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냥 정의로운 것과 마냥 악의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삶을 모색할 책임과 의무, 특권이 있으며 이는 양 진영의 근본주의자들 - 끊임없이 상대가 악마임을 주장해야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 의 대의 안에서 찾을 수 없는 가치다.
- 다원주의 나부랭이에 기계적으로 근거하지 않아도 서로 다르다는 것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 나의 다름과 너의 다름이 어떤 위계도 없이 어울리되 나도 옳고 너도 옳다는 헛소리는 폭력이라 말할 수 있는 세상. 차라리 모두가 이방인인 세상. 진영이라는 환상 안에서 질투와 자기연민에 사로잡혀 서로 잘났고 자신만이 유일한 진짜라고 우기는 인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세상. 우리는 무엇무엇 해야 한다, 왜냐하면 무엇무엇 해야만 하니까, 식의 당위가 실제를 위협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상식이 통용될 수 있는 세상. 자기 행동에만 특별한 맥락이 있다며 똑같은 행동을 하는 타자에게 쉬운 가치판단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절룩거리는 세상. 조직 안에서의 사람 됨됨이를 따지는 데 유독 천착하지만 정작 진짜 됨됨이에는 예민하지 못한, 인간적일 것을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반푼이들이 멸종된 세상. 그런 세상.
- 이 블로그에는 대개 매체 기고칼럼을 옮겨놓습니다. 일종의 DB죠. 글 끝에 꼭 해당 매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전부 다 올리는 건 아니고 생각날 때 몇가지씩 올립니다.
이종필의 장편 데뷔작이라기보다 이경규가 제작한 영화로 남을 공산이 큰 영화 <전국노래자랑>이 공개되었다. 일단 연출의 호흡만을 두고 보면 이경규가 연출하거나 제작했던 전사들과 비교해 훨씬 안정적인 모양새다. 그러나 여전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전국노래자랑>은 절반의 성취에 그친다.
이어지는 내용
여기 이상한 예능이 있다. 이 예능 프로그램에는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에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장르와 컨셉 같은 명확한 틀이 존재한다. 그 안에 고정 출연자와 게스트가 들어가 틀이 규정해놓은 롤을 매주 수행한다. 이 틀이 제대로 작동하면 프로그램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은 그런 식으로 굴러간다.
이어지는 내용
- CJ가 종북이라는 말을 다 듣는구나. 자본은 그 시기에 돈이 될만한 기획을 컨텐츠에 기민하게 반영할 뿐, 어떤 정치적 지향에 따라 비용을 집행하지 않는다. 짬짜면 탕짜면 탕짬면 탕볶면도 아니고 변희재는 광의의 종북 타령을 그만둘 필요가 있다.
- CJ를 깔 이유가 얼마나 많은데 뭔 되도 않는 친노종북이란 말이냐...
- 변희재의 논리를 반사하자면 종편 뉴스컨텐츠들이 진짜 친노종북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전에도 썰전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종편 뉴스 컨텐츠는 쇼와 보도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 그런 지점에서 볼 때 변희재가 SNL의 뉴스 코너를 지적하는 건 앞 뒤가 맞지 않는다. SNL보다 선정적이고 팩트에 어긋난 컨텐츠를 무려 '보도'의 틀로 내보내는 종편 뉴스와 달리, SNL의 보도코너는 형식과 내용 모두 충분히 풍자와 재미의 영역이다.
- 만에 하나 SNL의 뉴스 코너가 징계를 받는다면 표현의 자유 운운을 떠나서 한국의 예능은 다 때려쳐야 한다. 정치풍자와 섹드립의 영역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한국의 예능은 더 이상 개척할 수 있는 소재가 전무하다.
- 변희재와 낸시랭은 지향이나 행동으로 볼 때 거의 다를 게 없는 사람인데 대체 왜 각을 세우는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둘 다 윈윈하고 있기는 하다.
- tvN의 <나인>은 칭찬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드라마다. 이제 3회 남았네. 지난 달에 쓴 글 다시 한 번 인용.
http://ozzyz.egloos.com/4796278
- <나인>은 다른 종류와 기능의 향이 몇 개 더 존재한다는 설정만 추가하면 시즌제로 가도 될만한 드라마. 시즌마다 향의 주인들은 전혀 다르고. 물론 각 시즌의 주인공들이 조금씩 엮이면 더 재미있겠지요. 이만한 게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아깝다.
