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의 키노키] 인크레더블 헐크: 헐크는 여자가 없어도 울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대부분의 슈퍼히어로는 후천적으로 탄생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실험체냐 돌연변이냐 식으로 간지의 계급화가 이뤄지긴 하지만 어쨌든 뭉뚱그려 그렇다. 태어나면서부터 원래 잘난 자들은, 최소한 슈퍼히어로의 세계에는 흔치 않다. 또한 그 편이 슈퍼히어로 텍스트의 서사를 풍부하게 하기에 적합하다.
피나는 훈련이나 사고로 히어로가 된 이들은 다시 생물학적 히어로와 갑옷을 걸친 히어로로 구분된다. 피터 파커는 거미에 물렸고 벤 그림은 우주 폭풍에 휘말렸으며 브루스 배너는 감마선에 노출돼 온갖 민폐와 자기분열을 뚫고 영웅이 됐다. 또 한 편에서 브루스 웨인과 토니 스타크는 튼튼한 옷에 비싼 무기를 걸치는 것으로 히어로 그룹에 합류했다. 전자가 종종 생활고에 시달리는 반면 후자는 떡볶이를 주문하며 김말이를 섞을까 말까 고민할 필요가 없는 자들이다. 알아서 다 해주는 웨인의 알프레드나 알아서 다 해주는데 심지어 예쁘기까지한 스타크의 페퍼 포츠는 슈퍼히어로 세계의 야끼만두 같은 처연함을 실감하게 하고야 만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불공정의 끝을 보지 못했다. 브루스 배너의 경우, 우리는 계급투쟁의 문제를 떠나 피와 뼈가 분리되는 인고의 경지로 그를 연민할 수밖에 없다. 화가 나면 녹색괴물로 변해 주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헐크의 어디가 어떻게 불쌍하냐고. 헐크의 바지 속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안 봤으면 말을 말아요. 폐부를 찌르고 가르는 슬픔이 거기 있습니다.

헐크는 흥분했을 때 크기가 커지고 힘줄이 튀어나온다. 발기한 성기의 이미지가 자연히 겹쳐진다. 옛 어르신들 말씀에 똘똘이가 화났다고. 거대한 성기가 쿵쿵 뛰어오는 진풍경을 감상하는 가족관객의 단란함이란. 과연 헐크는 남성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헐크는 야성적이되 음탕해보이지 않는다. 헐크의 남성성은 색욕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변강쇠적이다. 이를테면 성적으로 무지한 금발 글래머의 치명적인 매력과 유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헐크의 성적 능력은 전투 능력에 버금가는 것일까.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브루스 배너는 심박동수 200을 넘어가면 헐크로 돌변한다. 이 법칙은 딱히 화가 났을 때뿐만 아니라 여자와 몸을 섞어보려 할 때도 매한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다. 뭔가 해볼 만하면 헐크가 된다. 그러나 개망나니 헐크는 성적으로 무지하다. 혹은 고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거대한 성기를 연상케 하면서도 붉지 않고 오래 묵은 듯 퍼런 피부색. 착 달라붙은 바지 가운데가 조금도 볼록하지 않은 것을 보면 과연 그럴지도. 그렇다. 브루스 배너의 비극은 섹스를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생물학적 정조대다. 심지어 자위마저 애틋하다. 왼손과 크리넥스 사이의 시간 동안 헐크가 나타나고 말 것이다. 아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헐크가 광분하는 이유는 결국 욕구불만이다. 노처녀 히스테리와 비슷하다. 그를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베티 로스라는 게 그 증거다. 브루스 배너가 베티 로스를 볼 때마다 먼발치에서 왜 그리도 괴로워하는지,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몸 안의 헐크를 지워내길 바라는지 이제야 알 수 있다. 토니 스타크가 영웅행세를 하면서도 여자들과 히죽대며 정력을 과시하는 동안, 브루스 배너는 어금니 꽉 깨물고 구도와 깨달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코믹스의 헐크가 아이언맨에게 유독 독하게 구는 이유를 알만하다(토니 스타크에게는 폭주한 헐크를 제어하기 위한 별도의 갑옷 ‘헐크 버스터’가 있다). 그 길고 긴 밤 브루스 배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헐크의 인권은 대체 누가 책임지나요.

물론 신작 <인크레더블 헐크>가 헐크의 인권을 연민하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그 속내를 상상하면 훨씬 재미있게 볼만한 구석이 너무 많아 번잡스럽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베티 로스는 몸 안의 헐크를 지우려는 배너에게 어째서 “그냥 조절하는 방법을 찾으면 안 될까”라고 묻는 걸까. 조절에 성공해 거기만 분노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끝내 분노 조절에 성공한 배너의 눈빛은 왜 그리도 촉촉하게 젖어있나. 에드워드 노튼의 속 깊은 연기에 찬사를.
