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Country for Old Rambo
관련 글) 록키는 어떻게 스탤론을 구원했나
2007년 새해 벽두, 할리우드의 호사가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농담을 즐겼다. 첫째, 실베스타 스탤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 둘째, 스탤론이 록키의 새로운 시리즈를 연출했고 심지어 곧 개봉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한물도 아니고 이미 두 세물 맛이 간 스탤론에 관한 이야기도 여전히 ‘뉴스’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러거나 말거나 스탤론의 때늦은 통산 여섯 번째 자아분열 프랜차이즈 <록키 발보아>는 흥행과 비평 양 쪽에서 고른 지지를 얻어냈다. 영화 개봉 전까지 계속됐던 온갖 종류의 비아냥을 감안해보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아무도 기대하거나 예측하지 못한 성공이었다.
발보아와 스탤론이 보여준 삶의 궤적은 거의 대부분의 맥락에서 정확히 겹쳐진다. 서른 살의 무일푼 시나리오 작가 겸 배우 스탤론은 애초 일기를 써내려가는 심정으로 동갑내기 복싱 선수의 이야기를 탈고했고, 직접 발보아를 연기해 스타가 됐다. <록키>에서 발보아는 승리를 염원하지 않았다. 다만 15라운드를 끝까지 버텨내기를 바랐다. 이를 악물고 쓰러지지 않았던 15라운드의 자취는 영혼의 무게를 가늠케 하는 숭고한 기억으로 남았다. 벌써 31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이후의 삶은 달랐다. 이탈리안 종마 록키 발보아는 시리즈를 거듭하며 승리의 환희에 도취돼갔다. 그렇게 종횡무진 미국의 영광을 실천하는 동안 복싱 선수로서의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 스탤론 역시 일련의 필모그래프 위에서 하드바디 영웅 캐릭터들의 성공에 심취한 나머지 배우로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내는데 실패했다. 그는 ‘뇌 속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퇴물’ 취급을 받았다. 꽤 좋은 연기를 보여준 <캅랜드> 같은 영화마저 배우의 이미지와 등가로 취급돼 정당한 평가를 받는데 실패했다. 발보아와 스탤론은 공히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었다.
적어도 <록키 발보아> 전까지는 그랬다. <록키 발보아>는 발보아의 입을 빌려 “난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고, 아직 증명해야 할 게 많이 남아있는 배우”라고 절규하는 스탤론의 자기반영적 드라마로 완성됐다. <록키> 이후 시리즈 최초로 발보아의 패배를 비추지만, ‘버텨내는 삶’의 숭고함, 그 감출 수 없는 흙내 땀내의 무게감이 프레임마다 섞여 나왔다. 이 안에서 발보아는 아버지로서, 복싱선수로서,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입증해내고야 만다. 덕분에 스탤론은 자신의 영화경력을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스탤론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그러나 여전히, 과거다. 그는 아직도 끊임없이 지난날을 복기하는 중이다. 스탤론이 선택한 길은 존 람보의 인생 속으로 한 번 더 들어가 정글을 헤집고 적의 목을 비트는 일이다. 신작 <람보 4: 라스트 블러드>는 미얀마에서 조용한 말년을 보내고 있던 존 람보가, 군부세력에 납치된 개신교 봉사단원들을 구출해내는 내용을 다룬다. 영화는 극도로 과격한 폭력 장면과 단순한 시나리오 구조 때문에 진작 찬반양론에 휩싸였다. 언뜻 안일하거나 공교로운 선택이다. 존 람보는 80년대를 꼬박 다 채웠던 레이건 대통령 시대의 강경 대외정책을 그 자체로 상징하다시피 하는 아이콘이다. 레이건이 감행한 레바논 파병, 리비아 폭격, 그라나다 침공, 나카라과 반군 지원,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란-콘트라 사건 등, 제 3세계에 대한 폭력과 간섭의 상흔들은 고스란히 ‘람보’라는 이름의 원죄로 기억되고 환기된다. 영웅의 귀환이 늘 환영받는 건 아니다. 한 줌의 향수를 제외하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우리가 떠올리는 머릿속의 람보와 실제 존 람보라는 인물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존 람보는 울증 환자에 가깝다. 우린 람보를 미국의 영웅으로 기억하지만, 그는 정작 미국에서 영웅 취급을 받아본 일이 없다. 데이빗 모렐의 소설 ‘퍼스트 블러드’를 영화화한 첫 번째 시리즈에서, 월남용사 람보는 이제 막 전역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골 길 위에 서 있었다.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허탕을 친 그는 행색이 초라하다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으로부터 부랑자 취급을 당한다. 조사를 당하는 과정에서 월남의 끔찍한 악몽을 떠올린 람보는 문제의 시골마을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자신을 말리러 온 트로트먼 대령에게 “난 국가를 위해 싸웠는데, 왜 국가는 나를 냉대하느냐”라며 울부짖는다.

