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의 키노키] 스피드 레이서,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스피드 레이서>는 언뜻 화려한 겉모습 안에 실상 속 깊은 의지를 담고 있다. 워쇼스키 형제는 다시 한 번, 구원을 이야기한다.
<스피드 레이서>는 유치하다. 단순하다. 서사를 짓밟고 파괴해 끝내 부정하려는 듯 무모할 정도로 빠르다. 지나치게 화려해서 속내보다 외연에 주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종종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이 팔랑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정은 강직하다기보다 솔직 태연하고 다소 치기 어리되 어른스러움을 가장하지 않을 만큼 용감한 것이다. 눈이 부시고 가슴이 울렁거려 기어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스피드 레이서>는 관념론에 침전된 <매트릭스> 시리즈와 얇은 연출력 탓에 가식처럼 느껴진 <브이 포 벤데타>가 대중 앞에 그려내는 데 실패했던 이야기의 정체를 매우 똑똑하고 선명하게 드러낸다. <스피드 레이서>야 말로, 워쇼스키 세계의 진정한 결정판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형식과 스타일의 파괴감이다. 단연 당혹스럽다. 시작하자마자 레이서 가문의 사정과 맥락이 마하의 몽타주로 펼쳐진다. 언뜻 성의 없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과 공간과 드라마가 나열되고 겹쳐져 흐트러진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는 어느 순간 <스피드 레이서>만의 스타일로 자연스레 지각될 만큼 효과적이라, 파괴라기보다 파격에 가깝다.
레이싱 경주 장면은 리얼리즘을 최대한 배제해 흡사 게임 장면처럼 보인다. 덕분에 정지된 장면만 검색한다면 <스피드 레이서>의 외연은 대단히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차체를 동원해 펼쳐지는 슬랩스틱 액션을 직접 목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신은 로봇으로 변신한 자동차의 격투에 마저 익숙하겠지만 이건 경우의 차이가 도저하다. 심지어 버스터 키튼이나 성룡의 움직임에 닮아있을 만큼, 그것의 박력과 재미란 유별나다 못해 각별하게 황홀한 것이다.

하지만 이 놀라운 기술과 연출의 합에도 불구하고, <스피드 레이서>의 가장 빛나는 명민함은 세계관에 있다. <스피드 레이서>의 세계관은 세계의 규칙에 저항하는 데서 출발한다. 주인공 ‘스피드 레이서’는 탁월한 재능 탓에 거대기업 로얄튼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는 로얄튼의 놀라운 외적 웅장함과 시스템에 압도되지만 끝내 거절한다. 회장은 스피드의 치기어림을 꾸짖는다. 그리고 레이싱은 스포츠가 아니라 거대한 산업이고,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여부는 미리 결정돼있으며, 그 모든 조작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진짜 레이서’가 되는 길이라고 윽박지른다. 이를 우리 현실에 맞게 조금 고쳐 말하면 다음과 같다. “이 세계는 자본에 의해 지배당하는 시장판이고, 그 속에서 누가 더 많은 돈을 벌어 갈지는 미리 결정돼있으며, 그 모든 부조리를 처연하게 받아들여 ‘세상이란 원래 그렇지’라고 인정하는 게 진짜 어른이 되는 길이다.”
요컨대 이것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다만 우리가 늘 입에 올려 논하는 ‘어른이 되기 위한 미션’ 즈음의 성장은 아니다. 그보다 근본적이고 공격적으로 세계의 성숙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끝에는 필연적으로 구원론이 뒤따른다. 워쇼스키 형제는 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매트릭스>는 세계가 허상이고 가짜라는 걸 인정하는 게 실용적인 것이라 말하는 기계집단에 대항하는 이야기였다. <스피드 레이서>는 세계의 부조리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저 시스템 안에 삶을 투신하는 게 진짜 어른이라 말하는 기존 권력에 대항하는 이야기다. 그것을 어른스럽다고 말하는 입술을 실용주의가 아닌 패배주의로, 이에 대항하는 용기와 재능을 이상주의가 아닌 성숙한 것으로 그려내는 게 워쇼스키 형제의 일관된 관심사다. 여기에는 예언을 하는 조력자가 필요하고(모피어스, 오라클-레이서 X) 자각을 돕는 선택의 관문이 존재하며(빨갛고 푸른 알약-로얄튼의 스카우트 제의) 시스템의 규칙이 파괴되는 구원의 순간이 준비돼있다.
