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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이 한국영화판에 끼치는 영향력은 가히 막강하다. 충무로 관계자들은 오늘도 인터넷 상에서 영화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전후사정을 따져보면 의문이 든다. 네티즌은 과연 영화계를 지배하는 절대 강자인가.
억, 소리 나올 만하지만 아주 새롭고 놀라운 광경은 아니다. 네이버 검색창 오른 편에 들어가는 고정 배너는 하루 8천만 원에서 1억 원이 들어가고, 검색창 밑에 랜덤으로 돌아가는 광고도 일주일에 천만 원이 소요된다. 그나마도 광고가 노출되는 경우의 수를 늘리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한 번은 온라인 마케팅 대행사들끼리 담합해 네이버를 보이콧하기로 한 적이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광고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네이버에 영화 광고가 똑, 끊겼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누가 먼저 다시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애초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었다. ‘다음’도 있고 ‘엠파스’도 있고 ‘야후’도 있는데 왜 그러냐고? 네이버가 딱히 무서워서가 아니다. 네이버를 오가는 (타 포털사이트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더 많은 수의) 네티즌들 때문이다. 네티즌에게 노출되지 않고선 광화문 사거리에 대형 플래카드를 걸고 3대 일간지와 주간지와 월간지에 전면 광고를 넣거나 말거나 제대로 된 홍보가 이뤄지지 않는다. 혹자들은 네티즌이라는 이름의 여론 단위가 실체를 가진 세력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나아가 네티즌=일반대중이라는 등식도 종종 도마 위에 올라 그 진위 여부를 확인 받는다. 네티즌이라는 실체 없는 허상을 설정해놓고 대단한 희망이나 노골적인 부정의 대상으로 다루는 언론 기사를 종종 만나게 된다. 하지만 최소한 영화시장에서 만큼은 성립되는 이야기다. 영화 마케팅 업무의 70퍼센트 이상이 이미 네티즌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네티즌의 호감어린 여론을 등에 업은 영화는 대부분 흥행에 성공한다. 지면 광고와 프로모션 마케팅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영화 홍보에 관련된 사람들은 개봉 전부터 인터넷 영화 사이트의 게시판을 주목하고 나선다. 20자평이 올라올 때마다, 네티즌 리뷰가 올라올 때마다 잠시 숨이 멎었다, 풀린다. 혹시라도 좋지 않은 평이 올라오면 그 위로 좋은 리뷰를 써 올려놓는다. 평점이 낮으면 가용 직원을 모두 동원해서 가능한 점수를 끌어올린다. 이런 작업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업체도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무실’이다. 2천만 원만 들이면 일주일 내내 검색어 순위 10위권 안에 영화 제목이나 배우의 이름이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민등록번호 도용이나 유령 아이디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10명 남짓의 소규모 아르바이트생이 하루 종일 가동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작업이다. 회원수가 많은 인터넷 영화 커뮤니티, 카페와 협력해 시사회를 준비해주는 대신 리뷰를 요구하는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영화홍보사 프리비전의 김희준 부장은 “요즘 포털 사이트의 영화 섹션에서 (경쟁사 영화의)호의적인 리뷰를 발견하면 이게 정말 네티즌이 쓴 건지, 혹은 여론 몰이를 위한 조작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이 모든 노력들이 결국 네티즌의 이목을 끌기 위한 수단임은 자명하다. 과거에는 주말에 볼 영화를 선택하는 절대적 기준이 대부분 주변 지인들의 추천에서 비롯됐다. 영화에 조금 더 관심 있는 사람들은 전문지를 들춰보거나 평론가의 글을 수소문해 영화를 골랐다. 이제는 그 역할을 온전히 인터넷 영화 사이트의 네티즌 리뷰와 평점, 인터넷 예매 순위가 대신하고 있다. 전문 매체의 리뷰보다는 영화를 직접 보고 온 일반 관객 네티즌의 감회와 배점에 더 큰 신뢰감을 갖는다.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시장 담론 형성의 주도권이 일부 전문가 세력으로부터 관객에게 넘어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네티즌들은 영화 사이트의 게시판에서, 혹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영화에 대한 발언을 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정보를 공유한다. 이제는 심지어 거꾸로 주류 언론에서 네티즌들이 형성한 담론을 ‘취재해’ 그대로 기사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얼마 전 <디 워>와 관련된 인터넷 상에서의 뜨거운 공방은, 영화계를 포함한 한국의 주류 매체시장이 네티즌 여론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네티즌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신문 기사로, 그리고 다시 방송 매체의 토론 프로그램으로까지 진출해 오프라인에서의 물리적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 정도면 네티즌이 영화계를 지배한다고 해도 무방할 듯 보인다. 