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의 여섯 번째 속편이자 완결판인 <록키 발보아>가 개봉한다. <록키 발보아>는 언뜻 은퇴한 모든 아버지들을 위한 송가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 스탤론이라는 배우의 역사가 스크린 위에 겹쳐지면, 이야기는 좀 더 깊고 농밀해진다. 필라델피아 변두리 건달이 복싱영웅으로 일어서고 은퇴와 함께 부침을 겪다가 재기하는 <록키> 연대기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인생역정과 묘하게 닮아 있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의 스탤론은 <록키>가 정식으로 개봉하기 직전인 1976년의 봄으로 돌아갔다. 3층짜리 금빛 극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극장 문 앞에는 ‘<록키> 영화감독조합 시사회 8시’라는 공지가 붙어 있다. 그가 기억해냈다. 아, 이건 내 생애 가장 두렵고 떨렸던 바로 그날이군.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잔뜩 경직돼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다. 몇 번인가 크게 숨을 몰아쉬는데 어느새 어머니가 다가와 그의 손을 붙잡고 극장 안으로 이끌었다. 천천히 3층까지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900석의 관중석이 기라성 같은 감독과 제작자들로 가득 찼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사전시사를 통해 영화를 본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좋다며 기뻐했지만, 영화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스탤론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감독들에게 인정받는 일이었다. 여기서 망치면 모든 게 엉망이 되는 거야, 스탤론은 그렇게 생각했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서른 살의 무명복서 록키 발보아가 울고 소리치고 훈련하고 싸우고 애드리안을 외쳤다. 영화가 끝나기 5분 전까지 관중석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아무도 웃거나 울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스탤론은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그는 “어머니, 우리 그냥 먼저 나가죠”라며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어머니 손을 붙잡고 1층까지 내려가는 동안 스탤론은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윽고 1층에 다다랐을 때, 그는 로비를 가득 메운 900여 명의 관객들과 마주쳤다. 그들이 스탤론과 그의 어머니를 향해 엄청난 박수와 환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큰 박수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울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2001년 2월의 현실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한참 동안 솟구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감정이 쉽게 추슬러지지 않았다. 오늘은 <록키> 탄생 25주년을 기념하는 DVD를 위해 비디오 코멘터리를 녹화하는 날이었다. MGM스튜디오를 찾은 스탤론이 조용히 카메라를 응시했다. 숨을 한 번 삼키고, 간밤의 꿈을 떠올렸다. 1976년 그날의 공기를 실감한 스탤론이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네, 맞아요. 그 뒤로 저는 계속 내리막길이었습니다.”
스탤론, 이탈리안 종마가 되려하다
계산이 참 쉽다. 스탤론이 <록키>의 각본을 쓴 것, 그리고 록키 발보아가 아폴로 크리드와 대등한 경기를 펼쳐 일약 복싱영웅의 자리에 올랐던 게 그들의 나이 서른 살 때였다. <록키 발보아>가 30년 만의 여섯 번째 시리즈라는 사실을 알면 발보아와 스탤론의 나이가 똑같이 60세라는 걸 알 수 있다. 조지 포먼이 믿을 수 없는 재기 경기를 펼쳤던 게 그의 나이 40세 때다. 도대체 실베스터 스탤론과 록키 발보아는 예순의 나이에 무엇을 그리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몸과 몸이 부딪혀 허물어지는 링 위에서 말이다. 이 무모한 시도를 두고 모두 비웃었다. 