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하드 4.0>와 브루스 윌리스
존 맥티어넌은 심기가 언짢았다. 방금 새 영화의 캐스팅 결과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연배우에 관한 조엘 실버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제 막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외계괴물이 나오는 흥행작 한 편을 뚝딱 해먹은 존은 이번 영화가 정말 멋진 작품이 될 공산이 크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드는 최고의 오락물이다. 모든 건 계획대로 움직여야 했다. 그가 생각하는 최적의 캐스팅이란 재고의 여지없이 금발의 리처드 기어였다. 그런데 조엘이 다른 카드를 내민 거다.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은 존은 저 앞의 테이블에서 타블로이드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던 스튜어트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다. “브루스 윌리스라니, 그게 도대체 누군데?” 몇 주 전, 빌딩에 고립돼 홀로 테러리스트에 맞서 싸우는 남자 영웅에 관한 대본을 가져와 20세기폭스 사의 간부들을 환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과체중의 작가가 태연하게 비스킷을 한 입 베어 먹으며 대답했다. “농담해요? <블루문 특급 Moonlighting>의 데이비드 에디슨을 모른단 말이에요? 왜 그 전에 <환상특급 The Twilight Zone>에서 웨스 크레이븐이 연출했던 에피소드 주인공이기도 하잖아요. 거기서 진짜 잘하던데.”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열혈(diehard) 연출자 존 맥티어넌은 쌍욕이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오는 걸 간신히 억제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물론 브루스 윌리스라는 배우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여자를 앞에 두고 깐죽거리며 농담이나 따먹는 뉴저지 출신의 말더듬이에게 이 빛나는 캐릭터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브루스는 <블루문 특급>의 이번 시즌 스케줄이 모두 끝나야 영화에 합류할 수 있었다. 기다려야 한단 이야기다. “정말 맘에 안 드는군.”
그로부터 정확히 여섯 달 후. 폭스 플라자(극중 나카토미 빌딩) 40층에서 앨런 릭먼(극중 한스 그루버)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은 브루스 윌리스(존 맥클레인)가 총구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좋은 시간 보내, 한스”라고 말했을 때, 존 맥티어넌은 무릎을 탁 쳤다. 지금까지 촬영한 분량 가운데 가장 만족스런 컷이다. 이거야말로 그가 생각하던 존 맥클레인의 진짜 이미지였다. 현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특유의 목청으로 ‘OK’을 외친 존 맥티어넌이 주위를 둘러보다 촬영감독 얀 드봉의 얼굴을 발견하고 기분 좋게 소리쳤다. “내가 뭐라고 그랬어, 브루스 윌리스는 천상 존 맥클레인이라니깐!”
우린 모두 이 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재임 마지막 해를 맞이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이제 이거 그만두면 뭐하고 놀아야 하나 고심하고, 동방에 위치한 아침의 나라에서 귀가 큰 ‘보통사람, 믿어주세요’ 대통령이 취임했던 1988년. 존 맥티어넌 연출,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액션물 <다이하드 Die Hard>는 개봉 즉시 이 장르에 전에 없던 규모와 맥류를 형성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가 됐다. 브루스 윌리스는 이후로 줄곧 존 맥클레인의 이미지를 끌어안고 갔다. 존이 브루스를 정의했는지, 혹은 그 반대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그 둘을 구분 짓기가 점점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브루스 윌리스와 존 맥클레인
“여보! 왜 자꾸 이런 일이 우리한테만 생기는 걸까?” - <다이하드 2>
잭 바우어와 존 맥클레인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라는 질문은 스티븐 시걸과 척 노리스 둘 중에 누가 더 목을 잘 꺾을까, 라는 질문과 거의 비슷하게 들린다.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존 맥클레인의 이미지는 명료하다. 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깐죽대길 좋아하는 열혈마초 아저씨인 것이다. 대중에게 비춰지는 브루스 윌리스의 이미지도 그와 비슷하게 중첩된다. 하지만 그가 <다이하드>에 출연하기 전부터 그런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어린 브루스는 말을 더듬는 소년이었다. 그렇다고 <식스 센스>의 할리 조엘 오스먼트를 연상하면 곤란하다. 활발하다 못해 거의 쓰레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방탕한 십대 시절을 보내는 동안, 주먹다툼의 대부분은 말더듬을 놀리는 주위 불량배들 탓에 벌어졌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연극반에 들어갔다가 놀랍게도 대사를 읽는 동안 말을 더듬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브루스는 배우로서의 꿈을 품는다. 브루스는 뉴욕으로 떠나 나이트클럽 바텐더와 리바이스 광고모델, 그리고 연극배우를 겸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고, 우연히 응시한 <블루문 특급>의 오디션에서 주연으로 발탁되는 행운을 누린다. 이후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유사 <007> 시리즈라 할 만한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브루스 윌리스는 할리우드의 새로운 히든카드로 부상했고, <다이하드>를 통해 역사가 됐다.