- <나인>의 시즌제 이야기는, 이를테면 <나인>이 한국의 <닥터 후>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닥터 후>가 처음에는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나? 중요한 건 기본 설정의 지속 가능성. 1대 향 마스터 박선우 2대 향 마스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32&aid=0002334537
항상 가장 잘 팔리는 건 공포다.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msg를 먹으면 건강이 나빠진다. 마릴린 맨슨을 들으면 총기난사범이 된다. 게임을 하면 폭력적이 된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웹툰이다” 등. 공포 마케터들은 특정 결론에 이르기까지 작용하는 수많은 원인과 맥락을 배제한 채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너의 불행이 초래되었거나, 혹은 곧 초래될 것이라 겁을 주는 방식으로 공포를 판매한다.
이어지는 내용
별로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있었다. 영화주간지 <무비위크>가 폐간했다. 몇해 전만 하더라도 <필름2.0>과 <무비위크>, 그리고 <씨네21>이 영화주간지 시장에서 경쟁했다. 월간지에서 격주간지로 개편했던 <프리미어>도 있었다. 이제는 <씨네21>만 남았다.
이어지는 내용
- 일베에서의 제 평가에 대해서도 참 동의할 수 없는 게, 저는 훨씬 전 "깨시민과 일베충 가운데 일베충이 그나마 낫다. 깨시민은 주관의 정의를 과잉 주장해서 위험"이라는 주간경향 인터뷰도 했었는데 존나 나를 좌빨이라고 깜.
- 일베충은 적어도 자기가 병신처럼 보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박정희를 찬양하지만, 깨시민은 똑같은 말에서 주어만 노무현으로 바꾸어놓고서 자신이 객관적이고 시대적으로 완전한 정의라고 주장한다.
- 나는 존나 대책 없는 좌빨이 맞고 욕먹어도 싼데 니들이 욕하는 층위는 아니다. 노빠 깨시민들은 일베충과 다를 게 전혀 없다. 그들은 그냥 취미 생활인데 다만 강건한 취미 생활. 문재인으로 도색하려면 콤프레셔 장만하세요.
- 정말 이 지긋지긋한 정의와 당위의 혼돈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나를 좌빨이라고 말하는 게 왜 다른 층위, 이를테면 노빠나 깨시민을 염두하고 그들과 내가 다르다고 주장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 결국 일베충이나 깨시민이나 서로의 존재로부터 자기 존재의 당위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오십보백보 똑같은 공생 관계. http://t.co/0zyd4BSms8
- 썰전 피디에게 갖는 감정도 이와 유사하다. 어차피 방송욕심이 없는데 분량이 뭐 중요하냐 나는 그녀의 판단을 백 퍼센트 신뢰한다. 정치적으로 나와 완전히 ‘다른’ 강용석과도 마찬가지. 사귈 것도 아니고 나와 다른 사람을 겪는 게 그리 정의로운 문제임?
- 누가 만들었답니까? 출발부터 성장의 무안단물 쪽쪽 다 빨아먹고 먹튀한채 이제 와서 세상 누구보다 정의로운 척 구는 자들이 가소롭다는 거지 “@kasarkim: IMF는 386이 만든게 아닙니다만..”
SNS에 풀어놓은 것 방출.
- 이런 수사는 문제. 경향 트윗 담당자 이야기임. 제 알량한 취향을 일반화하는 이런 류의 관리자에게 <케빈에 대하여>를 권한다. "@meinhof_ "어린 천사들에게, 대체 무슨 짓들인가요.ㅠㅠ"라니 진짜 경향 트위터 관리자 -_-;; http://t.co/do1gExyeTb "
- "아이들이 천사"라니 대체 애들을 키워보기는 하고 하는 소리인가?
