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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용(龍)판이다. 심형래 감독이 6년 동안 700억(순제작비 300억)이라는 믿을 수 없는 규모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디 워>가 한국사회를 말끔하게 두 동강냈다. 화개장터가 동서를 세로지르고 38선과 한강이 남북을 가로지르며 “어디에 사는지가 당신을 말해주는” 화끈한 시장주의가 상하를 나눠먹는 세상에, 이젠 한 편의 영화를 둘러싼 호불호가 어제의 친구를 오늘의 적으로 돌려놓는다. ‘광풍’으로 표현해도 좋을 만큼 <디 워>를 옹호하는 편과 반대하는 쪽의 대립이란 전장의 아찔한 노린내를 연상케 한다. 우주역사상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아 영화를 만든 주제에 무슨 피해자 행세를 하냐고 지적했던 이송희일 감독은 정작 <후회하지 않아>가 개봉했던 당시보다 열 배는 더 유명해졌다. 네이버 검색어 1위에 등재됨과 동시에 그의 홈페이지가 네티즌들의 공격으로 폐쇄됐다. <디 워>의 기자시사회 직후 “이건 도저히 영화라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한 기자의 블로그는 2천 개에 가까운 악성 덧글에 파묻혀 공습 직후의 팔루자가 다 됐다. 상황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더욱 가열되는 양상이다. 공중파 3사는 앞 다퉈 <디 워> 논쟁을 주제로 한 토론 프로그램을 급 편성하기에 이르렀다. 짜잔, 하는 심정으로 두 번째 남북정상급회담 합의를 발표한 청와대만 괜히 무안하게 됐다.
지역감정이 조영남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디 워> 광풍도 심형래의 탓은 아니다. <디 워>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기존 비평의 잣대로 평가하기에 그 성격이 전혀 ‘다른’ 영화며, 심형래 감독의 노력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른’ 것과 ‘저열한’ 것은 무척 상이한 성격으로, 그만한 제작비를 들여 이 정도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죄악에 다를 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둘 사이의 옳고 그름에 대해선 검증의 시간이 지난 뒤 따로 평가할 일이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디 워>의 흥행 배경에서 발견된다. 이 영화가 텍스트 자체의 미덕으로 관객을 끌어 모았다는 일부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디 워>를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극적 완성도를 거론하기 보다는 차라리 CG의 기술적 성취를 내세운다. 사실 사람들의 등짝을 밀어 <디 워>가 상영하는 극장으로 몰아넣은 공기 속에는 평단을 향한 대중의 강력한 불신과 인간 심형래에 대한 뜨거움(연민+향수+인간승리), 애국애족 대한민국 길이 보전하는 만세 이데올로기가 다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부분은 영화비평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다. 무협영화에서 필살기 이름을 읊듯 사필귀정, 자가당착, 적반하장 등의 단어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평론무용론이 대두되고 있다. 비평의 내용에 동의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이젠 그 자체를 혐오하는 단계에 가 닿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야흐로 모두가 영화에 대해 전문가인 시대다. 전문지에 영화를 비평하기 위해 타이틀매치 챔피언 벨트가 필요한 것도 아닌 마당에, 굳이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해줘야 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비평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쪽도 있다. 하지만 그건 좀 다른 얘기다. 비평의 위기를 비장하게 곱씹는 건 대중이 아니라 평론가들이다. 정영일의 시대나 지금이나 영화평론을 부러 공들여 읽는 독자의 절대적 물리량에는 별 차이가 없다. 유일한 차이점이란 과거의 일반 대중이 평론에 별 관심이 없었던 반면, 이제는 매우 공격적으로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시대의 영화관객들은 이해하기 힘든 영화에 대해 비평을 찾아보거나 감독의 다른 작품을 뒤져 의식을 가늠해보던 과거의 관객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작품에 인성을 부여해 ‘나쁘다’고 말한다. 포털사이트 영화게시판의 별점 제도로 나쁘고 착한 영화를 심판하고 안티와 수호천사의 역할을 자처하는 건 자연스런 풍경이 됐다. 그런 못된 영화를 옹호하는 비평가를 제 잘난 척에 바쁜 오징어 먹물이나 파렴치한 즈음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평론가와 개인 사이의 의견 차이를 일방적인 무시와 억압으로 받아들이는 거다. 이러다보니 특정 영화에 대한 공적 영역의 비평이 사적 비난으로 치환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사람들을 ‘인터넷 시대의 영화관객’이라는 언어로 타자화시키고 뭉텅이로 싸잡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일부집단의 악의적 특수성이라기보다 영화담론의 변화된 패러다임 속에서 자연스레 빚어진 현상으로 보는 게 더 그럴 듯하다. 90년대 중후반부터 뜨겁게 벌어진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배경에는 작가주의 창작집단의 역할 만큼이나 정성일, 김영진, 허문영 등 영화평론가들의 노력이 유효하게 작용했다. 이제는 다르다. 