우리는 맥클레인과 윌리스가 둘 다 지독한 마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존 맥클레인이 “얼굴이 반반하면 성질이 더럽지”라고 말하거나 게이를 보고 기겁하는 동안, 브루스 윌리스는 전화로 창녀를 주문했다가 걸려 타블로이드 신문 일면을 장식하는가 하면 후세인을 때려잡아 기쁘며, 군인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패션감각이 바닥을 기는 것도 똑같다. 양말에 샌들을 신고 다니는 브루스나 하얀 러닝이 까매질 때까지 입고 다니는 존이나 누가 더 낫다고 말하기 힘들다. 지저분한 건 또 어떻고. 파파라치가 포착한 브루스의 ‘이보다 더 더러울 순 없다’식 사진은 존 맥클레인이 <다이하드>에서 아내 홀리를 만난 후 그녀의 사무실에서 세수를 하는 장면과 자연스레 겹친다. 이 장면에서 그는 물을 묻힌 후(얼굴만) 수건으로 얼굴뿐만 아니라 양 겨드랑이를 한쪽씩 정성스레 닦는다. 그리고 컷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같은 수건으로 얼굴을 한 번 더 닦는다.(아무도 그에게 이런 연기를 요구하지 않았다)
어느 한쪽에서 다른 쪽의 얼굴을 자꾸 발견하게 되는 건 브루스 윌리스의 배우 이력이 <다이하드>를 기점으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가 이후 연기한 캐릭터들은 <12 몽키스>와 <식스 센스>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유쾌한 맥클레인, 침울한 맥클레인, 좀 덜 침울한 맥클레인, 화가 난 맥클레인, 나이 든 맥클레인처럼 보였다. 자각하고 있든 못 하고 있든 간에 존 맥클레인은 브루스 윌리스를 규정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 둘 사이의 공통점이 단순히 겉모습이나 배우 이력에서만 발견되는 건 아니다. 브루스와 존이 모두 실패한 남편, 아버지라는 점이 새삼 중요하다.

노력하는 가부장의 초상
“당신 언제부터 처녀 때 성을 쓰기 시작한 거야?” - <다이하드>
“너 언제부터 엄마 성을 따르기 시작한 거야?” - <다이하드 4.0>
요컨대, <다이하드> 시리즈는 가정을 복구하려 전전긍긍하는 가부장 마초의 눈물겨운 분투기와 같다. 1편과 2편에서 존 맥클레인은 영웅 심리에서 비롯된 대의명분이 아닌, 아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서 테러리즘과 맞섰다. 그에게 ‘열혈’(die hard는 죽도록 힘들다는 의미가 아니라, 죽을 만큼 열정적이란 뜻이다)의 기운을 불어넣는 동기가 바로 거기서 나온다. 매번 마지막 순간에는 아내와 화해하거나 혹은 화해하려고 전화를 걸지만, 다음 편이 나왔을 땐 관계가 다시 어그러질 대로 어그러진 상태다. 아내를 구하려는 미션이 아닌 개인적 복수에 대항했던 3편의 경우에도 마지막엔 기어코 별거 중인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용서를 구하며 마무리됐다.
뉴욕 경찰인 그가 남편이나 남자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유일한 순간은, 고작해야 화이트칼라(그녀는 나카토미 그룹의 중역이었다) 아내가 테러리스트에게 볼모로 붙잡혀 있을 때뿐인 것이다. 오직 그때만 가부장의 단단한 육체에 당위성이 부여되고 모처럼 남편다운, 마초다운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존 맥클레인이 남편 노릇을 하려면 크리스마스에 아내가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돼야 한다는 아이러니. 이건 사실 개인에게 있어 감당하기 힘든 좌절감이기도 하다. 존 맥클레인은 단 한 번도 가정문제를 봉합하고 가부장의 위치를 회복하는 데 성공한 적이 없는 것이다.
사실 <다이하드>의 출발도 노력하는 가부장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이하드>의 각본을 쓰느라 여념이 없던 제브 스튜어트는 어느 날 아내와 심하게 다투고 집을 나섰다가 고속도로에서 냉장고 박스를 들이 받았다. 다행히 박스는 비어 있었지만 스튜어트는 순간적으로 죽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왜 아침에 아내에게 사과하지 않았을까 후회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다이하드>의 구성이 나왔다. 이건 서른다섯 살 먹은 남자가 아내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가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이야기다. 결국 최종적인 목표는 테러리스트를 타도하는 게 아니라, 아내에게 내가 정말 후회하고 있으니까 이제 다시 잘해보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노력하는 가부장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만한 이런 식의 드라마가 영화에 체온과 표정을 선사했다. <다이하드>가 단순히 대형 폭발과 액션 시퀀스로만 채워진 멍청한 영화였다면 결코 지금과 같은 지위를 누릴 순 없었을 거다.