예고편에서 필라델피아 박물관 계단을 가로지르는 발보아의 모습이 등장하고 마침내 ‘록키 발보아’라는 영화의 제목이 화면에 떠올랐을 때 극장을 채우고 있던 대다수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12월 22일 영화가 공개된 이후, 더 이상 아무도 스탤론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평단과 언론,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졌고 영화는 개봉 첫 주에 2천 2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가 단지 쇠락한 액션 배우가 아니라 작가 겸 감독이었다는 사실 또한 이제야 다시 환기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왜, 가 아니라 어떻게, 이며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이 흥미로운 영화를 탄생시킨 스탤론의 의욕과 발보아의 투지, 그 정직한 동물적 에너지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은 <록키>의 탄생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록키>의 각본을 쓸 당시 스탤론에 대한 묘사는 종종 다음과 같은 눈물겨운 풍경으로 시작된다. “1975년 서른 살의 스탤론은 통장잔고가 106달러에 불과했고 벗키스(그의 애견, 록키 시리즈에 죽을 때까지 출연했다)를 팔아치울 맘을 먹을 정도로 궁핍했으며 이제 막 서른두 번째 시나리오를 제작사로부터 퇴짜 맞은 비인기 작가이자 단역배우였다.” 누군가의 성공이 전설이 되기 위해 몇 가지 사실들은 과장되거나 폄하되는 과정을 겪기 마련이다.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이건 모두 사실이다. 당시 그의 첫 번째 아내가 그나마 사진작가 일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스탤론은 꼼짝없이 굶어 죽었을 것이다. 배우로서 그의 내세울 만한 유일한 커리어란 고작 우디 앨런의 <바나나 공화국>에 지하철 건달 #2로 출연한 것뿐이었다.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다. TV를 통해 무하마드 알리와 백인 무명복서의 경기를 지켜보던 스탤론은 충격에 휩싸였다. 척 웨프너라는 이름의 그 무명복서가 내민 라이트 훅이 알리의 옆구리에 작열한 다음 순간, 알리가 다운된 거다. 그 위대한 무하마드 알리가 이름 없는 복서의 펀치 한 방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물론 알리는 금세 일어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기는 알리의 TKO판정 승리로 끝났다. 사람들은 척 웨프너라는 복서를 서둘러 기억에서 지웠다. 하지만 스탤론은 그럴 수 없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건 마치 모두 바라마지 않는 아메리칸 드림의 은유같이 보였다. 그는 이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짧은 순간의 기적을 2시간의 영화적 경험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좁고 초라한 집에 틀어박혀 머리를 싸매고 한 달을 보냈다. 그리고 집필을 시작한 지 단 3일 만에 <록키>의 초고가 완성됐다.
며칠 뒤 제작자 어윈 윙클러와 로버트 챠도프가 배우 오디션을 진행하는 자리에 스탤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탤론은 여지없이 오디션에서 탈락했다. 힘없이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이런 만남조차 쉽지 않다는 생각에 스탤론이 용기를 냈다. 그리고 윙클러에게 말했다. “저, 제가 시나리오를 좀 쓰는데 요즘 복싱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써둔 게 있거든요.” “그래 한번 가져와 봐요.” 그 순간 실베스터 스탤론의 인생이 바뀌었다.

스탤론, 록키의 입을 빌려 자기 이야기를 하다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와 무명의 복서 록키 발보아의 이벤트 경기가 결정된 직후, 체육관 관장인 미키가 발보아의 집을 찾는다. 미키는 발보아에게 매니저가 돼주겠다며 자신이 한때 얼마나 잘 나가던 복서였는지 주구장창 늘어놓는다. 발보아는 이제껏 자기를 외면하다 아폴로와 경기를 한다고 하니 매니저를 자청하는 미키가 밉다. 발보아는 미키에게 비명에 가까운 속내를 털어놓는다. 비명은 금세 흐느낌으로 바뀐다.
“엄청 오래 걸렸군요. 내 집까지 오는 데 무려 10년이나 걸렸어요. 10년. 왜요, 내 집이 싫어서요? 좁아서요? 냄새가 나요? 그렇죠, 냄새가 나죠! 당신은 전성기를 얘기하는데, 그럼 내 전성기는 어디 있어요? 당신은 그거라도 있지, 난 아무것도 없어! 난 벌써 서른 살이야! 경기를 해봤자 엄청나게 얻어맞겠지, 다리도 팔도 이젠 전처럼 말을 안 들어! 이제 와서 날 도와주겠다고? 여기 들어오고 싶어요? 그럼 들어와요! 냄새가 지독해! 젠장 온 집안이 냄새 투성이야! 날 도와줘 보라고요!”
