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나 존스, 영화와 함께 나이 먹는다는 것

[허지웅의 키노키] 인디아나 존스, 영화와 함께 나이 먹는다는 것

존스 박사의 통산 네 번째 유물 탈취 프랜차이즈가 공개되기 4개월 전, 조지 루카스는 짐 윈돌프와의 인터뷰에서 다소 흥분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론가들은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을 싫어할 겁니다. 틀림없어요. 늘 그래왔듯이 말이죠. 이 시리즈의 오래된 관객들 가운데 일부 역시 실망할 겁니다. 그들은 자기 맘대로 이야기가 풀리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 화를 내기 시작하죠. ‘이건 인디아나 존스 영화가 아니야!’ 라면서 말이에요.”

19년만의 네 번째 속편인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는 과연 해묵은 팬들의 원성을 살만한, 사실 너무 의외라 예상치 못했던 구석이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엄숙한 원리주의 평론가라면 실소를 넘어 분노를 터뜨릴만한 구멍으로 산만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재미있고 흥겨운 영화다. 인디의 가슴팍은 여전히 튼실하고 원주민들은 미친 듯이 독침을 쏘아대며 악당들은 주인공들이 결코 맞지 않을 총알을 무심히도 날려댄다. 주인공을 실은 자동차는 매번 아슬아슬하면서도 절대 절벽 아래로 떨어질리 없고 유물을 향해가는 고고학 퍼즐은 아무리 어려워보여도 인디에 의해 무조건 깨지기 마련이다. 맞다. 이 영화는 우리가 예전에 목격했고 꿈꿔왔던 모든 것들의 반복이다. 또한 결코 식상할리 없는 반복이다. 생각해보라. 이건 인디아나 존스 영화다. 지금 현장에서 활동하는 기자들 가운데서도 마지막 인디아나 존스 영화가 개봉했을 때 현역이었던 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우리의 추억과 함께, 공공의 기억 안에서 더불어 나이 먹은 영화다. 똑같은 내용의 라라 크로프트 영화를 보는 것과는 감히 견줄 수조차 없는 것이다. 와우!

영화는 파라마운트 농담(파라마운트 로고가 나온 후 그와 비슷한 모양의 물체로 오버랩되는 시리즈 전통)과 함께 시작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아버지 헨리도, 친구 마커스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 빨갱이 색출해 때려잡자는 캠페인이 일상의 미덕이었던 1950년대 후반, 미국 군부대에 난입한 소련군과 그들에게 납치된 초로의 존스 박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소련군은 존스박사에게 군 창고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주길 강요하는 중이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레이더스> 마지막에 성궤를 봉인했던 바로 그 창고다(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이 시퀀스에서 성궤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존스 박사는 소련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써 대학에서 쫓겨나 망명길에 오를 지경에 처한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늘 인상적인 초반 시퀀스를 통해 가장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존스 박사를 소개해왔다. 그 다음에야 (<마궁의 사원>만 제외하면)대학으로 돌아가 강의하고 있는 존스 박사의 모습, 그런 박사가 새로운 유물을 찾으러 떠나게 되는 계기, 지도에 붉은 선을 그려가며 날아가는 비행기, 유물 퍼즐을 풀기 시작하며 악의 세력(나치, 원주민을 착취하는 오컬트 교주)과 싸우는 인디아나 존스의 활약상을 그려내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영화는 소련군이 찾고자 했던 진짜 유물, 크리스탈 해골을 찾아 마야-잉카문명의 유적지로 향하는 존스의 모험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크리스탈 해골이라는 말에 눈이 반짝, 뜨이는 장르영화 팬들이 있을 법 하다. 크리스탈 해골은 SF장르의 유서 깊은 떡밥이다. 마야와 아즈텍의 고대 문명에 과학기술과 농경을 가르친 장본인이 외계인이고, 크리스탈 해골이 바로 그 외계문명의 보물이라는 내용이다. 크리스탈 해골은 네 편의 ‘소년 인디아나 존스’ 소설과 도쿄 디즈니 테마파크의 놀이기구로도 이미 선보인바 있다. 가장 가깝게는 TV시리즈 <스타게이트 SG-1>에 등장했었다. 드라마 속에서 해골을 소유하고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하게도, 외계인이었다.

