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전기톱 살인마, 레더 페이스

마커스 니스펠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텍사스의 유서 깊은 전기톱 살인마, 레더 페이스(leather face)가 돌아왔다. 30년의 터울을 두고 잉태된 리메이크 작품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증폭된 스케일과 어여쁜 청춘스타들로 단장한 매무새에서 속편의 법칙을 따라가는 가 싶지만, 정치 사회적 아우라를 걷어낸 자리에 덮여진 강도 높은 고어효과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잡아낸 이야기 구성은 이 해묵은 리메이크 작품이 성취한 가벼움의 미덕이라 할 만하다.

원작이 촬영 여건상의 조악한 화질로 인해 기록필름의 분위기와 그로인한 공포효과를 얻어냈던 반면, 이번 작품은 공공연히 실제 사건임을 강조하며 초반과 종반에 ‘연출된’ 흑백의 기록필름을 삽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레더 페이스는 정말로 존재했던 살인마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만 사실이다. 토브 후퍼에게 영감을 제공했던 ‘에드 게인’은 레더 페이스가 아닌, 일평생 정신착란 속에 살았던 연쇄살인범이었다.

토브 후퍼가 레더 페이스를 탄생시켰던 74년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이듬해이자,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 당시 미국인들은 자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으며 폭력에 근거한 기성사회의 논리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텍사스...>의 예상치 못한 기록적 흥행 이후, 이 작품은 당시 미국이 앓고 있었던 정신적 외상들에 대해 무수한 정치 사회적 발언을 하는 영화로 각인되었다.

원작의 주요한 모티브는 폭력성에서 기인하는 불쾌함이다. 살인마 가족은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가부장사회인 동시에, 다른 사람을 죽여 그 살과 피를 취하지 않고서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는 것처럼 그 스스로 어떠한 생산성도 가지지 못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이라는 극단적 폭력성과 기성세대의 권력욕을 조롱하는 총체적 의미의 은유였으며, 이러한 의식은 시종일관 끊이지 않는 전기톱의 굉음 속에서 불쾌함으로 각인되었다.

반면 이번 리메이크 작품은 그러한 상징적 장치들을 대폭 들어내고, 친절한 부연설명을 채워주는 새로운 설정의 드라마적 요소를 차용하고 있다. 대체된 이야기 자체의 참신함과 설득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중요한 시퀀스들에서 목격되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점층적으로 증폭되는 심리적 압박감은 연출자의 재능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원작을 훼손 혹은 폄하했다는 비판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무척 영민한 (동시에 당돌한) 시도임에 틀림없다.


리메이크 영화가 관습적으로 저지르는 실수를 연출자의 재능을 바탕으로 한 정공법으로 극복해나가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근래 고전 호러영화들의 리메이크 홍수 속에서 건져 올린, 제법 주목해 볼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단지 소음으로만 다가오는 레더 페이스의 전기톱 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초라하고 가벼워 보이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폭력과 기성질서에 대한 분노가 담겨져 있지 않은 <텍사스...>란 철학부재의 시대가 낳은 100분짜리 롤러코스터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더욱 가볍지 않다.

개봉일: 2005.06.16

에드 게인(ed gain, 1906~1985)은 누구인가?

1906년 8월 27일 위스콘신의 라 로스에서 태어난 에드 게인은 기독교 광신도인 어머니에게서 모든 여자는 악이라는 세뇌를 받으며 억압적인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완벽하게 홀로 남겨진 에드 게인은 여자가 되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운명의 날. 57년 11월 17일 미국 위스콘신의 플레인 필드에 위치한 에드 게인의 농가에서는 사람의 피부로 만들어진 흔들의자와, 구두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는 생식기, 젓꼭지로 만들어진 벨트, 그리고 사람의 신체 기관들이 발견되었다.

조용하고 소심한 이웃이었던 에드 게인의 엽기적 살인행각은 미국 전역을 공포에 떨게 하였으며, 그의 등장은 FBI 수사에 있어서 정신 분석학을 도입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에드 게인 사건은 일찍이 수많은 예술 작품들에서 인용되어온 바 있다. 로버트 블록은 에드 게인을 모델로 하여 기념비적인 걸작 <사이코>를 집필하였고, 이는 알프레드 히치콕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억압의 기억은 스티븐 킹의 <캐리>와 브라이언 드 팔마의 동명의 작품을 통해 명백하게 재현되었다. 또한 토마스 해리스는 에드 게인을 추억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두 명의 살인마를 창조했다. 인육을 먹는 한니발 렉터 박사와, 여성이 되고 싶어서 희생자들의 가죽을 벗기는 버팔로 빌이 바로 그것이다.



허지웅 ozz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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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INHA 2005/06/16 11:29 # 답글

    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사건이 실화이고,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영철의 연쇄살인사건을 영화화한다고 했을때 반발이 꽤 심했는데 미국은 어땠을려나 싶네요.^ ^)
  • Amnesiac 2005/06/16 14:00 # 답글

    이게 친구들이 경악하던 바로 그 작품!-_-;
  • ozzyz 2005/06/17 23:38 # 답글

    MINHA/ 이 경우에는 워낙 오래 전의 사건이니까요. 유영철 사건 당시 이 영화와 관련한 글을 썼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Amnesiac/ 오오,, 경악까지나. 한번 보세요 ^^
  • kalki 2005/06/18 01:27 # 삭제 답글

    유영철 보다는 선배격인 지존파가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물론 희생자 가족 분들에게는 고인을 두 번 죽이는게 되겠지만..
  • ozzyz 2005/06/18 23:42 # 답글

    kalki/ 지존파 사건은 이미 영화화 진행된지 꽤 되었는데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엎어졌는 모양이라.
  • mithrandir 2005/06/21 00:16 # 삭제 답글

    오늘 봤습니다. 연출 촬영 조명 편집 정말 좋더군요. "철저하게 오락적인 영화"이지만 오리지널을 그리워할 정도로 얄팍하게 요즘 정서에 "아부"하지는 않는 영화. 잘 만든 정통 호러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랫만에 땀흘려가며(!) 본 호러 영화였습니다. 특히 몇몇 장면의 임팩트는... 흐흐흐...

    요즘 나오는 상업 영화들이 너무 지루해서 일부러 작가주의 영화나 고전 회고전만 다니던 참이었는데 간만에 만족스러웠습니다. 그치만 올해의 다른 여름 영화들도 이정도로 볼만할지는 미지수...
  • ozzyz 2005/06/22 01:40 # 답글

    mithrandir/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셨군요! 그럭저럭 즐거운 영화 아니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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