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배우의 진짜 얼굴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그들의 공통점은 스스로를 감추고 포장하면 할수록 배우 생명이 길어질 것이라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쌩얼’이었다. 눈이 달린 자라면 이 주근깨를 좀 보시라, 는 표정으로 전지현이 활짝 웃었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제작발표회에서 그녀는 촬영 중 겪은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담배를 피워봤다는 거예요. (입담배가 아니라) 제대로 피웠습니다. (중략) 이번 영화가 대박날 것을 확신하고 황정민, 정윤철 감독님과 함께하는 영광을 놓치기 싫어서 힘들어도 잘 견뎌냈어요.” 섹스 연기와 담배 피우는 장면 가운데 뭐가 더 어렵겠냐고 묻는 질문에는 이렇게 에둘렀다. “나중에 내 자식이 봐도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하고 싶어요. 자식이 엄마의 영화를 보고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담배는 건강에 나쁘고 후대에 귀감이 되는 건 참 아름다운 일이다. 전지현이 마더 테레사 같은 말을 하는 동안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흥행에 실패했다. 징후가 감지되자마자 대한민국 언론이 제일 좋아하는 ‘분석’이 시작됐다. ‘전지현, 또 저조한 흥행성적(스포츠조선)’ ‘여배우 파격변신, 빈 수레가 요란(데일리안)’ ‘섹시, 털털, 여배우들의 연기변신 내공을 키워라(데일리서프라이즈)’ ‘CF여왕의 연이은 흥행낙제(마이데일리)’ ‘CF퀸 약발 스크린에선 안 통한다(헤럴드경제)’ 흥행 실패의 원인을 둘러싼 모든 남 탓이 놀랍게도 배우 한 사람에게 집중돼버린 묘한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정말 그런가? 사실 이건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조승희가 비디오게임 때문에 살인했다는 말과 거의 비슷하게 들린다. 맥락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관심도 없이 그저 당장 논리와 합리의 마술을 들어 ‘범인은 이 안에 있어’라고 떠벌이고 싶은, 한국 언론의 해묵은 바보짓일 뿐이다. 하지만 이하의 질문을 품고 있는 당신이라면, 이 상황은 이해를 넓히는 꽤 적절한 논거로 제시될 만하다. 왜 날이 갈수록 배우의 진짜 얼굴을, 진심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지나. 배우들은 왜 영화 홍보할 때만 매체에 얼굴을 비출까. 인터뷰는 왜 그렇게 가식적이고 재미가 없나. 한국의 스타급 배우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방어적인 걸까.
매체 인터뷰에 나선 배우의 입으로부터 가슴에 둥둥 사무칠 만한 말을 듣는다는 건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그만큼 드물고 희귀하다. 제일 흔한 경우는 ‘오늘 미리 준비해온 멘트는 여기까지’식으로 앵무새 흉내를 내는 배우다. 대부분 자연스러운 것처럼 행동하려 노력하지만 뱉는 말들이 하나 같이 공자의 말씀과 윤리 교과서 사이를 맴돈다. 정치적으로 옳은 말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모두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뱉고 싶은 듯 보인다. 그래서 뭐시기 언론사와의 인터뷰와 거시기 언론사와의 인터뷰가 토씨 빼고는 별 다를 게 없다. 이런 부류일수록 미리 질문지를 요구하는 횟수가 잦다. 한류스타 아무개에게 “설사 질문지를 미리 드린다고 하더라도 그 문항 그대로 질문할 순 없다”라고 말했다가 한 시간 후 다음과 같은 연락을 받았다. “죄송하지만, CF 촬영과 중국 팬 미팅 일정이 겹쳐져서 (횡설수설) 아무튼 부득이하게 인터뷰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영화에 관련된 것만 물어 보세요’라고 입을 다무는 경우는 그래도 낫다. 시종일관 매니저의 눈치를 살피면서 무슨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 자기검열을 거듭하는 배우보다는 훨씬 매력적이다. 특히 ‘거대한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당신 따위와 궁극적인 소통에 이를 수 없다’표 배우를 만나면 대책이 서지 않는다. 언제나 15도 상위 허공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비타협적 자폐의 공기를 지루하게 부유하는 중인데, 여간해선 지구의 언어로 대화하기 어렵다. 최악의 경우는 ‘나는 전설이다’ 케이스다. 일종의 병리학적 증후군에 가깝다고 할 만하다. 일단 지구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세계관을 주위에 끊임없이 강요한다. 그러면서 나는 쿨하고 너희는 저속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관대하기 때문에 질문에 대답 정도는 해주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천박하게 솔직한’ 취재원이 되길 자처한다. 이게 인터뷰 자리에 나선 대다수 한국 배우들의 클리셰다.
