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주의 나부랭이에 기계적으로 근거하지 않아도 서로 다르다는 것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 나의 다름과 너의 다름이 어떤 위계도 없이 어울리되 나도 옳고 너도 옳다는 헛소리는 폭력이라 말할 수 있는 세상. 차라리 모두가 이방인인 세상. 진영이라는 환상 안에서 질투와 자기연민에 사로잡혀 서로 잘났고 자신만이 유일한 진짜라고 우기는 인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세상. 우리는 무엇무엇 해야 한다, 왜냐하면 무엇무엇 해야만 하니까, 식의 당위가 실제를 위협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상식이 통용될 수 있는 세상. 자기 행동에만 특별한 맥락이 있다며 똑같은 행동을 하는 타자에게 쉬운 가치판단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절룩거리는 세상. 조직 안에서의 사람 됨됨이를 따지는 데 유독 천착하지만 정작 진짜 됨됨이에는 예민하지 못한, 인간적일 것을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반푼이들이 멸종된 세상. 그런 세상.
이제 막 책이 나왔어요. 표지 일러스트는 김중화, 내지 일러스트는 장재훈, 후면의 일러스트는 oldboy님 작품. 우석훈 선생님이 해제를, 강풀 작가님과 류승완 감독님이 추천사를 써주셨습니다. 기존 블로그에 실렸던 내용을 다듬고 보충한 것을 중심으로 새로운 글이 절반의 절반 조금 안 되게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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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리지널 시리즈와, 특히 종전의 97년 극장판을 소화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꽤 어렵겠다. 형식적인 면이 아니라 서사적인 면에서. 온갖 개념과 떡밥들이 가혹할 정도로 던져지는데 이 정도면 보지 말라는 것 아닌가? 기존의 팬이라도 이젠 정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편집판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겠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적당히 변주되고 비틀어지는 것 따윈 없다. 파격이라는 수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게 바뀌었다. 스포일러 공개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토우지는 더 이상 3호기 파일럿이 아니다. 아스카의 성격과 역할이 많이 바뀌었다(오리지널과 비교할 때 가장 성숙해진 캐릭터다). 예고편 떡밥 증폭 전문 캐릭터 카오루는 두 번 등장한다. 두 번 등장하는 주제에 입만 열면 폭탄급이라 심장이 멎을 것 같다. 세번째 사도와 붉은 바다에 대한 음모론이 많았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추가되었다. 새로운 캐릭터 마리는 역할이 많음에도 이야기 깊숙이 들어오지 않아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제레의 시나리오가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어 오리지널에서 추측만 되던 사실들이 많이 드러난다. 무겁고 무거운 후반부를 고려한 것인지 중반에 주인공들의 단란하고 따뜻한 관계가 그려진다. 오리지널 시리즈 최종회의 신지 상상 시퀀스가 떠올라 많이 짠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벌써)<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재현이다. 단순한 공기의 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똑같은 컷도 두 세 개 발견된다. 특히 레이 자폭(오리지널과는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는)에 관련된 마지막 시퀀스는 복합적인 의미에서 압권이다. 이렇게까지 벌려놓고 후속편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Q>를 어떻게 전개할까. 서드 임팩트의 첫 단계가 벌써 시작되었단 말이다.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당황스럽고 행복하다.
