이나 사상;같은 것이 있을까봐. (영화를 볼 때, 정말 '앗, 이거야!'하는 느낌으로 별다른 사전지식없이 영화를 택하는 편이라;) 그런데 이 영화는 포스팅된 것도 생각보다 별로 없어서 좀 벙-쪘었는데! 아, 정말 반갑고 너무 좋아요.
2008/12/13 01:5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