- 자신이 천사를 기르고 있다는 부심으로부터 파생되는 자신감은 얼마나 위험한가. 자기 눈에 자기 피붙이가 천사 같다는 건 내 자지가 동양 최고라는 것과 유사.“@jinseokryu: @ozzyzzz @saew00 애들을 키워보면 천사 맞아요 ^^”
- 나는 자기 아이와 친해지는 데 몇년이 걸렸다는 엄마들을 몇 다스는 안다. 제발 "보자마자 이 아이를 책임지고 싶어 졌어요" 따위 일반화는 하지 말자. 그 근대의 판타지는 모성에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거짓일 뿐더러 당신이 나이 들어선 후회할 말.
- 이건 뭔 부심이냐.
- 나도 해피해킹 키보드를 써보지 않은 이들이 키감에 대해 논할 때 개입해서 일반화시키고 싶은 충동을 갖지만 니들 처럼은 안한다. 엄마와 아빠가 다르고 여자와 남자가 다르며 너와 그가 다르다니깐? 물론 엄마에게 신성을 부여해 유별난 책임을 씌우고 싶겠지.
- 영유아들은 자신이 반드시 귀여워야만 엄마와 아빠 둘 가운데 적어도 하나에게 '육아될 수' 있다는 걸 아는 영물이다.
- 베이비 박스에 갓낳은 아이를 넣으려다 그 얼굴을 보고 너무 내 새끼라 마음을 바꾼 사람들이 태반인데, 그 애기들이 웃지도 눈을 꿈벅거리지도 않고 브루스 윌리스처럼 흘겼다면? 모성 부성 판타지는 가족수=국력을 강조했던 근대의 조작이다.
- 아무튼 지 새끼만 오 마이 하느님 주의는 386부모들에서 폭발되었다. 공공질서 안지키는 애새끼들 부모 다 때려 눕히고 싶음. 그래놓고 이혼은 어느 세대보다 많이 하지. 니들이 사사오입 세대만큼 책임이란 걸 지어 봤냐 이 지긋지긋한 종자들.
- 그게 니 잘난 일반화와는 다른 게, 난 책 한 권 허락없이 사는 데 벌벌 떨고 숨겨야 했던 집안의 아이라 니가 말한 “개초딩”이려면 이미 인텔리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아 죽어야 했거든. “@MosaicXKer: 허지웅이 좀 멍청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한다. 애들이 시끄럽기는 그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좀 관대해지길, 니놈도 어릴땐 개초딩이 었어.”
- 아주 오래 전부터 주장했지만 수정은 국가 관할하에, 육아는 공공기관에서, 대가리 다 커서 산전수전 다 겪고 판타지 없이 아이고 그래도 부모가 최고임할 때 돌려보내 달라고. 지금처럼 육아 권장할거면.
- 와 진짜 오는 답글 보다보니 한국 내새끼 부심 돋네. "내새끼영재리즘"을 타파합시다.
- 좀 안똑똑하면 어떤가. 안똑똑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나? 가만 보면 386부모세대가 망쳐놓은 자장 위의 아이들은 '내 새끼가 알고 보니 글로벌 영재리즘'으로 고통받고 있는 듯.
- 지구상의 부모님들, 특히 내 세대의 부모들이여, 하늘이여 땅이여 원기옥을 동원해서라도 '내 새끼 너 새끼보다 난 새끼리즘'을 극복하자.
- 한국의 내새끼우쮸쮸쮸리즘이 어디 하루이틀 이야기라고 뭐 이렇게 공격을 하나. 아무튼 386이 다 망쳤다. 사회든 육아든 진영논리든 정의든 지속 가능한 정치든.
- ‘니들’ 새끼는 남다르다는 거냐 니들 ‘새끼’는 남다르다는 거냐. 부모의 판타지를 위해 대안 학교 갔다가 어린 나이에 인생 조지고 해외로 떠난 사람들 다수 알고 있음. 이 경우 정작 그런 뽐뿌를 보고 새끼를 거기 보낸 부모는 훗날 재정적으로 무능함.
- 남자들은 지 새끼 눈을 보자마자 아이고 이건 내 새끼 우쮸쮸쮸를 쉽고 편하게 뱉을 수 있음. 상대적으로 여자의 경우 보자마자 내 새끼 우쮸쮸쮸가 전혀 아니고 되레 나중에 친해짐에도 불구하고 모성에 관한 주변 편견에 의해 스스로를 강박하는 사례가 많다.
