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3]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으로 일약 슈퍼스타가 됐을 때 그의 기괴한 스플래터영화에 열광해온 팬들은 다소 떨떠름한 심정이었다. 마이너리그의 오혜성이 메이저리그에 화려하게 데뷔한 셈이니 기상천외 인생역전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론 <고무인간의 최후>나 <데드 얼라이브> 시절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란 상실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 이듬 해, 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마이너리그의 마동탁, 샘 레이미가 평소 만들겠다던 <이블 데드> 시리즈는 내팽개치고 <스파이더맨>으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것이다. 망연자실한 팬들은 “동렬이도 가고, 종범이도 가고”를 되뇌며 그렇다면 엄지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뉴페이스는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망은 곧 곱절의 환희로 바뀌었다. 샘 레이미와 피터 잭슨 모두 공포 장르에서 선보였던 개성과 소수의 감각을 잃지 않고, 무미건조했던 블록버스터 시장을 젊은 작가들의 경연장으로 환골탈태시켰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에 ‘장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만큼 풍부한 미덕과 파격의 특수성을 부여했다. <스파이더맨> 이후 슈퍼히어로 장르는 성장영화의 주제의식을 흡수해 좀 더 현실적인 고민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영웅은 (감독의 전작인 <다크맨>의 마지막 장면처럼) 우리 사이에 섞여 있었다. 영웅은 성장하는 중이었고, 고민도 하고, 실연과 재회를 거듭했다. 영웅은 더 이상, 완벽하지 않았다.
시리즈 최신작 <스파이더맨 3>는 여전히 뜨겁게 변화하는 중인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고민과 대결, 연애담을 담고 있다. 고블린 주니어(뉴고블린으로 호칭되고 있으나 영화 속에선 고블린 주니어로 불린다)에 샌드맨, 베놈까지 가세한 대결구도가 자칫 극의 흐름을 방만하게 하거나 어느 한 구석 소홀히 다뤄 빈약한 이야기를 낳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2명 이상의 악당을 등장시키면서 제대로 구색이 맞춰진 그림을 그려낸 각본은 할리우드 역사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다. <스파이더맨 3>의 악역들 역시 각각의 사연과 체온을 드러내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증오와 공포, 복수와 연민에서 각기 다른 갈등의 줄기를 뽑아 올려, 한군데로 모아 끌고나가는 기백은 쓸데없는 걱정을 주워 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가격대비 성능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대로 쏟아 부어 냉소든 감탄이든 반응을 끌어내는 CG 기술 또한 명불허전이다. <스파이더맨 3>는 당신이 여름 블록버스터영화에 기대할 법한 미덕들을 고루 갖춘 최상의 오락물이다.

증오와 복수의 갈림길에 선 피터 파커
<스파이더맨 3>는 전편들의 주요장면을 통해 이 시리즈가 소년 피터 파커의 성장을 추적하고 있음을 복기시키며 시작한다. <스파이더맨 2>의 마지막이 그랬듯 모든 건 희망적이다. 생활고는 전보다 나아졌고 연애와 학업, 평화수호의 각기 다른 임무들은 어느 정도 페이스를 유지하며 균형감을 찾았다.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에 환호하고 피터 파커는 그런 대중을 바라보며 뿌듯해한다. 그야말로 시리즈 통산 최고의 황금기인 셈이다. 그런 와중에도 피터는 정말 중요한 일의 우선순위를 잊지 않고 있다. 바로 메리 제인에게 청혼하는 것. 온통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단 한 가지 해리 오스본이 문제다. 피터와 둘도 없는 친구였으나 아버지의 죽음에 스파이더맨, 즉 피터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증오의 소용돌이로 빠져든 것이다. 복수의 화신 해리는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아 자신의 신체를 실험체로 사용한 뒤 고블린 주니어로 거듭난다. 같은 시간, 교도소를 탈옥한 플린트 마코는 딸을 방문하는 중이다. 그는 피터의 삼촌을 죽인 진범으로 의심받고 있는데, 병에 걸린 딸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은행을 털 작정이다. 하지만 일이 틀어져 경찰에게 쫓기게 된 플린트는 우연히 연구소 실험장소로 빠져들고 그곳에서 모래인간, 샌드맨이 돼버린다. 피터는 삼촌을 죽인 진범이 따로 있고, 그 범인이 샌드맨임을 안 뒤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한다. 한편 운석에 붙어 있던 정체불명의 외계물질 ‘심비오트’는 피터에게 접근, 그의 스파이더맨 복장을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그 덕에 피터의 이성은 증오와 복수심에 완전히 잠식당한다.
