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랄만하게도, 교황청 천문대장인 호세 가브리엘 푸네스, 혹은 아마도 그와 유사한 이름의 신부가 “신이 창조한 다른 생명체가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우리 신앙과도 모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는 뉴스가 외계의 속도로 국내에 타전됐다. 그건 흡사 퇴근 후 집에 돌아와 팬티를 벗다가 한 쪽 발이 채 빠져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이 되었다, 는 말을 듣는 것과 유사한 파격이었다. 그렇게 교황청이 외계인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서 외계와 인류 사이의 역사적 상호이해존중, 이 이룩되고 있는 동안 지구 반대편의 대한민국에선 뉴라이트 단체들이 한 곳에 모여 미국산 소고기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며 미국과 그들 사이의 상호이해존중, 에 충실하고 있었다. 대학생도 있고 목사도 있고 늙은 기자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뉴라이트는 일찌감치 대학생들을 꿀꺽꿀꺽 잘도 삼켜왔다. 비권 출신 학생회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총학 선거에까지 개입했고, 개입하다 적발되면 종종 창피도 당하고, 졸업만 하면 한나라당 의원 대변인 자리를 봐주겠다며 달짝지근한 포섭에 나섰다. 이는 대부분 뉴라이트 산하 조직인 기독교사회책임과 관련돼있다. 대다수 비권 총학생회가 개신교 정체성을 들먹이는 것이나 나아가 보수단체 집회에 해병대 전투모만큼이나 십자가가 차고 넘치는 사실, 혹은 장로 출신 대통령의 사려 깊게 비열한 행보와도 크게 무관하지 않다. 이 땅에 권력과 종교는 그런 식으로 공생한다. 어쨌든 다음 세대의 조직화에 비교적 무심했던 진보진영으로선 여러모로 아쉬운 노릇이다.
그렇게 새 나라의 실용적인 일꾼으로 든든하게 육성된 십자군을 일컬어 '뉴라이트대학생연합‘이라 불렀다. 불행히도 그 쓰임새는 크게 이롭지 못했는데, 가까이는 대선 직전 ’이명박을 지지하는 대학생 선언‘ 식으로 어필한 전적이 있다. 여러모로 세련되지 못했다고 느꼈는지 유인촌 장관의 양촌리적 사사가 있었는지 몰라도 새삼 이제부터는 우리도 예술합니다, 라는 표정이다. 앞서 밝혔듯이 14일 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광우병 괴담 선동센터 KBS·MBC 규탄 및 감사청구 기자회견'이라는 이름으로 굿판을 벌인 것이다. 웬 변변치 않은 소 탈을 쓰고 나와 “< PD 수첩>의 PD는 80년대를 풍미했던 ’PD' 'NL' 할 때의 그 운동권 PD가 아닌가” “10년간 좌파세력 앞잡이 역할을 한 것이 MBC인데 우리가 가만둬야 하나”라고 떠들어대는 꼴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려던 만년의 브레히트가 광우병에 걸려 더듬거리는 모양새다. 이를테면 혐오를 통한 낯설게 하기, 문자 그대로의 소격효과인 셈인데 보는 이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으로 보아 혐오가 목적이었다면 과연 무난하게 달성했다는 느낌이다.

자리를 함께한 조갑제 닷컴 조갑제 대표는 “(친북좌익방송의) 촬영된 영상을 보고 저 사람들이 기자와 피디가 아니라 위장한 좌익 선동원임을 확인했다”며 급기야 늘그막에 딱 보면 다 알아요 관심법의 경지에 닿았음을 자랑했고, 올인코리아의 조영환 대표도 “MBC마크 중앙에 빨간색이 칠해져 있더라, 왜 중간이 빨간색인가, 이게 우연인가?”라며 초현실주의에 입각한 붉은 똥을 싸질렀다. 세대를 초월한 배변의 현장은 그리도 현학적으로 뜨거웠다.
