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다원주의 나부랭이에 기계적으로 근거하지 않아도 서로 다르다는 것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 나의 다름과 너의 다름이 어떤 위계도 없이 어울리되 나도 옳고 너도 옳다는 헛소리는 폭력이라 말할 수 있는 세상. 차라리 모두가 이방인인 세상. 진영이라는 환상 안에서 질투와 자기연민에 사로잡혀 서로 잘났고 자신만이 유일한 진짜라고 우기는 인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세상. 우리는 무엇무엇 해야 한다, 왜냐하면 무엇무엇 해야만 하니까, 식의 당위가 실제를 위협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상식이 통용될 수 있는 세상. 자기 행동에만 특별한 맥락이 있다며 똑같은 행동을 하는 타자에게 쉬운 가치판단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절룩거리는 세상. 조직 안에서의 사람 됨됨이를 따지는 데 유독 천착하지만 정작 진짜 됨됨이에는 예민하지 못한, 인간적일 것을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반푼이들이 멸종된 세상. 그런 세상.


통진당 당권파가 물러나야


이명세 감독 하차, <미스터 K> 이후가 문제다

이명세 감독이 결국 <미스터 K>에서 하차했다. 밖에서 보면 그냥 가십일 수 있다. 그러나 이명세라는 개인의 상징을 지우고 보더라도 이건 꽤 큰 일이다. 대개의 분쟁이란 <라쇼몽>처럼 이해당사자들의 기억 속에서 일방적으로 곡해되기 마련이다. 서로 다른 버전의 억울함이 상존할 수 있다. 어느 한 쪽의 의견을 채택해 상대를 규탄하는 건 쉽고 편한 일이다. 단지 이명세 감독의 하차로 끝날 일이 아니라서 주의 깊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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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과 어벤져스

황당한 기획이었다. 마블 유니버스의 어벤져스를 스크린에 재현하겠다는 생각은 야심을 넘어 몽상에 가까웠다. 실현되더라도 우스꽝스러워 보일 게 빤했다. 대체 영화 한 편에서 그 많은 캐릭터들의 드라마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스파이더맨> 정도를 제외하면 <판타스틱4> <헐크> <데어데블> 등 마블 원작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한 마당에 무슨 수로 투자를 받을 것인가. 이 유서 깊은 코믹스 팬덤의 다양한 기대치를 어떻게 충족할 것인가. 그러나 마블은 집요했다. 직접 제작사를 만들었다. <아이언맨>부터 <인크레더블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어벤져스>로 향하는 밑그림을 하나씩 완성해나갔다. <캡틴 아메리카> 말미에 삽입된 <어벤져스> 예고편은 사람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이게 정말 가능했단 말인가. 그렇게 우리 앞에 <어벤져스>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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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단평

1. 어벤져스 재미있습니다. 팀플 고취되기 전까지 그러니까 쉴드 본부 시퀀스는 좀 느슨한데요, 그 뒤로는 보여줄 게 많으니까. 토르나 캡틴 덕에 토니 스타크식 유머가 굉장히 잘 먹힙니다(스타크 유머는 놀려먹을 무뚝뚝하고 센 상대가 있어야 효과를 발휘하지요). 놀라운 건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고 성공적인 캐릭터가, 다른 누구도 아닌 헐크라는 점. 헐크 말입니다.

2. 어벤져스 유니버스를 스크린에 옮겨놓는다는 이 허황된 망상같은 기획을 꾸준히 준비하고 끝내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은 것으로 마블 엔터는 정말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극 중 스타크와 캡틴을 다루는 태도를 보니 스파이더맨 판권만 해결되면 시빌워 같은 이벤트까지도 기대할 수 있겠어요. 애초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의 경계를 개별 캐릭터 연작이 아닌 이벤트까지 확장하는 게 마블 엔터의 로드맵이죠. 아무튼 만세.