이 탁월한 반전영화는 레이건 선출 직전에 촬영되고 개봉됐다. 레이건 임기 중에 만들어진 <람보 2>와 <람보 3>는 감옥에서 복역 중이던 존 람보를 엉뚱하게도 해외로 다시 내보낸다. 포로를 구해오라는 거다. 그 내용은 차라리 반공 캠페인에 가까웠다. 소련놈의 목을 비틀고 뱃가죽을 뚫어라! 시대의 요구에 철저히 부응한 셈이다. 그 와중에 정작 국가에 의해 희생당한 개인 존 람보의 표정은 지워지고 잊혀졌다. <람보 2>와 같은 해 개봉한 <록키 4>에서 스탤론 혹은 발보아는 아예 소련까지 쳐들어가 동구권의 복싱영웅 드라고를 때려눕히고 성조기를 온 몸에 휘감은 채 미국의 영광을 외친다. 스탤론을 망친 건 팔 할이 레이건 시대다.
<람보 4: 라스트 블러드>는 일종의 반성문이다. 요컨대, 스탤론은 신작을 통해 인간 존 람보의 잃어버린 표정과 온기를 되찾으려 시도하고 있다. 더불어 자기 방식대로 존 람보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거나, 최소한 다음 후속편으로 가 닿을 수 있는 뚜렷한 전사를 마련하고자 노력한다. <록키 발보아>로 이데올로기의 나팔수 노릇을 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민초들의 영웅으로 돌아왔듯, 여태 고향땅 한 번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존 람보를 국가의 부름으로부터 놓아주자는 거다. 물론 이건 스탤론의 자기 증명이기도 하다. 배우로서, 작가로서 가장 빛나던 그 시절의 존 람보와 록키 발보아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스탤론은 자신에 대한 재평가를 주문하고 있다. 목 놓아 증명하고 있다.
단순 과격하게만 보이던 람보의 새 이야기도 이런 맥락 위에서 보면 새롭게 보인다. 영화 속에서 존 람보는 개신교 봉사단원들에게 끊임없이, 그것도 대단히 유난스레 “당신(들)은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고 되풀이해 말한다. 이건 일종의 자기 암시이자 과거에 대한 강한 부정이다. 누가 뭐래도 람보의 역사야 말로 제 3세계 문제에 적극 개입해 폭력을 행사한 미국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존 람보는 매번 사적 복수심과 정의감에 불타 포로를 구하고 공산당의 목을 비틀어왔다. 그런데 그 스스로의 입으로 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회의하고 있다. 이후 과격하게 찢겨 흩날리는 몸뚱이들의 살풍경은 완연한 살인기계로 전락해버린 존 람보의 비극과 자각을 드러낸다. 그 길고 유구한 살인의 역사를 환기하고 있는 듯한 람보의 늘어진 눈매는 더 없이 묵직하고 괴로워 보인다.
