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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상영관을 늘려달라고 부탁하고 나섰다. 극장에 스크린은 열 한 개인데 같은 영화가 열 개 관에서 상영 중이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디 워>와 <화려한 휴가>가 장악해버린 극장가의 모습은 죽음 직전에 다다른 한국영화판의 초상같다.
거지가 나타났다. 상영관을 구걸한다. 관객들이다. "<리턴> 상영관을 보존해주세요" "<기담>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습니다, 상영관을 늘려주세요" 같은 네티즌 탄원서가 사이버스페이스 사거리 위로 삐라마냥 휘날린다. 언뜻 익숙한 광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새롭다. 과거에는 재상영을 요구하는 팬덤 지지층의 시위가 있었을 뿐이다. <고양이를 부탁해>와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기시감이 살짝 겹쳐오지만, 지금과는 맥락이 사뭇 다르다. 그렇다면 관객을 거지로 만든 건 무엇인가. 최소한의 업계윤리를 저버린 배급사의 폭력이다. 무조건 1등을 해야만 손익분기점에 다다를 수 있는 영화 시장의 비정상성이다. 영화의 가치를 관객점유율로 수치화시켜 스포츠 중계식 보도를 일삼아온 언론의 분열증이다. 스크린쿼터라는 낡은 안전장치에만 매달려 내부의 적을 양산해버린 충무로의 구조적 허약함이다. 그리고, 무조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옳든 그르든 자본주의의 원칙이고 숙명이라고 쉽게 긍정해버리는 반쪽 짜리 지성이다. 대한민국에 영화 스크린 수가 약 2,100여 개다. 이 가운데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가입된 스크린이 1,800여 개다. 지난 8월 초 <디 워>는 전국 700개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화려한 휴가>는 551개였다. 두 편의 영화가 점유한 스크린 수만 따져 봐도 1,200개를 훌쩍 넘는다.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900여 개 상영관을 차지한 개별 작품이 없었으니 독과점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상의 독과점이다. 8월 둘째 주말 극장 스크린의 45%가 쇼박스의 <디 워>를, 23.5%가 CJ엔터테인먼트의 <화려한 휴가>를 선택했다. 나머지 31.5%의 스크린을 <판타스틱4: 실버서퍼의 위협>과 <리턴>과 <라따뚜이>와 <서핑업>과 <기담>과 <1408>, 그리고 개봉한 지 한 두 달이 넘어 극장에서 빠지는 중이던 <다이하드 4.0>과 <트랜스포머>가 나눠가졌다. 실제 극장을 나가보면 체감 수치가 더 컸다. 지네 발만큼이나 상영관이 많은 멀티플렉스 극장을 찾아가도 <디 워>와 <화려한 휴가> 이외에 다른 작품을 감상하기란 요원해보였다. 대부분 한 두 개의 상영관에서 교차상영(한 개 상영관에서 두 개 이상의 영화를 번갈아 상영하는 형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맞지 않아서라도 볼 수가 없었다. 상영할 영화를 스크린에 안배하는 건 극장의 권한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주요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을 메이저 배급사들이 다 소유하고 있다. 쇼박스의 메가박스와 CJ엔터테인먼트의 CGV가 그 대표격이다. 더 많은 스크린에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영화는, 배급사가 선택한 작품일 수밖에 없다. 정상이 아니다. 한국에선 정상이다. 그 최대 피해자가 <기담>과 <리턴>이라는 사실은 비극에 가까운 대목이다. 한국의 여름 영화시장은 웬만해서 좋은 장르영화가 출연하기 힘든 산업적, 시장적 토양을 가지고 있다. 제대로 된 장르물을 만들 수 있는 영화작가도 부족할뿐더러, 적은 제작비에 신선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장르영화가 빛을 볼 수있는 환경도 아니다. 순제작비 이외의 비용이 워낙 많이 들다보니 저예산 장르영화로 흑자를 보기가 어렵다. 결국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객이 이해할 수있게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연출진을 압박한다. 상상력이 거세된 장르영화만 나올 수밖에 없다. <기담>과 <리턴>은 변종처럼 보였다. 정가형제 감독의 공포물 <기담>과 이규만 감독의 스릴러 <리턴>은 출중한 만듦새를 드러내며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얻어냈다. 입소문을 탈 만큼 두 장르영화의 매력은 확고했다. 미학적 측면에서, 드라마의 완성도에서 일정 이상의 성과를 거둔 <기담>과 <리턴>의 매력은, 그러나 관객들과 쉽게 만날 수 없었다. 28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전국 200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기담>은 개봉 첫 주부터 스크린이 감소하기 시작하더니, 일주일 만에 교차상영에 돌입했다. 관객들이 영화를 외면했기 때문이 아니다. <디 워>와 <화려한 휴가>의 상영관을 늘리기 위해 극장이 선택한 거다. <기담>은 6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31억 원으로 만들어진 <리턴> 역시 240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지 2주일이 채 안 되어 <기담>과 똑같은 운명을 맞았다. 놀랍게도 <리턴>은 <화려한 휴가>를 배급하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의 배급작품이다. 그래도 결과가 이렇다. 배급사 입장에선 <화려한 휴가>가 돈을 벌어다주고 있으니 별 문제가 안 된다. <기담>을 제작한 도로시의 장소정 대표는 "당초 (관객 동원) 목표치를 150만 명으로 잡았었고, 관객 반응과 점유율만 두고 봤을 때도 분명 승산이 있었다. 애초 상영 공간의 문제에 있어서 상황이 공정하지 못했다"며 "(네티즌 청원에 힘입어) 6개관 남짓의 소규모 상영이 계속되고 있다. 향후 독립, 예술영화처럼 작은 공동체나 대안 공간에서의 상영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담>과 <리턴>의 부진에는 언론도 한몫을 했다. 대다수 언론은 저 두 영화에 무심했다. <디 워>와 <화려한 휴가>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대해 무게감 있게 지적하는 매체 역시 많지 않았다. 대신 두 영화가 동원한 관객의 머릿수가 갱신될 때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몇 개 땄어요, 라고 알려오듯 기사를 내보냈다. 