ps: 붉은 바다에 관련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이 평행우주가 아닌, 오리지널로부터 유래한 같은 연속선상의 시간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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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추모하고 싶은 캐릭터를 만나는 일이, 아주 가끔 벌어진다. 상대적으로 드라마에선 그런 캐릭터를 만나본지 오래되었다. <모래시계>나 <임꺽정>, <네 멋대로 해라> 정도가 마지막일까. 예전 드라마를 볼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주 느끼는 거지만, 요 몇 년 사이 한국 드라마의 질적 저하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캐릭터가 난데없는 독백으로 방금 벌어진 상황을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거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꿉놀이 수준의 갈등을 가지고 지지고 볶아 극을 진행하는 드라마 따위를, 전에는 정말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찌 된 건가.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수준이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한꺼번에 주저앉기라도 했단 말인가. 혹은 그 반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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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대생이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다. 그녀가 사랑 없이도 조건보고 결혼할 수 있다 말했다. 또한 (키가) 180센티미터 이하인 남자는 루저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루저가 되었다는 대한민국 남성의 구 할이 분노로 폭발했다. 하물며 북한의 수령님도 아주 그냥 크게 분노해 서해에 배를 한 척 띄웠다는데 확인된 바는 아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난 한 주의 한반도는 그 놈의 루저 이야기로 참 많이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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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사를 그만두었다. 당분간은 좀체 진행하고 있지 못했던 단행본 작업에 치중할 생각이다. 올해 안에 원고 두 개는 꼭 넘겨야 하는데 잘못하면 하나 밖에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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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의 괴물에도 족보가 있다. 뜯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대중적인 사랑을 독차지하는(관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괴물의 속성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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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센티 이하는 모두 루저고 사랑 없어도 조건보고 결혼할 수 있다 말하는 대학생을 보게 되는 일이 조금 끔찍하기는 하다. 그러나 어떤 상징이나 대표성도 없는, 천박한 인간 하나가 밑천을 드러내는 말을 했다 해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분노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런 천박한 인간에게 루저라고 규정된다 해서 딱히 기분나쁠 건 또 무언가. 세상의 모든 바보들에 분노하기에 관심가져야 할 일은 많고 하루는 너무 짧다. 역시나 분노한 네티즌들의 수사력이 투입된 것 같던데, 그 얇고 천진한 한마디 위로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감을 실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다. 그냥 루저 짤방이나 보고 즐겁게 넘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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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가 ‘홍보 팍 도사’라는 오명을 얻은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를 일으켰던 연예인에게 공공연히 불공정한 면죄부를 주는 프로그램이라는 소리도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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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무엇인가, 혹은 집단의 선택에 성격이 감지될 때, 그것이 일관적이든 전복적이든 관습적이든 간에 관계없이 우리는 캐릭터에 대해 논할 수 있게 된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보면서 ‘캐릭터 열전’의 소재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생각하게 되었다. 헌재는 지난 29일 처리과정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그런 위법적인 절차를 거쳐 통과된 미디어법 자체에 대해서는 유효 판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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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의 영화는 쥐고 흔들었는데도 의외로 망가지지 않는, 매우 엉성하고 조잡하지만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다. 마냥 덜그럭거리며 경쾌할 것만 같지만, 난장에도 소위 체계가 가능하다는걸 보여준다. 바로 그 체계 덕분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페킨파가 히치콕 영화를 만든 것 같은 <바스터즈>도 마찬가지다. 긴 호흡의 대사와 장난기 다분한 역사 부정, 비뚤어진 캐릭터들이 종횡무진 뒤섞임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호흡으로 관객의 숨통을 조여 온다. 크리스토프 왈츠가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 시퀀스 자체가 시한폭탄이다. 브래드 피트의 사투리가 재미있다. 일라이 로스는 친구랑 그만 놀고 영화 찍자. 허지웅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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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모 웹진에 기고하기로 했던 글. 택시 기사들을 인터뷰해 취합하고 정리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해석하는 자의 말을 보태고 말 게 없이 그냥 옮기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준엄하게 분석하든 가볍게 희화화하든 오십보백보로 천박한 것이다. 그것을 자료로 활용해 다른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삶 위의 풍경 그 자체에 말을 보태고자 하는 욕망은 오만이다. 저 둘의 지면은 분리되어야만 한다. 이 같은 원고의 경우, 풍경 그 자체가 완벽한 텍스트다. 거기에 내가 무슨 이유로 해석을 덧붙여야 한다는 말인가. 아무튼 그런 의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원고를 싣지는 못했다. 다만 원고료를 받았으니 다른 걸 빨리 써야하는데.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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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두루 많이들 보는 스포츠 신문에 기고한 ‘빨갱이 선덕여왕’은 재보선을 염두에 둔 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왜 부자를 위해 투표하나’의 연장선에 있는 글이기도 하다. 이해관계를 정확히 투영하지 못하는 민중의 선택은 인류 역사에 걸쳐 오래된 딜레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앞섰지만 그래봤자 근소한 차이고 그래봤자 민주당이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득표율을 보니 암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하나 더. 내 생각에 ‘빨갱이 선덕여왕’은 대단히 노골적으로 반어적인 뉘앙스를 채택한 글이다. 마지막 문단을 빼더라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 마지막 문단이 유치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오해를 우려하는 사람도, 실제 오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다. 그러다 소위 무언가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일을 주로 하는 자들의 눈높이라는 게 현실이 아닌 환상이나 제 멋에 근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고민이 많아졌다. 말로는 좀 더 노골적으로, 좀 더 실질적으로 말하고 쓰고 행동하자 하고 정말 그렇게 노력하지만 현실과의 격차가 이렇게 크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려 눈높이를 염려하고 있다니 나도 참 병 맛이다. 눈높이라는 단어의 무게와 적용을 걱정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헤아리거나 이겨낼 수 없는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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