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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광풍이다. 이미 홍역을 앓을 만큼 앓고 있지만 잠자코 있는 건 못할 짓이란 생각이다. 그저 세상 참 이상하네, 라고 술자리서 몇 마디 화제로 삼다가 말거면서 함부로 자유니 연대니 하는 거창한 단어들을 안주삼아 입에 무는 사람들이 새삼 얄밉다. 연대는 세 치 혀로 하는 게 아니고 머리랑 손이랑 발로 하는 거다. 당신들이 뭉뚱그려 자주 이야기하는 그거, 그러니까 집단의 폭력에 소수가 어쩌고 가치가 어쩌고, 그래, 그거. 지금 처참하게 짓이겨져 사이버스페이스 사거리에 벚꽃처럼 날리는 중이다.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서, 라고 말하지 마라. 영화를 봤든 못 봤든 지금 상황이 비정상이라는 걸 모른다면 차라리 원숭이를 자처하는 편이 낫다.
시사회 직후 쓴 단평 과 함께 이 블로그와 내 메일 서버는 욕설로 마비가 됐다. 20자 평으로 미움을 산 작가의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언어의 분비물로 얼룩졌다. <디 워>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영화 주간지의 자유게시판은 놀이터가 다 됐다. 영화를 지적한 독립영화 감독의 홈페이지는 폐쇄됐고, 인터넷 황색언론은 바람에 눈썹을 휘날리며 이를 기사화시켰다. 초등학교 졸업하면 다들 아는 육하원칙 가운데 ‘어디서’를 쏙 빼먹은 이 기사만 보면 문제의 감독이 <디 워>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씹었는지, 교회 강당에서 읊었는지, 혹은 어느 개인적인 공간에서 허리 두들겨가며 투덜댄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여지없이 분노했다. 그가 게이이고,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걸 문제 삼아 합성 카툰까지 만들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구꼴통 놀려먹던 바로 그 기술이 이젠 이렇게 사용된다. 블로그스피어에선 이 독립영화 감독의 영화가 “역겹다”는 글이 뜨겁게 떠올랐다. 그 논리가 흥미로운데, 심형래 감독은 대중을 위해 영화를 만들지만 당신은 소수를 위해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란다. 물론 여기 이른바 소수, 라는 단어는 감독의 성정체성과 무관하지 않게 언급되고 있었다. 요컨대, 소수를 논하면 역겨운 게 되는 세상이다. 무섭다. 이젠 정말 무서워졌다. 그들의 폭력적인 반응이 무서운 게 아니라, 침묵하는 사람들이 두려운 거다. 황우석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다시 한 번 명백하게 이야기하지만 <디 워>는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서사의 응집력, 최소한의 연기력, 장르적 성취도, 아무 것도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 투자된 비용을 감안할 때 <디 워>의 CG에 열광하는 건 오버에 가깝다. 더군다나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비싼 작품이라는 점은 <디 워>를 둘러싼 논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맥락이다. 한두 푼 비싼 것도 아니고 무려 700억 원이다. 하지만 <디 워>는 그 절반의 절반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제작비로 만들어진 여타 괴수장르영화 보다 더 없이 떨어지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럴 거면 굳이 이런 천문학적인 제작비로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다. 영웅을 만들 필요는 더욱 더 없다. 얼마 전에 “마니아의 입장”을 운운하는 대단한 글을 봤는데, 이 글에 따르면 괴수장르문법으로 따져볼 때 <괴물>이 차라리 못 만든 영화고 <디 워>는 뛰어난 영화라더라. 이 김밥은 맛은 뛰어나지만 단무지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나쁜’ 김밥이다, 라고 하는 모양새다. 장르영화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재미지 문법이 아니다. 더군다나 스스로 마니아를 자처하는 문제의 필자가 얼마나 많은 괴수영화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 대부분의 괴수영화들이 <디 워>보다는 재미있었다. 