심지어 언론은 <디 워> 논쟁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대중이 승리했다"는 논조의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애초 어떤 과정을 거쳐 얻어낸 승리인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박스오피스 1위를 했으면 그만이다. 8월 5일 스포츠칸은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기록한 <디 워>를 소개하며 "영화인들은 <디 워>와 <화려한 휴가>가 영화계의 기대대로 한국영화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있어 감격스러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뿐만 아니라 대다수 언론이 그랬다. 누가 감격스러워한단 말인가. 한국영화가 흥행하면 한국영화 제작사들이 수익을 나눠 갖기라도 한단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승자가 모든 영광과 돈다발을 독식한다. 애초부터 정당하지 못한 경쟁에서의 승자다. 그런 승자를 언론은 한국영화계의 영웅이자 구원투수로 격상시킨다. 패자만 이래저래 억울하다. 네이버 영화의 관객 평점을 보면 <기담>이 7.45 <리턴>이 8.41이다. 드물게 높은 수치다. 일부 열혈팬들에 의한 팬덤이 아니다. 실제 영화를 본 대다수 관객들이 작품에 만족했고, 이 같은 호감도가 "상영관을 줄이지 말아달라"는 청원을 이끌어낸 것이다. 좋은 영화를, 재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게 정당한 경쟁이다. <기담>과 <리턴>의 실패는 그런 식의 정당함이 더 이상 의미 없음을 증명하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1, 2위를 기록하지 못하면, 일정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고 고수하지 못하면, 물량 공세 마케팅에서 조금이라도 밀리면 영화의 손익분기점을 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요즘은 마케팅 비용이 순제작비를 넘어서는 일이 매우 자연스럽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객에게 보여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몸을 불린 총제작비는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해 앞서 언급한 배급, 마케팅 경쟁을 더욱 가열시킨다. 이 같은 패턴 속에서 일부 영화의 독과점과 수익구조의 양극화 현상이 고착화된다. 진심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악순환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독과점을 막을 수 있는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부재했다는 사실이다. 독과점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620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괴물>, 617개에서 개봉한 <스파이더맨 3>때에도 논쟁이 있었다. 이 지점에 있어 스크린쿼터는 무기력하다. 상영보장일수가 146일에서 반토막으로 축소됐기 때문이 아니다. 스크린쿼터는 할리우드를 비롯한 해외 대자본 영화에 대항하기 위해 마련된 한국영화의 보호 장치다. 여기서의 '한국영화'는 한 뭉텅이로 싸잡혀 있는 한국영화다. 소수의 대자본 한국영화에 희생당하는 대다수 한국영화를 보호하는 데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극장들은 <디 워>와 <화려한 휴가>만으로도 스크린쿼터가 명시하고 있는 의무상영일수 73일을 충분히 채우고 남을 것이다. 허망한 일이다. 물론 제도적 차원의 고민이 아예 없진 않다. <스파이더맨3>의 독과점 논란을 계기로 한국영화 산업의 고질적 병폐들이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극장과 배급업계 사이의 불공정 독과점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진단이 각 매체를 통해 제기된 바도 있다. 민주노동당의 천영세 의원은 '스크린 독과점 규제법' 법안을 발의했다. 상영관 5개 이상을 멀티플렉스로 보고, 스크린 수 30% 이상을 상영하지 말라는 것이 골자다. 찬성도 있고 반대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법안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는 공정경쟁환경조성특별위원회(특별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영화계의 각종 분쟁과 논란을 공식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놓는 위원회로,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현재 위원 섭외 과정 중에 있으며 구체적인 사항은 10월 중순을 넘겨서야 윤곽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적 강제력이 없는 이 위원회가 뚜렷한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극장이 자기 밥벌이를 챙기는 데 윤리가 어디 있고 사명이 어디 있냐고, 자본주의는 원래 그런 거라고 섣불리 비관하는 태도에 있을지도 모른다. 붉은 띠 두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할리우드에선 최근까지 한 편의 영화가 10% 이상의 스크린을 점유하는 일을 찾아볼 수 없었다. 20세기 폭스와 브에나비스타, 워너브라더스 등 메이저 배급사들이 서로 경계하는 가운데 '넘어선 안 될 선'에 대한 공공의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과점 경쟁이 시작되면 모두 망한다는 걸 알고 있다. 스크린 독과점을 운운하는 법적 규제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얼마 전 <스파이더맨3>를 과다 배급한 소니 픽쳐스는 업계와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독과점이 반자본주의적인 행태라고 중학교 경제시간에 가르친다. 독과점은 모두를 망하게 할 시한폭탄이다. 오늘의 승자가 누리고 있는 독식의 기쁨은 화장실 다녀오면 가셔버릴 포만감이다. 결국에는 한국영화시장이 통째로 파탄에 이른다. 그때는 상영관을 구걸하는 관객도 없을 것이다. 허지웅 (GQ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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