누구라도 눈치 챌 수 있듯, 이건 스탤론이 록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록키 발보아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분신이었다. 록키는 경제적으로 피폐할뿐더러 이국적인 외모 탓에 남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던 스탤론의 어두운 과거와 현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미래상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단순히 대사와 캐릭터의 맥락만 궤를 함께하는 건 아니다. <록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인 위의 시퀀스가 촬영된 그 ‘좁고 냄새 나는 발보아의 집’은 실제 실베스터 스탤론이 살던, <록키>의 시나리오를 썼던, 바로 그 집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발보아와 아폴로 크리드의 경기에서 종을 울린 건 스탤론의 아버지 프랭크 스탤론이었고, 동생 프랭크 스탤론 주니어는 필라델피아 뒷골목에서 아카펠라를 부르는 거리의 음악가로 등장한다.(2편에도 잠시 등장한다) 록키가 쓰고 있던 중절모와 검은색의 재킷은 모두 스탤론의 평소 복장이다. 애드리안과 발보아가 서로를 찾는 유명한 마지막 장면은 사실 엔딩을 바꾸면서 급조된 것으로, 제작자와 촬영 스탭들을 비롯한 서른 명의 관계자들이 링 주변을 빙빙 돌면서 많은 관중이 있는 것처럼 흉내 낸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 때문이다. 어윈 윙클러와 로버트 챠도프는 스탤론의 각본을 무척 맘에 들어 했지만 “무조건 내가 주연을 맡아야 한다”는 스탤론의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시나리오의 가격은 스탤론의 주연 포기를 조건으로 천정부지 치솟았다. 처음에는 2만 5천 달러였던 게 10만으로, 다시 17만 5천으로, 마지막에는 36만 달러까지 올랐다. 하지만 스탤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이 돈을 받고 편하게 살자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다른 모든 걸 떠나서 <록키>가 나 없이 완성되고 상영되는 광경을 떠올리니 견딜 수가 없었죠. 한 푼도 받지 못하더라도 무조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내가 돼야했습니다.” 마음을 바꾸지 않는 스탤론과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제작자들에게 제작사 유나이티드아티스트는 100만 달러가 채 되지 않는 저예산의 제작비를 내줬다. 그나마 스탤론은 출연료조차 받지 못한 채,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경우 러닝개런티를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결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믿을 수 없는 역전극이었다. 발보아는 15라운드를 버텼고 영화는 미국에서만 5천 6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빌 콘티의 스코어는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76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록키>에 작품상과 감독상, 편집상을 안겨줬다. <택시 드라이버>와 <대통령의 음모> <네트워크>가 작품상 경쟁후보로 올라와 있던 해였다. 스탤론은 데뷔와 동시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모두가 스탤론을 사랑했고, 모두가 스탤론을 만나고 싶어 했다. 이 드라마틱한 성공이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걸, 당시의 스탤론은 알지 못했다.
<록키> 시리즈에 투영된 스탤론의 부침
시합을 만류하는 애드리안에게 발보아는 말했다.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록키>에서 록키 발보아의 목적은 오직 하나, 15라운드를 끝까지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는 끝내 경기에서 패배하지만 결국 승리보다 더 값진 걸 거머쥔다. 그건 이 영화의 미덕이자 영리한 점이었다. 당시의 젊은 관객들은 승리 자체보다 그 과정의 정당함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고민하는 걸 좋아했다. 덕분에 스크린 역시 반-영웅 캐릭터들이 온통 수놓고 있었다. 스탤론 스스로 반-반-영웅이라고 부르는 발보아는 대중들이 단연 환호할 만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록키> 이후 스탤론의 행보는,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관계없이,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건 마치 <록키>로 순식간에 이뤄놓은 커리어를 차례차례 망가뜨려 끝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짓밟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록키>에서 마지막 15라운드 종이 울렸을 때 아폴로 크리드는 “재시합은 없어!”라고 말하고 록키 역시 “동감이야”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랬어야했다. <록키>의 크고 공고한 아우라 앞에 대중은 발보아가 아닌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최소한 스탤론은 그렇게 생각했다. 첫 연출작인 <챔피언>(Paradise Alley, 1978)이 흥행에 무참히 실패하고 나자 스탤론은 자신이 돌아갈 보금자리가 록키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싫든 좋든 관계없이, 일종의 업보처럼 말이다. 그는 이때 이미 흥행에 지나치리만치 연연하고 있었다.