피터 파커는 여전히 고뇌하는 청춘의 아이콘이다. 해리의 복수심이 오해에서 빚어진 쓸데없는 감정의 과잉임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복수심에 연연해 자아를 잃고 심비오트에 의지를 압도당한다. 하지만 언뜻 느껴지는 이야기의 심각함만큼 실제 영화가 인물간의 갈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지는 못하다.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장르 안에서 아기자기한 전복과 변주를 시도했던 전편과 달리 <스파이더맨 3>에서 샘 레이미는 온전히 이야기의 속도와 완결성에 쏟아 부은 모양새다. 전작들보다 어두울 것이라는 샘 레이미의 호언장담에 비하면 그저 죽어나가는 머릿수만 늘었을 뿐 전반적으로 밝고 단순하다.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곳에서도 조금씩 머뭇거리는 표정이랄까. 사실 악역 캐릭터 구축의 빈약함이야 전편들에서도 한 번씩 들어온 지적인데, 그중에서도 <스파이더맨 3>의 경우는 너무 얇고 쉽고 간단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 있게 치닫는 이야기의 매력과 딜레마에 처한 인물들의 절실함은 충분히 전달된다. 빈약하고 단선적인 캐릭터는 상상력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인 선택의 문제 탓으로 보는 게 나을 성 싶다. 별생각 없이 스펙터클한 장면들을 즐기기만 해도 고블린 주니어의 복수심과 샌드맨을 향한 피터의 복수심 사이의 대구, 심비오트가 피터의 분열된 자아를 구축하기 위한 도구이며, 베놈이 ‘우리를 규정하는 건 선택’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드러나는 것이다. 최소한의 캐릭터 설명과 원작 만화와의 맥락을 유지한 채, 남은 여력을 흐름의 유연함에 쏟아 붇는 형세다. 2시간 19분에 이르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자세 한 번 고쳐 잡을 만한 틈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샘 레이미는 <스파이더맨 3>에서 어깨에 힘을 완전히 빼고 매순간을 코믹스 세계의 충실한 재현에 주력하고 있다.
시리즈는 계속된다?
<스파이더맨 3>의 매력 중 하나는 CG의 완성도와 그것을 사용하는 연출의 유려함이다. 더 이상 건물 사이사이를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스파이더맨의 움직임만으로는 관객에게 아무런 감흥도 줄 수 없음은 자명하다. 제작진은 그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플린트 마코가 실험장에 빠져 들어가 모래 한 알 한 알에 신체의 원자구조를 대체당하며 샌드맨으로 변화하는 장면이나, 샌드맨의 위력을 보여주는 거대 모래바람의 이미지는 진정 압도적이다. 유사한 장면을 포함하고 있었던 <미이라>는 감히 견줄 바가 못 된다. <스파이더맨>을 만들었던 2001년만 하더라도 불가능했던 기술들이 3편에 이르러 완벽하게 구현되는 모습은 이 시리즈에 내려지는 ‘당대 최고 기술력의 총체’라는 평가를 허투루 넘길 수 없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선을 끄는 건 만류인력의 법칙을 준수하는 와중에도 시공간의 틈을 벌어 제치는 듯한 액션 장면 연출의 파격이다. 이제 그다지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할리우드 CG 기술이 샘 레이미의 환상적인 콘티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스파이더맨이 마천루에서 떨어지는 그웬 스테이시를 구출하는 장면이나 고블린 주니어와의 최초 대결 시퀀스에선 유사 블록버스터영화 속에서 결코 본 적이 없는 동작들의 합이 종횡무진 이어진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몇 가지 재미들도 여전하다. 2편에서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던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의 주제가가, 이번에는 아예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버전으로 뉴욕 시내를 공명시킨다. 혼자 보고 있다면 벌떡 일어나 (예전에 만화영화를 볼 때처럼)어깨를 흔들며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흥겹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브루스 캠벨의 존재감이다. 