광우병에 대한 언론기관의 비교적 적확한 보도에 색깔론으로 격분하며 ‘광우병 괴담 선동 규탄’ ‘좌파 배후설’ ‘이념투쟁 선포’ 등의 살벌한 수사를 내뱉는 저들의 모습은 현 한국사회의 이념적 대립구도라는 것이 실상 얼마나 가냘프고 허황된 것인지 드러낸다. 목사와 해묵은 보수 언론인과 돈에 팔린 대학생과 그 돈을 대는 장사꾼들로 구성된, 그러나 도대체 뭐가 뉴, 하고 라이트, 한지 알 수 없는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은 그 자체로 한국에 진정한 보수권력이 존재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요컨대 보수의 이름으로 사익을 추구하고, 그것에 좀 더 용이하게 매진할 수 있는 패거리를 양산해 유지하는 게 이들 이념 사업의 본질이다. 이 본질에 위배된다면 그들은 국민 건강에 빤하게 저해되는 고기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것으로 주장할 수도 있고, 멀쩡한 언론매체에 김정일 장군이 왼손으로 던진 솔방울 수류탄 즈음의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다소 흥미로운 건 이들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역시 이념 전쟁에 충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심하게나마 비판적이라는 사실이다. 보수를 가장한 사익 추구 정부와 또한 보수를 가장한 사익 추구 가치관 세력이 틀어진 이해관계로 인해 서로 물어뜯는 진귀한 역사적 현장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저들이 간과하고 있는 건 입에 문 말의 대다수가 사실상 이미 죽어 엎어진 언어라는 사실이다. 이념투쟁에 선동 규탄에 MBC 로고 중앙의 빨간 색에 하악하악 천착하는 따위의 모습은 좋게 봐야 저 옛날 평화의 댐이 무너진다, 시절 향수의 애틋한 복원이고 거칠게 훑으면 그냥 똥이다. 사실상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색깔과 선동의 이름으로 작동되는 건 뉴라이트를 비롯한 보수단체의 이념 사업밖에 없다. 그들의 허황된 말로 인해 그들이 겨냥했던 언론사들은 성지가 되고 상식이 된다. 어찌 보면 괜한 공들여 남 좋은 일만 하는 셈이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깜짝 놀랄만하게도, 교황청 천문대장인 호세 가브리엘 푸네스, 혹은 아마도 그와 유사한 이름의 신부의 말은 묘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정상적으로 사고하고 말하는 인간, 말고도 여러모로 특이한 체질의 다른 생명체, 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양성을 강조하는 신의 가르침 안에서, 그렇게 우리는 이들을 인내할 수 있다. 허지웅 (<프리미어>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




덧글
oIHLo 2008/05/15 09:54 # 답글
그거를 진지하게 믿는 인간들이 가다가 있답니다, 꺌꺌꺌.제 친구 중 한 놈이 대학생연합 홍위병이에요. 진지하던걸요?
아침부터 똥일보에서 '초중고 역사-정치 교과서 정부가 바로잡기 나섰다'라는 같지도 않은 헤드라인을 보고 화가 나서 남깁니다.
술과고기 2008/05/15 10:06 # 답글
빨간 기타를 사려는 나도 잘못하면 빨갱이 되겠구만.ㅋㅋ琳☆ 2008/05/15 10:16 # 답글
프하하하 저도 빨간색 좋아하는데 조심해야겠네요푸헤헤
IEATTA 2008/05/15 10:18 # 답글
빨간색 엠블럼을 쓰는 카메라회사의 카메라를 쓰는 저도 빨갱이군요.ozzyz 2008/05/15 10:19 # 답글
아예 얼굴이 빨간 저는 아마도 주사파.리드 2008/05/15 10:38 # 답글
페라리를 좋아하는 저도 빨갱이군요.날밤 2008/05/15 10:50 # 삭제 답글
어익후.. 여기 블로그 배경도 빨강이네요.. 조심하세요.. ㅎㅎblueye 2008/05/15 11:13 # 삭제 답글
어린시절 빨갱이는 온몸이 다 빨간줄 알았었는데..세상이 바뀌고 이성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저런 앞뒤가 안맞는 말을 누가 믿을까요?
같은 쉰~세대분들은 믿으실라나??
