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꼭 많은 단어와 문장이 필요한 건 아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사실 명쾌한 영화다. 이 영화는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을 마주한 노인의 뿌리 깊은 한숨을 위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거꾸로 그런 폭력을 앞에 두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노인의 비관을 비난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당연히) 아니다. 단지 노인의 지혜로움이 결코 세상을 다스릴 수 없음을 조용히 관조해내는 영화다. 모든 노인이 지혜로운 건 아니지만, 시간의 녹을 먹은 노인들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울 수 있는 자들임에 틀림없다. 마침내 세계의 원리에 가깝게 가 닿았지만, 결코 그것을 감당해낼 수 없는 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늘 은퇴뿐이다. 이 세계에 시간의 개념이 생기고 역사가 기록된 이래 꾸준히 되풀이돼온 노인의 비극이다. 시공간을 통틀어 그 어디에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보안관의 마지막 독백이 바로 그 반복의 메커니즘을 친절하게 은유한다. 이 원칙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극 종반, 절대악 안톤 쉬거의 무력한 표정은, 그 역시 언젠가 모든 걸 알면서 동시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하고 말 것이라는 울림을 가져온다. 그렇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세상이 늘 어리석고 파괴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지혜로운 노인이 늘 사라져갈 수 밖에 없는 원리를, 그 모든 아비규환과 폭력과 살인과 슬픔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까닭을, 끝내 설명해내고야 만다. 굳이 ‘요즘 것들’ 이라는 비아냥을 섞지 않으면서 말이다. 할렐루야.





덧글
marialove 2008/03/03 17:10 # 답글
지금까지 평을 봤을 때는 별로 보고싶지 않은 영화였는데, 왠지 보고싶어지네요. :)골룸 2008/03/03 17:13 # 삭제 답글
노인의 지혜라면 사건을 쫓아가는 충실한 기록자로서의 토미 리 존스를 말하는 것이로군요. 그는 복기만을 할 뿐이었죠. 긴 평도 한번 해주시죠. ^^네모도리 2008/03/03 17:29 # 답글
이영화 보고나서 뭔 메시지야? 라고했는데왠지 정리가 되는듯 하네요
헤비스 2008/03/03 18:30 # 삭제 답글
아카데미 시상식 덕분에 코엔형제 영화라는걸 알았네요.본다본다 해놓고서는 여적 못 봤더래는;;;--;
the1tree 2008/03/03 18:30 # 삭제 답글
영화평 맘에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싸가오리.jez 2008/03/03 19:27 # 삭제 답글
첨 뵙겠습니다! (일단 인사부터. ㅎㅎㅎ)이 영화 좋았죠?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3:10 투 유마], 아주 만족스러웠달까요! ^^ 리뷰 잘 읽었습니다 ^^
누피 2008/03/03 21:54 # 삭제 답글
재미있게 봤지만 영화가 주는 의미를 100% 이해 못했는데 이 글을 보니 확 와닿는군요.멋지십니다.
2008/03/04 01:0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뇌분실 2008/03/04 09:10 # 삭제 답글
명쾌한 영화평 베리굿 입니다.앞으로 자주 들릴께요 ^^easyeats 2008/03/04 10:52 # 답글
저는 이영화 보면서 살인의 추억과 정말 비슷하다는 인상을 계속 받았습니다.뭔가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물론 제목과 말하고자 하는 것 등등은 살인의 추억과 다른긴 하지만
어떤 시각에서 보면 많이 닮아 있기도 한것 같아요~
끝까지 2008/03/04 11:21 # 답글
제가 어제 미니홈피에 이 영화 단평을 남겼는데 지웅님 시선이랑 비슷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ㅎㅎ그런데 정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까요?
영화관을 나서서 집에 돌아오는 내내 이 질문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답니다.
-_- 2008/03/08 14:57 # 삭제 답글
아..영화 너무 좋습니다. 코엔형제 이제 만발하는군요!-_- 2008/03/08 14:58 # 삭제 답글
어서 데어윌비블러드도 써주세요 아잉Groovie 2008/03/11 09:34 # 삭제 답글
저도 님과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 같습니다.근데... 노인이건, 젊은이건, 세상이건 ... 이유없이 화가 나고 환멸이 느껴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사회에 불만이 많은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인 것 같습니다만...
지금이야 젊은 혈기에 아는 것 없어도 떠들어대고 다니지만 ....
이 영화를 보고 결국 노인으로서의 나를 떠올려보니...
너무 비참하더군요...(왠지...)
;; 2008/03/29 20:59 # 삭제 답글
easyeats// 봉준호가 코엔형제한테 배웠으면 배웠겠지요..ㅡㅡ;;왕님 2008/06/20 00:20 # 삭제 답글
이 세상이 이렇게 된것은 다 문명의 이기때문이죠..물론 나도 그 세상에 길들여져 살고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