영화담론은 작가와 비평의 상호 보완적 영역에서 시장의 카테고리 속으로 완벽하게 흡수됐다. 여기엔 세상사 대부분의 가치를 당위성에서 시장성으로 이동시킨 신자유주의가 당당히 한 몫을 수행했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영화 관련 뉴스를 보기 위해 ‘문화, 예술’ 메뉴를 클릭해야 하는 게 아니라 ‘연예, 스포츠’를 선택해야 한다. 평론계는 시대적 맥락에 들어맞는 별다른 논리를 개발하지 못했다. 결국 자본의 손을 덥썩 잡아 쥐거나, 관객과 영화의 관계를 멀고 먼 은하계 저 너머로 날려버리 듯 위계화 시키기 바쁜 두 종류의 태도가 남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객들은 관심이 없고 참을성은 줄었으며 짜증만 늘었다. 급격히 밀어닥친 반지성주의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평론은 신뢰와 존경을 잃었다. 결과적으로 정작 타자화된 건 ‘비평’ 그 자체다. 현재 <디 워>와 관련해 네티즌들의 맹공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 평론가들’이라는 대상에는 뚜렷한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유령이다. 그저 독립영화 감독과 기자들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자기 견해를 밝혔을 뿐인데, 돌아오는 반응이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평론계에 석고대죄를 요구하는 목소리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총체로써 상징성 넘치는 총알받이가 된 셈이다. 광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평계가 할 수 있는 변명이란 별 게 없다. 실제 <디 워>는 기존의 비평담론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영화다. 내러티브부터 플롯, 응집력, 연기, 구성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짜임새를 갖춘 게 아무 것도 없다. 결국 말을 꺼내봤자 욕할 수밖에 없으니 함구할 따름이다. 하지만 <디 워>가 현재 한국영화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무게감을 따져볼 때 (그것이 광풍이든 폭풍이든) 이를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건 평론가로서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문제는 그런 식의 글쓰기에 훈련이 된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영화산업과 시장을 둘러싼 속물적 고민에 지속적으로 천착해온 평론가란 고작해야 김영진을 비롯한 극히 소수의 몇 사람 정도뿐이다. 그렇다고 <디 워> 논쟁과 더불어 부각된 대중의 평론혐오 증세를 비관과 절망의 자세로 운명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대다수 언론매체가 <디 워>에 열광하는 관객과 비평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면서 평단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는데, 그것 역시 비난받을 대상의 실체가 분명하게 존재하지 않는 허공에 침 뱉기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논란은 적당한 평론가의 생산적인 비평이 부재하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다. 비평 그 자체의 문제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선후관계를 명확히 따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영화평론은 작품의 텍스트적 평가만큼이나 시장과 산업, 관객과 영화 사이의 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물며 영화와 영화를 둘러싼 시선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이용해 ‘나’를 팔아치우려 노력하는 얄팍한 일부 비평가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그건 비평이라기보다 차라리 비데에 가깝다. 요컨대, 평론혐오의 공기는 평단의 적극적인 논쟁 참여로 극복될 수 있다. 대중의 호흡을 읽어 적당히 여론에 영합하는 식의 글쓰기가 아니라, 그럼 이 다음에는 무얼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강직하고 단단한 도발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정도의 담론형성이 가능할만한 갑론을박이 한동안 부재해왔다는 점이다. 비평이 생산적인 논쟁의 중심에서 담론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때 <디 워>가 본격적으로 촉발시킨 평론무용론이야 말로 거꾸로 영화평론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각 있는 평론가들은 <디 워>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고 발언해야 한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 비난이 아닌 정연한 ‘시각’들이 쌓여 대화가 오가야 한다. <디 워>가 재미있느냐 재미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같은 형태의 영화가 한국영화시장에 적합한지, 그 흥행의 이면에 작용한 의식과 장치는 무엇이었는지, 과연 한국영화의 대안으로 거론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정교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간명한 문제다. 이건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허지웅 (GQ 9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