요컨대,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조금 먼저 도착한 <엑스 파일>의 두 번째 극장판 같아 보인다. 영화의 뉴멕시코 촬영분 유출 사진에 저 유명한 51구역 군사기지가 등장했을 때 이미 눈치챘어야했다. 51구역은 미국 네바다 주에 위치한 비밀 지역으로, 외계인 연구, 비밀 신무기 개발 등을 위해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 시리즈에 언제나 신비주의 요소가 존재했던 건 사실이다. 존스 박사의 모험에 관련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역시 <레이더스>에서 나치의 얼굴이 녹아 흘러내리는 장면이나 <마궁의 사원>에서 산자의 심장을 통째로 잡아 박력 있게 꺼내는 모습, 혹은 <최후의 성전>에서 순식간에 노화해 먼지로 산화해버리는 악당의 최후인 것이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어디까지나 개신교 신앙에 발붙인 신의 분노와 기적의 산물이었다. 실제 이 시리즈가 그토록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역시 저변에 깔린 가족주의와 기독교 이데올로기 덕에 가능했다. 존스 박사의 고군분투는 언제나 가정과 신앙을 회복하는데 그 맥이 닿아있었다. 그 두 가지 임무를 가장 훌륭히 수행해낸 3편 <최후의 성전>은 지금도 여전히 시리즈 최고 걸작이다. 어쨌든 이 모든 게 외계인 운운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의 인디아나 존스는 이렇지 않아, 식의 해묵고 완고한 팬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다소 방만해 보이는 전개와 액션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전작들을 환기해볼 때 다소 김이 새는 감이 없지 않다. <레이더스>의 트럭 추격이나 <마궁의 사원>의 탄광 철로, <최후의 성전>의 탱크 대 말의 사막 질주 같은 박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잠시 스티븐 시걸의 기억을 소환할 필요가 있겠다. 해리슨 포드와 스티븐 시걸 사이에는 헤어스타일 말고도 뚜렷한 차이가 발견된다. 이를테면 해리슨 포드는 세상에서 아픈 표정을 제일 잘 지어내는 배우다. 스티븐 시걸은 실상 거의 맞지 않고, 맞더라도 아플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추울 때나 배고플 때나 표정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실감이 덜 하다. 반면 포드는 어떤 영화에 나오든 꼭 얻어맞고, 여자에게 뺨도 숱하게 맞는데, 그럴 때마다 진짜 엄청나게 아파 보인다. 이 같은 해리슨 포드의 연기 특성은 인디아나 존스의 액션 스타일을 그대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른바 아날로그다. 액션 오락물로서 인디아나 존스 영화의 정체성이란 필요 이상으로 리얼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땅에 발을 딛고 있는, 흙내 섞인 피 맛과 활극의 쾌감으로부터 비롯된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바로 그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대단히 고집스러울 만치 고수하려 애쓰는 영화다. 실상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새로운 존스 박사의 이야기를 만들기로 결정한 전후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영화는 놀랍게도, 폴 그린그래스의 <본 얼티메이텀>이었다. 특히 루카스는 주변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았다, 한 동안 액션 연출의 척도가 될 것”이라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영향은 영화 속에서 역설적으로 작용한다. 초 단위로 모든 장면을 쪼개놓고 재구성하는 <본 얼티메이텀>의 연출방식은 대단히 매력적으로 보였지만, 모두가 기억하는 인디아나 존스 영화에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극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에서 거의 강박에 가깝게 고전적인 방법을 고집하게 된 것이다. 시리즈 전작들이 아날로그 제작환경에서 당대 최고 수준의 기술을 총동원해 만들어졌다면,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디지털 제작환경에서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연출과 효과를 복원하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내는 표정이다. 덕분에 영화는 필요 이상으로 느리거나 고루하게 비춰질만한 구석이 역력하다. 그것을 지루해하느냐, 혹은 반가워하느냐는 온전히 관객 취향의 문제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너무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이긴 한데 얼굴이 좀 달라져 자꾸 주뼛거리게 되는 영화다. 하지만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존 윌리엄스의 아련하게 익숙한 스코어 사이로 날아다니는 존스 박사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꾸 가슴이 두근거리고 소름이 돋아 이 친구가 예전의 그 친구가 맞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전에 없이 가장 적극적으로 가족을 회복하려 애쓰는 인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문득 너무나 익숙해 소중한 이 친구가 국가의 안녕과 인류 유산의 발굴 따위는 그만 접어두고 본인의 행복이나 찾아 떠났으면 싶어진다. 등을 두드려 떠밀고 싶어진다. 우리는 그렇게, 영화와 함께 나이 먹고 있다. 허지웅 (<프리미어>173호 '허지웅의 키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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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년만에 돌아온 인디아나 존스4, 해골 하나로 그냥 그렇게 끝나버리다 or 아날로그로 추억을 일깨우다 2008/05/22 16:57 #