샘 레이미의 출세작 <이블 데드>에서 주인공 애쉬를 연기한 뒤 일종의 아이콘이 된 배우 브루스 캠벨은 <다크맨>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카메오로 출연한 바 있다. <스파이더맨>에서 레슬링 심판으로, <스파이더맨 2>에서 공연장 기도로 잠깐씩 등장했던 그가 <스파이더맨 3>에선 스스로 프랑스인이라 주장하는 식당 지배인으로 출연한다. 전에 비해 분량이 상당히 늘어났을 뿐더러 그의 매력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퀀스라, 브루스 캠벨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감흥을 던져주고 있다.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피터에게 “한 사람의 노력이 많은 걸 바꿀 수 있죠”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는 <스파이더맨>의 원작자 스탠 리나, 전편에 이어 아주 잠깐 등장하는 샘 레이미의 동생 테드 레이미의 모습을 다 합쳐도 그 존재감을 이기지 못할 정도다. 혹시 브루스 캠벨이 연기해온 서로 다른 3개의 카메오 역할이 실제 영화 속 한 사람의 굴곡진 인생역정이라면? 4편에 이르러선 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주제는 3편에 이르러 ‘선택이 우리를 규정한다. 올바른 선택이 우리의 몫이다’라는 선택과 딜레마, 욕망의 문제로 좀 더 구체화됐다. 그것을 구축해나가는 갈등들의 양상이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신 빠르고 유연한 이야기 흐름이 부족한 틈을 메워준다. <스파이더맨 3>는 이 시리즈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큼 미사여구가 총동원된 비평의 전폭적 지지를 받기에는 부족하더라도, 속편을 기다려온 팬들의 기대에 모자람을 찾아볼 수 없는 최선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만족은 자연히 또 다른 속편의 출연을 고대하게 만든다. 각본을 쓴 샘-이반 레이미 형제는 “완결을 염두하고 쓴 이야기”라고 했지만 속편에 대한 여지는 뚜렷이 읽힌다. 감독과 배우들이 늘어놓는 “만들 수도 만들지 않을 수도”식 미지근한 대답에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 새로운 악당 캐릭터의 여지는 얼마든지 열려있으니 말이다. 영화 속 심비오트의 행방에 대해 조금만 되짚어 떠올려보면, 그리고 코믹스 원작에서 피터의 주변인물 중 누가 ‘리자드맨’(물론 원작에서 리자드맨이 심비오트의 영향을 받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이 시리즈는 원작을 상황에 맞게 변용하고 있다. 누가 알겠어?)이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허지웅 [필름2.0 333호]




덧글
하루카리 2007/05/06 00:21 # 답글
결론은 보라는 말씀이시군요 (...) 아아... 1편부터 복습 쭉해야겠습니다충격 2007/05/06 00:30 # 답글
날 밝으면 상경합니다. 오로지 스파이더맨 아이맥스를 위하여... o<-<아마란스 2007/05/06 00:38 # 답글
이제 베놈도 나왔으니 소니가 카니지란 베놈과 스파이더맨의 태그매치 소스를 버릴리가 없을테니 나올테고...[먼산]그래도 잘 하셨습니다, 샘 레이미 형님. 그와중에도 이만한 완성도를 뽑아내다니...
KILLROO 2007/05/06 00:45 # 답글
한사람이 노력 어쩌고 한 할아버지가 범상치 않아보이더니 원작자였군요.거기다 그 프랑스 레스토랑 지배인 낯이 익다 싶더니 이블데드의 주인공이었다니.
역시 까메오의 세계는 깊고도 깊군요.
sang 2007/05/06 22:01 # 답글
오늘 보고 왔는데 재밌더군요! 자세는 많이 고쳐앉았습니다만 ^^;아. 헌데 상영시간이 그리 길었던 줄은 몰랐어요. 역시 ^^
oIHLo 2007/05/07 01:58 # 답글
으음... 저는 그렇게 만족스럽게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최선이었습니다.2편은 가족 관객 대상으로는 좀 지나치게 심각했죠
렉스 2007/05/08 08:39 # 답글
'교수님'을 보며 미리 '안스러움'을 느꼈지요 :-) 이른걸까요,,,흐.김민섭 2007/05/08 13:54 # 삭제 답글
저는 미친듯이 재미없던데 ㅠㅠ0000 2007/05/08 17:48 # 삭제 답글
전 케블티비서 1.2편을봣는데 역기 극장서 보니 스케일이 웅장 하더군요 어제 와이프랑 같이봣는데 와이프도 음량과 액션장면에 메도되었다고 합니다. 헐리우드영화가 보신분은 아시겠지만 역시 미국 사람들 이 최고란 말이더군요. 성조기와 스파이더맨슈트가 색깔도 똑같고2007/05/08 22:09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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