아폴로와 재시합을 갖고 끝내 승리하는 <록키 2>는 길고 긴 시리즈의 서막과도 같았다. 두 번째 연출작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스탤론이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써내려간 은퇴한 복서의 모습 역시 현실의 공기를 담고 있는 듯 생생했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한 발보아는 미리 멘트를 준비라도 한 듯 감사해야 할 사람들의 목록을 줄줄 읊더니 마지막에 애드리안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전 편과 동일한 감수성에 호소한다. 이 불안한 승리는 곧장 <록키 3>의 조금도 그럴듯하지 않은 드라마로 이어졌다. 파마로 부풀린 머리를 하고 몸에 착 달라붙는 양복을 입은 발보아는 <록키 3>에서 미스터T가 연기하는 클러버 랭과 대결한다. 패배주의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듯 보이는 클러버 랭의 소수자적 모습이 차라리 예전의 록키와 가까워 보였다. 이 영화가 기억되는 유일한 이유는 여기서 록키의 은인, 미키가 심장마비로 죽기 때문일 것이다. 85년 만들어진 <록키 4>는 당대 냉전체제 하의 선전영화로 전락했다. 고르바초프가 발보아의 승리에 감동받은 뒤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이 영화가 기억되는 유일한 이유 역시 여기서 록키의 영원한 맞수, 아폴로 크리드가 죽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을 한 명씩 죽여 가며 시리즈가 이어졌다. 존 G. 아빌드센이 다시 연출을 맡은 <록키 5>는 <록키> 이후 가장 괜찮은 작품으로 기억될 만했지만 시리즈의 인기가 점차 시들해지는 이유를 영 다른 데서 잘못 찾은 실수이기도 했다. 존 G. 아빌드센은 록키의 매력이 계급적 문제에 있다고 봤다. 그래서 록키를 성공한 복서에서 무일푼 거지로 만들어 다시 예전의 필라델피아로 보내버린다. 발보아가 영원한 민중들의 영웅으로 돌아가는 결말에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영화는 철저히 흥행에 실패했다. <록키> 시리즈의 정수가 승리나 돈이 아닌 소통과 자기 존재가치의 증명에 있었음을 외면한 결과였다.
흥미로운 건 <록키 2>부터 <록키 5>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에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의 부침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화려하게 부상한 록키가 국가영웅주의 선전도구로 전락했다가 처절하게 무너지는 일련의 흐름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록키> 이후 줄곧 하드바디 영웅을 연기했던 경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 역시 록키 발보아처럼 과거의 퇴물, 한물간 액션스타의 대명사로 치부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캅 랜드>나 <드리븐> <디-톡스>처럼 스탤론의 재능이 돋보이는 영화조차 무시당했다. 그가 출연하면, 영화는 망했다. 우리가 오해한 부분도 있고, 스탤론이 자초한 점도 있었다. <록키>시리즈는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나는 듯싶었다.