이상의 반응들은 심심하거나, 최악의 경우 병적으로 비춰진다. 물론 제대로 된 인터뷰어가 가뭄에 콩 나듯 희귀한 것 또한 진실이다. 바보 같은 인터뷰어들은 취재원의 진짜 얼굴을 보겠다는 미명 하에 쓸데없는 공격성을 종종 자극한다. 가끔은 그렇게 명성을 얻기도 한다. 최근 벌어진 송일국과 월간지 프리랜서 인터뷰어 사이의 소송 전쟁이 좋은 예다. 맞았다는 여기자와 때리지 않았다는 배우 사이에 법적 공방이 오고가고 천문학적인 보상액이 거론됐다. 좀 다른 지점에서 나훈아는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지침을 적극 활용해 승자가 됐다. 그는 기자들을 잔뜩 모아놓고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댔다. 그리고 자신과 관련된 소문 속의 여배우들을 보호해달라고 호소했다. 세련된 무대 화술이 빛을 발했다. 그는 기어이 바지를 내리고 신뢰를 샀다. 언론으로부터 공공의 인증이 떨어졌다. 나훈아가 진실을 말했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어쨌든 그는, 모두가 스타를 좋아하지만 또한 그들이 무너지는 걸 보고 싶어한다는 잔인한 진실 위에 올라서서 대인배가 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모든 배우가 오해를 살 때마다 바지를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스타에겐 소문이 따르기 마련이다. 한때 스타들의 성 편력을 모아놓은 이른바 엑스파일 문서가 유출돼 돌아다녔다.이런 상황이 자주 전개될수록 배우들은 표정을 숨기고 속내를 드러내 보이길 주저하고 포장을 한 겹 더 둘러 꽁꽁 싸매 버린다. 이들의 공통점은 스스로를 감추고 포장하면 할수록 배우 생명이 길어질 것이라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착각이다. 오히려 신비주의를 지향하는 처세술이 언론의 병증을 더욱 깊게 했을 뿐이다.
단지 개인의 그릇 문제만은 아니다. 배우의 태도란 사회적 맥락을 떠나 결정될 수 없다. 여기에는 공인이라는 이름의 허울 좋은 올가미로 평균 이상의 윤리적 사고관을 강요하는 대중의 폭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하지만 산업적인 맥락에서 좀 더 근원적인 탐색이 가능하다. 그 출발은 매니지먼트 산업의 과잉 발달부터 시작된다. 지금, 한 명의 배우는 곧 하나의 기업과 같다. 모든 건 돈다발과 등가로 취급돼 값이 매겨지고 순위가 따른다. 이미지는 가공되고 인성이 창조되고 태도는 조작된다. 예전에도 배우는 선망의 대상이고 대중의 스타였다. 그래도 그때는 사람 같았다. 이제는 걸어 다니는 재무제표에 더 가깝다. 홍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인터뷰는 성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도대체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건지 뭔지 알 수가 없다.
배우에 대한 매니지먼트사의 장악력이 강해지기 시작한 건 한국영화계에 거품이 두터워지면서부터다. 자본이 집중된 곳에 산업이 있다. 대박영화가 나오고 천만관객 시대가 도래하면서, 무조건 큰 규모의 작품이 한국영화계를 살릴 유일한 대안이라는 식의 공공연한 거짓말이 충무로를 가득 메웠다. 헛배 부른 환상이었다. 영화 산업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이 대작 위주로 재편됐다. 마케팅 비용부터 스타의 몸값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제는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영화를 만들 수 없다. 만드는 족족 손해다. 평균 제작비 30억을 투입해 만든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맞아야 한다. 요즘 같아선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다. 결국 그 부작용으로 현재 한국영화계는 고사 위기에 빠져 있다.
이 거대한 병폐의 맥락 위에 배우의 문제가 걸쳐 있다. 대작 영화를 향한 욕망은 스타급 배우들의 개런티 인상을 낳았다. 더불어 관리의 필요성이 증폭됐다. 이제 거의 모든 배우는 매니지먼트의 관리 없이 움직이지 못한다. 스타급이 아니더라도 스타와 같은 시스템 안에 속해 전략적으로 배치되고 활용된다. 배우의 향상된 권력은, 그러나 양날의 검이었다. 권력을 가지되 흥행 실패에 따르는 리스크도 전적으로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금전적으로 손해 볼 일은 없다. 하지만 흥행 실패는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는 배우에게 치명적인 상흔을 남긴다. 힘을 증명하지 못한 스타성은 곧 휴지조각이 된 주식을 의미한다.
전지현으로 돌아가 보자. 배우는 언론의 필요에 의해 신화화된다. 하지만 흥행에 실패하면 원흉이 된다. 그래서 더욱 더 방어적으로 처신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배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고, 실제 모습이야 어떻든 본업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정답이다. 하지만 정답이 아니다. 산업 위에서 밥을 벌어먹고 있는 이상 그들의 스타성에 기생하는 온갖 돈벌이의 건강한 방법론을 찾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형같이 굳어져 뻐끔뻐끔 빤한 소리만 늘어놓는 배우의 표정 뒤로 모든 병폐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한국영화계의 비대한 질적 타락이 끊임없이 환기된다. 자아도취와 의도적 자폐증, 도덕 선생님을 가장한 배우들만 갈수록 늘어간다. 얼마나 지루하고 끔찍한 일인가.
허지웅 (GQ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