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노체] 거리에서

<말라노체>는 구스 반 산트가 1985년 서른줄에 들어서 만든 첫 번째 장편영화다. 월터 커티스의 원작을 영화화한 <말라노체>는 2만 5천 달러라는 초저예산 제작비에 16미리 흑백필름으로 촬영됐다. 35미리로 리마스터링돼 지난 2006년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서 특별 상영된 바 있다. 영상이 확대되면서 거칠고 무뎌진 흔적이 없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게 투박한 입자들의 자취가 영화를 더욱 매혹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 영화에는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정도로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거칠지만 풋풋한’ 이라는 수사도 모두 어울리지 않는다.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와 <아이다호>의 탄생을 가능케 한 비평적 성공에만 그 의미를 한정하는 것 역시 적절치 않다. 단지 어느 순간 이미 마음 저 한구석으로 비집고 들어온 주인공들을 몇 번이고 어루만지며 검고 짜게 아픈, 밝고 달게 기쁜 정서들을 곱씹을 수 있다면 그만이다. <말라노체>는 역설과 반어, 문제제기와 회피, 사랑의 반복과 단절이 공존하는, 젊고 혼란스럽지만 그래서 더욱 강직한 영화다.

“남자를 좋아하는” 월트는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변두리에서 작은 편의점을 운영 중이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떠들썩하게 담배와 술을 팔고 있던 월트는 때마침 가게 문을 삐그덕 열고 들어온 소년에게 영혼을 빼앗긴다. 죠니라는 이름의 멕시코인 불법체류자에게 첫 눈에 사랑을 느낀 거다. 월트는 ‘빌어먹을 호모’라며 접근조차 하지 않으려는 죠니를 저녁식사에 가까스로 초대하는데 성공한다. 그와 한 번 잠자리를 하기 위해 15달러를 제시하는 등 뻔뻔스레 수차례 들이대 보지만 어째 잘 되지 않는다. 이 엉뚱하고 갑작스런 만남은 생각보다 길고, 맘대로 안 되고, 언제까지나 아플 것 같다.


불안하게 떨리는 <말라노체>의 시선은 구스 반 산트의 이후 작품들, 특히 <아이다호>와 수차례 겹쳐지며 명멸한다. 딱히 영화 속에서 “아이다호에 다녀 온 것이냐”는 대사가 거론됐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 변방의 풍광이 등장인물들의 표정 뒤로 펼쳐질 때는 거의 기시감에 빠져들 정도인데, 이는 촬영감독 존 캠벨이라는 공통분모뿐만 아니라 캐릭터와 정서의 유사성 탓이기도 하다. 거리의 소년 죠니는 리버 피닉스가 연기했던 마이크를 자꾸 연상시킨다. 그들은 연속선상에 위치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점 같다. 마이크는 죠니의 미래, 죠니는 마이크의 과거 같아 보인다. 그들은 결코 월트에게 몸이나 마음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월트의 구애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사랑은 위태롭고 종잡을 수 없으며 육욕에 침전당해 늘 진심을 거스른다. 소통은 고되고 때론 거의 완벽하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극으로 전이된다. 변치 않는 불문율 속에서 <말라노체>는 그렇게 현실 밖으로 스며 나온다. 고개를 돌려 거리 모퉁이를 바라보면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은 채 흘끗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그들이, 언제라도 서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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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7/03/23 19:5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수유 2007/03/23 20:10 # 답글

    보러갑니다^^3월 29일이죠?
  • sarah 2007/03/24 01:34 # 답글

    맑은고딕눈이침침하네요,,
  • 2007/03/25 02:3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7/03/25 03:27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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