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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재주가 많았다.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다. 헤어질지 모른다고 구두도 못 사주게 했다. 예뻤다. 무엇보다 나를 당장 죽을 것 같이 사랑해주었다. 나는 안심했고 좀 심하게 굴었다. 그래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일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 빨갛고 예쁜 구두 사줄걸 그랬어. 드디어 그 아이가 그려준 그림을 버렸다. 그 아이와 함께했던 사진을 모조리 버리고 지웠다. 삭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세 번을 울고 두 번을 토했다. 클릭은 빠르고 정확했다. 휴지통을 비웠다. 효과음이 무심했다. 모조리 사라졌다. 그러고 나니 내 인생에 3년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다. 텅.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내 온 몸을 꿰뚫어 콩처럼 박혀있었다. 안간힘을 다해 죄다 파내고 나니 온 몸에 살보다 구멍이 더 많아 빼곡하다. 구멍을 파고드는 기억이 치풍처럼 괴롭고 시리다. 어찌하나. 서울 시내 어느 곳 하나 그 아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는 곳이 없어 움직일 수가 없다. 우리가 우리집이라 불렀던, 나의 비좁고 습한 반지하 전셋방도 마찬가지라 이도 못 닦고 똥도 못 싸겠다. 사는 게 감옥 같다. 더럽게 미안하고 아프다. 이태원으로 이사가야지. 나는 삶이 이토록 부질없고 지리멸렬하며 예측 가능하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나는 더 잘해줬어야 했다. 나는 더 영리했어야 했다. 아무튼 인간의 연애란 있는 힘껏 부조리하다. 연애하는 짐승이 인간 말고 또 있을까. 이 따위 것 문명에서 지워버려야 옳다. 야 이 여자야. 눈에 힘주고 다녀라. 쉽게 보이지 마라. 너무 쉽게 남을 믿지도 마라. 다른 사람 생각보다 너 자신을 더 살펴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글을 내가 불쌍해서 나를 위로하려고 쓰고 있다. 나란 그렇다. 부디 행복하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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