우린 브루스 윌리스 역시 존 맥클레인과 유사한 부침을 겪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브루스 윌리스, 데미 무어 커플의 결혼과 이혼은 브란젤리나(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커플) 이전의 브란젤리나라 할 만큼 화제를 모았다. 당시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와 사귀면서 그가 출연한 영화 <잠복근무>(1987)의 시사회에 방문했던 데미 무어는 극장에서 브루스 윌리스를 만나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닭 쫓던 개 꼴이 된 에밀리오를 뒤로 한 채 1987년 11월 식을 올린 두 사람은 이듬해 <다이하드>가 전세계적인 흥행몰이를 하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결혼 13년 만인 1998년 헤어졌고, 데미 무어는 열다섯 살 연하인 애쉬튼 커쳐와 재혼했다. 할리 베리의 가슴을 쳐다보다가 무안을 당할 정도로 여색을 밝히는 브루스는 요즘도 종종 데미 무어를 사랑한다고 밝히곤 한다. 쿨한 척하면서 데미 무어, 애쉬튼 거쳐 커플과 자주 식사와 낚시를 즐기는 그의 속내를 정확히 알 길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역시 가정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것뿐이다. 하드보디 가부장은 영화 속에서도, 현실 세계에서도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노쇠한 마초의 귀환 <다이하드 4.0>
“이피 카이예이 씨방새야! Yippie ki yay mother fucker!” - <다이하드1, 2, 3, 4>
“지금은 90년대라고요. 전자레인지, 기내전화 같은 신기술이 얼마든지 널려 있는!” “글쎄, 난 냉동피자를 해동시켜 먹는 것도 어렵더라고.” - <다이하드 2>
아저씨의 좌절감은 시리즈가 출발한 지 19년을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지속되고 있다. 국가 전산망을 해킹한 디지털 테러리스트와 그에 맞선 존 맥클레인의 고군분투를 다루는 <다이하드 4.0>에서 12년 만에 돌아온 영웅의 사정은 여러모로 그리 좋지 않다. 별거 중이던 아내와는 이미 이혼했고 하나 있는 딸자식은 애비 보길 뭣처럼 여기며 설상가상 빛까지 산더미라 성질나 죽겠는데, 머리털마저 한 올도 남지 않아 멀리서 보면 호머 심슨과 똑같이 생겼다. 구질구질하게 망가진 최후의 가부장 마초의 초상이라지만, 이건 너무 혹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단이 녹슨 건 아니다. <다이하드 4.0>에서 존 맥클레인이 선보이는 액션의 강도는, 우리가 이걸 ‘액숀’이라고 발음했던 시절의 쾌감을 기대해도 좋을 만큼 황홀경을 넘나든다.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스토리를 서술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야말로 영화 속 대사 마냥, ‘디지털 세상의 아날로그 형사’가 선보이는 최후의 일격이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디지털 테러리스트 앞에 맨주먹 불끈 쥐고 단죄를 부르짖는 주인공의 무식한 심성 못지않게 영화 속 액션 장면들 역시 CG가 아닌 실제 물량공세로 채워졌다. 존 맥클레인의 깐죽거리는 대사가 있어 더욱 즐거운 파괴적 액션 시퀀스들이 자동차 수십 대와 헬리콥터 한 대를 구깃구깃한 쇳조각으로 분쇄시켜가면서 촬영된 것이다.(단, 배우의 모습과 실제 폭발 장면은 따로 촬영돼 합성되는 방식을 거쳤다) <식스틴 블럭>로 시작해서 <24>로 끝나는 듯한 <다이하드 4.0>(그래봤자 이 장르의 원류는 결국 <다이하드>다)은 전편들에 비해 느슨하게 직조된 갈등관계나 흐릿한 존재감의 악당 캐릭터 등 눈에 밟히는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장르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여기엔 땀과 피와 전율과 그에 상응하는 쾌감이 존재한다. <다이하드 4.0>은 우아하진 않지만 가장 우직하고 고루한 방법으로 우리가 액션 장르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
<다이하드 4.0>은 이 시리즈가 노쇠한 마초, 존 맥클레인의 영화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가정은 영영 봉합될 수 없다. 딸과 화해하는 듯싶지만 그건 하루짜리 보상에 불과하다. 동시에 존 맥클레인이 갖는 존재감도 여전히 각별하다. “반반한 여자는 독하기 마련”이라는 88올림픽 시절 대사나 방금 맞은 데 또 맞아가며 혹독하게 무너지는 매기 큐의 모습을 오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그게 존 맥클레인이 뱉은 말과 행동이기 때문이다. 우린 그가 요즘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 보이려고 애쓰는 기만적 인간형이 아니라 자기 가치관에 충실하려 애쓰는 정직한 마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후세인을 잡아오면 그 자리에서 100만 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설명을 하면서도, “하지만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분명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이제 더 이상 부시를 좋아하지 않고 이 전쟁에 대해서도 생각이 달라졌지만 말이야”라고 덧붙이는 브루스 윌리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지구상에 차고 넘치는 가짜 마초들과 비교할 수 없이 특별한, 분명 가장 멋지고 진실한 보이스카웃임에 틀림없다. 허지웅
[필름2.0 3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