史官論也 2008/05/15 11:15 # 답글
한나라당에 앰블럼에 빨간 색이 있던데...reex 2008/05/15 11:23 # 삭제 답글
피까지 빨간 저는 진퉁 빨갱이.아줌마 2008/05/15 11:28 # 삭제 답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역시 이념 전쟁에 충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심하게나마 비판적이라는 사실이다." 요부분 정말 재밌네요.cozet 2008/05/15 11:30 # 답글
푸하하하 엠비씨로고가 괜히 빨간건 아닌갑제~ 갑제는 관심법도 얻었는 갑제~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어지럽습니다..요새..;storm 2008/05/15 11:49 # 답글
미국 국기도 빨간줄 천지인데... 이건 우연이 아니야! 미국놈들 죄다 빨갱이였군.Fernweh 2008/05/15 11:58 # 답글
ㅍㅎㅎㅎ 재미있게 풀어내셧네요이네스 2008/05/15 12:20 # 답글
와. 정말 궁예가 보고 존경할거에요...Loooou 2008/05/15 12:44 # 답글
오랜만에 유쾌한 글이네요 하앜하앜~초하류 2008/05/15 13:24 # 답글
태지야 어떡해~~ 너도 좌빨이냐.. ㅋ은현 2008/05/15 14:08 # 답글
창조 한국당 어쪌겨바보새 2008/05/15 15:09 # 답글
미쿡 놈들이 얼마전 국가보안법 개정하라고 떠들었으니 빨갱이 맞구요.바보새 2008/05/15 15:10 # 답글
쥐박이 눈까리도 충혈되서 빨간데 ㅡ.ㅡ 원조 빨갱이 아녀.가고일 2008/05/15 15:18 # 답글
저는 블로그 메인컬러가 빨간색입니다.ㅡㅡ.khyans 2008/05/15 16:47 # 삭제 답글
언제까지 좌파로 우려먹으려나 피가 빨간색이라 빨갱이라는건가증발해버려라 2008/05/15 16:51 # 삭제 답글
정녕 이 나라를 지키는 건 니들이 나불대는 좌빨들이니...그 주둥이나 닥쳐라....보수? 개박같은 소리...iwannasee 2008/05/15 23:11 # 삭제 답글
쫌 귀엽기도 하고ㄲㄲ저쪽은 정말 무슨 전문 최면술사라도 고용하는 듯 하네요
환자 2008/05/16 00:23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일 아래 줄 에서.. 시뮬라르크가 아니라 시뮬라크르 아닌가요?파란 토마토 2008/05/16 00:36 # 삭제 답글
나는 크면 케찹이 될려나?kunny 2008/05/16 01:50 # 삭제 답글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허지웅씨의 글은 한 때 기자를 꿈꿨던 사람으로써 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합니다. 적어도 이 정도의 글솜씨는 있어야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꿈이라도 꿀 수 있는 것은 아닐지요.환자////시뮬라르크 맞을 것입니다. 제가 광우병 걸려서 기억이 빵꾸난 것이 아니라면요.^^
에톤 2008/05/16 02:12 # 답글
그래도 아직 좌빨 선동론은 유효한 것 같더군요. 저분들이 삽질만 안하면 오히려 좌빨 선동론이 더 활개 쳤을 겁니다.앨리스 2008/05/16 09:32 # 삭제 답글
글 중간에 링크로 걸어두시는 글들, 새창으로 뜨게는 안될까요?-발톱이 빨가니 영락없는 빨갱이 올림
환자 2008/05/16 12:44 # 삭제 답글
kunny / kunny님께는 실례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쟝 보드리야르의 책 [시뮬라시옹]에 나오는 개념으로서 사용된 것이라면, 시뮬라크르가 맞습니다. [시뮬라시옹] 책에서 수백번도 더 나오는 단어이고, 아무렇게나 펼쳐 보여도 한 페이지에 한두번씩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명한 단어이니 허지웅님이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개념이 아니라면 문제는 없겠지만요. (우... 단어의 사용 같은 걸로 태클걸게 되어 정말 죄송스럽습니다..)ozzyz 2008/05/16 12:46 # 답글
환자님 말씀이 맞아요. 저도 그렇게 고쳤고요. 감사.kunny 2008/05/16 22:11 # 삭제 답글
환자/ 아이쿠 정말 죄송합니다.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고 다만 진중권씨가 시뮬라르크 시뮬라르크 하길래 그것이 맞는 줄 알았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어떻게 해야 정말 사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휴...iwannasee 2008/05/17 18:00 # 삭제 답글
그렇죠ㅎㅎ 그냥 똥입니다ㅎㅎ얻어걸린 자 2008/05/19 18:32 # 삭제 답글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를 보면 예전 무성영화를 보듯 아득한 과거로의 여행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무성영화는 향수라도 느낄 수 있지만..... 참 쓸쓸하고 답답합니다.
정체는 용납할 수 있지만 퇴행은 정말 아니지요.
어디서 배후니, 색깔이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불멸의 사학도 2008/06/06 17:32 # 삭제 답글
그러고보니 그 잃어버린 10년 중에 온 국민이 길거리로 나와서 '나 빨갱이요'하고 커밍아웃을 했던 적이 있었죠...그분들도 분명 빨간 옷 입고(뿔은 악마의 상징이라고 안 달고 나왔겠지만요) "대~한민국!"을 외치셨을텐데요... 이분들은 딱 한 달 동안만 좌익으로 전향하셨다가 금새 변절하셨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