<인크레더블 헐크>는 <아이언맨>에 이은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두 번째 히어로 영화다.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마블이 남들 배불리기 그만두고 직접 해먹겠다고 나서 세운 제작사다. 제대로 작정한 덕인지 <아이언맨>이나 <인크레더블 헐크> 모두 40년 전통 코믹스의 맥락을 고스란히 압축하는데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재미마저 결코 놓치지 않는 순발력을 발휘한다. 요컨대, <인크레더블 헐크>는 영리한 영화다. 팬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객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우리가 히어로 무비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 하고 또 지루해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필요 없는 건 과감히 생략하거나 헐크의 속도로 지나쳐갈 만큼 과감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비교하는 작업이 이뤄질 테니 꺼내는 말이지만, 이안의 <헐크>는 대단히 과소평가돼있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헐크>는 매력적인 영화였다. 블록버스터 오락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그리스 비극의 속내를 코믹스의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이안의 연출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헐크>와 다른 영화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무척 볼만한 오락영화다. 다른 맥락에서 취급해야 두 영화 모두에게 공정할 수 있다. 적확한 평가도 그래야 가능하다.
<인크레더블 헐크>가 갈등을 배치하고 서사를 진행하는 전략은 <아이언맨>과 유사하다.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전술은 그 셈이 빤하되 효과적이다. 영화적 완성도를 따져 이야기를 고민하기보다 갈등-대결로 구성을 단순화시키고, 속편과 크로스오버로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해두는 것이다.

그나마 <아이언맨>의 경우 탄생비화의 이야기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헐크의 사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 후반의 대결을 위한 초석을 닦는데 주력한다. 두 편 모두 최후의 적은 슈퍼히어로의 어두운 면이 극대화되거나 분열돼 만들어진 존재다. <아이언맨>에선 아이언맨의 설계도로 만든 아이언 몽거였다. <인크레더블 헐크>에선 헐크와 똑같이 감마선 조작으로 만들어진 어보미네이션이다. 그야말로 만화적 재미를 극대화하는데 최선의 장치다. <스파이더맨 3>는 베놈이나 블랙 스파이더맨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반면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는 관객 지향의 오락물로 최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코믹스의 크로스오버 세계관이 스크린에 하나씩 옮겨지고 있다는 데 있다. 마블 코믹스의 세계 안에서 모든 히어로들은 동시대를 살아간다.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과 헐크가 동업해 같은 적을 상대로 싸우는 식이다. <아이언맨>의 마지막 보너스 영상에는 ‘쉴드’의 수장 닉 퓨리가 등장한다. 사무엘 잭슨이 연기했다. 닉 퓨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웅이 되니 기분이 어때. 그런데 영웅이 너 하나만 있는 줄 아나? 코믹스에서 쉴드는 일종의 초국가적 치안 기관이되, 실제 주력하는 일은 인간 세상과 슈퍼 히어로들 사이의 중재였다.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쉴드가 히어로들의 동맹체, 즉 ‘어벤저스’의 설립을 도모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중이다. <인크레더블 헐크>의 마지막 장면 역시 이 같은 심증에 물증을 더한다. 누가 나오는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시라.
실제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2011년 7월 <어벤저스>를 개봉할 계획이다. 그 전에 <아이언맨 2>와 <토르> <캡틴 아메리카>를 내놓으면서 <어벤저스>로 가는 초석을 닦는다는 전략이다. 이젠 더 이상 여자 문제로 광폭하게 굴지 않을 헐크(그 이유 역시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가 아이언맨과 어떻게 동맹을 맺고, 다시 헤어지고 싸우기를 반복하는지 지켜보는 일은 무척 즐거울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마블 히어로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대전쟁 <시빌 워>의 영화화로 이어질 테다.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속셈은 거의 야망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우리에게는 즐거운 야망이다. 허지웅 (<프리미어> '허지웅의 키노키')





덧글
마른미역 2008/06/11 13:42 # 답글
으하하핫; 이게 다 여자문제 때문이었군요!달빛이야기 2008/06/11 13:44 # 답글
2등이로군요. 매우 흥미로운 해석입니다. 누구나 해봤을 법하지만 말하지 못했던(…).maxi 2008/06/11 13:56 # 답글
낮은 혈압을 가지면서 섹스하는 법을 깨달아야 할듯.레인 2008/06/11 14:21 # 답글
이야. 멋진 해석이십니다.eemsa 2008/06/11 14:29 # 답글
이제 괜히 헐크를 보면 슬퍼질거 같네요ㅎ펭귄 2008/06/11 14:38 # 답글
왼손과 크리넥스 사이의 시간 동안 헐크가 나타나고 말 것이다. 아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역기서 대폭소..크학아레스실버 2008/06/11 15:07 # 답글
상관없지만 저는 김말이를 넣는 파입니다. 내일 굶더라도.헤비스 2008/06/11 15:17 # 삭제 답글
아아~완전 기대만빵.rainkeeper 2008/06/11 15:30 # 답글
재미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기대되네요.근데, 음, 저기, 고작 '삽입' 행위 하나 불가능하다고 성적으로 무지하다거나 순결하다고 믿는 것은 좀 심하게 순진한 소년적 섹스관이신 듯.;;; 색의 세계는 넓고도 깊습니다.(먼 산) 또 심장박동 안 올리고도, 성적 흥분 없는 발기도 가능은 합니다. 결정적으로 성적 대상은 전혀 아니지만 쉬-헐크라는 반대 성도 헐크의 세계에는 존재하고.(헐크가 대량희생을 감수할 마음만 있다면, 자기 혈청 무작위로 주입해서 쉬-헐크 비슷한 존재를 여럿 만들수 있을 걸요?) 헐크는 사춘기 소년의 성적 금제의 슬픔을 대변하기보다는, 아직은 미성숙한 약한 육체의 슬픔을 대변해주는(그러니까 역으로 그를 대리해소하는, 압도적 폭력 해방의 기쁨을 선사하는) 슈퍼히어로일 듯합니다...