- 요 며칠 달이 평소보다 훨씬 더 크고 선명하고 빨리 움직이는 것 같은데 릴리스의 검은 달이 인류를 LCL로 회수하려는 참이 아니라고 누군가 말해주면 좋겠다.
- 나도 내가 시니컬한 리버럴 개새끼처럼 보인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깨시민이든 수꼴이든 모두에게 같은 주제로 동시에 욕먹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안다. 그런데 너 같으면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일일히 해명하고 싶겠나. 그냥 가끔 폭주할 뿐.
- 나는 한국에서 실현 불가하기에 그저 기믹일 수 밖에 없는 사민주의자인 동시에 좌파 리버럴을 까는 좌파 리버럴이며 비윤리적이고 심지어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그러므로 나는 세계를 인내하며 밥벌이를 하는 다른 모든 이들처럼 훌륭한 어른이 되는 건 글렀다.
-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 정도는 평생 결핍으로 남겨둔채 두고두고 떠올려야 최소한 말을 섞을 만한 수준의 꼰대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 이건 왜 쓸데없이 만듦새가 고퀄인거냐;;;; 진격의 에반게리온 : 진. 개인적으로 진격의 거인은 별로. 설정만 가지고 애초 대단한 비전이 있었던 듯 욕먹을 거면 이쪽이 제격인 듯. 결국 끝까지 보기는 하겠지만.
* SNS에 주절거려둔 것들 모아봤음.
- 아이언맨3는 개별 영화로 볼 때 즐겁지만 원작과의 캐미를 중시했던 마블 유니버스 안에서 따져보면 설정파괴가 너무 심하다. 마야 한센은 아이언 몽거를 써먹는 연장선 안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치더라도 만다린 어쩔거냐. 만다린 어쩔거냐고???
- 언젠가 만다린이 아이언맨3의 설정은 퉁치고는 제대로 된 반지 열 개를 끼고 와서 "어서 와 만다린은 처음이지?"라며 돌아올 것 같다.
- 에바를 중2병 텍스트라 퉁치며 거들먹거리는 자들은 대개 스스로 덕후가 아니라 강변하면서도 말로는 덕질에 위계를 나누는 괴악한 자들인데, 그들은 구판의 아스카에게 쳐맞아야 정신을 차림. 그나마 신극장판의 아스카는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 니들이 구판의 아스카와 신극장판의 아스카와 구판의 레이 1기 2기 3기와 신극장판의 레이 1기 2기 캐릭터를 서로 구별할 수나 있는가 모르겠다...
- 사도의 서드 임팩트와 제레의 인류보완계획과 겐도의 인류보완계획이 과정과 주체의 차이만 있을 뿐 결과적으로 다를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박터지게 싸워가며 서로의 비전을 실현하려 애쓰는 걸 보면 '에반게리온의 정치학'이라는 것도 꽤 흥미로운 주제가 된다.
- 아무튼 아이언맨3는 마블 유니버스와 무관하게 시리즈 안에서 완결의 미덕을 충실히 실현한 작품이라 할만한데, 적어도 보너스 영상만큼은 향후 유니버스의 확장과 연관되는 것이었으면 했다. 이를테면 옥 중의 만다린에게 정품 반지 열개가 배달된다던가.
- 2006년 사기스 시로를 만났을 때 그는 에바 신극장판에 대해 "신극장판은 구판을 기준으로 몇십 년 이후의 이야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에바의 루프 설정은 이미 티비판에서도 보이지 않았나? 카오루가 앉아있던 석화된 유사 양산형 에바 같은 거.
- 봤으니까 어찌됐든 지면에 쓰게 되는데, 에바에 관해선 지면 원고로 소비하기가 참 애매하다. 조금만 깊게 들어가려 하면 아무도 관심이 없거나 알 수 없는 내용이 되기 때문에 그냥 겉핥기에 그치게 된다. 요번 월간방송작가 원고도 그랬고.
- 마리:아스카:쿄코는 레이:초호기:유이 관계로 봐도 무방할 듯. 모체를 모성과 개성으로 분리해서 엔트리플러그에 심는 전사의 설정을 돌아볼 때.