물론 드라마의 개연성이 부족하다거나 람보를 제외한 캐릭터들의 맥락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은 유효하다. 아닌 게 아니라 <람보 4: 라스트 블러드>는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특히 미얀마 군부를 다루는 방식은 80년대 해외원정 액션영화의 풍경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만듦새를 드러낸다. 그래서 이상하다. 오히려 더 의뭉스럽다.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단순한, 전과 다를 게 없는 이 모든 과정이 차라리 의도된 게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진열되다시피 거듭된 과정들이 은퇴와 귀향이라는 모종의 결과를 위해 준비되고 계획됐다는 생각에 이르고야 만다.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노인의 지혜로움이 결코 세상을 다스릴 수 없음을 조용히 관조해낸 바 있다. 매번 마침내 세계의 원리에 가깝게 가 닿지만, 결코 그것을 감당해낼 수 없는 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늘 은퇴뿐이다. 늙은 람보를 위한 나라는 없다. 람보는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과거 외면당했던 개인의 가치를 회복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 스탤론과 존 람보는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듯 보인다. 이 늙은 현자들은 마침내 그토록 염원해마지 않았던, 그리고 진작 이뤄져야 마땅했던 귀향길에 오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익숙한 스코어의 멜로디. 길 위에 선 노쇠한 람보의 발걸음. 언뜻 비치는 안식의 평화. 부디 남김없이 증명했기를. 부디 평안하기를. 허지웅





덧글
비타민 2008/03/25 14:27 # 답글
이번 글도 잘읽었습니다. '반성문'같은 람보 4라... 그 보다 더 나은 비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허지웅님의 영화 리뷰를 읽을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제 생각과 닮은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저와 허지웅님이 정말 닮았거나 아니면 실상은 다르지만 허지웅님의 글을 읽고 저도 모르는 사이 허지웅님의 생각에 동화되어 버린 걸지도 모르죠. 어쨌든 덕분에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얻어갑니다. ^^romio 2008/03/25 16:35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뇌광청춘 2008/03/25 18:00 # 답글
타임지에서 스탤론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록키 발보아가 아메리칸 드림의 자화상이자 포지티브한 캐릭터라면, 존 람보는 끝없이 우울하고 자조적이며 네거티브한 캐릭터라고, 실베스타 스텔론 자신이 두 캐릭터를 정 반대로 표현하더라고요. 람보 4든 록키 발보아든, 실베스타 스탤론이 한 시대를 풍미한 캐릭터에 대해서 다시 생명을 부여하고 못 다한 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하는 점이 멋집니다. 퍼스트 블러드는 개인적으로 람보 시리즈 중 가장 멋진 작품 같은데 주변 평가는 그다지 안 좋네요. 이건 좀 아쉬워요;마르세유 2008/03/25 19:14 # 답글
글 잘읽었습니다.제 블로그에도 람보에 대한 글이 있는데 한번 들러주삼 *^^*
http://blog.daum.net/loch_ness/2703741
다른 계정의 블로그는 트랙백이 안걸리나요??
랑쿨 2008/03/25 19:18 # 답글
이 분위기에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우앙ㅋ굳ㅋ
이거 외에는 다른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생각도 못했던 그리고 전혀 보지도 못했던 그러나...
공감하게만드는... 그런 글입니다.
람보에서 저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셨고.. 그리고 그것을 말씀해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허지웅님 덕택에 견문이 조금은 넓어진거 같습니다. ^^
바하문트 2008/03/25 20:54 # 삭제 답글
역시 특이한 영화평이군요. 특히 제목 정말 맘에 듭니다.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한 달 전쯤에 써놓은 람보글이 있어서 트랙백 쏩니다.nayas 2008/03/25 21:51 # 답글
"스탤론을 망친 건 팔 할이 레이건 시대다." ... 아아... 잘 읽고 갑니다. :)좌파논객 2008/03/25 23:10 # 답글
람보1은 여자가 단 한명만 나오는 영화죠...marialove 2008/03/25 23:13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제목도 내용도.폐강과목 2008/03/26 03:13 # 답글
긴글이지만 상당히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하셨네요. 잘보고갑니다. ^^2008/03/26 18:33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