<록키 발보아>에서 스탤론의 반성과 변명을 읽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늘 록키 발보아가 자기보다 더 키가 크다고 생각했다. <록키> 25주년 DVD에 삽입된 <스탤론, 발보아를 만나다>를 보면 스탤론이 발보아에게 직접 묻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오, 난 니가 나보다 키가 훨씬 큰 줄 알았어.” 록키 발보아는 다른 누구보다 스탤론에게 있어 최고의 영웅이자 원죄였다. 자기방식으로 끝을 맺어야했다. <록키 발보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드라고와의 경기 직후 뇌 이상으로 은퇴했으며, 폴리의 실수로 전 재산을 잃고 필라델피아의 뒷골목에서 새 인생을 시작했던 발보아는 이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업가다. 애드리안은 죽은 지 오래다. 그는 과거의 경기이력을 손님들에게 들려주는 일로 소일하며 인생의 황혼기를 준비 중이다. 어느 날 전성기 때의 록키와 현재 헤비급 챔피언과의 컴퓨터 가상경기가 중계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이에 돈 독이 오른 프로모터와 언론은 실제 경기를 제안하고 나선다. 당신이라면 받아들이겠는가? 발보아는 받아들인다. 링 위에 다시 설 수 있는, 인생에 다시없을 기회니 말이다. 그가 다시 한 번 필라델피아 박물관 계단을 뛰어오르고 냉동고의 소고기를 샌드백 삼아 치는 눈물의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그 끝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지만, 동시에 최고치의 감동을 제공하는 진실의 기록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구멍이 없지 않다. 록키와 아들과의 에피소드는 너무 적고 록키가 예전 같은 동네에 살았던 마리와 재회해 벌이는 에피소드는 너무 길다. 링 위에서의 투혼은 어느 정도 작위적이고 상대 복서의 존재감은 너무 미약하다.(발보아의 상대 메이슨은 실제 라이트 헤비급 전 챔피언인 안토니오 타버가 연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흥미롭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록키 발보아>는 <록키>의 또 다른 버전 같아 보이기도 하고, <록키 2>부터 <록키 5>까지 나머지 시리즈를 싸잡아 논외로 쳐버린 유일한 속편 같기도 하다. 이 두 영화는 어느 순간 묘하게 닮아 있다. 영화 하나만 두고 볼 때 <록키 발보아>는 <록키>로 명명된 텍스트의 변주이자 재현이고 완성이다. 하지만 실베스터 스탤론의 개인적 역사가 스크린 위로 겹쳐오면서 <록키 발보아>는 여태까지의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는 스탤론의 자기반성과 변명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록키>가 서른 살의 가난하고 멸시받는 단역배우 겸 시나리오 작가 스탤론의 현실을 반영한 영화였듯이, <록키 발보아>도 “머릿속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퇴물 배우”라는 편견을 강요받고 있는 스탤론의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인 것이다. 여기서 스탤론은, 아니 발보아는, 아니 그 누구라도 상관없는 분열된 자아는 더 이상 망가질 수 없을 만치 쇠락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익숙한 링 위에서 논하고 증명한다. 그는 영화 속에서 재기를 꿈꾸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온갖 종류의 비아냥에 “편견과 조롱에 신경 쓰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내 스스로 이뤄낼 수 있는 일을 하겠다”며 으르렁댄다. 거의 으름장처럼 들리는 이 말들은 스스로 진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강한 부정처럼 들린다. <록키 발보아>를 통해 스탤론은 결국 그 존재가치를 증명해낸다. 하나의 연작 시리즈가 한 명 배우의 인생을 담고, 다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광경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록키 발보아>의 경기 장면은 홉킨스-테일러의 시합이 끝난 직후 라스베가스 복싱경기장에서 이벤트처럼 실시간으로 촬영됐다. 록키가 두 팔을 벌리고 경기장에 입장하자 1,400명의 관중이 일제히 일어서 미친 듯이 “록키”를 외치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난 후, 발보아는 퇴장하다 말고 잠시 관중들을 바라보다 두 팔을 번쩍 들어 그들의 엄청난 환호에 응답한다. 카메라는 관중과 록키가 나누는 무언의 대화를 길고 묵직하게 응시한다. 미리 약속되거나 조금도 의도되지 않은, 진정한 팬들의 정직한 박수소리에서 스탤론은 과거, <록키>의 영화감독조합 시사회에서 받았던 박수소리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록키> 시리즈는 끝났고, 실베스터 스탤론은 자신의 영화경력을 새롭게 시작했다. 록키는, 결국 스탤론을 구원했다. 허지웅
[필름2.0 3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