3. 어벤져스 끝나고 속편 악당 예고하는 영상까지 보고 나가세요. '그 분'은 마블 유니버스 안에서도 사기에 가까운 파괴력으로 역대 최강 캐릭터 1, 2위를 다투는 분인데... 지금 진영으로 그분을 상대하는 건 어림도 없고 판타스틱4까지 리부트해야할 상황.

4. 한 줄 요약: 돈지랄은 이렇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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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극장의 추억


'나는 그 극장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 극장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엄하고 말이 없던 아버지가 왜 거기 나를 데리고 갔던 것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동생은 어디 가고 나만 혼자 아버지와 있었는지 또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버지 손을 잡고 복잡한 시장통을 한참 걸었다. 극장이 보였다. 2층 짜리 건물이었다. 손으로 그린 영화 포스터가 건물 전면에 걸려 있었다. 왼쪽에는 속옷만 입은 아주머니가 딸 같은 소녀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장총을 든채 허공을 노려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에는 너무 남자 답게 딱 벌어진 어깨를 가진 고릴라가 한 손에 헬리콥터를 든채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에 압도 당했다. 그림이 너무 폭력적으로 멋졌다. 사람이 어떻게 저리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에이리언2>와 <킹콩2>가 동시상영 중인 극장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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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박스: 이 버튼을 누르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이 글에는 영화 <더 박스>의 원작 소설인 단편 <버튼, 버튼>의 결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버튼, 버튼>은 리처드 매드슨이 1970년 <플레이보이>에 연재했던 단편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어느 날 가난하고 젊은 부부에게 상자 하나가 배달된다. 상자에는 버튼이 붙어있다. 부부를 방문한 남자는 “이 상자의 버튼을 누르면 5만 달러를 주겠다. 다만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 누군가 죽는다. 그리고 죽는 건 당신이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설명한다. 부부는 며칠 동안 고민한다. 결국 아내가 버튼을 누른다. 죽은 것은 엉뚱하게도 남편이었다. 5만 달러를 전달하러 온 남자에게 아내가 항의한다. 왜 남편이 죽지요? 남자가 대답한다. 당신은 남편에 대해 정말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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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연대, 김용민, 진보신당

http://blog.ohmynews.com/litmus/176644



생계형 필자다보니 데뷔가 늦었다. 이건 그러니까, 야권연대의 이상이 우리의 이상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어쩌면 진보신당 지지를 호소하는 글이다. 리트머스에 실리는 모든 글이 그렇듯 이 또한 필진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지 않는다. 지난 주 시사인에 기고한 글을 뼈대에 두고 많이 덧붙여 새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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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성 이후 문대성 너머

문대성 이상하지 않나. 이상한데. 그는 여전히 “나는 결코 표절하지 않았다”(3일 부산 사하구 선관위 주최 TV토론)고 주장하는 중이다. 사실 그게 표절이 아니라 데칼코마니예요 제가 미술을 복수전공했거든요,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면 이거 되게 이상하잖아. 문대성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면 <일본은 없다>는 팝아트다. 학술단체협의회는 문대성의 총선 후보와 교수직 사퇴를 요구했고 국민대는 표절심사에 돌입했으며 동아대는 심사결과에 따라 그의 교수직 유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문대성은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는 TV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한 새누리당의 다른 후보들처럼 멘붕 상태인가. 심각한 수준의 인지부조화인가. 속내는 알 수 없다. 어찌됐든 나는 문대성의 자신감이 흥미롭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그가 몸 담고 있는 모종의 체계로부터 발화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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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TV 총선대담(진중권 허지웅 한윤형)

칼라TV 총선대담(진중권 허지웅 한윤형)
장소: 레드북스
촬영: 기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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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시온 인터뷰

(이것도 2007년 특집기사 때 인터뷰. 역시 아카이빙 목적으로 저장)

2007.02.07 / 허지웅 기자

쉽게 제기할 수 없는 문제의식을 성장드라마의 형식을 빌려 성공적으로 투영하고 직조해낸 <노리코의 식탁>은 단연 경탄할 만한 발견이다. 짧고 굵은 필모그래프를 통해 존재감을 과시해온 소노 시온 감독은 우리 시대 가장 명민하고 날카로운 작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소노 시온 프로필ㅣ1961년 출생ㅣ<자전거의 한숨> <헤야> <자살클럽> <하자드> <꿈속에> <노리코의 식탁> <기묘한 서커스>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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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거나 혹은 성장하거나: 소노 시온과 노리코의 식탁

