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근본적으로 변화가 가능한가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존재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변화할 수 있는가. 스스로 분명히 자성하고 변화한 삶을 살고 있더라도, 그 예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나’라는 인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규정을 지으려 한다면 그걸 그저 철없는 사람들의 궁시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요컨대 나 이외에 모든 사람들이 나를 규정짓는 이미지가 존재할 때, 설사 나라는 본질이 그것과 등가를 이루지 않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좌절감의 질문이다. 이는 마치 나를 제외한 모든 인류가 뱀파이어로 변했을 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흐릿하게 전복되는 <나는 전설이다>식의 딜레마를 연상시킨다.



박찬홍 PD의 <부활>과 <마왕>을 너무나 흥미롭게 감상했다. 특히 ‘복수하는 자’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부활>의 이데올로기를 뒤집어, ‘복수당하는 자’의 이야기를 그린 <마왕>은 거의 매회 울면서 봤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극 중에서 엄태웅이 연기하는 강오수 형사는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관계없이)과거 살인을 저지른 악인이(었)다. 시쳇말로 개과천선해 바른생활 형사의 삶을 살고 있는 강오수는, 과거 자신이 저지른 죄의 씨앗으로 말미암아 거대한 복수극에 휘말린다. 복수하는 자도, 당하는 자도 이 복수의 당위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강오수 형사는 과거와 전혀 다른 인간이지만, 과거의 그를 알고 있는 어느 누구하나 그 진심을 믿지 않는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에. 그래서 강오수 형사가 어떻게 되냐고? 그는 용서 받는다. 그리고 죽는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토록 괴로웠던 이유는, 과거와 다른 자신을 끊임없이 확인받기 위해 노력하는 자의 아픔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확인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다. 나는 변했다고,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지독하게 나쁜 놈이다. 나쁜 놈이었다, 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선뜻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강오수가 스스로의 입으로 변했다고 말할 수없는 회의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군대에서 조교생활을 하면서 영창을 두 번 다녀왔다. 한 번은 구타로, 한 번은 금전 문제였다. 어떤 변명을 가져다 붙일 수도 있겠지만 부질없는 노릇이다. 전후 맥락이야 어찌됐든 부당한 짓을 했고 피해를 당한 사람이 존재했으며, 그에 상응하는 원성을 샀다. 전역 후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고 글을 쓰기 시작해 이른바 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생겨나면서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군생활의 기억은 가장 끔찍한 악몽의 소재다. 내 인생을 한동안 지배했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정치적으로 올곧아야 한다’는 강박이 여기서 비롯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증명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말이다. 그럼 이 악몽이 그치겠지.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블로그가 제법 알려지고 일 때문에 얼굴이 여기저기 노출되다 보니 군생활 동안 스쳤던 인연들이 종종 덧글을 남기곤 한다.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훈련병도 있지만 “요즘도 그렇게 사냐”는 식의 말을 던지고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덧글을 보면 이틀을 앓아눕는다.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자꾸 질문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존재는 변화할 수 있는 걸까. 나에 관련한 다른 사람들의 기억, 내가 뿌린 지난 날의 씨앗이야 말로 나를 규정하는 유력한(혹은 유일한) 단서가 아닐까. 정답이 존재할 수도, 존재한다고 해도 치유될 수 없는 공포지만 어찌됐든 이 블로그에서 한 번쯤은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다. 술기운을 빌어봤다.


덧글

  • _de_ 2007/07/16 03:02 # 답글

    어쩐지 파팍, 꽂히는 글입니다. 아아, 큰 물의를 일으킨 정도는 아니지만, 자잘자잘하게 어지럽혀놓은 과거의 일들을 생각해놓으면 역시 한기가 느껴질정도니까요. 그래서 졸업과 이사를 얼마나 기다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삼년을 주기로 저절로 공간이동과 기억삭제가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늘 궁리했었기도 하고요. -
  • 2007/07/16 03:0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와이드 위젯2


4개짜리 애드센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