그래서 <스피드 레이서>의 마지막은 벅찰 수밖에 없다. 시작된 마지막 레이싱.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독을 품고 달려드는 '진짜 레이서' 혹은 '진짜 어른'들. 어른스러움이라는 이름의 패배의식 아래 조작된 세계를 뚫고 나가, 끝내 선두에 다가가고 있는 주인공의 의지란 숭고한 것이다. 이미지의 파격과 호흡의 쾌감과 드라마의 진정성이 관객의 심장을 움켜쥐고 치솟는 경기의 절정은 흡사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결말을 연상시킨다. 영화 속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어.” 나는 눈물을 흘렸다. (<프리미어> 171호 '허지웅의 키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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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주성치 2008/04/24 13:40 # 삭제 답글
와 진짜 기대됩니다.근데 브이포벤데타에 워쇼스키형제의 입김이 많이 들어갔나요?
구도자 2008/04/24 13:40 # 답글
아 예전에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가 생각나네요 ㅋㅋ그때의 벅참이란.... 근데 이게 실사로 가능하다니!
렉스 2008/04/24 13:44 # 답글
호평받는 블럭버스터처럼 흥미로운 기대거리는 없죠.기다려지는군요.
장진혁 2008/04/24 14:41 # 답글
위쇼스키 자매 아닌가요? ;;은혜 2008/04/24 15:25 # 답글
남매죠 ㅎㅎ술과고기 2008/04/24 15:44 # 답글
새로운 모더니스트...? ㅎㅎ 영화 재밌을 것 같네요.땅콩샌드 2008/04/24 15:59 # 삭제 답글
비는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만약 허지웅씨 말이 맞다면 비는 이제 말 그대로 월드 스타가 되겠군요.헤비스 2008/04/24 15:59 # 삭제 답글
정지훈 보다 박준형이 왠지 더 기대돼요.객 2008/04/24 16:02 # 삭제 답글
정말 기대되네요!염맨 2008/04/24 16:09 # 답글
워쇼스키 남매가 되지 않았습니까?oIHLo 2008/04/24 16:33 # 답글
허어... 워쇼스키 영화 맞군요. 갑자기 기대감이 팍 생깁니다.8oi_ 2008/04/24 17:05 # 삭제 답글
아.. 배우 말고...영화 자체가 너무 기다려지게 하는 리뷰네요..
역시 멋질듯...
코스튬 2008/04/24 17:06 # 삭제 답글
남매라는 썰에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하긴 했죠.근데 이번 영화 크레딧엔 브라더스로 올라가지 않고 그들 이름 자체로 올라간다는 말이 있더군요.
박준형은 후반부 1분정도 주인공 상대편 역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물론 기사에서 읽은거지만;)
ozzyz 2008/04/24 17:10 # 답글
비: 꽤 잘 합니다. 발음도 좋은 편인데 높은 언성에선 조금 어색해요.박준형: 후까시 좀 잡는데 너무 짧게 나와서 좋고 나쁘고 이야기를 하기에는 좀.
2008/04/24 17:11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g a 2008/04/24 19:42 # 삭제 답글
대박이네요..리뷰가 소름끼쳐요..LA시사회에서 호평이 쏟아진다고 하던데 워쇼스키가 괜히 워쇼스키가 아니군요..
anny 2008/04/24 20:06 # 삭제 답글
대단한 리뷰군요........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기대하고 있긴 한데..그 이상일 듯도 하네요.리리마 2008/04/24 20:53 # 삭제 답글
어디에서나 스피드레이서의 리뷰는 호평 일색이군요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 이런 영화에 한국의 비가 출연했다는게 기분좋네요. 곳곳에서 비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나겠군요로드파이터 2008/04/24 21:11 # 삭제 답글
개인적으로 정말 기대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워쇼스키의 팬이기도 하고 분명히 세계를 또한번 놀라게 할꺼라 생각하고 여러 리뷰 보면서 그럴꺼라 믿고 있었는데.. ozzyz님 리뷰 보니까 확신이 드네요. 정말 깔끔한 리뷰입니다. 개봉날이 정말 기다려지네요..ㅋ 아이맥스로 봐야지zuiei 2008/04/24 21:24 # 삭제 답글
무조건 아이맥스입니다. 아..넘 기다려져요.울버린 2008/04/25 00:01 # 삭제 답글
여기저기서 호평들이 쏟아져도, 심지어 시사회 갔던 지인이 강력 추천을 해줘도(그 선배는 개봉하면 한번 더 보게 될 것같다고. 다시한번 그 쾌감을 즐기고 싶다나?)