SoulbomB 2008/06/11 15:41 # 답글
심장박동수 200에 대한 설은 진짜인가요?;;주변 사람한테 물어보니까 금시초문이라고 하던데 -_-;;
아롱이 2008/06/11 16:45 # 답글
설마 이번 주말 이소라 씨 앞에서도 같은 주제를? ㄷㄷㄷ가라나티 2008/06/11 17:19 # 답글
개인적으로는 한국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히어로인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의 영화화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매우 궁금하군요. 과연 이쪽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또 한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입니다. 아무튼 시빌워의 그날까지 끊이지 않는 떡밥으로 마벨팬은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_^'''네모도리 2008/06/11 17:23 # 답글
[슈퍼 로봇 대전] 으로 가는 여정?月虎 2008/06/11 17:51 # 답글
전 헐크가 아니라서 여자가 없어서 울고 있습니다승 2008/06/11 18:07 # 답글
인크레더블 헐크 요거 요거 시험 끝나자마자 보러가려고 벼르고 있는데 재미있는 글을 읽게되었네요. 영화가 더 기대가 됩니다.컴터다운 2008/06/11 20:23 # 답글
..........스파이더맨보다 더하잖습니까, 이거폐묘 2008/06/11 21:47 # 답글
아 슬프다클레어 2008/06/11 22:18 # 답글
와우. 헐크가 저렇게 큰 거였나요?글이 깨끗하게 보여 좋아요 이제.. 참 둔하게도 계속 흐리게 봐왔다는요.ㅠㅠ
ㅁㅁㅁ 2008/06/11 22:29 # 삭제 답글
저스티스 리그도 나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죠.친한척 2008/06/11 22:39 # 답글
정말로 '화났'는데 풀 길은 없구먼요 (의불)mithrandir 2008/06/12 06:19 # 답글
만일 헐크가 자기 통제에 성공한다면, 중년/노년 남성분들은 헐크가 되기 위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을 듯 합니다. ^^;퍼니 2008/06/12 11:24 # 삭제 답글
여자도 헐크로~JUNKUDO 2008/06/12 12:36 # 삭제 답글
잘봤습니다^^대학생 2008/06/13 17:08 # 삭제 답글
재밌고 흥미로운 길이군요~ 어제 보고 왔는데..대체로 공감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봐서리..무튼 마블사의 후속작이 기대되네요.. 요즘은 개봉하는 영화마다 빵빵 터져줘서 행복한 나날들입니다♬오오오 2008/06/14 14:25 # 삭제 답글
주인장님의 글 처럼 ...정말 마블은 관객이 뭘 원하는지 아는거 같더군요...ㅎㅎ헐크의 진공파(?)가 가장 인상 깊었다는...ㅎㅎㅎ
근데...헐크가 마지막에 쓴 기술..."헐크 스메쉬"...해석을 "헐크가 부순다" 라고 허접하게
해석한게 가장 안타까움....그냥 기술(?) 이름인데...
헐 2008/06/15 12:13 # 삭제 답글
헐크는 변신하면 거시기가 없어집니다.헐크는 쫄쫄이 스판바지가 찢어지지 않아서 있는거라고 생각되지만
적으로 나온 어보미네이션을 보면 바지까지 다 찢어져버렸는데
거시기부분이 민짜입니다.
그게 참 안타깝더군요. 브루스배너가 헐크힘을 제어할 수 있게되어도
일단 변신을 하면 거시기가 없어져버리니 섹스할때는 평민의 힘을 가지고 할 수 밖에 없겠구나..
싸움질할때빼고는 쓸모없는 능력이라는..
oIHLo 2008/06/15 23:37 # 답글
헐크 : 내가 고자라니!!!(...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주바리 2008/06/16 01:17 # 삭제 답글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감상기를 작성중이었는데어느분이 제 얘기를 듣고 여길 추천해 주시더군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
예영 2008/06/27 01:34 # 삭제 답글
DP에서 소개 받고 왔습니다. 과연 재미있는 분석이네요. ^_^이제 앞으로 배너 박사는 맘 놓고 여친과 섹스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부디 그렇기를 바랍니다.
(안 그러면 너무 불쌍해서요. 남자들은 그 마음 너무 잘 알 겁니다! 헐크가 고자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