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꿈을 깼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눈을 뜨니 천장에 아침볕이 걸쳐 있다. 조금 열린 창문으로 따뜻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거짓말 같이 황폐한 꿈을 꾸었다. 마음이 여전히 아픈 걸 보니 와 정말 대단했어.

오른 쪽이 묵직해 고개를 돌렸다. A가 내 어깨를 베고 잠들어 있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A의 얼굴을 오랫동안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을 코에 넣었다가 입에 넣었다. 손톱으로 토끼 같은 앞 이빨을 긁었다. 두 손으로 뺨을 눌러 모았다. 입술이 툭 튀어나와 어부바. 그것 참 잘 생겼다. 이렇게 내가 너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툭툭 결국 깨워버렸다. 야옹아 이것 봐 정말 불쾌한 꿈을 꾸었다. 우리가 헤어졌다니깐. 일러바치듯 털어놓았다.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 A가 귀찮은 듯 대답하더니 나를 폭 안았다. 다리 사이에 허벅지를 끼우고 두 팔을 목에 감았다. 이러면 98퍼센트 정도 완벽에 가까운 자세가 된다.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튼튼해 원폭도 견뎌낼 만큼 단단하다. 아. 그래 그게 다 꿈이었다니. 다행스러워 뼈 속까지 행복하다.

A가 쪽지를 내밀었다. 여기 적어둔 것 가서 사와. 맛있는 거 해줄 게. 그래 배고프다.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를 주워 입었다. 신용카드와 쪽지를 양쪽 주머니에 넣었다. A가 눈치 채지 못하게 담배도 챙겼다. A는 내가 담배피우는 걸 무척 싫어했다. 현관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제법 볕이 뜨겁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마트를 향했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룩 빨았다 휴우 내쉬고. 가슴팍이 저릿한 게 아 충만하다.

마트가 보인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이상해. 손끝에 잡혀야할 쪽지가 없다. 카드만 있다. 주머니 속을 다 끄집어내 탈탈 털었다. 그래도 없어 나는 당황했다. 어디보자 쪽지에 뭐가 쓰여 있었더라. 뭐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쪽지를 받아들고 왜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지. 안 돼. 안 돼.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면 찾을 수 있을까. 그럴지도. 그러나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머리가 텅 비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뒤를 돌아볼 자신이 없다. 돌아보면 무언가 무서운 게 있을 것 같다. A가 보고 싶었다. 98퍼센트가 안되면 48퍼센트라도 괜찮으니 다시 안기고 싶다. 나는 왜 A가 준 쪽지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을까. 나는 왜 A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나. 너무 속상하고 미안해, 나는 애기처럼 엉엉 울었다.

다시 잠에서 깼다. 조용한 천장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반 지하에 볕이 들어올 리 만무하다. 다행히 날씨는 좋다. 바람도 적당하다. 새삼스레 세상이 참 맑네. 간밤에 꿈을 꾸었다. 마음이 여전히 아픈 걸 보니 와 정말 대단했어. 무언가 애틋하고 아련한 게. 그럼 꿈속에서 꿈이라고 생각했던 건 모두 현실인건가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위배되지 않는 것일 테지요. 위배요? 위배죠. 그것은 무엇에 대한 위배입니까. 그것은 진심과 오해의 쌍곡선 법칙에 대한 위배입니다. 진심이면 진심일수록 곧이 곧대로 보이고 들리지 않지요. 아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냥 다시 자볼까. 꿈꾸면 볼 수 있을까. 눈을 감았다, 뜨며 나는 조금 괴롭다. 쪽지를 잃어버리지 말자. 쪽지를 잃어버리지 말아야겠어. 쪽지를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쪽지는 영영 사라졌다.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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