그래도, 그래봤자 옛날 일본 만화가 원작인데 뭐.. 이러고 있었는데...
ozzyz님 리뷰를 읽으니 기대가 엄청 되는데요. 꼭 봐야겠습니다.
참, 비에 대한 얘기 없이 영화에만 집중해서 리뷰해주시니 더 좋군요.
만인의 유동닉 지나 2008/04/25 00:50 # 삭제 답글
댓글 다신 분들중에 잘못아신 분이 많은 것 같네요. 워쇼스키 '형제'입니다남매라는 소문이 퍼졌던 것은 형제중 동생이 이혼을 하면서 전부인이
'여장 취미가 있었다' 라고 언론에 악소문을 퍼뜨린 것이 돌고 돌아 성전환을 받았다...
까지 왜곡이 된겁니다.여전히 형제 맞습니다.
creent 2008/04/25 04:19 # 답글
스피드 레이서가 레이스라는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각에 비하면 사이버포뮬러는 레이스를 너무 아름답게만 그려놓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스피드 레이서는 봐야겠군요 ^^SUSUNNYY 2008/04/25 07:31 # 삭제 답글
속이 후련합니다. 고맙습니다...꿈의대화 2008/04/25 09:42 # 답글
그러니깐 결론은 "재미있다"라는 거죠?! ^^코리스 2008/04/25 11:45 # 삭제 답글
오호~ 점점 더 기대치 상승 중입니다!워쇼스키 왕팬으로서 그가 매트릭스 신화 그 이상을 이번 스피드레이서에서 또한번 보여줬음 했는데
ozzyz님 리뷰 보니 안심이 되는걸요^^
그리고 우리 자랑스런 비군이 나온다니 더더욱 기대됩니다!
oldmoon 2008/04/26 01:44 # 삭제 답글
음. 안그래도 기대작이었는데 뭐. 적절한 타이밍에 뽐뿌질 제대로 해주시는 군요. 그나저나, '허지웅의 키노피(키높이)'로 본건 저뿐인건가요...김연호 2008/04/26 12:55 # 답글
과연 그게 '속 깊은 의지' 씩이나 될까요. 오히려 그런 뻔한 이야기(시스템/어른에 대항하는 영웅/소년)를 담아내는 '남다른 스타일'이 워쇼스키들의 장점일 듯 합니다.ozzyz 2008/04/26 12:58 # 답글
빤해서 깊었어요.허지웅게이확실 2008/04/27 13:11 # 삭제 답글
허지웅 게이설 거짓말 아니고 진짜다. 내가 어제 이태원에서 봤음.deniro0 2008/04/27 13:44 # 삭제 답글
허지웅게이확실/ 지웅님이 게이든 말든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당신 뭐하는 사람이죠?
이글루스 요즘 비공개 로그인 덧글도 ip 추적되는 거 모르시나요?
지웅님 이런 사람은 혼을 내줘야 합니다. 고소하세요.
sepial 2008/04/27 17:10 # 삭제 답글
"어른스러움이라는 이름의 패배의식 아래 조작된 세계를 뚫고 나가, 끝내 선두에 다가가고 있는" 환타지를 다룬 영화였군요... 보고 싶었는데, 보고나서 괜히 삘~받을까봐 조금 두렵네요...헤~네루아샤 2008/04/29 12:39 # 답글
사회상이 반영된 듯한 리뷰로군요. 그래도 좋은 내용인듯. 영화는 기회닿으면 안심하고 봐도 되겠네요 ^^떡은쑥떡 2008/04/30 03:22 # 삭제 답글
"<스피드 레이서>는 세계의 부조리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저 시스템 안에 삶을 투신하는 게 진짜 어른이라 말하는 기존 권력에 대항하는 이야기다. 그것을 어른스럽다고 말하는 입술을 실용주의가 아닌 패배주의로, 이에 대항하는 용기와 재능을 이상주의가 아닌 성숙한 것으로 그려내는 게 워쇼스키 형제의 일관된 관심사다."그런데 워쇼스키형제는, 그러한 세계관을 자본의 시스템 안에서 팔아 엄청난 돈을 벌어서 잘먹고 잘살고 있죠.
우리는 8천원짜리 처연하고 쓸모없는 위로를 구입해서 소비한 후, 그뿐인 거고요.
뱀 2008/05/12 19:27 # 답글
신화적이군요.리드 2008/05/15 10:55 # 답글
스피드 레이서가 브이 포 벤데타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테마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브이 포 벤데타 쪽이 그러한 테마를 얘기하는 데 훨씬 진지하고 드라마틱했다고 생각하며, 스피드 레이서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약해졌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어디까지나 즐겁게' 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