- 구판 아스카와 신극장판 아스카, 구판 레이 1기 2기 3기와 신극장판 레이 1기 2기 캐릭터를 구별하는 게 덕질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익스트리미스에 지배될 때 아이언맨과 시빌워 전 후의 아이언맨을 구별하는 게 무의미한가? 아예 캐릭터가 다른 데?
- 에반게리온:Q에 등장하는 두 개의 창 카시우스와 롱기누스.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롱기누스는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병사고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시저를 암살한 원로들 가운데 하나일 뿐 전자와 생존시기가 다른 동명이인이다. 물론 '신을 죽였다'는 메타포에서 같은 종류로 치부될 수 있을 텐데 이때 새삼 중요해지는 건 신극장판의 센트럴 도그마에 보관된 거신의 가면이 TV판과 달리 릴리스의 그것이 아닌 아담(=사도)의 형태였다는 것이다.
- 카바라고 나발이고 순전한 텍스트의 차원에서 에바가 여전히 그럴싸한 것은, 이게 아담인지 릴리스인지 시골 약장수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온갖 공허한 방언들이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어찌됐든 히치콕의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늘 연출이 좋다.
- 환생 아닌 루프물을 '완결'지으려면 이전의 컨셉과 지금의 컨셉을 동시에 설명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설명이 곱절은 필요함. 꿈이었어=몽정, 꿈이여 아니여-구운몽, 음모론임=오픈 유어 아이즈, 루프물이었어=에바.
- 아무튼 자기 유년시절의 사실관계와 정확한 판단을 부정하고 깔아 뭉개며 지금이 더 나은 어른인양 퉁치기 위해 특정 텍스트를 인용하고 싶다면 차라리 천하제일무도회라는 판타지 없이 성립 불가능한 드래곤 볼을 언급하길 바란다.
방공호 아이디어는 할리우드에서 애용해온 소재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전후로 핵전쟁의 공포를 피부로 느꼈던 세대에 의해 주도적으로 다루어졌다. 핵전쟁 위기를 다룬 <환상특급> 시리즈의 에피소드들부터 <블래스트> 같은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공습이 임박하여 방공호에 들어가있다가 나왔더니’라는 설정이 숱하게 반복되어 사용되었다. 다가올 위협에 예비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광기에 잠식되어버리는 인간의 나약함과 집단의 공포를 드러내기에 이 소재는 꽤 매력적인 것이었다. 방공호 문밖의 세상이 실제 폐허인가 아닌가, 폐허라면 위기는 수습 되었는가 되지 않았는가를 두고도 여러가지 갈래의 서사가 가능해진다. 소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적 장치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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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퓨전 사극이나 트렌디물 일색의 한국 드라마는 아쉬운 볼거리다. 스릴러나 호러, SF와 같은 다양한 장르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드물게 시도되었던 장르 드라마들은 대개 소수의 팬덤을 양산하는데 그치거나 이도저도 아닌 꼴로 실패했다.
이어지는 내용
합리적인 기록이란 결국 생각이 다른 축들 사이 합의의 결과물임을 감안할 때, 논쟁의 역사를 주장하는 데 있어 그것을 성역으로 치부하고 나아가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악마화하는 태도는 자위에 지나지 않는다. 최소한의 합의가 있어야 다른 것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주 4.3이 강정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로부터 괴리된 무리한 아젠다인 동시에 어떠한 합의의 의지도 찾아볼 수 없이 어거지에 가까운 태도. 그것은 무엇도 해결하거나 합의를 이끌 수 없으며 단지 외부의 낭만에만 기여할 뿐이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가지 문제를, 단지 정치적 당위를 얻기 위해 같은 것이라 퉁치다 보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반발만 자극할 뿐이다. 자족하고 기뻐하는 건 진영 안의 소수자들 뿐. 비극을 소비하며 개탄하는 태도로부터 해소감을 얻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부조리 하나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소비하기 위해 또 다른 부조리와 뭉텅이로 퉁치며 사실을 단순화시킨다. 그들은 반대입장을 가진 그 어떠한 자들보다도 더욱 경계되어야할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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