최소한 키치적인 재미라도 있었다. 불꽃 한 번 팍 튀기고 군인들이 사열횡대로 쓰러져있는 <디 워>를 키치적인 재미의 논리로 따지기엔, 너무 비싼 영화다. 미국의 비디오 상점에 진열된 <용가리>가 자랑스러웠다고, 할리우드에 가서 성공하겠다고 만든 영화가 아닌가. 그럼 시장적으로 관찰해야지 애국애족, 국위선양, 인간승리의 앗 뜨거운 이데올로기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우린 이 값비싼 영화에 최소한의 완성도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를 <디 워>가 충족하지 못했다는 건 최소한의 상식을 갖춘 어느 누가 봐도 알만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 이유는 <디 워>의 미덕 탓이라기보다 평론가들에 대한 반발심리, 영웅주의 신드롬, 인간승리의 뜨거움, 그리고 사활을 건 쇼박스의 전무후무한 대규모 물량공세가 입체적으로 작용한 결과에 더 가깝다. 일단 돈이 걸려있는 사람들(<디 워>에는 쇼박스나 심형래 감독 본인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이 심형래 감독에 대한 대중적 호의와 평론가들에 대한 반감(분명 이유있는 반감이라고 생각하지만 <디 워>와 관련해 지적될 맥락은 아니다)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선동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끌려가는 식이다. 이런 병적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의 편이 갈리고 싸움이 터지고 폭력이 발생하는 게 과연 옳은가. 요즘 상황을 가만 보면 흡사 해방 직후의 풍경 같아 보이기도 한다. 사상으로 나뉘어 칼부림을 했던 사람들 마냥 <디 워>를 두고 으르렁 대는 꼴이다. 어떤 영화를 지지하고 옹호하고 반대하는 일이 왜 누군가의 소신과 가치를 억압하는 식으로 재현돼야 하나. 여보세요, 이건 그저 영화일 뿐이에요. 아무리 영웅에 목마른 시대라지만 이런 식은 안 된다. 노무현의 눈물에 속았다고 무릎을 치던 사람들이 매체를 이용한 심형래 감독의 선동에는 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는지 알 수가 없다. 특히 방송에 노출될 때 마다 드러내는, 주류영화계에 대한 그의 이유 없는 피해의식은 가공할만하다. 덩달아 충무로 음모론도 나왔다. 하지만 충무로는 누구를 왕따시킬 만큼 응집력 있는 집단이 아닐 뿐더러 그 실체도 너무 흐릿해서 주체를 따지고 들면 피곤해진다. 진리는 하나다. 충무로에서 제일 힘 있는 감독은, 그저 제일 많은 돈을 투자받는 감독일 뿐이다. 자, 이제 누가 진짜 강자인가. “700억원 벌어올 수 있으면 그런 소리해라”고 하는데, 이쯤 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젠 자금 동원력이 인간성에 대한 신뢰와 영화의 완성도를 모두 결정짓는 시대가 된 건가. 한국식 신자유주의의 현재진행형인가. <디 워>의 완성도와 성과를 둘러싼 갑론을박을 떠나서, 현재의 광풍은 다분히 병적인 표정을 띠고 있다. <디 워>에 반대한 사람들이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 모여서 단체로 할복이라도 해야 속이 시원하겠나. 그렇다면 꼭 사열횡대로 쓰러져 죽어야겠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관련 개신교 논쟁과 이랜드 사태, <화려한 휴가>및 광주를 바라보는 문제적 시선들, <꽃미남연쇄테러사건>과 슈주 열혈팬에 대한 비난 등 최근 이슈가 된 화두들에는 필요 이상의 폭력적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존재감이 겹쳐져 있다. <디 워> 광풍도 다를 바 없다. 정신 차리자.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 자신이 처하게 될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누군가의 가치와 주장을 보호하고 인정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뜨거움도 좋지만 상대방의 차가움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광풍이 모두 지나간 자리에 두 발을 딛고 가만히 섰을 때 스스로 뱉은 말과 휘두른 주먹에 조금이라도 창피하지 않을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머리를 긁적이고 헛기침을 내뱉으며 이쯤에서, 거울이라도 한 번 봐줘야 할 시점이다.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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