인터넷에서 영화 정보를 소비하는 대중들이 스스로 네티즌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를 떠나, 그 영향력만큼은 실체를 가진 현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거대한 영향력을 갖게 된 네티즌이 영화 시장을 지배하는 건지,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거대한 자본권력에 지배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심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고려대 대학원 언론학과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된 ‘한국영화 흥행결정 요인에 대한 연구’의 내용에 따르면, 흥행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개봉 초기 인터넷에 올라오는 네티즌 리뷰 수와 스크린 수이며, 둘의 영향력이 비슷한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개봉한 108편의 한국영화 가운데 스크린 수가 20개 미만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81편에 대해 전문가 인터뷰와 설문, 인터넷 자료 조사로 얻어진 결과다. 총 관객 수에 미치는 요소들을 영향력 순으로 정리했을 때 네티즌 리뷰 수(조사대상: 네이버의 네티즌 40자평)-개봉 스크린 수-제작사-감독-배급사-스타라는 결과가 얻어졌다. 특히 개봉 2주차에 올라오는 리뷰 수를 계산하면 최종 관객 수를 예상할 수 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앞선 데이터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의미 있는 팩트는 “과연 네티즌은 대단하다”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네티즌 집단이 얼마나 피동적으로 배급 자본권력을 좇아 여론을 형성하는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에 더 가깝다. 단순히 네티즌이 지지하는 영화가 흥행한다, 는 게 아니라 보다 막강한 배급 권력을 등에 업은 영화를 절대다수 네티즌이 맹목적으로 선호한다는 이야기다. 개봉 스크린 수와 네티즌 리뷰 수가 최종 관객 수에 미치는 영향력이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개봉 스크린 수는 메이저 배급사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상기시킨다. 한국의 주요 거대 배급사는 모두 자신들의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을 소유하고 있고, 이미 그 부작용이 스크린 독과점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총 관객 수에 영향을 미치는 6가지 요인 가운데 배급사가 5번째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는 스크린 수를 결정하는 게 배급사의 힘이라는 한국적 상황을 간과한 오류 값이다. 네티즌으로 표상되는 일반 관객 대중에게 영화시장 판도 결정의 권력이 넘어갔다. 이것은 진보다. 네티즌이 그렇게 얻은 권력을 자본에 통째로 넘겨줬다. 이것은 반동이다. 인터넷은 대중의 목소리가 한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발휘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건대, 앉은 자리에서 리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고 예매를 하기까지 과정을 한 두 번의 클릭으로 연동시킨 인터넷의 하이퍼링크 패러다임은 대중을 편의성과 자본집중의 골속으로 밀어 넣었다. 논문은 개봉 2주차에 올라온 네티즌 리뷰 수와 총 관객 수의 상관관계가 0.9에 육박한다고 말하고 있다. 상관관계가 1이면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의미이므로 0.9라는 수치는 정비례에 근접한 결과라는 걸 알 수 있다. 네티즌과 자본권력의 이해관계는 그만큼 긴밀하게 연동하는 중이다. 네티즌은 신장된 소비자의 권리에 흡족해하며 권력을 실감한다. 영화시장의 자본권력은 이에 부응하는 척하면서 네티즌의 독자적인 영향력에 대한 환상을 더해준다. 언뜻 보면 네티즌의 힘은 정말 막강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자발적으로 자본의 이해관계를 위해 종사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에 가서 배를 불리는 건 포털 사이트와 배급사, 극장과 같이 집중화된 자본 권력이다. 한 때는 한국의 발달된 인터넷 환경이 집단주의적 속성에 치우쳐있는 사회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던 때가 있었다. “두 번째 한강의 기적”이라며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라고 자랑하는 지금에 이르러, 이 땅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은 심화되고 집단의 폭력은 공권력 이상으로 단단해졌다. 개인의 자율적인 가치는 전보다 더 무시된다. 네티즌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목소리를 찾았던 대중은 개인 단위로 쪼개지기를 포기하고 한 무더기로 통합된 채 자본에 종속당했다. 이게 단지 영화시장에 국한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네티즌 혁명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허지웅 (GQ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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