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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류 개신교와 그들의 복음주의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쫓고 있는지, 혹은 그 이름을 빌어 다른 무엇을 팔아 치우고 있는지 신중하게 곱씹어볼 일이다. 특히 근 한 달 동안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개신교를 향한 대중의 증오심을 복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주류 개신교를 둘러싼 잡음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엔 양상이 사뭇 다르다. 최근 사회적 파장을 초래한 두 가지 사건이 소비되는 과정에는 ‘개신교 혐오’라는 코드가 공히 작동하고 있었다.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와 아프간 피랍사태 이야기다.
시작은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였다. 지난 6월 30일 홈에버와 뉴코아 노조가 공동으로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 농성에 들어가면서 세간의 이목이 (본격적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결국 농성은 7월 20일 당국의 공권력 투입과 더불어 “40분 만에 농성자 168명 전원연행”이라는 뉴스 헤드라인 한 줄을 낳으며 해제되기에 이르렀다. 대중은 노조 편에 섰다. 농성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중의 관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중의 지지가 노동시장 형평성의 문제로부터 온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킨 건 ‘개신교 기업’ 이랜드의 종교적 폭력성이었다. 이랜드 박성수 회장은 “성경에는 노조가 없다”는 논리로 직장 내 반노조 공기를 이끌었다(하지만 성경에는 비정규직도 없다). 강제 진압 전 날 이랜드 전 직원 앞에 전달된 ‘기도내용’(정기적으로 제시된다)에는 “불법파업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노동조합원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현장으로 복귀하여 다시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달란트(여기선 임금을 의미한다)에 불만을 갖지 않는 성실한 종의 소임을 다 하도록” 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 같은 사실들이 블로그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전파되면서 심지어 이랜드 그룹 계열사의 상품을 구매하지 말자는 운동까지 벌어졌다. 가치판단의 문제를 떠나서, 일단 보기 드문 일이다. (특히 노동문제에 있어선) 전에 없던 대중의 적극적 사회참여였던 셈이다. 곧바로 아프간 피랍 사건이 터졌다. 7월 13일 인천공항을 통해 아프간 봉사활동을 떠난 분당 샘물교회 봉사단 20여명이 19일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면서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탈레반은 아프간에 주둔 중인 한국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고 나섰다. 인질 가운데 일부가 끝내 살해당하는 참상까지 빚어졌다. 놀라운 건 상당수 비난의 화살이 정부나 탈레반이 아닌 개신교 자체를 향해있다는 점이다. 고 김선일씨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부러 거기까지 선교하러 가놓고 이제 와 국가 책임을 운운하냐는 말부터, 개신교 신앙을 권하러 아프간까지 가다니 이슬람의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 맥락에 대해 어찌 그리 무지할 수 있냐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어떤 네티즌은 피랍된 여성 중 한 명이 아프간으로 떠나기 전 미니홈피에 남긴 개인적 소회를 ‘봉사가 아닌 선교하러 간’ 유력한 증거라며, 번역해 탈레반 홈페이지 운영자에게 보내기까지 했다. 이 와중에 무료급식 모금 중이던 스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에 십자가를 든 채 회개하라고 말하는 한 남자의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가공할만한 증오의 언어가 인터넷을 덮었다. 개신교 문화에 대한 반감이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랜드 사태와 닮은꼴이지만, 최소한의 도덕률을 간과할 만큼 훨씬 더 공격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할만한 증오이기도 하다. 주류 개신교의 복음주의 사고관이 지금껏 이룩해온 부조리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인지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무턱대고 파시즘이니 폭력이니 하는 말로 불특정 다수의 분노를 우롱할 일이 아니다. 신의 권능에서 당위성을 찾아 기대는 사람들의 폭력이란 더 없이 위험한 것이다. 절대적인 가치 앞에 반론의 여지란 증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류 개신교는 반공주의, 국가주의 등 극우 이데올로기와 영합하면서 근현대사의 비극에 상당한 역할을 자처해왔다. 특히 회개와 선교의 논리는 문어발식 기업 확장의 개념과 닮아있어서, 한국 내 존재하는 다른 종교들이 같은 배타성을 취했다면 종교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개신교 NGO들이 올해 들어 더욱 열성적으로 벌이고 있는 해외사업에 대해서도 결국 교세확장의 일환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올해가 평양부흥 100주년이라는 시점상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근 10년 간 답보상태인 교세의 위기를 해외활동을 통해 타개해보고자 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증오를 이해하는 것과 지지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주류 개신교를 겨냥한 분노에는 원인과 결과의 맥락이 존재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감정은 다듬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정당한 비판의 대상과, 당연히 돌아와 가족 품에 안겨야 할 사람들의 문제는 분리돼야 한다. 그저 ‘개신교’라는 한마디 단어로 싸잡아 타자화 시킬 만큼 시스템 내부에 문제의식이 전무한 것도 아니다. 속물적 이익관계에 함몰된 주류 개신교의 자성을 주장해온 건 거대 유력 언론이 아니라 ‘뉴스앤조이’같은 기독교 인터넷신문이었다. 종파를 초월하고 낮은 곳으로 돌아와 예수의 목소리를 따르며 민중과 호흡하겠다는 교회도 많다. 그런데 지금 현시점에서 발생하고 있는 개신교 혐오의 목소리는 이 모든 이해관계를 구별 짓지 않고 한 무더기로 뭉뚱그린다. 결국 증오와 비난의 순환만 남는 것이다. 그건 그들이 지적하는 주류 개신교의 복음주의와 별 다를 게 없는 폭력이다. 돌이켜보면 최근 한 달간 대한민국은 마치 상영시간 내내 변신동작만 계속하고 있는 오토봇을 보듯 스펙터클에 파묻혀버린 형상이다. 분석과 성찰의 과정 없이 늘 현재진행형의 새롭고 거대한 논쟁만이 존재한다는 느낌이다. 이 나라가 한 가지 파국에 대처하는 방식이란 늘 회피와 망각의 반복이었다. 그런 식으론 같은 일이 재현됐을 때도 유사한 오류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 그 때의 죽음과 이번의 죽음 사이의 상대적 충격만 반감될 뿐이다. 하지만 현명해지는 것과 무감각해지는 것 사이에는, 예수를 본받는 것과 예수를 판매하는 것 만큼의 깊고 너른 차이가 있다. 허지웅 (GQ 9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