(2007년에 쓴 필름2.0 특집기사. 아카이빙 목적으로 올립니다)

2007.02.07 / 허지웅 기자

<노리코의 식탁>은 <자살클럽>으로 잘 알려진 소노 시온 감독의 ‘자살 서클 삼부작’ 중 두 번째 영화다. 소노 시온의 기괴한 영화세계로 들어가는 좁고 험준한 길에 반드시 챙겨가야 할 지침서를 준비했다. 다른 건 없어도 좋다. 주머니 속에 꾹꾹 눌러 넣어둬야 이 복잡다단한 사건사고의 골짜기에서 무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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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구제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자고로 쌀 없으면 튼튼한 동아줄이라도 있어야 어디 가서 어깨 펴고 사기친다고. 돈이 있는 자는 돈이 구제해주고 줄이 좋은 자는 줄이 구제해준다. 그렇다면 비빌 언덕 없는 사람은 누가 구제해주나. 누구긴 누가 구제해주나 자력구제해야지. 가진 것은 없어도 영혼이 따뜻한 잉여들의 자력구제 시트콤, 윤성호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MBC every1)가 9회를 마지막으로 종영했다. 근사한 이야기였다. 채널 접근성이 더 나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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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개론에 관한 비뚤어진 시선

<건축학 개론>은 결이 곱고 잘 정돈된 영화다. 딱히 날선 불편함 없이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게 만든다.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에게 폭 넓게 소구할만한 이야기와 정서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대부분 개인의 역사에 수렴하고 있다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그들은 <건축학 개론>이라는 자극에 대해, 전람회나 015B를 경유하는 자신들의 기억으로 반응한다. 한 편의 영화가 사랑받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편리한 방법은 관객 개인의 기억 안에서 사유화되는 것이다. 그런 영화에는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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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심빠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관련 글: http://newscomm.nate.com/celebrity/celebView?post_sq=2736278



1. 그 많은 심빠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2.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한 가지. <디 워>가 소란스러웠던 이유는 그 영화가 후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애초 <시민케인>이 되고자한 영화가 아니었잖아요. 단지 거대한 돈 놀이였을 뿐입니다. 불투명한 수익성 때문도 아니고요. 수익성이야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요. 수익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국부를 향한 환상에 젖어있는 표정입니다. <디 워>가 얼마를 벌든 대한민국 영화계가 혹은 당신 주머니가 채워질 일은 없습니다. 이 거대한 도마뱀 아리랑 인형극을 공중파 토론 프로그램에까지 소환시킨 원동력은 영화를 둘러싼 다수의 광기였습니다. 이 광기는 세계에서 통하는 아이템. 한국의 아무개를 탐닉하고 욕망하는 집단 정서로부터 출발하고요.

3.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아이템? 그런 거 아무도 모릅니다. 김기덕 영화가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나요? <똥파리>가 세계에서 통하리라 예상되는 영화였어요? 정작 그간 세계에서 통한 한국 콘텐츠는 ‘글로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천억짜리 영화나 일억짜리 영화나 해외시장에선 별반 다를 게 없는 ‘한국영화’입니다. 어떻게 하면, 뭘 따라 하면, 돈을 얼마를 들이면 해외에서 통할까 고민할 시간과 자원을 들여 그냥 작품 자체를 잘 만들면 됩니다. 내수 시장에서 통하면 해외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통해요. 그런데 자꾸 해외의 성공 사례만을 기계적으로 뒤쫓습니다. 한국의 아무개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단기간에 성과를 보고 싶어합니다. 그러다 보니 엄한 국민 세금만 꾸역꾸역 낭비됩니다. ‘글로벌 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허비되고 있는 눈먼 세금을 확인하면 누구든 한국사람 안하고 싶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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