    1.인디아나 존스, 2008년 스크린으로 19년만에 귀환하다 19년은 참 긴 시간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한 아이가 태어나 유치원과 초중고를 마치고도 시간이 조금 남을 정도니 참으로 긴 시간이라 하겠다. 그 19년 긴 시간의 벽을 뚫고 인디아나 존스가 돌아왔다. 블록버스터와 어드벤쳐 영화의 원조이자 표준, 인디아나 존스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는 엄청나고 강력한 포스를 지닌 영화, 그 인디아나 존스가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more

  •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2008) 2008/05/22 19:10 #

    2008.05.22 개봉 | 12세 이상 | 124분 | 액션,어드벤쳐 | 미국 | 국내 | 국외 | 씨네서울 | IMDb영화 마지막쯤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리는 데 허비하는가?" 라는 옥슬리 교수의 말은 한편으로는 《인디아나 존스 4》를 고대하던 팬들에게 건네는 작은 소회일런지 모르겠습니다. 81년, 84년, 89년 그리고 19년이 흐르고, 다시금 마주하는 인디아나 존스는 그만큼 여러 감회에 젖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백 투 더 ...... more

  • [90%] 인디아나존스4, 구관이 명관 2008/05/26 09:30 #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세사람조지루카스는 잘모르겠고 스티븐스필버그는 내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감독이다. 게다가 각본에 데이비드코엡, 음악에 존윌리엄스, 촬영에 야누스 카민스키였기 때문에 모든 평론가가 만장일치로 욕을 해댔더라도 이 영화는 정말 꼭 봤을 것이다. 역시 시리즈 전통으로 파라마운트 로고를 실제 산으로 표현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내용도 별다를게 없다. 총알과 독침이 난무하지만 존스박사 일행중에 다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든 돌문은 자...... more

덧글

  • 2008/05/22 16:23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ozzyz 2008/05/22 16:29 #

    감사!
  • 작고슬픈나무 2008/05/22 16:57 # 답글

    오늘 개봉 새벽 2시 10분 표를 예매해놓고 일부러 멀리했던 허지웅님 블로그에 왔습니다.

    좋은 표현들이 많고, 더 가슴 설레게 되는 글입니다. 좋은 날 되시기를 빕니다.
  • 강은정 2008/05/22 17:02 # 삭제 답글

    보고픈 마음만 굴뚝입니다. 세아들을 어디다 놓고 가서 보누~~~~ㅜ,ㅜ
  • 구골 2008/05/22 17:26 # 삭제 답글

    인디아나 존스 .. 우호 기대작인데 꼭 보고 싶네요^^

    좋은글 읽고 갑니다.

    시간나시면 http://icalus001.tistory.com/guestbook 놀러오세요.
  • 2008/05/22 17:29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ozzyz 2008/05/22 17:35 #

    감사!
  • Neon 2008/05/22 18:33 # 삭제 답글

    너무 옛작품의 향수 기준에서 쓴 듯.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처음으로 접하는 관객들은 어떻게 느낄지...
  • 인뒤 2008/05/22 21:19 # 삭제 답글

    이 글 미치도록 읽고 싶은데 일단 영화보고 그럴래요.


    지금 보러 갑니다!!! ㅎㅎㅎ
  • 지나가다 2008/05/22 21:20 # 삭제

    스포일러라 부를만한 내용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될 듯 합니다.
  • 레이트 2008/05/22 23:46 # 답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다이하드4.0 볼때의 느낌과 비슷 했지만. 재미는 비교가 안되죠. 전개가 2% 부족한 느낌이 있지만. 역시 인디아나 존스! 완전 새로운 것이었다면. 재미는 오히려 덜어졌을 껍니다.
  • indie 2008/05/23 13:55 # 답글

    어제 싫은거 억지(?)로 끌려가서 봤는데, 재밌었어요.
    해리슨 포드 많이 늙으셨구나, 하고, 아, 이거 인디애나 존스로 시작해서 X파일로 끝나네? 하는... 감상이랄까?

    ㅎㅎ
    디지털 환경에서 아날로그적 연출.. 이라는 그 느낌 제대로입니다. ^^
  • 홍준호 2008/05/23 23:56 # 삭제 답글

    아앗.. '조금 더 긴 글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시더니..블로그에 다 써 놓으셨네요.
    ..내일 보러갈 생각을 하니 흥분되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 오디 2008/05/26 11:18 # 답글

    언제나 좋은 글, 흥미로운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소한 트집입니다만, 이번 글은 가장 마지막 문단에서 갑자기 레코드판이 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중간에 뭔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건필하세요.
  • 2008/06/08 08:0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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